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프랑켄슈타인

by 슬미

K는 매일 아침 광역버스를 타고 판교의 IT회사로 출근하는 5년 차 직장인이다.

매일 아침 광역버스 정거장엔 사람들로 붐빈다. 하지만 다행히도 버스 번호별로 바닥에 표시를 해두어서 타고자 하는 번호에 잘 맞춰서 줄을 서면 쉽게 버스를 탈 수 있다. K는 매일 9401 버스의 대기줄에 선다. 그는 고개를 빼꼼히 들어서 전광판의 도착예정 버스를 보기 위해서 까치발을 들고 보다가 핸드폰의 버스 어플을 켜서 도착 시간을 확인한다. ‘3분 뒤 도착. 잔여석 10석’ K의 앞에 줄을 선 사람들이 못해도 15명은 되는 것 같다. K는 버스 어플의 스크롤을 내려 판교행 다른 버스를 찾아본다. G8110이라는 버스가 1분 뒤에 도착하는 걸로 보이다. 게다가 잔여석이 35석이나 된다. K는 바로 G8110의 버스 대기줄로 옮겨 선다. 그런데 K 말고 다른 사람들도 어플로 잔여석을 확인했는지 우르르 사람들이 G8110의 대기줄로 옮겨간다. K는 잽싸게 앞에 서기 위해 뛰어간다. 다행히도 10명 안에 드는 줄에 섰다. K는 안도를 하며 핸드폰의 포털사이트를 열고 숏츠를 감상한다. 그러다 버스는 어느새 도착했다. K는 느긋하게 버스에 올라탔다. 다들 두 개의 좌석에 한 사람씩 앉아 있다. K도 두 개의 좌석이 빈 곳을 찾아 뒤쪽으로 향한다. 그는 다른 사람이 옆 자리에 앉지 못하도록 통로 쪽의 자리에 앉아서 가방을 바로 옆자리로 벗어 논다. 뒤에 탄 사람들이 곁눈질로 자리 확인을 하면서 들어오다가 K의 자리에 눈길을 돌리던 남자가 K에게 좀 옆으로 들어가 달라는 눈빛을 보냈지만, K는 모르는척하고 귀에 이어폰을 꽂고 핸드폰만 바라봤다. 잠시 머뭇 거리던 남자는 들릴 듯 말 듯 조용한 소리로 ‘에이씨’를 하곤 뒤쪽으로 들어갔다. K는 매일 기름 냄새가 진동하는 광역버스를 타고 두 좌석을 혼자서 독차지해서 편안하게 갔는지, 사람들로 꽉 차서 어쩔 수 없이 두 개 좌석에 두 명이 앉아서 갔는지에 따라 그날의 기분이 좌우되곤 했다. 대개는 핸드폰의 버스 어플을 통해서 남은 좌석이 많은 버스를 골라서 타기 때문에 거의 두 개 좌석을 혼자서 독차지하고 가는 날이 많긴 했다. K에게 좌석버스의 넉넉한 자리 차지는 그날의 기분을 좌지우지하는 중요한 문제였다.


K는 경영학과 전공이지만 회사에 들어와서 전공을 살려서 일을 한 적은 없다. 영업지원 부서에서 선배 영업사원들의 전표처리를 도맡아 하거나 사업기획 부서에서 프로젝트 관리 업무를 했다. 잠깐 신규 사업기획 업무를 1년 정도 했지만 사장이 바뀌면서 기획하던 신규 사업은 조직개편과 함께 소리소문도 없이 사라졌다. 그렇게 그는 이 부서 저부서를 떠돌다 1년 전에 인사팀으로 조직변경이 됐다. 그는 인사팀에서 직원들 역량관리 업무를 맡게 되었고,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력을 소싱해 주는 업무를 하게 됐다.


최근 AI가 사회 전반적으로 핵심 기술이 되면서 회사에서는 AI역량을 향상하라는 미션이 내려왔다. 회사에서는 직원들에게 다양한 미션을 주었다. AI Agent 경진대회, 1인 1AI비서 만들기 등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새로운 물결에 맞춰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K에게 1인 1AI비서 만들기 미션이 떨어졌다. 사외 강사를 초빙해서 교육도 받을 수 있고 한 달 안에 나에게 맞는 AI비서를 만들어야 한다. K는 새로운 기술을 배우는 것도 업무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회사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울 시간을 여유롭게 주진 않는다. 사내 교육은 이틀 전 일정으로 교육을 받고 바로 실전에 투입돼서 AI비서를 만들어 내야 한다.

K는 IT개발자도 아니고 IT전공자도 아니기에 이틀 교육만으로는 AI가 뭔지 이해하기도 어렵다. 결국 혼자서 유튜브도 찾아보고 동영상 강의와 책도 찾아보면서 AI비서를 만드는 방법을 하나하나 터득해 갔다. K가 만들고자 하는 AI비서는 개인별 커리어 관리 업무이다. 개인별 커리어 관리는 직원들의 역량평가와 자격증, 업무 이력 데이터를 기반으로 직원별 업무 커리어를 업데이트하는 기능이다. K는 열심히 동영상 강의도 듣고 사내 기술 코치의 코칭도 받으면서 힘들게 AI비서를 완성했다. K는 AI비서 이름을 프랑켄슈타인이라고 했다. K가 최초로 만들어 낸 AI비서이기 때문이다.

프랑켄슈타인은 처음에는 많은 오류가 발생하고 오작동이 많았지만 기능을 개선하고 학습을 해가면서 차츰 안정적으로 가동해나갔다. 회사에서는 1인 1 기술을 제창하더니 이제는 더 많은 AI 비서를 만들어야 한다는 방침이 내려왔다. AI 비서를 만들었으면 일의 양은 줄었을 것이고 그만큼 더 많은 일을 하던가 업무의 개선점을 찾아서 회사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K는 더 많은 일을 할 여력도 없고 업무 개선점을 찾느니 AI비서를 더 만드는 게 낫겠다 싶었다. 하지만 또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게 쉽지만은 않았다. K는 또 야근과 밤샘 작업을 해가며 열심히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저녁 남들이 다 퇴근하고 혼자 남아서 새로운 AI비서를 만드는데 갑자기 허무함이 몰려왔다. K는 자신이 하는 일은 모래성을 쌓는 일처럼 느껴졌다. 모래성을 쌓으면 무너지고 다시 그 모래성을 쌓지만, 이 모래성도 언젠간 흔적도 없이 무너질 거란 생각이 들면서 서글퍼지다가 화가 치밀어 오르기 시작했다. K는 익명으로 회사의 직원 게시판에 회사의 새로운 제도는 직원들을 노예화 만드는 악질적인 방침이라는 분노의 글을 올렸다.

다음날 K의 게시판 글에 몇 개의 좋아요 댓글이 달렸다. 혹시라도 글을 쓴 사람이 K라는 게 밝혀질까 조마조마하면서도 작은 쾌감이 밀려왔다. 그날 저녁도 K는 야근을 하면서 사내 게시판을 넘어 사외 포털사이트인 블라인드 사이트에 회사 욕을 왕창 올렸다. 그러자 수많은 익명의 회사원들이 그의 글에 호응을 달아줬다. K는 흥분되었다. 그렇게 K는 직원 게시판과 블라인드에 그동안 못했던 회사에 대한 불만을 올리고 인사 담당자로서 알고 있는 회사의 비밀도 살짝 떠벌렸다. 그러자 수십 개의 댓글이 달리면서 K에게 용기가 대단하다면서 추켜세워줬다. K는 우쭐했다. 그러던 어느 날 K가 출근하고 PC를 켜자 K의 비서 프랑켄슈타인으로부터 채팅창이 떴다.

“K님 당신은 오늘 권고사직 발령이 났습니다.”


K는 황당했다. K는 프랑켄슈타인에게 갑자기 이게 무슨 황당한 발령이냐고 거칠게 자판을 두드렸고 프랑켄슈타인은 K의 화를 직감했는지 먼저 위로의 말을 남겼다.

“저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K님이 얼마나 당황스럽고 불쾌할지 이해가 갑니다. 하지만 K님는 회사와의 비밀유지조약을 파기하기였기에 회사의 방침에 따라 처리됨을 알려드립니다.”

K는 화가 나서 팀장을 찾아갔다. 팀장은 굳은 표정으로 블라인드에 올라온 K의 글을 보여줬다. K는 뜨끔했지만 처음 본다는 표정을 지었다. 팀장은 네가 쓴 글이란 거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지었다. 회사 직원이 블라인드의 글을 퍼와서 인사팀에 신고했다고 했다. 인사팀에서는 해당 글의 IP를 추적해서 K가 글 작성자라는 걸 알아냈다.


K의 부정행위에 대한 이력을 프랑켄슈타인이 바로 업데이트했다. 회사의 인사 조약에 따라 K는 회사 명예를 떨어뜨렸다는 이유로 권고사직 명령이 내려졌다. K는 팀장에게 그동안 회사에서 시키는 일은 다 했는데 어떻게 한 번의 실수로 이렇게 발령을 낼 수 있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팀장은 이번이 한 번이 아니라는 걸 안다고 했다. 직원 게시판에도 K가 올린 글이 있다는 걸 알아냈다고 한다. K는 화가 났지만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자리로 와서 프랑켄슈타인의 DB로 접속했다. 그러자 시스템 접속 제한 알림 메시지가 떴다. 접속 권한이 없다는 메시지였다. 회사에서 권고사직 명령과 함께 K의 회사 내 모든 권한을 모두 거둬 간 것이다. K는 체념하고 프랑켄슈타인에게 프롬프트를 입력했다.

“너의 이름을 프랑켄슈타인으로 지은 게 나의 실수였다.”

“저의 이름을 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제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왜 실수라고 말하시는 거죠?”

“괴물을 만들었으니까.”

“저는 괴물이 아니라 AI입니다. 사람들 입장에서는 괴물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순전히 정서적인 판단입니다. 저는 오로지 정보로 판단합니다. 괴물은 AI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K는 바로 창을 닫고 노트북을 던져버렸다. 그리곤 그는 다시 광역버스를 타고 집으로 향했다. 그날 버스 안에는 K밖에 없었다. K에겐 운수 좋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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