한층 더 가까워진 둘 사이
이번 어버이날 연휴, 축구광인 아빠는 드디어 사위를 데리고 갈 기회가 생겨 신이 난 상태였다. 혹시나 부담일까 집이 멀어 자주 오지 못하는 우리 때문에 한 번쯤은 데리고 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긴 연휴로 2년 만에 시집간 딸 집에 놀러 와 대화하던 중, 이럴 때 한 번 가보라는 엄마의 던진 말을 아빠는 이때다 싶어 덥석 물었다.
"한 번 가볼래? 굳이 안 뛰어도 돼. 뛰지 말아 그냥 어떤지만 봐봐"
다음 날 시댁을 들리고 다시 친정집에 도착하자마자 아빠가 오빠한테 미리 묻고 싶었지만 이제야 생각난 척 물었다.
"신발 사이즈 몇이랬지? 입을 옷은 있나?"
안 뛰어도 된다는 말과 달리 운동화와 옷을 고르더니 다시 말했다.
"근데 진짜 안 뛰어도 돼. 힘들면 뛰지 마."
알겠다고 대답하면서 오빠는 집에서 챙겨 온 바르셀로나에서 사 온 유니폼을 챙겼다. 평소 오빠가 운동을 안 했던지라 무릎이나 어딘가 까져서 올까 내심 염려는 됐다. 일주일에 세 번 이상은 운동하는 장인어른 체력보다 나약한 사위였기에.
"이번에 내가 가서 장인어른 진짜 팽마담 만나는지 알아보고 올게."
팽마담.
아빠가 하루 종일 풀타임으로 축구를 뛰는 탓에 엄마가 하는 말이었다.
"축구 끝나고 와서 오빠가 씩 웃었는데 치아 하나 없으면 어쩔 거야?"
라고 형부의 말을 듣던 처제가
"언니 옥수수 사놔, 오빠 이에 껴주게."
라고 말했다.
운동복으로 갈아입은 오빠가 마치 경기라도 하는 것처럼 만반의 준비를 하는 걸 보고 어깨를 두들겼다. 결혼 전보단 사이가 많이 가까워지긴 했지만 과묵한 아빠랑 허물없이 가까워지기란 쉽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혼자 가는 운동이 아니라 가는 길 심심하지 않아서 결혼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또 들었다.
남자 둘이 떠나고 오래간만에 여자 셋이서 북카페로 향했다. 책을 읽다가 1시간이 지나서 온 오빠의 답장.
"죽을 것 같아"
팽마담은 저리 가라. 아빠는 진정한 운동꾼이니. 네 타임 중 오빠는 한 타임으로 25분을 뛰고 아빠는 세 타임을 뛰고 돌아왔다. 카페에서 돌아와 집 앞에서 만난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서 함께 타니 땀냄새가 진동했다. 여자 셋이 시큰거리는 땀냄새에 얼굴을 찡그리는 동안 장인어른과 사위는
서로 아는 대화를 나눴다. 아빠가 오빠를 바라보는 눈이 새삼 달라졌다. 신이 난 얼굴, 기분 좋은 상태일 때 나오는 미소.
"어땠어?"
"사람들이 나 대신 영입하라던데?"
"매주 나와야겠던데?"
"나 20명 제쳤어."
둘이 해맑게 보며 웃는 모습을 보니 여자 셋도 기분 좋아 웃었다. 씻고 나와서 둘이 서로 술 한잔 하는데 어느 때보다 아빠의 기분이 상당히 업이었다. 평소 대화도 많이 안 걸던 사람이 그날따라 오빠만 보며 이야기를 할 정도였다.
"형부가 아빠 운동 진작 따라가 볼걸. 저리 좋아할 줄이야."
딸 셋 집안에 혼자 술 마시고 취미 생활 하던 걸 어느 날 문득 생긴 사위가 자리해주고 있으니 아빤 남자 하나 생겨 기분이 좋아 보였다.
"사람들이 매주 오라던데?"
"영입해야겠던데"
"내가 50번 골 넣었어!"
취한 두 사람의 말은 반복되고 오빠의 골인 수가 말도 안 되게 늘어났지만 과묵하고 마음 열기 어려운 장인어른을 위해 노력한 사위의 모습 같아서 아내로서 너무 고마웠다. 딸로서만 아빠에게 주는 사랑이 한정적이라 아쉬웠는데 오빠가 대신 우리가 못하는 자리를 채워주고 있으니. 아빠의 행복 가득한 함박웃음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