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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PG 레드오션 투쟁기 (20)

[에필로그] 또 다른 핏물의 바다로

by 테서스

(1) 두 가지 마음


프롤로그에 썼던 “아무리 갈 데가 없어도 여기는 가지 마라.”는 조언(?). 그 조언이 악명으로 따라붙는 회사 B건설.


그러나, 거기서 2년 특진하고 나름 에이스로 인정받으면 많이 달라 보입니다. 보기에만 달라 보이는 게 아니라 실제 몸으로 느끼는 처우도 바뀝니다.


경력 3년 조금 넘는데 과장.

이러면 아무리 저연봉 회사라도 ‘본인 경력 대비 연봉’은 높게 됩니다. 경력기간만으로는 대리 될까말까한 수준인데 직급이 과장이면 당연히 처우 좋은 거죠.

또한, ‘미래’가 달라집니다. 2년 조기진급은 다시 못하겠지만 계속 1년씩만 줄여도 6년 후에는 부장. 그 다음에는 ‘회사의 별’이라 불리는 임원 자리입니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자신감’이 생깁니다. [나 아직 안 죽었어!]라는 자신감. 고시공부에 실패하고 크게 찌그러졌던 인생이었지만 막상 사회에 나와 맞붙으면 거대공룡조직도 잡을 수 있다는 자신감. 그게 용오름처럼 솟아올라 제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좋았습니다. 계속 B건설과 함께 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에게 큰 기회를 주고 거의 무한에 가까운 신뢰를 보여 줬던 B건설에서 정년퇴직 할 것 같았습니다.


으음… 그런데 말입니다.


그 애사심(?)과 별도로, 마음 한구석에 또 다른 욕심이 피어올랐습니다. 다시 되찾은 자신감이 제 눈을 또 다른 곳으로 돌리게 했습니다.


[대기업]이라는 곳으로.



(2) 대기업, 그 명함 한 장


앞에서 ‘어니스트 섀클턴’을 얘기했었습니다.


남극에 도전한 모험가 3명 중 ‘개를 식량으로 쓴다는 발상의 전환(!)’으로 남극점을 최초 정복한 아문센. 그가 1등입니다. 만인이 기억해 주는 1등.

기존에는 ‘스콧’이 2등이었습니다. 본인 포함 모두가 얼어죽긴 했지만 어쨌든 아문센의 라이벌로 남극점에 가긴 했었죠.


그러나… ‘모두를 살려내 무사귀환했다’는 점에서는 섀클턴이 압도적입니다. 스콧은 본인과 대원 모두를 죽음으로 내몰았지만, 섀클턴은 모두를 살렸습니다. 고난의 연속이었지만 결국 다 살아서 돌아왔습니다.


현대인들은 섀클턴을 2등으로 기억합니다. 1등은 아니지만 1등도 갖지 못한 리더쉽을 갖춘 2등, 21세기 관점에서는 1등보다 더 나은 2등. 그렇게 기억해 주고 다시 그의 이야기를 끄집어 냅니다.


B건설의 회장님에게는 그런 ‘새클턴 리더쉽’이 있었습니다. 업계 1등은 아니라도 일단 생존능력과 의지만큼은 최강이었고, 동급 대비 최저연봉이지만 직원들 월급 밀리는 일은 없었으며, 무엇보다 직원들에게 ‘기회’를 줬었습니다.


경력 3년도 안 되는 얼치기 대리를 믿고 ‘LH사장은 내가 담판짓는다. 판 깔아 줄 테니 니 마음대로 싸워라.’라고 하는 리더쉽. 그것만큼은 1등 기업 오너들을 아득히 뛰어넘는 명품 리더쉽이었습니다.



그 리더쉽에 감사하지만… 진정 대단하고 존경스럽지만…


2012년의 저는 다른 걸 바라봤습니다. [대기업 명함 한 장], 그걸 갖고 싶어했습니다.



2023년에 보면 진짜 별 거 아닌데 말이죠. 앞서 인용한 ‘비트’의 대사처럼 [기계의 성능과 나 자신의 성능을 착각]하는 뻘짓거리인데 말이죠.


그 때는 그게 좋아 보였습니다. 누구나 이름 들으면 알 만한 대기업 이니셜을 달고 있는 명함, 내 이름 앞에 ‘XX그룹 ㅇㅇ회사 aa’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명함. 그 명함 한 장이 절실했습니다.


그리하여,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저에게 자신감을 갖게 해 준 중재사건을 앞세워, ‘경력직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여기저기 지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많이 탈락했습니다… SK 정도 되는 T.O.P 회사들은 경력직도 시험 보더군요. 그냥 인적성만 보는 게 아니고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이 회사 들어가려고 따로 시험준비 하는 경력직이 많다는 걸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대략 8개월 정도 “애사심과 이직욕심 사이”를 방황하고 있을 때. 제 욕심을 이해한 와이프가 가끔 구직 사이트 뒤져보며 정보 찾고 있을 때.


9월의 어느 날. 와이프가 제게 얘기했습니다.


“여기 CJ계열사인 것 같은데. 헬로비전? 이거 뭐 하는 회사야?”



당시 저는… 솔직하게 말해서, 헬로비전이 뭐 하는 회사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구직공고 났으니 회사 사이트 접속해서 ‘유선방송회사’라는 건 알았지만, 유선방송업이 뭐 어떤 구조인지 전혀 몰랐습니다.


(심지어 이직하겠답시고 면접 보러 갔을 때에도 몰랐습니다. 면접 때 제 질문이 ‘유선방송과 IPTV는 뭐가 다릅니까?’ 였는데… 이건 방송업계 사람들이 듣기에 거의 ‘아이폰과 갤럭시는 뭐가 다릅니까?’와 맞먹는 질문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무지(無知)했죠.)


그렇게 사업구조에 대해 전혀 몰랐지만, ‘재무제표’는 봤습니다. 2011년 기준으로 매출은 약 6천억. 그리고 영업이익은… 1500억!


처음에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150억을 잘못 본 줄 알았어요.

영업이익 0.1%에 감사해 하는 레드오션 중견건설회사 직원 입장에서는, 영업이익률 25% 찍어 주는 사업이 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 회사가 무슨 일 하는지는 들어가서 알아보자. 처음 건설회사 신입사원 때처럼 그냥 배우면 된다. 안 배워도 혼자 알아내면 된다. 일단 여기 가자.]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CJ].

2012당시 상당히 hot했던 그룹, “문화를 만듭니다. CJ” 광고멘트로 사람들에게 어필하던 그룹. 그 영문 이니셜 두 글자가 매우 절실하게 느껴졌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CJ헬로비전에 지원했습니다. 당시 연봉과 경력으로는 과장 자리를 받을 수 없고 다시 대리(G4) 1년차로 내려가야 했지만, 나이 37살에 대리 1년차 되는 걸 감수하고서라도 거기 들어가려 했습니다.


그 때는 그렇게 ‘대기업 명함 한 장’을 갖고 싶었습니다. 11년 전의 저는 그러했습니다.



(3) 떠났지만 늘 아쉽고, 잘되고 있어서 반가운 블랙기업


제가 떠나겠다고 했을 때. B기업의 회장님께서 저를 따로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저는 “다시 돌아오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물론 다시 돌아가진 않았습니다. 중간에 돌아갈 기회가 있긴 했지만 하필 다른 일이 꼬여 버렸구요(그 꼬인 얘기는 몇 년 후에 다시 하겠습니다.).


뭐, 지금은 제가 안 가도 됩니다. 저 없는 동안 B건설은 훨씬 더 성장했고 훨씬 더 우량해졌으며 나름 블랙기업 딱지를 떼고 ‘견실한 중견그룹’으로 불리게 되었거든요.



이 글 쓰는 동안 계속 B건설을 안 좋게 표현했지만. 과거 한 때 온 사방에서 욕 먹던 악명 높은 회사였지만.

B건설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리고, 보란 듯이 더 잘됐습니다.


다시 11년 전으로 돌아간다면 B건설을 떠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대기업 명함 따위 다 부질없고 ‘나 자신의 능력’이 핵심이라는 걸 아는 지금의 저라면 계속 B건설에 남았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아쉬움은 남습니다.


하지만, 저 개인의 아쉬움과 무관하게 이미 떠나왔고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B건설은 더 잘 됐습니다. 뭐 예전의 악명이 군데군데 남아 있긴 하지만 지금은 좋은 얘기도 많이 들려 옵니다. 예전 악명이 ‘저렇게 독한 회사는 절대 안 망한다!’라는 칭찬(?)으로 바뀌는 게 은근 반갑기도 합니다.


레드오션의 블랙기업.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겁니다. 어설프게 블루오션 꿈꾸다가 직원들 실직자 만드는 회사보다, 당장 업계 최저연봉 주더라도 일단 먹고살게 해 주는 회사가 결국 살아남아 강자(强者)로 등극하는 겁니다.



B건설에서 많은 걸 배웠고 터득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자존심 꺾이고 돈 한 푼 없고 연봉도 최저임금 넘는지 고민해야 하는 시절이었지만, 그만큼 더 대담하게 추진력 발휘할 수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도 당장 내일 자금 바닥나고 법정관리 가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시절이었지만, 그만큼 더 강하게 ‘벼랑 끝 전술 협상’을 하고 얼치기 대리 급에게도 기회를 주던 시절이었습니다.


흐르는 피보다 더 붉은 레드오션에서, 칠흑 같은 어둠보다 더 어두운 블랙기업이,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얼치기를 만나 함께 발악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립기도 합니다. 나이든 사람이 과거를 그리워하는 추억보정 효과를 더해서, 아주 가끔 그 시절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물론 다시 돌아가라면 안 돌아 갑니다. 주70시간 근무 하고 싶진 않거든요;;)



(4) ‘유선방송 잔혹사’는 다음 기회에


37살에 2년 조기진급으로 과장이 되었으나, 그 과장 자리를 내던지고 ‘대기업 명함 한 장’을 얻기 위해 낯선 유선방송업에 대리1년차로 이직. 누가 봐도 무모한 모험이었습니다.


제목에 ‘유선방송 잔혹사’라고 썼는데, 정말로 잔혹했습니다. 영업이익률 25% 찍어 주는 꿈의 블루오션이 무너져 내리는 현장, 문화기업 CJ가 자체적인 논리에 갇혀 폭주하는 현장. 그 현장은 ‘잔혹사’라고 부르기에 충분했습니다.


다만, 이 얘기는 몇 년 뒤에 할 것 같습니다. 제 인생 투쟁기 2막 ‘유선방송 잔혹사’는 2016년까지 이어지는데, 2023년 기준으로는 ‘너무 가까운 과거’ 거든요.


유선방송 잔혹사. 이걸 쓸 때쯤이면 저는 아마 50대 초중반일 것이고, 유선방송의 역사를 기억하실 만한 분들은 대부분 은퇴하셨을 겁니다. 그 때쯤에 썰 풀어야죠. 그 전에 쓰는 건 서로 예의가 아닌 듯 합니다.


제 인생사를 글로 옮기는 건 잠시 중단하지만, 그래도 우리 인생은 흘러갑니다. 그 인생사 중 몇몇 하이라이트 장면은 ‘수필’이 될 것이고, 또 몇몇 장면은 상상력과 결합하여 ‘소설’이 될 것입니다. 가끔은 수필의 형식을 빌린 소설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고, 또 반대의 경우도 있겠죠.


여러 글 중 하나의 주제는 중단될 수 있어도 제 글쓰기는 계속됩니다. 셰익스피어의 쇼가 계속되듯이, 저의 ‘글쓰기 쇼’도 계속됩니다. 인생 항해와 함께.


Show must go on. With our lives as endless voy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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