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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너리 Sep 17. 2023

3-1. C 과장_속성으로 배운 회식사수의 코치

권력자 앞에 조아리기 

C 과장은 나의 상사이기 이전에 나의 사수였다. 타 부서로 재배치받기 전 까지니까 대략 3개월 정도.

그녀는 승진 시험 준비로 일과시간 중 절반은 회의실에 있었고, 그 외의 시간에는 친목을 도모하느라 참, 많이 바빴다. 업무 인계를 받으려 마음 졸이며 그녀가 회의실에서 나오기를 기다렸지만, 누군가가 채 가기 일쑤였다.

진정 모두와 친밀한, “만인의 연인”이었다.


C 과장을 찾아온 방문객들은, 믹스커피를 마시며 그녀와 대화하면서도 파티션 너머로 나를 흘깃 보았고, C 과장에게 일을 배우는 나를 행운아라며, 그녀를 한껏 추켜올렸다.

그녀는 특유의 여유 있는 미소를 띠며 덕분에 공부할 수 있다고 넌지시 나를 칭찬했다. 나는 내심 그녀가 에이스이길 바랐다. 업무를 잘 배우고 싶은, 칭찬이 그리운 신입사원이었다.

그리고 그 기대는 역시나 현실과 달랐다.


처음 공문을 작성하는데, 맞춤법도 띄어쓰기도 문장 연결도 뭔가 어색했다. 그러니까 병아리 사원인 내 주제에도 보이는 사소한 실수들이었다. 그렇다고 내가 임의로 수정하기도 어려웠다.

발령 전 부서에서는 팀장이 토시 하나하나 까다롭게 수정해서, 차장들은 보고서 버전 24가 되어서야 겨우 결재를 받았는데, 여기서는 구렁이 돌담 넘듯이 지나갔다.

과유불급이다 생각했는데 웬걸, 개살구를 만났다.


다른 업무도 마찬가지였다. 정확하게 아는 업무가 없었다. 전화로 해당 업무 총괄담당자에게 일일이 물어보아야 했고, 친절한 몇몇 분들의 목소리에 위안을 받았고, 오히려 더 많이 배웠다.

C 과장의 업무지시는 혼선이 많았는데, 지금까지 어떻게 처리해 왔던 건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업무를 다 대강 알았다. 이쯤 되면, 파티션 너머의 C 과장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몇십 년의 회사생활은 어떻게 한 걸까. 정체가 뭘까.

그녀가 없다고 생각하고 일을 처리해야 수월했다. 나는 되려 그녀가 회의실에서 공부하는 시간이 업무에 더 집중되었다. 그녀가 나오면 커피 동료들의 수다로 사무실이 시끄러워졌고, 나 역시 그들과 동참할 수밖에 없는 모지리였으니까.


이쯤 되면, B 차장과 C 과장의 관계가 참 궁금해진다. B 차장은 무소불위, 이 지사의 터줏대감인데 C 과장과 한 부서에서 어떻게 조화를 이루며 지낼 수 있을까.

그들은 동향 사람이라 서로에게 너그러웠고, B 차장의 다소 과격한 언동이 C 과장의 인간관계에 힘입어 누그러지기도 했다. C 과장은 B 차장에게 아주 깍듯했고, 그의 의견에 절대 동조했다.

그러니까, B 차장의 천하 안에서 주어진 일을 적당히 처리하며, 여론을 조성하고 우호적인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녀는 유흥에도 강해서 회식자리에는 물 만난 고기 마냥 수려했고, 직원들을 챙기며 가질 수 있는 인간관계란 관계는 다 맺었다. 아줌마 특유의 뻔뻔함과 약간의 공주 끼가 공존하는 어마어마한 사람이었다. 모두의 소식을 알았고, 업무 외적으로도 그것은 그녀에게 강점이 되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 사람을 적으로 돌리면 안 된다. 차라리 몰랐을지언정, 이제는 최소한 조금이라도 가까워야 한다.

하지만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업무로 존중받고 싶은 나의 고고한 기준과는 거리가 먼 그녀를,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다들 알고 있지 않은가. 세상 사는 다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것을 인정하기에는 나는 인생 경험이 아직 짧았다.

 


 

전체 회식이었다. 참으로 부담스러운 자리가 아닐 수 없다. 특히 나처럼 갓 전입해 온 신입은, 관심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행동거지도, 옷차림도 신경 쓰였다.

회식의 사회는 C 과장이 맡았다. 밝은 웃음, 시종일관 여유로운 태도, 관중을 압도하는 입담. 행사 전문 사회자를 방불케 했다.

나의 발령 이후, 첫 회식이었고 나의 소개를 끝으로 간단한 인사말과 함께 건배사를 제창하게 했다. 퇴근 무렵, 건배사를 준비하라 해서 부랴부랴 인터넷을 찾았던 기억이 있다. 청바지? 소화제? 사이다?

무난하지만 내가 하기에 덜 민망한 건배사를 찾으려 애썼다. 건배사를 하긴 했지만 뭐든 상관없었을 거다. 그저 위하여! 하고 다들 취하고 싶어 했으니까.


회식자리의 끝은 노래방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소맥과 마른안주, 트로트가 한데 어우러졌다. 나는 마당발인 그녀 옆에서 눈치를 슬쩍 보며 집에 갈 타이밍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녀가 옆에 있으면 그래도 사수라고, 덜 불안했다. 그리고 내심, 나를 대놓고 챙기지는 않아도 우회적으로라도 방패막이가 되어 주겠지 하는 안일한 마음도 있었고. 노래방은 원래도 좋아하지 않았다.


회식의 화룡점정은 C 과장의 코치였다. 그녀는 나를 지사장 옆으로 밀어 넣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지사장 옆에 강제로 앉히고 술을 따르게 했다. 여직원이라 술 빼고 하는 거 본인은 허용할 수 없다면서.

여자의 적은 여자라더니. 오히려 더 무서운 상사였다.

챙기기는커녕 술잔이 비워지지 않으면 타박을 주었고, 밑장 빼기라는 둥, 사랑하는 만큼 술을 잔에 따르라는 등등 이상한 술자리 은어는 다 C 과장에게서 접했다. 그녀는 나의 사수였다. 업무사수가 아닌 술자리 사수.


상대방의 술잔에 예민했고, 특히 지사장의 술잔은 내 담당이라며 정신 단단히 차리라고 종용했다. 그렇게 좋으면 본인이 따를 것이지 나를 꾸역꾸역 끌고 갔을까. 작은 주점에서의 3차가 파할 때가 되고 나서야 나도 집에 갈 수 있었다. 신입사원의 신고식인가 했다.


하지만, 그녀는 한결같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나의 주량에 대해 물어는 봤지만, 나의 대답과는 별개로, 술은 마시면 마실수록 는다는 소신을 가지고 있는 애주가였다. 특히 높은 상관이 있을 때 나의 역할은 정해져 있었다. 잦은 회식과 계속되는 그녀의 코치로, 나중에는 손과 발이 착착 맞는 것 마냥 그녀의 마음에 들게 술자리에서 행동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나는 잘못된 회식문화를 배웠다. 그러니까 권력자 앞에 조아리는 법을, 회식자리에서 만큼은 확실히 몸에 새긴 것이다.


결과적으로 C 과장의 소신대로 나의 주량이 늘긴 늘었다. 그리고 버리는 술의 양도 늘었다.

부서 회식은 B 차장의 주도 아래 평화롭게 진행되었지만, 전체 회식이나 C 과장과 친한 무리들의 소규모 회식은 나를 힘들게 했다.

그녀가 사수이기 때문에 같은 사무실에서 일적으로 얽매였고, 파티션 너머의 수다도 점점 듣기 힘들었다.


하나 좋은 건, 그녀는 숙취에 관대해서 회식 다음 달 아침은 사무실에서 컵라면을 먹는 등 비교적 한가 지게 보냈다. 단둘이 마주 보며 컵라면을 먹고 식후 믹스커피를 마시고 나면,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이 되었는데, 일이 많은 날은 내 속이 까마득히 탔다.


조삼모사라고, 오후에 오전의 업무까지 다 처리해야 했으니까. 도대체 업무는 언제 하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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