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이다. 내가 글의 두서에서부터 이를 밝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나는 매일 아픈 아이들을 진료하면서도 내 아이는 죽음으로부터 살려내지 못했다는 자괴감에 빠져 스스로를 더 불행하게 만들었다. 이 기록에는 그 누구보다 슬픔을 더 과장되게 겪었던 지난날의 나와, 이제야 그 사실을 깨닫고 고통의 터널에서 벗어나고자 발버둥 치며 노력하는 내가 공존하고 있다.
그간 나는 나 자신이 계속 슬픔 속에만 묻혀 있는 줄 알았다. 돌이 안된 영아들이 진료를 보러 오면 진료차트의 생년월일을 매번 확인하며 ‘아, 우리 애기도 지금쯤 이렇게 컸을 텐데.’라는 생각에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펑펑 울던 날들도 많았다. 아이들 진료를 그만두려고도 마음먹었으나, 새로운 것을 배울만한 여력이 없었고 다른 일자리를 찾기도 녹록지 않았다. 그런 내가 다시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오늘 갑자기 스쳐간 찰나의 감정 때문이다.
10개월 된 아이가 나에게 진료를 보러 왔다. 우리 아기와 생일이 일주일 차이가 났다. 그런데 이제 슬프지가 않았다. “아이, 예쁘다.” 하며 아이에게 눈웃음을 지어주었다. 나도 모르게 스르르 벌어진 일이었다. 아기를 떠나보내고 나서 나는 이직을 했고 이전에 날 찾아왔던 아이들과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내 진료 스타일의 변화를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나는 나를 찾아온 환자들에게 전문가로서 나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감정을 꾹꾹 눌러 담고 일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아이들과 눈 마주치며 쓰다듬어주고 칭찬도 해주고, 짧은 진료시간 동안 교감을 나누기 위해 많이 노력했었다. 사별 후엔 나의 슬픈 감정 때문에 일을 그르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의학적인 이야기만 전달하며 무미건조하게 진료시간을 채우고 있었다.
이제야 마음이 풀리나 보다 싶어 조금은 기뻤다. 괜찮아졌다는 뜻은 결코 아니지만, 사실은 그 아이들을 보며 내가 더 슬퍼할 이유는 전혀 없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나의 직업적인 소명의식을 깨워주는 소중한 존재들이며 우리 아기와는 일말의 관련도 없는 이들이었다. 이렇게 간단한 사실을 깨닫는 데에 참 오랜 시간이 흘렀구나 싶었다. 아니면 할 수 있는 한 빨리 깨달았다고 생각하며 안도해야 할까.
사실 아이를 떠나보낸 후 두 달간 나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지만 아기와의 짧은 추억과 그 감정들을 잊지 않기 위해 글을 썼고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글을 예닐곱 편 정도 올렸는데, 어느 날 갑자기 폭풍 같은 감정이 휘몰아쳐 다 지워버리고 말았다. 지금에서야 그때 글을 읽어주고 위로를 건네주셨던 많은 분들께 감사와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계속 슬픈 글만 적고 싶지 않았을뿐더러, 이 글의 끝은 도대체 무엇으로 마무리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다시 임신을 해서 아이를 출산하고 짠하고 나타나는 해피엔딩으로 끝나야만 할 것 같은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나는 몸조리를 겨우 마치고 몇 달 후 혹시나 해서 받았던 건강검진에서 나에게 심방중격결손이라는 선천성 심장병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임신 때문에 혈류량이 크게 늘었던 탓인지, 살면서 서서히 변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판막역류와 우심실비대까지 동반되어 있었다. 바로 심장시술을 받았고 시술 이후에 약을 복용하고 있으며 임신도 당연히 미루게 되었다. 할 수 있다고 바로 임신이 되는 것도 아닌데, 미리 계획한 일이 무산된 것 같은 무력감이 나를 괴롭게 했다.
사별 후 한 달간은 침대에 누워 거의 매일 밤을 지새우며 맘카페에 유산, 사산, 사별 등의 키워드로 거의 대부분의 글을 읽고 또 읽어보았다. 처음 느끼는 감정은 ‘아, 나만 이런 일을 겪은 게 아니구나.’였지만 수십 번 읽다 보니 다른 사람들이 겪었던 나와 비슷한 감정들에 계속 이입하는 것이 힘이 들었다. 개중에는 간혹 여러 번의 유산 끝에 또는 사산 이후에 다시 건강한 아이를 출산했다는 댓글들도 따라붙었으나 근황을 알리는 소식이 달리지 않는 글들은 그렇게 슬프고 우울하게 계속 남아있었다.
남편과 나는 아이와 사별 후 항상 궁금했다. 다시 아이가 생기지 않아도 예전처럼 잘 지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말이다. 남편은 불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이미 새 생명이 탄생하는 기쁨을 맛본 부모이기 때문에 그 상실감은 다시 아기만이 채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아기가 없어도 우리가 잘 지내야 한다고 남편을 설득했다. 실은 내가 더 잘 지내지 못했으면서 왜 그렇게 아닌 척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10개월이 지난 지금, 우리는 가끔은 잘 지내고, 가끔은 잘 못 지내고 있다. 흔히 힘든 일을 ‘극복’한다고 표현하지만 자식과의 사별을 극복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저 평생 동안 떠난 아기를 기억하며, 그에게 평온함이 깃들기를 빌어주며 내 삶을 고통 속에서 조금은 건져내며 살아야 할 것 같다. 시간이 더 지나면 이 슬픔도 희미해지려나 싶지만 아직은 모르겠다. 그렇지만 내가 다시 글을 쓰게 된 이유는 가끔은 괜찮은 때도 있다는 것을 누군가에게 알리고 나 스스로도 기억하기 위함이다. 스쳐 지나가는 찰나의 것들이라 스스로 노력해서 낚아채야 하는, 그 작고 소소한 즐거움과 행복으로 가끔은 괜찮게 지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혼자가 아님을 알려주기를 바라며 작은 위로가 되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