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 이리저리 방 안을 돌아다니며 바삐움직인다. 미뤘던 집안일 가운데 보이는 한 가지를 한다거나. 책을 읽거나 혼자 끄적이는 데 시간을 보낸다. 부지런해지려는 강박감이 늘 존재하는 사람. 남들이 보기엔 쉬어도 되는데, 좀 쉬지. 하는 스타일이다.
오빠는 오락거리를 즐긴다. 건담을 조립하거나 공포게임을 보거나 진짜로 게임하거나. 밖에 나가 누구를 만나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노는 시간을 더 좋아하는 사람들 부류이다. 방 안에는 만들지 못한 건담 박스가 쌓여 있어서 같은 면적인 내 방보다 훨씬 작아보인다. 지금까지 만든 건담만 해도 장식장 안에서 건담들이 하나의 군대처럼 무장한 채로 문을 지키고 있다.
"얘네 숨막힐 것 같아. 이러다 장식장 터지겠어. 이 많은 박스 안에 애들 다 못 들어가."
"나도 사는 건 최대한 줄인 거야. 진짜 이건 꼭 사야 하는 것들만 내 용돈으로"
풀이 죽은 목소리로 한 번만 봐달라는 표정을 짓는다. 그 말을 한지도 얼마 안 있어서 며칠 뒤 문 앞에 보이는 박스 두 상자가 도착했다. 한눈에 봐도 건담박스 사이즈.
"알겠다면서. 이건 또 뭔데?"
"몇 달 전에 주문했던 거에 유.." 슬슬 눈치를 보며 입술을 내민다.
"속았어! 난 속았다고! 연애할 때 게임 안 좋아한다고 하더니"
또 하나의 오락거리 게임 마저 언젠가부터 너무 자주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자들의 로망이었던 엑스 박스. 답프러포즈로 갖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을 때 몇 주를 알아보다 고른 선물이었다. 막상 할 때는 기뻐해서 뿌듯했는데. 선물하고 나서 아내들이랑 많이 싸우는 선물 중 하나라는 걸 들었다.
"왠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12시가 넘도록 신나게 게임하는 모습을 보면 어딘가 치밀어오르는 분노.
"무슨 초등학생도 아니고 게임하는 시간도 안 보고 해? 지금 몇 시인 줄 알어? 앞으로 일주일에 2번."
"너무 적어요."
"3번은 너무 많아."
오빠의 게임하는 날을 정하는 내 모습. 결론은 2-3시간 하는 날 뒤로 하루는 건너뛰기.
"오빠는 여가 시간을 게임이나 건담 말고 나랑 같이 독서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때? 이제 우린 30대야. 앞으로 미래를 그려나가려면 독서는 필수야. 나중에 아가 낳으면 아빠가 책을 읽어준 아이들이 더 지능이 똑똑하다더라."
"알겠어요"
심드렁한 표정, 함께 마주 앉아 독서하기를 이틀. 내 말에는 고분고분 움직이는 남자. 나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러다 형부가 s박스를 샀다는 말에 내 여동생이 집에 놀러 왔다. 게임 코드가 잘 맞은 둘이 나 빼고 둘이서 신나게 대화했다. 오빠가 게임하는 걸 언니도 봐보라며 옆에서 나란히 앉아 있는 동생과 뿌듯해하는 오빠를 보니, 어딘가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휴식을 보낸 내 모습은 과연 행복한가하고. 왜 어느 순간부터 불면증이 생긴 걸까. 항상 피곤해 할까. 왜 무기력해졌을까.
오빠는 행복하게 시간을 보내며 온전한 쉼을 보내는 사람이었고 나는 여가 시간을 통해 더욱 성장하는 사람이 되길 바란 것이다. 아마 나뿐만 아니라 요즘 사람들이 휴식을 온전히 하지 못하는 이유도 스스로 기준이 높아서. 완벽한 사람이 되기 위한 발버둥 때문이 아닐까.
"호그와트 래거시 봐봐. 이거 00가 좋아할 거야. 이번에 게임 나온 거 있는데"
"왜, 재밌어?"
"보니까 재밌어. 나도 옆에서 오빠 하는 거 볼래."
"안그래도 너가 보면 좋아할 것 같은 게임 보여주고 싶었는데. 유럽 신화 모티브라 좋아할 거야."
오빠 옆자리에 앉아서 보는데 세상에나. 영상미와 스토리가 재밌어서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요즘 게임은 캐릭터의 생동감과 스토리가 영화 한 편 보는 거와 다를 게 없다. 게임일지라도 스토리가 좋아야 사람들이 찾는다는 말에 인풋을 하는 중이다. 미래를 위해 어느 순간부터 나를 옥죄여오던 내 모습이었다. 불완전한 나를 겉으로 완벽한 사람이 되기위해 괴롭혔던 것이다. 아직 난 불완전한 사람이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뭔가 도전하고 현실에서 벗어나야 해! 지금 아니면 할 수 없어. 피곤함은 게으름이야. 움직여야 해!
이런 내 머릿속으로 인해 온전히 쉬는 걸 몰라서 슬럼프가 자주 오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하고 나서 내 마음이 확실히 편해졌다. 결혼 전에 혼자 자면서 온갖 생각들로 날 괴롭혔던 미래의 불안도. 옆자리에 있는 사람과 함께 하니 천천히 나아가도 된다고 생각이 바뀌었으니까. 지금도 충분히 행복해.
이래서 내 성향과 반대가 되는 사람을 만나야 된다. 오빠를 통해 날 다시 되돌아보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에. 내가 하는 모든 걸 응원해 주는 고마운 오빠, 오늘도 내일도 더더 사랑하자
어제 올린 사위를 짝사랑하는 장인어른 조회수가 폭발했다. 신혼일기를 올린지 일주일이 지나서 5천 명이 넘는 분들이 읽어주셨다니 너무 감사한 마음을 느낀다. 매일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신혼일기의 중심보단 나 자신에 대해서 알아가는 중이다. 한동안 느꼈던 글을 통해 절망했던 순간도, 성취감이 컸던 순간도. 위로받던 그 순간도. 그 모든 감정들이 내가 나란 사람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소중한 기회라는 걸 온몸으로 느낀다.
포기하지 마세요. 주어진 기회가 올 때까지 노력하고 또 노력하세요.
브런치스토리에서 글을 쓰는 모든 분들 응원합니다. 항상 건 필하시고 언젠가 큰 기회가 올 거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