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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름 Feb 22. 2024

선선한 안국의 저녁

밸런타인데이에 연인과 안국에 갔다.


안국은 재작년 겨울 데이트 장소로 한번 가본 게 다지만 왠지 익숙한 느낌이 든다. 개성이 뚜렷한 동네라 한 번의 방문으로도 그 분위기가 머리에 각인될 만큼 임팩트가 컸던 걸까? 안국을 떠올리면 '낮은, 나무, 평화로운, 젊은, 전통의, 불빛'이라는 단어가 생각난다.


식사 메뉴는 보통 연인이 고르는데 이번엔 내가 직접 검색해서 찾은 곳을 갔다. 달달한 김치찜이 맛집인 곳이었다. 데이트마다 파스타, 수제버거, 카츠 같은 기름진 음식만 먹다가 뜨뜻한 흰밥에 김치를 사악 말아서 먹으니 가슴 전체가 지잉 따뜻해지는 기분이었다. 우리는 연신 맛있다, 잘 왔다고 말했다.


창밖을 보니 식당 앞 웨이팅 줄이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아싸, 우리가 타이밍 좋게 왔나 봐!"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데 비가 올 것 같은 날씨 때문인지 거리에 사람이 많지 않았다. 전에 왔을 때는 건물 반 사람 반이었는데, 보기 드문 한산함이었다.


연인의 손을 잡고 탁 트인 거리를 걸었다. 이국적으로 꾸며진 상점들에서 따뜻한 불빛이 뿜어져 나왔다. 사이사이에 있는 불 꺼진 상점들과 어울려 마법사 하울이 살 법한 동네를 걷는 것 같았다.


어디선가 불어온 두꺼운 바람이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남색 골덴 남방을 마구 스쳤다. 볼이 살짝 차가워지는, 시원한 느낌이 들 정도 서늘한 바람이었다.


아까 마신 막걸리 때문인지, 연인의 따뜻한 손 때문인지, 해가 질락말락한 남색 하늘이 더 미묘해 보였다.


'기분 좋음'이라는 표현은 이런 순간을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모든 게 완벽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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