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의미가 달라졌다.

결혼하고 나니 깨우쳐진 것

by 숨쉬는 순간

한 살 차이 남자친구와 4년간의 연애 끝에 결혼했다. 보통 사람을 만나면 적어도 일년을 만나보라는 사람들의 말이 무슨 뜻인지 전에는 몰랐다. 계절따라 사람이 바뀐다는 말인가? 왜 굳이 일년을 채워야하나? 첫 눈에 반해 속전속결로 결혼하는 사람도 있고 잘만 사는 사람도 많은데. 결혼하고 나니 이해가 된다. 조금이라도 더 만나보고 결정하라는 말뜻을.


상대를 두어 번 만나보면 '아, 이런 사람이구나.' 라는 걸 대충 파악하게 된다. 더 만날지 안만날지 세 번 정도면 판가름 난다는 것을. 연애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1년 정도까지는 뭘 해도 좋은 사람 같구나. 괜찮다. 착하다. 성실하다. 상대를 판단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의외로 주변에서 200일도 안되서 결혼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정적인 시선보다 정말 불꽃튀는 사랑도 존재하구나. 라는 걸 느꼈을 뿐이다. 사랑에 대해서 잘 알기 때문이 아니라 사랑을 넘어서 사람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대 초반에는 연락이 안되면 불안하고, 초조하고 5분 동안 연락 횟수가 사랑의 횟수라고 믿었던 참 어리숙한 사랑을 했었다. 상대를 굉장히 피곤하게 만들고 상시 나에 대한 사랑이 얼만큼인지 알기 바쁜 것 같다. 그래서 나를 보살핀 시간이 줄어들고 상대를 통한 자존감 회복이 되려 하락하고 있었다. 그때의 모습은 풋풋해서 좋았겠지만 내 속은 그렇지 못했던 기억이 많다. 지금에서야 그때 일기를 회상하면 볼펜으로 슥슥 긋거나 내 상황보다 상대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했다. 마치 사탕 안사줬다고 징징대는 어린아이를 보는 것만 같다.


언제 남편과 만나 결혼을 해서 신혼 3년차에 이르렀나. 이젠 그런 20대의 멍청하고 어리숙한 사랑은 하지 않지만 사랑은 그대로 하고 있다. 조금은 다르게. 조금은 성장한 느낌으로. 남편과의 첫만남에선 오랜 공백기간 덕에 설렘을 느낀다거나 새로운 사람에 대한 흥미가 현저히 떨어진 상황이었다. 이 사람과도 잘 되려나. 되면 되고 아니면 말고. 쿨하다 못해 지금 생각해보면 상처 받을까 미리 문을 닫았을지도 모른다. 나도 내 스스로 내 감정을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그때는 너무 엉성하고 첫만남부터 묘한 뚱땅거림을 보여주는 오빠에게 흥미가 생겼었다. 괜히 저러나. 호기심을 주곤 했던 것 같다. 자기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는 사람을 빤히 보며. 이 사람이 나에게 관심이 있나 없나. 그래서 애프터 신청을 하겠다는 건가?


"그래서 내일 볼 거에요?"


오빠가 주저리 말하던 중에 내 말을 듣고 멈칫했다.


"네?"


"그래서 볼 거냐고요"


"아.. 내일 뭐하는데요?"


"연극보러 가는데요. 모임 사람들이랑"


"제가 데려다줄게요."


"왜요?"


"네?"


"왜 데려다주시려고요?"


"아, 저도 그쪽에 뭐,, 볼 일이 있어서요."


나도 참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좋은 사람인 척 하는 이상한 사람 쪽이 아닐까 싶다. 무의식 속에서 불쑥 나오는 말이 앞뒤가 좀 다른 느낌이랄까. 뭐 아무튼 그래서 오빠와 다음 날 만남에서 좋은 쪽으로 흘렀으니 다행이다. 어쩌면 오빠가 대시를 한 게 아니고 내가 대시를 한 건가? 싶기도 하고. 소개해준 친구한테는 내 스타일 아니야. 이래놓고 행동은 적극적이었다. 지금에서 그때 이야기를 할 때면 남편도 내 스타일이 아니었어. 라고 말하거나 그때 왜 갑자기 데려다줄 거냐고 물어본 이유를 묻고 한다. 그러면 나도 모르겠다고 말한다. 남편과 불꽃튀는 뜨거운 연애. 매일 같이 보고 싶어 잠을 못 이룬다거나. 남자다운 면모에 콩닥거리는 소설 속 그런 연애는 아니었다. 남자친구보다는 아빠처럼 날 딸처럼 챙기는 편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연애때부터 지금까지도. 식당에서 화장실을 가면 앞에서 기다려준다거나. 어디 놀러갈 때면 내 것부터 잘 챙겼나 확인하는 걸 보면. 남편의 잔잔하게 날 챙겨주는 사랑 표현에서 이게 진정한 사랑이라는 걸 깨달은 모양이다. 오히려 이제는 이러한 챙김 속에서 설렘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고 있다. 사랑의 의미가 달라졌다. 진정한 사랑의 의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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