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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너리 Sep 25. 2023

5-5. E 팀장_그는 다가왔고, 나는 애원했다

조용히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전입직원들이 왔다. 나는 팀원 모두와 거리를 두고 일만 하는 사무적인 직원이 되어 있었고, 딱히 전입직원들에게 친밀하게 대하거나, 대화를 많이 하지 않았다. 업무상 필요할 때만 간결하게 이야기했는데, 사실 그들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 반이었다. 내가 조금만 오래 이야기해도 E 팀장의 올라간 눈초리는 하늘같이 더 올라갔다. 

나는 정말 그에게 지배당하고 있었다. 


새로운 직원들이 오면서 우리 팀에 새로운 바람이 불었다. 바로 갈굼의 타깃이 전환된 셈인데, 신입 직원 두 명은 참 힘들어했다. 중견 직원은, 그의 관록에 맞게 처음부터 아주 납작 엎드렸다.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 싶을 정도로, E 팀장이 부르면 그 자리까지 허리를 수그리고 버선발을 하고선 뛰어갔다. 약간의 쇼맨십도 있었는데, 업무로 질타를 받으면 시정하겠다고 죄책감 가득한 얼굴로 바닥만 쳐다보았다. 

하지만 신입 직원 두 명은, 나처럼 아니 나보다 더했으면 더 했지 모자라지는 않을 만큼 그에게 시달렸다. 계속 그에게 불려 갔고, 얼굴이 빨개져라 호통을 들었으며, 자존심 상해하는 표정이 드러났다. 그럴수록 팀장의 괴롭힘은 더 집요해졌고, 그들은 출구 없는 구렁텅이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조용히 숨죽이고 지켜보았다. 

각자의 방법이 있으니까, 성인이니까, 어련히 적응하려니 했다. 무심코 던진 조언에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이제야 나도 좀 숨통이 트였다. 그의 관심 병사가 하나에서 셋으로 늘어난 셈이니까. 그리고, 혼나고 혼나다 보면, 요령이 생기고 또 그 맷집만큼 무감각해지는 것 같다. 

나는 그들을 보며 의욕이 넘치던 나의 과거를 떠올렸고, 얼굴에 생기라고는 하나 없는 무미건조한 지금의 나를 발견했다. 쓴웃음이 났다.

 


그렇게 혼나기만 했다면, 팔 하나 희생한 채 내가 정한 선에서 그가 귀국을 했다면, 덜 끔찍했을 텐데, 전입한 직원들도 더 이상 E 팀장의 흥미를 끌지 못했고, 그는 더 집요하게 나에게 다가왔다. 

사무실 옆에는 작은 회의실이 있었는데, 주로 사람들 눈을 피해 커피를 마시는 장소였다. 우리 팀 사무실 근처라 사람들의 왕래가 없었고, 그 회의실에는 전화기가 있었다. 번호는 5000이었는데, E 팀장이 그 사무실을 개인집무실 마냥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사무실 전화기에 5000 이 뜨면 너무 무서웠다. 

이미 E 팀장은 내가 자리에 있는 걸 확인하고 회의실에 들어갔고, 나는 일부러 “네, 팀장님!” 하며 가능한 크게 전화를 받았다. 

회의실 호출인데, 팀원들에게 내가 팀장의 호출로 회의실에 간다는 걸 알리는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빈손으로 가기 민망하여 업무노트를 지참했다. 업무라고 믿고 싶은 나의 의지였는지도 모른다. 회의실에서는 별다른 말은 없었다. 책상을 중심으로 한쪽에 E 팀장이 그리고 나는 반대쪽에 앉아서 오히려 사무실 팀장의 자리보다는 멀었지만, 대화하는 시간은 더 길었다. 일방적인 듣기 연습이었지만. 


그는 본인이 정말 힘들다며, 나에게 위로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시간들이 점점 많아졌고, 나는 두려움에 녹음을 하기 시작했다. 펜으로 된 녹음기를 사려했으나 여의치 않았고, 내가 오히려 긴장해서 들고 있다가 의심을 받을 것 같기도 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일방적인 녹음이 아닌, 서로의 대화는 불법이 아니라고 확인했고, 내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녹음기를 틀고 회의실에 들어갔다. 하지만, 선명하게 녹음되지 않았다. 

그즈음에 작은 수첩에 일기를 다시 적기 시작했고, 친한 친구가 변호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위로 섞인 대안도 제시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어느 날이었다.  

그가 회의실로 호출했고, 커피를 마시며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가 말했다. 한번 안아봐도 되겠냐고.

나는 올 것이 왔나 싶었다. 녹음기는 켜져 있었고, 나는 말했다. 

그건 안된다고. 

하지만 그가 다가왔고, 나는 차라리 손을 잡아 드리겠다며 애원했다.  

역시나 거절당했고, 그는 나를 안았다. 

나는 손을 차렷 자세로, 뻣뻣이 굳어 있었다. 

소리를 지르고 싶었는데 아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왜 지하철에서 치한을 만나면, 아무 반응을 하지 못하는지 그제야 알게 되었다. 

너무 놀라면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당해보지 않고서 재단하면 안 되는구나.

1시간 같은 1분이 흘렀을까.


그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고, 무슨 이야기가 오갔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는 회의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무슨 일을 당한 걸까.

누군가는 겨우 포옹인데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자유의지가 침해당했고, 그리고 나는 몇 년 동안이나 천천히, 그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해 왔다. 내가 나름 잘 대처하고 있다고 여겼는데 하나도 그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다. 몸으로 당하니 내 처지가 여실히 느껴졌다. 

지금의 나라면, 소리라도 고래고래 질렀을 텐데, 아니 회사를 때려치우거나 국내로 복귀를 하고, 증거를 모아 외부 기관이며 감사팀이며 고발했을 거다. 

그가 제일 무서워하는, 그를 사회적으로 말살시킬 것이다. 

고대사회에서는 범죄자 이마에 낙인을 찍어 고개도 들지 못하게 하지 않은가. 그의 명예를 철저하게 밟아버리고 싶다. 


하지만 그때의 나는 그러지 못했다. 

소리는커녕, 누군가에게 털어놓지도 못했고 나의 영혼은 잠식되어 갔다.       



며칠 동안 E 팀장이 나를 회의실로 다시 호출하지 않을까 긴장하고 있었다. 나는 절벽 끝에 다다른 심정이었다. 그리고 어느 오후였다. 

타 팀과의 합동 회식이 갑자기 생겼다. 나는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었기에 우리 팀 회식이 아니면 참석하지 않았는데, 합동 회식은 가야 했다. 팀원 누구도 빠지지 못했다. 나는 홍일점이었고, 우리 팀에서는 볼 수 없는 칭찬 세례가 이어졌다. 

회식의 초점이 나에게 꽂혔고, 이미 이제는 뇌를 공유할 경지에 이르렀기에 E 팀장의 불쾌한 심중을 파악했다. 그가 주인공이 아니고, 본인 옆에 조용히 있어야 할 내가 다른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으니.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그날 저녁 술 취한 E 팀장에게서 카톡이 왔다. 나는 회식 후에 카톡 보기가 무서웠다.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번에는 좀 색달랐다. 나에게 이렇게 인기가 많은 줄 몰랐다며, 다른 팀으로 가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협박성 멘트인 셈인데, 내가 팀에 제발 남게 해달라고 애걸복걸하기를 바란 눈치였다. 

 

요 며칠 많은 일이 있었던 나날이었다. 

회의실 사건과 회식 후의 카톡은 나를 눈뜨게 했다. 내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내가 부족해서, 내가 업무를 못해서, 내 탓인 줄 알았는데, 정말 난 잘못한 게 없었다. 

절망에 절망이 얹히다 보니 마지막 에서야 “될 대로 돼라"가 되었고, 나 자신을 아끼는 나를 발견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친히 팀을 옮기라고 하니 옮겨야겠다고 결심했다. 어차피 두 명 몫의 일을 하고 있었는데, 팀을 옮기면 일도 줄고 좋으니까. 무엇보다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E 팀장은 나에게 본인도 모르게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나는 다음날 실천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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