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채 할아버지의 존재감
그리고 어느덧, 연말이 되었다.
본래 부서 내 박 과장의 업무인데, 그는 프로그램 사용이 익숙하지 않고, 나는 신입사원이라는 명목으로 그의 일을 간간이 도와주고 있었다. 그의 업무는 완수 시 “격려금”이라는 금전적 혜택이 주어졌는데, 관심의 대상이었다.
외근을 같이 나가고, 컴퓨터 작업을 하다 보니 그의 일이 겉으로 보기보다 애로사항이 많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고, 격려금 제도의 당위성도 이해하게 되었다.
격려금이 지급되는 12월, 박 과장과 나에게 지급되는 격려금을 정리하여 결재를 올렸는데, B 차장의 청천벽력 같은 지시가 떨어졌다.
입금된 격려금을 부서 내 공동자금으로 쓰자는 것이다.
격려금과 연관된 업무로 전화가 오면 부서 내 누구도 대신 받아주지 않았고, 나는 외근은 외근대로, 사무실 업무는 업무대로 쌓여 과중한 일 처리를 하고 있었다.
더욱이 나는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병아리 직원이라 청렴하고 싶었고, B 차장에게 적잖이 실망하고 말았다. 공정하게 처리해야 할 상사가, 뒷거래를 하자고 하다니. 그리고 더 분개했던 건 그가 박 과장의 노고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나는 옳은 일을 해야 한다는 의협심으로 B 차장에게 내 격려금(얼마 되지 않았다)은 공동자금으로 처리해도 좋으나, 박 과장의 격려금은 그의 노력과 수고로 받은 정당한 대가이니, 박 과장의 몫으로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말 무슨 용기였는지, 좀 떨리긴 했지만 내가 정당하다고 여겼기에 당당했다. 가슴을 쭉 펴고 혹여나 B 차장이 보기에 내가 어물쩍하는 태도가 보일까 싶어 감추려 애썼다.
그리고 B 차장은 좀 많이 당황스러워 보였다. 누가 그에게 반기를 든 단 말인가. 그것도 졸병 나부랭이가. 그는 나에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고 했고, 그 이후 변함없는 내 의견을 전달했다.
그리고 그 일은 내 방식대로 일단락이 되었다고 믿었다.
연말은 회식이 줄줄이 이어진다.
전체 회식, 업무와 연관된 타 부서와 합동 회식, 부서 내 회식, 동호회 회식, 연령대별 회식. 이름만 붙이면 회식이 되는 거다.
술을 진탕 먹는 여느 회식과는 다르게, B 차장의 연말 부서 내 회식은 한정식집에서 이뤄졌다.
와인 한 잔과 함께 코스요리를 즐기며 B 차장도, 직원들도 모두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대화를 이어갔고, 그날의 화룡점정은 회식 끝 무렵에 배부된 용돈 봉투였다.
B 차장은 한 해의 노고를 치하하며 한 명 한 명에게 덕담과 함께 봉투를 건넸고, 나는 겨울방학을 앞두고 표창장을 받은 아이처럼 들떠버렸다.
의미 있는 회식이었다.
해가 지났고, 여느 때와 다름없이 박 과장과 외근을 나가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런두런 하다가 격려금 주제가 흘러나왔다. 박 과장은 주저하며 내게 말했다. 사실, B 차장이 따로 박 과장을 불러 격려금을 공동자금으로 돌리라고 권유했고, 그는 지시에 따랐다고 한다. B 차장이 나를 생각해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으니 모르는 척하길 바란다며 자신은 괜찮다고 먼 산을 쳐다보았다.
아! 얼마나 순진한 나였던가.
나의 과한 오지랖으로 오히려 박 과장을 곤란하게 만들었고, 나만 깨끗한 사람이 되었으나 결국 나 또한 박과장의 격려금을 한몫 챙긴 셈이었다. 연말에 받았던 봉투의 정체가 그것이었다. 퍼즐이 맞춰진 거다. 용돈을 받기만 하고 그 돈의 출처는 생각도 하지 않았던 나.
나중에 보니, 부서 내에 공동자금이 존재했고, B 차장은 자신이 속한 부서 내에서는 관례처럼 공동자금을 모아 상사 몇을 제외하고 직원들에게만 1/N로 배부했다.
그러니까 매년 이뤄진 일이고, 꽤 유서 깊은 B 차장 부서만의 연말 전통인 거다.
B 차장이 설명했다면, 나는 수긍했을까? 그에게 나는 핫바지 직원이라 일일이 수고스럽게 말하기도 시간 낭비였을 것이고, 또 나름대로 신입사원의 순수함을 지켜주려 한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꽃밭에서 살아라~” 가 아닌 언젠가는 물들고 때 탈 텐데 조금이나마 그 기간을 늘려주고 싶달까. 굳이 쓴 물을 빨리 마셔야 할까 싶고.
시간이 흘러, 나역시 간간이 신입사원을 마주하는데 그들의 순진무구한 눈을 보고 있자면, 나 또한 간혹 설명하기 어려운, 부조리하나 또 회사에서는 묵인되는, 통용되는 일에 그들을 엮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조금은 지켜주고 싶어졌다.
그럴 때 B 차장이, 우습게도 떠올랐다.
하지만, 조금 멀리 본다면, 진정 그 직원을 배려한다면, 아주 소량이라도 쓴 약을 먹는 게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아직도 회사에 대해 나는 너무 무지했다. 겉으로 보이는 그대로, 좋은 것 만을 믿었다. 그러다 보니 회사에 계속 배신당했다. 상대는 속일 생각이 없었으나, 내가 혼자 그렇게 믿었고 상처받았다.
그 끝없는 탐욕으로 가득 찬 구렁텅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가지기 위해 더 올라가기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최선을 다했는지, 그 결과가 대단한 것이든 아니든. 나는 회사에 좀 더 회의적이어야 했다. 무조건 의심하고 봤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사실, B 차장의 설명이 그렇게 중요했을까 싶다. 들었다 하더라도, 나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거다.
그 당시 나는 어떤 일 하나하나에도 일희일비하기에 바빴고, 근시안적인 태도로 사람을 대했으며, 여유가 없어 주어진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했다. 더구나, 시간이 꽤 지난 지금도, B 차장은 아직도 정의하기 어려운, 입체적인 상사로 여겨진다. 공정하면서도 이율배반적이고, 고약하다가도 사려 깊었다.
사람을 한 단어로 단정 짓기는 참 어렵지만, B 차장은 지사의 어르신이었다.
나이가 있으나 총기가 넘쳐 “흥흥~” 거리며 사랑채에 누워있어도 집안의 대소사를 모르는 게 없는 할아버지. 오히려 솔직해서 정감 가는 상사 다운 상사였다.
조금 더 오래 보았으면 분명 또 다른 면모를 발견했겠지만, 이제는 알 방법도 없다.
나는 다시 발령으로 지사를 떠났고, B 차장과는 연락하지 않았다. 다만 그 지역의 지명이 들리면, 제일 먼저 색안경을 쓰고 호령하던 B 차장이 떠올랐고, 지사의 마스코트였던 그가 퇴직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막연히 쓸쓸해졌다.
지사를 지키던 종이 할아버지가 사라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의 자리를 차지했다. 사실, 비워진 자리가 채워지는 건 당연한 것이고, 대체자는 얼마든지 있으니까.
그의 모든 부분을 이해할 수는 없다. 그래도 노력하고 싶었다. 일련의 사건들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나는 그에게 호감이 있고, 존재감이 가득했던 B 차장이 무탈하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