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제목을 좀 세게 뽑았습니다. 제정신 아닌 것 같아서요.
뭐, 고려아연이라는 법인에 대해서도 명예훼손이 성립할 수 있긴 합니다만... 이미 공시된 내용에 대해 제 개인적인 의견을 표명하는 것 뿐이니 명예훼손이 될 여지는 없습니다. 그냥 곧바로 실제 법인명 쓰도록 하겠습니다.
(참고로, 나중에 기업물 소재로 활용하려고 정리하는 것이고 개인적으로 현재 고려아연의 분쟁 당사자들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이 점 미리 명확히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일전에 '자사주를 비싸게 취득하면 배임일까?'라는 제목으로 고려아연의 경영권 분쟁 초창기 상황을 정리한 적이 있었습니다. 시세가 현저히 높아져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비싼 가격으로 자사주를 취득하고 거기에 더해 대출까지 받아 가며 사들이겠다는 결정을 내렸다면, 오너 개인의 목적을 위해 회사에 손해를 입힌 것으로 판단될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https://brunch.co.kr/@0a2c72370ba24fa/140
이 글을 쓰고 나서 시간이 좀 지났는데요. 그 동안에 다음과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1) 고려아연의 기존 오너 쪽은 정말로 금융권 대출 + 사채발행 등을 통해 '빚 내서 자사주 매입'을 강행
2) 적대적 M&A로 밀고 들어온 MBK+영풍 연합이 약간 더 많은 지분을 확보
3) 고려아연이 재반격 카드를 준비한다는 기사가 조금씩 나옴. 이 때 당시에는 과거에 매입했던 자사주를 '우리사주조합'에 넘겨 의결권을 부활시킨다는 시나리오 정도였음
그리고 오늘. 저를 포함한 많은 개미투자자들을 당황시킨 속보가 떴습니다.
4) 고려아연이 유상증자 결정. 2조5천억 규모로 유상증자를 하며, 해당 유상증자 중 20%는 우리사주조합이 인수하고 나머지 80%는 일반공모로 진행
이 속보 기사를 보고 처음 든 생각이 저 제목이었습니다. '아니 C발 제정신이야?'
이후에 다시 정리할 건데, 이건 대한민국의 적대적 M&A 역사에서 '희대의 뻘짓'으로 기록될 것 같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내가 못 가질 바엔 부숴 버리겠어!] 라는 마인드로 해석될 것 같네요.
하나씩 정리해 보겠습니다.
2. 본론
(1) 자사주취득 및 유상증자 일반론
많이들 아시겠지만 일단 일반론을 읊어 보겠습니다. 우선 자사주취득부터 가죠.
1) 자사주취득 및 소각
자사주취득은 그냥 돈 많이 쌓아둔 회사가 딱히 투자할 곳이 없을 때 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남는 돈으로 자사주 사들이면 시중에 유통되는 주식의 가격이 오르고, 회사는 언제든 현금화할 수 있는 유가증권을 보유하게 됩니다. 기존에 돈 잘 벌던 고려아연이 딱 선호할 만한 결정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취득한 자사주를 그냥 소각해 버릴 때가 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현금화할 수 있는 유가증권이 사라지게 되어 안 좋을 것 같지만 이미 자사주를 취득할 정도의 회사들은 다른 현금성자산이 충분히 많을 것이고, 자사주를 소각하면서 유통주식수가 줄어들면 잔여 주식의 가치가 높아지며, (주로 대주주의 경우) 배당받아서 세금 내는 것보다는 유통주식수를 줄여 지배력을 강화하는 게 더 낫기 때문에 자사주 소각 결정을 합니다. 이 또한 정상적인 상황의 고려아연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결정입니다.
그런데 최근의 고려아연은... 매우 비정상적인 형태의 자사주취득을 했습니다. '빚 내서 자사주 사들이기'를 시전한 거죠. 또 그걸 소각하겠다고 미리 선언한 건 보너스.
해당 자사주 가격이 낮다면 이해할 수도 있지만, 이 결정을 발표할 당시 고려아연의 오너는 '정상적인 시장가치에 비해 주가가 많이 올랐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이미 과도하게 오른 비싼 가격으로 자사주를 사들이는데 그걸 빚잔치로 사들여서 태워 버린다는 거죠.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는 건 당연한 거였습니다.
뭐, '국민기업 방어'라는 논리를 병행하긴 했습니다. 오너 개인을 위한 게 아니고 국가를 위한 결단인 것처럼 포장해 줄 수는 있죠. 몇몇 국회의원들이 그에 동조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구요.
그러다가 갑자기 유상증자 뽷!
2) 유상증자
유상증자는 회사가 새로 자금을 조달할 때 진행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금융권에서 대출받아도 되겠지만 그러면 부채비율이 올라가고 비싼 이자를 내야 하니, 그냥 회사 주식을 새로 발행해 자본금을 늘리고 그 주식 액면자본금 및 액면가초과발행분 잉여금을 자금으로 활용하겠다는 거죠.
유상증자를 하면 보통 주식가격이 떨어집니다. 회사 주식 수가 늘어나면 기존 주주들인 지분율이 내려가기 때문에 지분가치가 희석되게 되고, 그 때문에 주식이 하락한다고 설명하죠. 주식 초보들도 다 아는 내용입니다.
보통은 주가가 내린다고 했지만 다 그런 건 아니고, 가끔 유상증자를 하면 주식가격이 오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사가 자금난에 허덕이다가 유상증자에 성공해 신규자금을 유치하게 되면 눈 앞의 자금난을 넘을 수 있는 상황일 때 주가가 오릅니다.
어느 쪽이든, 유상증자는 회사가 돈이 없다는 걸 인정하고 자금을 모으는 방식입니다. 신규자금이 회사로 유입되니 회사 입장에서 손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지분가치가 희석된다는 측면에서 기존 주주들에 대한 배임 문제는 발생할 수 있죠. 그래서 '주주배정'이 기본이고 제3자배정은 신기술개발 등의 요건이 있을 때 예외적으로만 가능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고려아연 유상증자는...
일단 제3자배정 방식은 아닙니다. 우리사주조합에 20%를 배정한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발행주식은 일반공모 방식이고 이러면 기존 주주들의 신주청약권은 보장될 거예요. 주주배정 원칙을 따르고 있긴 합니다.
반면 주가 측면에서는... 오늘 속보 나오고 나서 명확한 반응이 왔죠. '하한가'.
이번 유상증자로 (그 전에 한참 3~4배 폭등했던) 고려아연 주가가 폭락했습니다. 주주들 입장에서는 곡 소리 날 만큼 떨어졌습니다.
이 유상증자. 과연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을까요?
하나씩 따져보겠습니다.
(2) 고려아연 유상증자의 법률적 쟁점
1) 기존 자사주취득 배임 혐의와의 연관성
앞선 글에서 썼듯이, 시장가치에 비해 과도하고 올라간 가격에 자사주를 취득하고 또 그 자사주를 취득하려고 고율의 이자를 부담하면서 대출까지 땡겨 썼다면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판단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업무상 배임'이 성립할 수 있는 거죠.
그걸 이번 유상증자 건으로 더 확실하게 해 줬습니다. 자사주를 취득하는 과정에서 보유하고 있던 현금을 다 꼬라박고 대출까지 땡겨 써서 자금이 부족해졌으니 그걸 유상증자로 메꾼다는 걸 만천하에 떳떳하게 알렸습니다.
처음부터 자사주를 취득할 때 무리하게 대출 땡기지 않았으면 유상증자를 할 필요도 없었겠죠. 매년 몇천억씩 이익을 남기는 고려아연이 무슨 대규모 신사업을 하는 것도 아니고 '자사주를 사들인다'는 무의미한 일에 몇 조의 대출을 받는 것도 문제였고 배임 소지가 다분한데, 이렇게 배임 혐의가 있는 일을 후속 땜빵하려고 유상증자를 단행한 겁니다.
이 후속 유상증자. 별도의 배임일까요? 아니면 이미 발생한 일의 사후조치로서 불가벌적 사후행위라고 평가될까요?
판례를 찾아본 것은 아닙니다만, 아마 별도의 배임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손해를 끼친 주체가 달라졌거든요.
대출땡겨 자사주취득 당시 피해자는 '회사'였습니다. 이 후속조치로 대출 메꾸려고 유상증자를 하면 피해자는 '주주'가 되겠죠. 유가증권시장에서 주식 폭락한 게 1차적인 손해일 것이고, 지분가치가 희석된 것도 손해일 것입니다.
다만, 주식 폭락 자체는 전부가 손해로 인정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 주가 자체가 정상적인 기업가치보다 몇 배로 뻥튀기된 상황이니까요. 150만원짜리 주식이 40만원까지 꼬라박았다고 해서 손실분 -110만원 전체가 주주들의 손해로 보기는 어려울 겁니다.
구체적인 손해비율 산정은 법원이 알아서 할 테니 넘어가고. 유상증자 자체가 주주들에 대한 새로운 배임으로 될 수 있다는 점 정도만 언급하고 끝내겠습니다.
2) 일반공모에 들어올 제3자가 정해져 있는 경우 : 자본시장법 위반
유상증자 발표를 하면 주가가 떡락할 거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일입니다. 이 결의를 한 이사들은 모두 주가떡락을 알면서 강행했다고 봐야겠죠.
이렇게 폭락한 주식에 대해, 기존 주주들에게 우선적인 신주청약권이 부여되긴 합니다. 대주주든 개미든 모두 기존에 보유한 주식의 비율대로 신주청약을 넣을 수 있어요. 그건 가능합니다.
(* 쓰고 나서 다시 기사 찾아보니, 금번 유상증자는 특수관계자 포함하여 3%까지만 청약을 허용한다고 합니다. 이런 대주주 제한 일반공모 결의가 적법한지도 의문이지만 기존 오너 측에서는 신주의 3% 수준의 자금만 갖고 있다고 공개하는 거겠죠. 적대적 M&A 시도하는 쪽의 특수관계자를 어떻게 판별하려는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습니다만.)
그러나 현실적으로 개미들 대부분은 신주청약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려아연에 목숨거는 것도 아니고 단기간에 주가가 반토막 세토막 네토막 나는데 새로 발행하는 주식을 돈 들여서 살 이유가 없죠.
이렇게 기존 주주들이 청약하지 않은 주식은 제3자가 사들일 수 있는데... 이 제3자가 이미 내정되어 있다면? 기존 오너가 자신의 백기사로 끌어들일 제3자와 이면합의를 맺고 주가를 폭락시키기 위해 유상증자 폭탄을 히밤쾅 터뜨린 거라면?
이건 전형적인 주가조작입니다. 자본시장법 조항을 세부적으로 찾아본 건 아닙니다만 고의적으로 시세를 떨어뜨렸다는 건 초딩도 알 수 있어요. 지금 구속수감되어 있는 카카오 의장과 동일한 혐의를 적용할 수 있습니다.
설마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겠죠. 소설에서라면 살짝 과장되게 이런 내용 넣을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 이 정도로 무모한 짓을 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다음 추정 넘어가 보죠.
3) 일반공모에 들어올 제3자가 정해져 있지 않은데 단지 '일반주주가 기존 오너 편을 들어 줄 거다'라는 기대감으로 히밤쾅 유상증자 폭탄을 터뜨린 경우 : 꿈 깨세요
현재 나온 기사로 볼 때에는 이 (2)-3) 시나리오일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즉, 유상증자를 해서 기존 개미든 신규 개미든 일반주주가 늘어나면 이들이 기존 오너 편을 들어 줄 거라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아 보입니다.
이렇게 유상증자로 들어온 일반주주들이... 기존 오너 편을 들어 줄까요? 기존 오너가 정말로 고려아연을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는 국민기업으로 잘 운영해 주고 국가기반산업 기술을 지켜낼 거라고 생각해서 개인의 손해를 감수하고 오너의 경영권을 지키는 데에 한 표 던질까요?
그냥 무식하게 말하겠습니다. '정신차리세요 닝겐'.
주식투자는 국뽕으로 하는 거 아닙니다. 어설픈 애국심도 통하지 않아요. No Japan 하던 사람이 어느날 입꾹닫 상태로 유니클로 사입는 것보다 오조오억배 더 냉정하게 국뽕기업을 내칠 수 있는 게 주식투자자입니다.
일반 개미들도 다 생각이 있고, 본인 주식 가격에 손해를 입히는 사람이나 조직이 있다면 매우 단호하게 배척합니다. 돈 앞에서 멍청해지는 인간은 없어요. 극히 예외로 인간으로 분류하기 어려운 수준의 인간이 한두 명 있을 수는 있겠지만 능지를 갖춘 대다수의 일반인은 본인의 돈이 최우선입니다.
유상증자를 통해 새롭게 주주가 되는 일반인들은 오히려 기존 주주에게 적대적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경영권 흔들어서 주가가 3~4배 뛰는 걸 봤는데 또 한 번 더 흔들면 좋죠. 고스톱에서 흔드는 것보다 더 좋습니다.
일반주주들이 국뽕러쉬에 취해 고려아연 기존 주주의 경영권을 지켜 줄 거라고 생각한 거라면... 알아서 하세요. 결과가 말해 줄 겁니다.
(3)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 내가 못 먹을 바엔 부숴 버리겠어!
20세기 말의 T.O.P였던 심은하 배우께서 명작리메이크 '청춘의 덫'에 출연했을 때 명대사가 있습니다. "당신! 부셔 버리겠어!"
(제 기억엔 분명 '부셔 버리겠어'였는데 부신다는 건 설거지 한다는 뜻이어서 어느새 '부숴 버리겠어'로 바뀌었더군요. Hoxy 몰라서 덧붙이는데 여기서 설거지는 진짜 그릇세척을 의미하는 것이고 몇몇 집단이 혐오 의미라고 주장하는 것과 무관합니다. 제 다른 소설에서 '봇물'은 현대적(?) 의미로 사용하긴 합니다만 설거지는 그냥 설거지예요. 이런 설명을 덧붙이는 것 자체가 저능지 놀이에 말려드는 거라는 걸 알지만 하도 난리치니 덧붙이게 되네요;;)
잠시 옆길로 샜는데, 아무튼 이번 고려아연의 유상증자 결정은 아무리 봐도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기존의 '대출 땡겨 자사주취득'의 후속편이라고 하면 배임 혐의를 강화하는 것 뿐이고, 일반공모 미청약 신주를 인수해 줄 제3자가 정해져 있다면 빼박 자본시장법 위반이며, 주가대폭락 쇼를 벌이면서 일반주주가 기존 오너를 지지해 줄 거라고 생각했다면 제정신이 아닌 겁니다.
이 결의를 한 이사들이 모를 리 없겠죠. 지나가다가 인터넷 속보 한 번 본 하꼬소설가 겸 회사원이 바로 생각할 수 있는 걸 경영의 전문가들이 모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결정했다면... '부숴 버리겠어!'밖에 없겠죠. 남한테 줄 바엔 망가뜨리자는 겁니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저는 그냥 개인일 뿐입니다. 사모펀드든 기존 오너든 저랑 아무 상관 없습니다. 그저 직장인으로서 이 사태를 바라보고 장래 기업물을 쓰고 싶은 소설가로서 이 사태를 정리할 뿐입니다.
제가 내린 결론은 '내가 못 먹을 바엔 부숴 버리겠어!' 입니다. 언젠가 소설을 쓰게 되면 이 결론에 맞춰 캐릭터를 설정하고 이야기를 전개하게 되겠죠.
오늘 글은 여기서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