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생생한 삶을 사는 방법
유명한 소설가 A 씨는 한 방송에서 이렇게 말했다. “소설을 쓸 때 ‘짜증 난다’라는 표현을 지양해야 한다. 짜증이라는 말 안에는 너무 많은 감정이 뭉뚱그려져 있다. 자신의 감정을 좀 더 세분화해서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은 단순히 문학적 표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감정을 얼마나 정교하게 이해하고, 또 얼마나 섬세하게 소통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일본인에겐 치트키(cheat key) 같은 단어가 하나 있다. ‘야바이(やばい)’. 일본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을 보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단어인데, 매번 번역되는 의미가 다르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멋진 옷을 입은 사람을 봤을 때, 날씨가 끝내주는 날에도 모두 야바이(やばい)라고 말한다. 그래서 단순히 ‘좋다’는 의미로 쓰이는 감탄사인가 싶지만, 정반대의 상황에서도 똑같이 등장한다. 지갑을 깜빡 두고 나왔을 때, 비가 쏟아지는데 우산이 없을 때, 심지어 다니는 회사가 망할 위기에 놓였을 때도 야바이(やばい). 결국 이 단어 하나로 좋고 나쁜 모든 상황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마법 같은 단어다.
하지만 한국어에는 이보다 더 강력한 단어가 있다. 더 넓은 의미를 가지면서도 훨씬 날것의 감정을 담고 있는 단어. 뉴스에서는 절대 들리지 않지만, 누구나 한 번쯤 아니 수없이 사용해 봤을 그 단어. 바로 X발이다. 감정의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만능열쇠 같은 존재다. 기쁠 때, 화날 때, 심지어 당황하거나 말문이 막히는 순간에도 자연스럽게 튀어나온다. “와 X발, 개쩐다.” “X발, 진짜 미친 거 아냐?” “X발….” 문장 끝에 올 땐 대개 좌절과 한숨이 따라온다. 말하는 사람의 억양과 맥락에 따라 뜻이 변하는, 일종의 감정 메타몽 같은 단어다. 그리고 그만큼 우리의 삶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다면 감정을 더 세분화해서 표현하는 것이 정말 중요할까? 그냥 직관적으로 툭 내뱉어도 상대가 다 알아듣는데 굳이 단어를 고를 필요가 있을까? 감정을 섬세하게 조각낼수록 세상이 더 세밀하게 보이는 건 사실이다. 같은 붉은색이라도 주홍, 다홍, 와인빛처럼 각각 다른 결로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도 단순히 ‘짜증 난다’로 뭉뚱그릴 수 없는 수많은 결이 있다. 내가 지금 화가 난 건지, 서운한 건지, 불안한 건지, 답답한 건지를 알고 표현할 수 있어야 나 자신도 더 깊게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세분화된 감정은 타인과의 소통도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준다.
굳이 자주 안 쓰는 단어들을 공부해서 뭐 하냐고? 하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감정을 정확한 단어로 표현하지 못하면 결국 생각은 있는데 말로 꺼내지 못하는 바보가 된다.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하는 일은 단순히 언어의 문제가 아니다. 생각을 더 깊게 하고 더 넓게 펼치는 일이다. 생각은 무한히 팽창할 텐데 표현할 방법을 몰라 바보가 되는 건 너무 억울하다.
그러니 조금 귀찮더라도 내 감정을 정확히 표현해 보자. 그것이 더 생생한 삶을 사는 방법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