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브런치 글쓰기를 멈췄다. 매주 수요일날 발행을 약속하곤 벌써 4차례를 건너 뛰었다.
계속해서 뜨는 알람을 무시한 채 하루를 살았다. 글쓰기 권태기가 아니라 그냥 쓰기가 싫었기 때문이다.
왠지 모를 두려움이 덮쳐왔었다. 글쓰기가 나의 업이 되고자 바라면서도 때론 진짜 업이 되면
내가 이 일을 사랑할 수 있을까에 대한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요즘 들어 빛의 아이들3편을 쓰고 있는 와중에 내가 이 작품을 사랑하면서 한편으로는
싫어하고 있다는 걸 알았다. 왜일까. 애증의 작품이 되어버린 것이다. 너무도 길게
이 작품을 못놓고 있어서다. 벌써 나온 1,2편의 작품 간격만 봐도 2년이 지났다.
벌써 2편을 마지막으로 쓴 게 2020년이니까. 무려 5년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2년이 흐른 줄 알았다. 머릿 속에 많은 아이디어들이 떠돌아 다니는데 정리를 못한
작가가 되어버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쓰고 읽고 퇴고를 반복한다. 언젠가 사람들이 자신의 글을 읽어주고
인정받기를 바라면서. 글을 쓰고 내가 얻고자하는 목적의식을 잃어버렸다.
처음엔 재미로 썼던 글쓰기가 지금은 나에게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압박감
글 쓰는 사람들 모두가 느끼는, 갑자기 초대 하지 않은 손님처럼 불쑥 찾아오는 감정이다.
잠자는 동안에도 풀리지 않은 설정들이, 내용들이 머릿 속을 떠돌아다녀선
수면 중에 날 괴롭힌다. 이런 저런 몇 십가지의 설정을 카카오톡에 메모지에 노트에
적어 놓은 것만 차곡차곡 쌓였다. 내가 과연 이 작품을 마무리 할 수 있을까.
아직 해보고 싶은 아이디어를 또 다시 차곡차곡 노트에 쌓아뒀다.
자던 중에 새벽에 깨어나 떠오르면 카톡에 적어놓기도 했다.
누가 널 괴롭히기라도 해? 아니? 작품 인물들이 널 깨워? 아니?
난 그들의 엄마이자 그들의 창조주야. 거만한 생각일지 모르지만
따져보면 정말 그러니까. 신은 우릴 창조했고 우리의 행동을 감시하며,
우리가 잘못된 길을 가면 바로 잡아주곤 한다. 작품의 인물들도
창조주인 내가 잘못된 길을 가게 되면 잡아주고, 다시 길을 만들어줘야 하니까
목적 의식을 잃어버린 인물들이 정처없이 뭘 해야하냐고 나에게 묻고 있으니 말이다.
멈추고 숨을 들이 쉰다.
글이 안 써질 때는 잠시 산책을 하거나 여러 인물의 시선을 생각하며
아, 얘는 이렇게. 쟤는 이렇게. 생각한다. 사람의 인생이 어디 내 뜻되로 되랴
내가 5년간 정처없이 바다를 헤매도 내 작품을 기다려주는 독자들이 있을텐데.
날 믿고 기다려주는 한 사람이라도 있으니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그랬다
묵묵하게 계속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내 안에서 뭔가가 일어난다.
그것을 참을성 있게 기다려야만 한다.
하루는 어디까지나 하루씩이다.
한꺼번에 몰아 이틀 사흘씩 해치울 수는 없다.
그런 작업을 인내심을 가지고
꼬박꼬박 해내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말할 것도 없이 지속력이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내가 좋아하는 책이다.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전업 작가가 되진 못했지만 내 스스로 임무를 부여했다.
아직 벌이는 없어도 나를 살아 숨쉬게 하는 건 글쓰기다.
나의 존재감을 부각시켜주고 나의 해야할 일을 만들어주는
그런 글쓰기의 힘을 나는 믿고 있다.
아마추어지만 성공한 전업작가처럼
성공한? 아닌, 그냥 보통 전업작가처럼. 정정하겠다.
많은 작가들이 방황하고 있겠지. 나처럼
하지만 묵묵히 쓰겠지? 나처럼
오늘도 카페에 와서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게 잘하는 건가
끊임없는 의문을 제기하면서 묵묵히 작가처럼 쓰고 있는 일
언젠가 빛을 발하는 날이 오겠지?
기대하진 않는다. 그저 내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묵묵하게 적는다. 5년동안 글을 멈췄냐고 묻는다면
멈추진 않았다.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았을 뿐 5년 동안 끊임없이
매일 썼다. 구상하고, 적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면서
그렇게 난 오늘도 다시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