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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너리 Sep 18. 2023

3-2. C 과장_만인의 연인, 왕좌를 거머쥐다

믹스커피에 스며들다


몇 달이 지났고, 나는 B 차장을 따라 부서를 옮겼다. 

C 과장은 더 이상 나의 사수가 아니었고, 오며 가며 인사하는 타 부서 사람이었다. 업무도 관련이 없고, 강요하던 회식 상사를 벗어나게 되니 홀가분했다. 


그렇게 그녀와 거리를 두고 서서히 멀어지려 했으나, 그녀는, 정말 모두의 연인이었다. 그러니까 C 과장은 같은 부서에 있기보다 다른 부서에 있을 때 더 반짝이는 사람이었는데, 부담스럽지 않게 가벼운 이야기하기 편한 적임자였다. 

간접적으로 알기에 더 유용한 사람이기도 했는데, 타 부서 분위기나, B 차장의 심중이나 직원들끼리 갈등을 중간에서 잘 풀어나가기도 했다. 

그녀가 안다면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겠거니 생각하며 대화했고, 무엇인가 알려지고 싶거나 내가 말하기 어려울 때는 그녀에게 넌지시 전달하면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오지랖이라면 오지랖이지만, 밉지가 않았다.


웃는 얼굴에 침 뱉을 수 있던가. 다가오는데 어떻게 미워할 수 있을까. 


어느새 나 역시 그녀의 커피 동료 중 하나가 되어, 나의 후임자 앞에서 C 과장과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내가 일했던 사무실이라 익숙했고, 왠지 하루에 한 번은 출근도장을 찍어야 할 것 같았다.

C 과장이 있으니 나는 후임자에게 따로 인계할 것이 없었다. 더구나 그 부서 업무를 대략 알고 있으니 돌아가는 사정은 빤했다. 후임자의 눈에는 나와 C 과장이 찰떡궁합이라 여겼는지 모른다. 아니면 나처럼 시끄럽다고 여겼을 수도 있다. 


오며 가며 나는 어느새 C 과장과, 이 지사의 믹스커피에 스며들었다. 아침에는 한 잔씩 꼭 믹스커피를 마셨고, C 과장이 시험공부의 어려움을 토로했을 때, 진심으로 그녀의 승진 시험에 무운을 빌었다. 


 후 한동안 C 과장은 승진 시험에 박차를 가해 사무실에서는 보기 힘들었다. 나도 감사라는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시간은 흘렀다. 


그리고 추운 그해 겨울, C 과장은 C 차장이 되었다.


그녀의 승진을 축하하는 회식자리에서, C 차장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사람들에게 내가 복덩이라 진급할 수 있었다며 나를 한껏 올려주었고, 나 또한 그녀의 노력이 빛을 발휘했다며 그녀에게 배운 대로 응답했다. 

서로 만족할 만한 관계였고, 업무 성과보다 인간관계가 이 회사에서는 더 중요하다고 깨닫게 된 첫 사례였다. 어찌 되었건, 그녀는 본인의 힘으로 승진 시험에 통과한 것이니, 그 부분은 인정받아야 마땅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니, 사실 C 차장은 정 많고 말 많은, 실수는 좀 있어도 사람 냄새나는 상사였다. 모두에게 친절했고, 상사라 딱히 으스대지도 않았고, 사람들을 챙겨주려 애썼다. 돈도 잘 썼는데, 우리 회사 사람 같지 않았다. 내가 기겁했던, 술자리 상사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는 애교 수준이었다. 무엇이든 처음은 어려운 법이니까.


그때의 나는, 같은 여자라 더 완벽한 여자 상사를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업무도, 인품도, 술자리도, 뭐든지 빠지지 않은 팔방미인. 오히려 술자리에는 약하더라도, 일이라면 누구에게서나 인정받는. 정작 나는 나의 이상향과 거리가 멀면서 말이다.


승진 발령 이후, 건너 들리는 소식에는 C 차장은 그녀만의 강력한 무기로 착실히 그녀의 입지를 다졌고, 주요 부서에서 존재감을 확실히 어필했다고 한다. 그러니, 그녀가 지사에 다시 돌아왔을 때는, B 차장의 자리는 따 놓은 당상 그녀의 차지였다. 


종이호랑이는 사라졌고, 그녀는 충분히 왕좌를 거머쥘 자격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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