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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지 Jun 11. 2024

옥상 책방에서 낭만적인 하루

처음으로 엄마 이야기를 꺼내다


7.


문화도시의정부 기자단에 합격하고 가장 먼저 썼던 기획기사는 ‘의정부 책방투어’였다.


지금은 책방에 관심이 많아서 인스타그램으로 팔로우하고 있는 책방도 많고 어디 놀러 가면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 꼭 주변 책방을 검색해 들리지만, 2022년 봄, 나는 책방에 대해 잘 몰랐다. 오히려 잘 알려지지 않고 생소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기사로 다루기 흥미로운 주제라고 생각했다.


당시의 나는 책을 잘 읽지는 않지만 책이 가득한 공간에 머무는 것을 좋아했다. 책방의 존재를 알게 되고, 대형서점과 다른 책방만의 매력이 무엇인지 궁금해졌다. 도서관에서 무료로 책을 빌려 읽을 수 있고 온라인 서점은 2-3일 안에 책을 보내주는데 사람들이 책방을 찾는 이유는 무엇인지!



첫 번째로 다뤘던 책방은 의정부 신곡동에 있는 ‘책방 옥상에 앉아’였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건물 옥상에 위치한 책방인데 지금은 확장해 아래 4층도 책방으로 쓰고 있다. 이곳을 선택한 이유는 사전조사 과정에서 발견한 '지역성'에 대한 책방지기님의 코멘트 때문이었다.


의정부에 책방을 시작하면서 고민하던 지점 중 하나가 '지역과의 연결성'이었어요.
"독립서점, 책방이라는 곳이 단순하게 책만 파는 가게는 아닌데."
"의정부라는 지역과 신곡동이라는 동네와 또 이곳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져야 할 텐데."
"그럼 나는 무엇을 해야 하지?"
-책방지기 님의 인스타 피드글 中


책방 인스타 계정과 네이버 검색으로 최대한 정보를 찾 인터뷰지를 만들 책방 사장님께 연락을 드리고 방문했다. 20분 정도로 짧게 생각한 인터뷰는 1시간이 지나서 끝났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궁금한 것들이 생겨 인터뷰보다는 대화를 나눈 것 같았고, 몰입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책방 사장님은 지금 책방이 있는 곳에서 학창 시절을 보내셨다고 하셨다. 예전 가정집 옥탑방을 책방으로 바꾸신 거라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게 되니 공간 더 특별하게 느껴졌고, 마음다.


이때 시작으로 책방 소식을 관심 있게 챙겨봤다. 그러다 '옥상낭독회'의 존재를 알게 됐다. 옥상낭독회는 위드 하나를 주제잡아서 매달 말 시인과 소설가 한 분을 각각 모시고 함께 책을 낭독하는 소규모 행사였다. 나는 이번 기회로 책방도 다시 들리고 취재도 하고 낭독회도 참여하자는 생각 했다.



내가 참여한 낭독회는 '여성'을 주제로 우다영 소설가님과 함께하는 자리였다. 책은 줌파 라히리의 <그저 좋은 사람: 지옥-천국>이었는데 도서관에서 빌려서 책을 준비해 가긴 했지만 읽진 못했다. 그래도 책방지기님께서 준비해 주신 발췌문과 작가님 설명 덕분에 낭독회 흐름을 따라가기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저자 줌파 라히리는 인도 뱅골 출신의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나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소설로 많이 다루었다고 한다. 우다영 소설가님께서 말씀해 주시길, 인도 이민자로서 미국에 정착하여 보수적으로 살아가고 정해진 루트를 따라 자라는 소설 속 인물들의 모습이 한국의 문화와 비슷한 면모가 있어 정서적 괴리감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하셨다. 실제로 소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한국의 문화와 비슷한 부분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에는 세 명의 여성이 나온다. 주인공 우샤, 우샤의 어머니, 프라납 삼촌의 부인 데보라. 작가님께서는 이 책을 선택하신 이유가 여러 여성을 자세히, 촘촘히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소설은 주인공 우샤가 성장하면서 어머니를 지켜보는 2-30년의 과정을 보여준다.


참여자는 나, 책방지기님, 작가님을 포함해서 총 여섯 명이었고 발췌문에서 각자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골라 낭독하는 시간을 가졌다.  차례가 왔을 때 나는 다음 문장을 골라 읽었다.


나는 엄마의 삶을 딱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나이가 들수록 엄마의 삶이 얼마나 황폐한지 알게 되었다. 엄마는 일을 한 적이 없었고 낮에는 드라마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엄마의 유일한 일은 아빠와 나를 위해 청소하고 밥을 하는 것뿐이었다. [...] 나도 아빠에게 엄마를 다루는 방법을 배웠고, 그래서 엄마를 두 배로 외롭게 했다. 내가 전화를 너무 오래 하거나 방에만 있다고 엄마가 소리를 지르면 맞받아 소리치는 걸 배웠다. 엄마가 한심하다고, 나에 대해서 아는 게 없다는 말도 했다. 내게 더 이상 엄마는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엄마와 내게 모두 갑작스레 분명해졌다. 프라납 삼촌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어린 소녀였던 우샤가 청소년이 되어 엄마를 대하는 태도가 변 모습이 마음 아팠다. 엄마의 삶이 어떤지 알면서도 엄마에게 모진 말로 상처주는 주인공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샤가 엄마를 '딱하게' 여길 만큼 우샤의 엄마가 어떤 삶을 살았을지 상상할 수 있어서 더 안타까웠다.



독을 하고 나서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다. 나는 나와 엄마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봤다. 그리고 망설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생긴 불치병으로 점점 약해져 갔고, 나는 그런 엄마를 돌보았고, 세 달 전 엄마가 떠났지만 지금도 엄마를 많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사실 오늘 책 내용이 '엄마'랑 관련된 내용일 줄 몰랐다. 가까운 친구들에게도 꺼내지 못했던 이야긴데, 엄마 얘기만 나오면 눈을 피하고 입을 다무는 난데,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내 속마음을 얘기했다. 말을 하면서 엄마 생각이 자꾸 나서 가슴 어딘가에서 울룩불룩한 무언가 뜨겁게 목을 타고 올라오는 기분이었지만 분위기를 해치고 싶지 않아서 안간힘을 다해 참았다.


이날 낭독회에서는 단순히 책 이야기만 오고 가지 않았다. 누군가는 딸로서, 엄마로서 자신의 삶을 이야기했다. 나는 그동안 비밀처럼 혼자 꽁꽁 싸매 있던 것을 드러냄으로써 일종의 치유를 받은 기분이 들었다. 그냥 내 이야기를  것뿐이었는데도 말이다.


처음 만난 사람들과 이만큼 진솔한 생각과 내면을 나눌 수 있다니. 시간의 농도가 짙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리였다. 5월 선선한 바람과 책방의 은은한 조명 때문이었을까, 이곳 옥상은 바깥세상과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한껏 뭉클해진 마음을 안고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던, 잊을 수 없는 특별한 여름밤의 기억이다.

<보여줄게 로컬에서 사는 법>은 매주 화요일 연재되는 에세이입니다.
● 책방 인터뷰 기사 → https://blog.naver.com/ccity_ujb/222733655900

● 낭독회 후기 기사 → https://blog.naver.com/ccity_ujb/22280942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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