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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너리 Sep 20. 2023

4-2. D 과장_멀리서 보아야 아름답다

무해하며 무익하다

유심히 보니, D 과장은 신체적 접촉이 유독 여직원에게 많았다. 그렇다고, 그의 평판을 흔들 정도는 아니었지만.

나는 차츰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문제는 마주칠 일이 참 많다는 것이었다. 좁은 회사에서 점심시간은 물론, 회식마다 아프다고 빠질 수도 없었다. 감사 기간에는 자료를 정리한다고 바빴지만 야근자들은 다 같이 모여 식사를 했다. 물론, 그 사이에도 그는 살며시 나에게 다가왔다.  

이쯤 되니 그의 은근한 스킨십을 계속 의식하게 되었고, 퇴근 후에도 계속되는 그의 연락에 나는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 정도면 정말 무엇인가 이. 상. 했. 다. 

 

나는 연륜 있는 여자 과장에게 조언을 구했다. 불쾌한 신체적 접촉에 관한 이야기는 상황을 크게 야기하는 것 같아 밤늦게 연락이 불편하다고 순화했다. 알고 보니 몇몇 직원은 D 과장이 나에게 유별나게 행동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고 했다. 

다른 부서임에도 커피를 마시러 가고, 툭툭 건드리는 제스처, 그리고 회식자리에서 고주망태가 되어 나에게 하는 말들도. 친밀하다고 하기에는 선을 조금 넘는거 같다고. 신입사원인 내게 어떻게 이야기 할 지 고민 중이었다고 했다. 

D 과장은 본인도 모르게 여러 번 나에게 힌트를 제공한 셈인데, 나는 그의 인간적인, 남자 같지 않은 모습에 긴장을 늦춘 것이다. 조금 더 일찍 알았어야 했는데. 알 수 있었는데. 


이렇다 할 방법이 없었다. 만지지 마세요! 하기엔 나는 용기가 없었고, 되려 내가 결벽증에 가까운 사람으로 오해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앞섰다. 어찌되었건 나는 굴러들어온 돌이니까.  

그럼에도, 나는 이런 상황에 진절머리가 났다. 뽀뽀며 지사장 접대며 허벅지까지. 많은 일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어쩔 수 없었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절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 나는 다시, 이동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디든 사람이 사는 곳인데, 떠나자.

주변 사람들도, 점점 나에게 부과되는, 많아지는 업무에서도 도망가고 싶어졌다. 배우면 나중에 도움이 된다고, 어리니까 빠르다고, 할 사람이 없다고…. 적응할 새가 되면 추가되는 업무에도 지쳐갔다. 

합법적으로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은 인사발령이었다. 


그 즈음에, 해외파견자 모집이 공모 되었는데, 지원자가 없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환경이 좋은 곳이 아니기에 많이들 기피한다고 들었다. 나는, 어차피 힘들 거 해외에서 힘들고 파견수당이나 더 받자, 여기서 벗어나자 하는 짧은 생각 끝에 지원하게 되었고, 그 지원을 결재한 B 차장은 설마 되겠어? 하며 나에게 웃어 보였다. 

그의 안일한 마음 덕분에 나는 발령을 받았다. 해외로. 

 

많이 후련했다. 가족들과 사무실 책상 정리를 했고, 이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괜시리 시원섭섭한 마음도 들었다. 나역시 이렇게 쉽게 떠날수 있을줄 몰랐으니까. 하지만 앞으로 몇년이 걸릴지 모르는 인사이동을 막연히 기다리기엔 이 곳엔 질척거리는 기억이 많았다. 앞으로 더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고.


나의 발령으로 내 자리가 공석이 되겠지만, 걱정이 되지 않았다. 누군가가 또 내 자리를 채울 것이고, 또 이 회사는 굴러가겠지. 신기한 회사야. 

 

그리고 D 과장과의 연락은 끊겼다. 내가 해외근무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D 과장이 D 차장이 되어 큰 도시로 이동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그리고 마침 D 차장이 일하는 사무실로 출장을 가게 되었고, 그에게 연락하여 커피를 마셨다. 그가 좋아하는 믹스커피가 아닌 아메리카노를 마셨는데, 웃으며 헤어졌다. 시간이 흘러서 인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운 지사 생각도 났고. 이렇게 시간이 지나면, 힘든 기억보다는 좋았던 기억이 남는가 보다. 


하지만, 해바라기 과장은 여전했다. 그 주 금요일, 술에 취한 게 분명한 오타 섞인 카톡을 받았다. 

다시 시작된 그의 연락이었다. 해외근무지에서 겪었던 일련의 경험들로 인해 다시 나의 본능이 경고했다. 

조심하자. 끊어내자. 

나는 그의 연락을 무시했고, 그는 가끔 사내 메신저로 나에게 연락을 했으나 나는 많이 바빴다. 또 일에 치여 뛰어다녔다. 


D 과장은 참 한결같다. 무해하게 웃으며 다가오지만, 선 안으로 들여보내서는 안되는 무익한 사람. 

멀리서 보기에 참 좋은 사람인 그. 자세히 보아야 사랑스러운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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