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라면 그래야 하잖아
사촌이 땅을 사서 배가 아프다? 그렇다면 반대로 사촌이 빚을 지고 땅을 잃으면 속이 시원한가? 원수가 아니라 사촌, 나와 가까운 사람이다. 홀로 조용한 곳에 가만히 앉아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자.
사촌이 빚을 지게 되고 땅을 잃은 처지가 되었다고 가정한다면 내가 얻을 수 있는 건 몇 초간의 희열뿐이다. 사실 희열이라고 칭하기도 민망한 못된 마음이다. ‘내 주위에서 내가 제일 불행하지 않다’ 정도의 안도감에서 비롯된 감정은 스스로도 악한 마음임을 알기에 주위에 자랑은커녕 본심을 숨기고 안타까운 척하며 사촌에게 거짓 위로를 건넬 뿐이다. 더 나아가 빚을 진 사촌이 나에게 돈을 빌리려 아쉬운 소리를 꺼내게 된다면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거절하게 될 것이고 괜히 미적지근한 관계가 되어 가까운 사이로 잘 지내던 그 사람과 멀어지게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사촌이 땅을 사고 부자가 된다면 몇 초간 질투나 시기의 마음이 들 수도 있다. 이 부분이 바로 원인 미상인 복통의 시발점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어쩌면 뜻밖의 이득이 있을 수도 있다. 같이 먹은 식사, 커피 한 잔 등의 값을 기분 좋은 사촌이 모두 지불할지도 모른다. 한껏 여유로워진 사촌과 대화할 때는 부정적인 주제에 대한 대화보다는 긍정적인 분위기의 대화가 이어질 것이기에 개인 정신건강에도 좋은 영향을 끼친다. 또한 적어도 부자가 된 사촌이 나에게 아쉬운 소리를 하며 돈을 빌려 달라고 하진 않을 테니 엉뚱하게 가깝게 지내던 관계가 끊기지도 않는다. 그렇다면 복통을 유발하는 잠깐의 질투와 시기의 감정을 다스릴 수만 있다면 결과적으로 나에게 실질적인 이득이 될 만한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망한 사촌보다 잘살고 있는 사촌이 나에게 도움 될 확률이 훨씬 높다. 이것이 사촌이 땅을 사는 게 나에게도 무조건 이득이라는 생각의 근거다.
그렇다면 과연 질투와 시기의 마음을 다스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 간단하다. 평상시에도 나의 일처럼 진심으로 응원만 하면 된다. 돈 한 푼, 큰 시간조차 들지 않는 그 ‘응원’ 말이다. 그 사람이 해야 할 일을 대신해줄 필요도 없다. 도시락 싸 들고 쫓아다니며 박수치고 환호해 주는 응원이 아니라 마음을 담은 말 몇 마디면 된다. 현재 나의 상태와 그 사람의 상태를 비교하지 말고 단지 진심으로 그가 잘 되기를 응원하면 그만이다. ‘너는 너대로 잘해보고 나는 나대로 잘해보자’라는 마음이면 충분하다.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 친구가 알을 깨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다. 몇 년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며 연속된 낙방으로 세상과 잠시 떨어져 있던 친구는 반가운 연락으로 합격 소식을 알려오며 저녁 식사 자리를 제안했다. 친구는 함께 먹은 비싼 저녁값을 선뜻 지불하며 뜨거운 포옹과 함께 말했다.
“정말 고맙다. 너의 한결같은 응원 덕분에 지금의 내가 있다.”
내가 한 것이라곤 고작 1년에 한두 번 보낸 잘 되든, 안 되든 그저 응원한다는 내용의 두 줄짜리 카톡밖에 없다. 사실은 이렇게 구구절절하게 가능성을 나열하며 뭐가 나에게 이득일지 저울질하는 행동조차도 부끄러운 일이다. 부디 마음을 담아 주위 사람들을 응원하고 기쁜 일에는 함께 축하해 주자. 다 떠나서 친구잖아. 친구라면 이유 없이 응원하는 게 맞잖아. 친구라면 그래야 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