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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드시 이직해야 했던 이유 3가지(어쩌면 4가지)

by 테서스

온 우주의 기운이 휘몰아쳐 주먹으로 집중되어 죽빵마려워지는 (조카튼튼) 설명회 이후. 저는 '2016년이 가기 전에 반드시 이직한다!'는 개인 KPI를 세웠고 그대로 실행했습니다. 회사와 팀 단위의 KPI는 아몰랑. 당장 내가 살아야지 회사와 팀은 어찌되든 무슨 상관이람.


제가 2016년 중으로 이직해야 했던 이유는 3가지였습니다. 어쩌면 4가지일 수도 있는데 그 중 두 개는 서로 연관되기도 하니 '보충' 정도로 정리하도록 하죠.


간단하게 요약하겠습니다.


1) 2015년 인센티브를 이직 연봉 협상에 반영해야 한다.

2) 2016년에는 대규모 적자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니 연봉이 꺾이기 전에 이직해야 한다.

3) 2016년에 실적이 악화되면 조기진급 같은 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니 이것 때문에라도 2016년이 가기 전에 이직해야 한다.


* 3)에 대한 보충) 회사 내부적으로 '초기 양천방송-경남방송 파벌'이 위장된 충성심을 앞세워 주요 요직을 장악하는 분위기라 이걸 피하기 위해서도 최대한 빨리 이직해야 한다.


는 정도로 서술하면 되겠네요. 하나씩 가 보겠습니다.



1) 2015년 인센티브를 이직 연봉 협상에 반영해야 한다.


잠시 얘기했듯이, CJ그룹은 그룹 네임밸류에 비해 연봉이 그리 높지 않습니다. 빛 좋은 개살구인 E&M에는 수십억 연봉을 받는 스타 PD들이 포진해 있지만 막상 E&M 자체는 만성 적자에 허덕이고 있었고, 다른 계열사는 20위권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치고는 평균보다 낮은 수준의 연봉을 받습니다.


당시 헬로비전 과장 3년차였던 저도 그러했습니다. 대략 연봉 5천만원 수준. 매년 조금씩 오르긴 하겠지만 5천 대 초반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또한 잠시 얘기했었죠. 2015년 말에 기습매각 발표가 나면서 노조가 생겼고, 화들짝 놀란 CJ측이 분식회계 수준으로 해당 연도의 성과를 뻥튀기하면서 인센티브를 대폭 많이 지급했었다는 것.


그 해에 제가 받은 인센티브가 연봉의 30% 정도 됩니다. 즉, 2015년 한정으로 연간 총소득이 130%로 올라가 있는 상황이었다는 거죠.



프로이직러인 분들은 잘 아실 텐데, 이직할 때 연봉협상을 하려면 '직전 회사의 연봉'을 기준으로 시작해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근로소득 원천징수영수증'을 증빙으로 오픈해야 합니다. 증빙 없이 허위로 연봉 부풀렸다가는 채용취소 크리티컬 맞기 딱 좋습니다.


이렇게 최종 근로소득 원천징수영수증을 연봉협상 자료로 활용해야 하는데... 2015년 말에 인센티브가 뽷! 연간 연봉 수준이 130%로 상승 뽜봫!


2015년 근로소득 원천징수영수증을 기반으로 연봉협상을 하려면 2016년이 가기 전에 이직에 성공했어야 했습니다. 저 자신의 몸값을 높여서 이직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됐고, 헬로비전의 대표님이 (조카튼튼해지기 전에) 여러 차례 강조했던 것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KPI를 달성'했어야 했습니다.


두 번째 이유로 넘어가 보죠.



2) 2016년에는 대규모 적자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으니 연봉이 꺾이기 전에 이직해야 한다.


이직 시기가 2017년으로 늦어지면 2016년의 연간총소득이 확 줄어들게 되어 이직 연봉협상에서도 매우 불리해지는 상황. (조카튼튼) 설명회에서 "매각 위로금은 없어졌고 열심히 일해서 인센티브 많이 받으면 되지 않겠어요 허허허."를 시전당한 이상 2016년의 연간총소득이 2015년보다 줄어들 건 거의 확실해졌습니다.


여기서 누군가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죠. "2016년의 인센티브는 아직 확정된 거 아니지 않냐? 2015년 말에도 직원들을 위로하는 차원에서 영업이익 부풀리고 평가기준도 좋게 해 줬으니 2016년에도 그렇게 하면 되는 거 아니냐?" 라고 얘기할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그럴 리 없겠죠?



빅 배스(Big Bath)라는 용어가 있습니다. 한바탕 크게 씻어낸다는 의미인데, 기업에 쓰일 때에는 "분식회계 및 기타등등 사유로 쌓인 부실을 한 방에 털어낸다"는 뜻으로 사용됩니다.


분식회계 장난질을 치면 몇 년 후에 반드시 빅 배스를 해야 합니다. 건설회사의 경우 대부분 공사 공정률을 조작해 장래의 매출과 이익분을 1~2년 앞당겨 인식하는 방식을 썼는데, 이러면 공사가 완료되는 시점에서는 이익이 확 줄어들겠죠. 분식회계를 정리하는 시점에서 대규모 적자가 발생할 수 밖에 없습니다.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큰 분식회계는 '대우그룹'이겠지만, 제가 사회생활 하면서 (간접적으로) 본 것 중 가장 큰 빅 배스는 2013~2014년 즈음에 'GS건설'이 시행했었습니다. 해외에서 못 받은 공사미수금을 모두 영업이익으로 인식하고 있다가 한 방에 회수불능 처리하면서 갑자기 -2조원 적자 뽷! 주가 1/4토막 뽜봫! 개미들 곡소리 나지만 그딴건 아몰랑!



당시 CJ헬로비전은 건설회사 수준으로 분식회계 장난질을 하진 않았지만, 기본적으로(!) 허위매출을 깔고 가는 회사가 정상적인 회계처리를 했을 리 없죠. 헬로비전은 [비용의 자산화]라는 말도 안 되는 회계기법(?)을 적용하고 있었습니다.


비용의 자산화. 이건 뭘까요? 무슨 헛소리일까요?


별 거 아닙니다. 한 번에 비용처리해야 할 장비구매비용을 일단 자산으로 인식한 뒤 매년 감가상각으로 처리하는 것 뿐입니다. 1년에 -100억 처리해야 할 것을 10년에 나눠 매년 -10억씩 처리하는 것 뿐입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쌓이면 은근 많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헬로비전이 '비용의 자산화'로 처리하지 않은 장비구매비용이 2016년 기준으로 약 900억원이었습니다. 이거 한 번에 처리하면 한 해 영업이익이 사라지는 수준이었죠.



또한, 헬로비전은 [홈쇼핑수수료 감액]이라는 진또배기 크리티컬 치명적인 위기를 맞고 있었습니다. 한 해에 현금으로 2300억 갖다바치던 홈쇼핑 측이 GS홈쇼핑을 필두로 하여 -20% 감액 지급을 하고 있었고, 이 감액분이 확정되면 당장 2016년만 -400억 가깝게 매출과 영업이익이 줄어들게 되며, 그 다음해에는 더 줄어들 예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과거에 영전해서 떠나셨던 대표님이 돌아오시면 '대표님의 실적'을 위해서라도 한 번 바닥을 찍어 줘야 합니다. 초반에는 대규모 적자가 날 만큼 위기상황이었지만 '매지션'이 돌아오신 이후 그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한 번 흑자전환, 뭐 이런 알흠다운 시나리오를 만들어 드려야죠. 다 알면서 속아 주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헬로비전은 '빅 배스'가 필요했습니다. 조카튼튼 설명회에서는 "X빠지게 일해서 인센티브 더 받으세요. (그 과정에서 대표이사 인센티브가 50배 100배 찍히는 건 아몰랑) 허허허." 라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빅 배스를 단행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고, 그렇게 되면 2016년 인센티브는 나올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당장 장부상 적자 나는데 인센티브 주면 그 자체로 업무상배임이잖아요.


(제가 이직하고 난 다음 일이지만, 2017년에 나온 회계자료 상으로는 실제로 2016년에 빅 배스를 단행해 대규모 적자 처리했습니다. 설명회가 조카튼튼했다는 걸 헬로비전의 '매지션'께서 친히 입증하신 셈이죠.)



2016년 하반기에는 아직 빅 배스 실행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지만, 대충 과장급만 되어도 통빡으로 다 짐작할 수 있습니다. 침몰하는 배에 타고 있으면 빨리 뛰어내려야죠. 선장이 문 걸어 잠그기 전에.


그게 헬조선 스타일입니다.



3) 2016년에 실적이 악화되면 조기진급 같은 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니 이것 때문에라도 2016년이 가기 전에 이직해야 한다.


위 2)와 약간 연결되는데, 실적이 악화되면 조기진급도 불가능해집니다. 당연하겠죠. 몇 년 전까지 1년에 1500억 벌던 회사가 3~4년 만에 적자전환했는데 전원 진급누락 처리해도 부족할 판에 무슨 조기진급이겠습니까.


그런데 저에게는 이 '조기진급'이 절실했습니다. 그 이전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였고 CJ헬로비전에서도 동일했어요. 고시생을 가장한 게임백수 폐인 시절 7년을 만회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직급별 기간을 1~2년씩 단축해야 했습니다.


헬로비전으로 이직한 초창기에 대리(G4)에서 과장(G5)으로 진급할 때에는 이게 가능했습니다. 회사의 현금성 자산을 싹 다 꼬라박으면서 M&A 시도할 때 법무실무자로서 이름 올렸다가 2년 조기진급했죠. 뭐 그 때는 저도 회사 덕을 봤습니다.


하지만 과장(G5)에서 차.부장(G6) 레벨로 진급하는 단계에서는...


조기진급 길이 막혔습니다. 이건 뭐 제 능력과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었어요. 삼국지에서 장수 세력의 책사 가후가 지력97이지만 그래도 가후 혼자서는 장수 세력을 키울 수 없는 것처럼, 저 또한 과장 급에서 아무리 노력해 봐야 회사 차원에서 조기진급을 시켜 줄 수가 없었습니다.



매각이 성공해서 SK로 넘어갔다면 이 문제가 딱히 중요하지 않았어요. SK는 과장~차장 급을 M4 직급으로 통합했고, 또 SK에서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최소한 희망퇴직 위로금은 지급했으며, 일단 재계3위 그룹의 정규직으로 재직했다면 그 자체가 이직시장에서 프리미엄으로 작용하니까요.


그러나 매각불허 결정으로 다시 CJ그룹에 돌아온 회향녀 헬로비전의 직원이라면...


조기진급 막히는 건 크리티컬한 치명타입니다. 나름 IT기업이라고 나대면서 40대 중후반에 희망퇴직 당해버리는 헬로비전에서 40살 넘은 과장급 실무자는 파리목숨 그 잡채입니다. 살고 싶으면 빨리 뛰어내려야 합니다.


이 또한 현재 시점에서 보면 얼추 제 판단이 맞았던 것 같습니다. LG로 재매각된 LG헬로비전이 2024년 즈음에 구조조정을 시작한 걸 볼 때, 남아 있었으면 저는 지금쯤 '희망퇴직 당해버린 설움'에 대해 글 쓰고 있었을 것 같네요. 도망치길 잘했습니다.



* 3)에 대한 보충) 회사 내부적으로 '초기 양천방송-경남방송 파벌'이 위장된 충성심을 앞세워 주요 요직을 장악하는 분위기라 이걸 피하기 위해서도 최대한 빨리 이직해야 한다


위 3)에 쓴 '조기진급 가능성 차단'과 맞물리는데, 당시 헬로비전 내부적인 파벌 문제도 있었습니다.


우선 헬로비전의 인적 구성을 보면


- CJ그룹 공채 출신으로 타 계열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CJ헬로비전으로 온 사람들

- 경력직으로 채용되어 합류한 사람들

- 기존 유선방송사 출신이었는데 CJ가 인수합병하면서 헬로비전 직원이 된 사람들


로 나뉩니다. 성골 진골 6두품 놀이 하는 건 아니지만 현실적으로 저렇게 나뉘긴 했어요.


'순혈의 공채'는 당연히 큰 프리미엄을 누립니다. 본인들은 부정할 것이고 '우린 오로지 능력으로 승부했어!'라고 하겠지만 그럴 리 없잖아요. CJ그룹 신입 공채로 들어왔고 계속 CJ그룹 내에서만 직장생활을 한 사람이라면 그에 맞는 대우를 해 줘야 합니다.


그 다음이 경력직 / 기존 유선방송 출신들인데...


2015년까지의 헬로비전은 외부에서 영입된 경력직들이 중심이었습니다. 대표님을 비롯한 주요 임원들 상당수가 IT기업 출신 경력직이었고, 알뜰폰사업 쪽으로 영입된 이동통신 출신들은 100% 경력직이었으며, 경영지원조직이나 기업사업팀 쪽도 대부분 경력직들이었습니다.


물론 지역 유선방송사 출신 분들 중에서도 능력 있는 분들이 있고, 그 분들은 능력에 맞는 대우를 받았어요. 10리 사방만 살펴봐도 인재가 있다는데 과거 CJ그룹에 인수되기 전 중소 유선방송사 출신이라고 해서 색안경 끼고 볼 필요는 없죠. 능력 있으면 진급시키고 팀장 임원 맡겨야 합니다.


다만, 전반적인 세력구조를 보면 [경력직 > 유선방송사 출신] 상황이었습니다. 2015년까지는 그러했어요.


그런데... 여기서 '예상 못한 변수'가 터지죠. SK로 매각되려다가 공정위의 불허결정 받고 'CJ로 돌아온 회향녀 헬로비전'이라는 변수입니다.


회사에 대한 충성심. 이 입증 불가능한 영역에서 갑자기 기존 유선방송사 출신들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전에 '이직의 기술'에서 잠시 썼었는데, 돈을 버는 게 목표 그 잡채인 조직 '회사'에서 충성심(忠誠心)이라는 건 잘 가려서 봐야 합니다. 이게 진짜로 돈을 포기하고 회사 조직을 사랑하는 충성심인지 / 객관적인 능력이 안 돼서 이직을 못하다가 어쩔 수 없이 한 조직에 오래 남은 '위장된 충성심'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CJ그룹 공채 출신으로 CJ에 10년 이상 다닌 사람이라면 나름 진짜 충성심이 있다고 인정할 수 있겠죠. 당장 연봉 1~2천만원 올려서 이직할 수도 있었겠지만 그걸 포기하고 'CJ맨'으로 남은 것이고, 그들 대부분은 장래에 문화기업 CJ에서 임원을 달겠다는 큰 꿈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충성심 인정할 수 있습니다.


CJ도 이걸 알았고, SK에 헬로비전을 매각하겠다는 기습발표 후에 공채 출신들은 다른 계열사로 빼 주려고 했습니다. 아마 SK와 체결한 계약서에도 이런 조항은 있었을 거예요. SK도 여기에 반대할 이유가 없었구요.


반면 경력직 대부분은 SK로 넘어가는 것에 찬성하는 입장이었습니다. 당연히 그렇겠죠. 1번이라도 이직하는 순간 'ㅇㅇ그룹 공채'라는 프리미엄은 사라지고 보따리장사 경력직이 되는 건데, 기왕 경력직이라면 재계 순위 높은 SK가 훨씬 더 낫거든요.


그럼 '기존 유선방송사 출신'들은?



2013년 이후 신규로 인수된 5개의 유선방송사 외에 '헬로비전 초창기에 인수된 양천방송/경남방송 출신'들은 CJ헬로비전에 꽤 잘 적응한 상태였습니다. 대략 CJ헬로비전 재직 기간이 7년~10년 이상 되었고, 나름 헬로비전을 자신의 정신적인 고향으로 생각할 만한 단계였습니다.


그리고... 이 양천방송/경남방송 출신들은 SK로 넘어가면 자신들의 지위가 불안해질 거라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초기 직장 경력을 따지면 중소 유선방송사 출신이니, CJ그룹의 정규직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밀릴 거라고 생각했을 것 같아요.


(저는 허위매출 건 때문에 별도의 사무실에 나와 있어서 잘 몰랐지만) SK측의 실사 과정에서 양천방송/경남방송 출신들은 CJ헬로비전의 사업 관련 자료를 제공해 주는 데에 무척 소극적이었다고 합니다. 허위가입자 뻥튀기, 홈쇼핑수수료 구조, 비용의 자산화 등 헬로비전의 약점이 될 만한 자료를 최대한 아끼고 SK에 비협조적으로 나갔던 것 같네요.


뭐, 양천/경남방송 출신들의 입장이 이해 안 되는 건 아닙니다. 그들로서는 최선이었겠죠. 제가 그들 입장이었다면 저 또한 동일하게 행동했을 겁니다.


다만... '매각 실패한 회향녀'에서 이 행동이 [CJ그룹에 대한 충성심]으로 해석된다면... 뭐 쪼큼 거시기 하죠.



냉정히 말해서, 양천-경남 멤버들이 진정으로 CJ그룹에 충성했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들 또한 CJ 순혈공채들에 비할 바는 아니었거든요. 엄밀히 따진다면 '인수되면서 뽀록으로 CJ마크를 단 중소기업 경력직'일 뿐입니다.

(물론 저 또한 '뽀록으로 SK마크를 달고 싶었던 블랙기업 출신 경력직'일 뿐이지만 서로 신세한탄 하면 그렇다는 거죠;;)


그런데, 이 양천-경남 멤버들은 SK그룹으로 넘어가는 상황에서 'SK에 삐딱선 타고 CJ에 불리한 자료는 가급적 안 준다.'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전원이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양천-경남 멤버 중 리더 급은 명백하게 그런 전략을 드러냈고 행동도 그렇게 했습니다.


제 추측이지만, 당시 양천-경남 멤버의 리더 급 직원들은 "우리 SK로 넘어가면 몇 년 못 다녀. 적당히 굴러먹다가 희망퇴직 당할 거야. 그나마 10년 가량 익숙해진 CJ에 충성하는 모습 보이는 게 더 낫다."고 (무의식적으로) 판단했을 겁니다. 중소 유선방송사 출신에 이직도 안 되고 그냥 CJ에 익숙해졌으니 끝까지 CJ맨 행세를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겠죠. 의식하든 아니든 간에 그러했을 겁니다.


그리고 이 전략이 통했습니다. 공정위의 매각 불허 결정으로 인해 헬로비전은 'CJ그룹으로 돌아온 회향녀'가 되었고, SK 쪽 실사에 삐딱선을 탔던 양천-경남 멤버들은 'CJ에 대한 충성심'으로 스스로를 포장할 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인데, 양천-경남 멤버 중 한 분은 결국 임원 달았다고 하더군요. 매각발표 전에는 '저 사람 절대 임원 안 되고 퇴직할 거야.'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는데, 매각 과정에서 SK에 삐딱선 타다가 다시 돌아오면서 임원 달았습니다. 그 분과 친했던 실무자 급도 팀장으로 영전했구요.

뭐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전 이미 떠난 몸인데.)



'위장된 충성심'도 좋은 전략입니다. 능력이든 경력이든 자격조건이 안 돼서 이직 못하고 한 회사에 오래 다닌 사람도 어느 순간에는 "사실 난 이직할 수도 있었는데 그냥 이 회사에 충성하려고 오래 다녔어. 난 진짜 충성맨이야. 허허허."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속마음은 모르는 것이니 그냥 숫자로만 10년 20년 채웠으면 얼마든지 충성심 코스프레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런 위장된 충성심 전략을 시행한 멤버들이 '주류(主流)'로 급부상한다면. 그리고 자신들이 10년 넘는 세월을 평가 B~C 받으며 버텨온 만큼 다른 경력직들에게 특별대우를 해 주는 데에 매우 인색하다면.


떠나야죠. '모두가 평등하게 오래오래 낙엽처럼 착 달라붙어서 갑시다'라는 마인드를 장착한 세력이 조기진급 길을 막아버릴 게 확실하다면, 저처럼 조기진급에 목숨 걸고 최선 이상으로 성과를 내려던 사람들은 곧바로 떠나야 합니다. 보따리장사 경력직답게 짐 싸들고 휑 나가버려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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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3가지(혹은 4가지) 이유로 반드시 2016년 내에 이직해야 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성공했죠. 2024년 LG헬로비전이 구조조정 시작했다는 뉴스를 보고 뿌듯해 하기도 했구요;;


다만, 이직 과정에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었습니다. 이 썰은 다음 편에 풀어 보겠습니다. 커밍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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