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만의 세상에서 혼자 좋아했다
나도 참 대책이 없지. 왜 회식이 거의 없을 거라고 예상했을까. 회사에 어딜 가도 회식은 넘쳐났다. 특히 이곳 사람들은 술 아니면 운동에 미쳐 있었는데, E 팀장은 전자였다.
E 팀장은 술을 잘 마시기도 마셨지만, 술자리 자체를 즐기는 편이었다. 그리고 건배사를 참 좋아했다. 매번 새로운 건배사를 제창해야 했고, 네이버에 참 많이도 검색했다. 그럼에도, 그가 제일 좋아하는 건배사가 있었는데 “이 멤버 리 멤버”였다. 갑자기 생기려야 생길 수 없는 동료애를 강조하며.
기억하고 싶지 않아도, 기억할 수밖에 없는 팀장, 팀원들. 지금도 눈을 감으면, 그때의 자리 배치, 술잔을 주고받던, 비위 맞추려 노력하던 그 모습들이 눈에 선하다.
내가 전에 봐왔던 회식은 회식이 아니라고 여길 만큼 술을 짐승처럼 마셔 댔고, 거의 쓰러져 실려 숙소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들 그렇게, E 팀장에게 충성을 다짐했다. 나중에는 안 하는 사람이 민망해질 정도였다. 대단했다. 분명히 사무실에서 한 시간 넘게 시달렸는데, 머리를 긁적이며 팀장님 덕분에 잘 배웠습니다. 하더라.
나이도 분명 E 팀장보다 많고, 딱히 그의 잘못도 아니었는데, 회식자리를 빌려 웃으며 그에게 어필했다. 그럼 E 팀장은, 그렇게 이해해 주니 고맙다며 역시 고참 차장은 다르다고 그를 치켜올려 세웠다.
진정 주거니 받거니였다. 고참 차장도 누군가의 아빠일 텐데.
“아…. 이렇게 우리네 아빠들이 열심히 사는구나…싶었다.” 왜 그런 날 이 있지 않은가. 아빠가 술에 취해 맛있는 걸 사 오는 날은, 아빠가 누군가에게 호되게 질책당했거나 상처받은 날이겠거니.
그래서인지, 나는 보복심리로 여기서 번 돈으로 떵떵거리며 가족에게 흥청망청 쓰고 싶어졌다.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는 거다. 힘들게 번 돈, 부모님께 늦게나마 효도하며 쓰리라. 가족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 업무 중에 있었던 일도 잊으면서.
회식에서도 역시나 E 팀장의 옆자리는 내 자리로 비워져 있었는데, 한 번은 눈치 빠른 차장이 위한답시고 슬며시 자리를 채워 내가 E 팀장과는 사선으로 끝 자리에 앉게 되었다. 어찌나 마음이 편하던지. 하지만 그 회식은 재앙에 가까웠다.
술이 어느 정도 된 그는, 팀원 한 명 한 명을 앉은 차례대로, 순서에 입각하며 조졌다. 어떻게 그렇게 조질 수 있을까 싶게 아주 신랄하게 비판을 했는데, 나중에는 휴지를 돌돌 말아 면전에 던지기도 했다.
한 명의 희생으로, 즐겁게 회식이 끝난다면, 대의가 충분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줄기차게 혼자 떠들어 댔고, 팀원들은 앉아서 얼차려를 했으며 E 팀장의 숙소 앞에서 직각에 가깝게 인사를 드리고 나서야 모두들 해산할 수 있었다. 악몽이었다. 하지만 더 한 악몽이 찾아왔으니, 그에게서 카톡이 왔다.
자신의 숙소로 잠시 오라는.
나는 방금 전의 상황을 겪었고, 그가 술에 취해 제정신이 아닌 상태라는 것도 인지하고 있었다. 나는 그의 카톡에 한참 우두커니 앉아 있다가, 몸이 좋지 않아 잔다고 회신했다. 다음날 사무실에서 숨죽이며 존재감 없이 앉아 있었는데, 역시나 그는 호출하여 상사의 연락에 제깍제깍 답하지 않는다며 혼쭐을 냈다. 업무의 연장선은 몇시까지인가. 회식 이후도 업무시간으로 보아야 하는가.
회식 후에 특히나 그의 카톡이 이어졌는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내가 마치 본인의 여자친구인 것 마냥 집착했는데, 사무실에서 누가 내 자리에 왔는지 일일이 보고 있기 일쑤였고, 가끔은 무슨 대화를 했냐고 캐묻기까지 했다.
나는 성희롱, 성추행을 당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는데, 무기력했다. 이 꽉 막힌 공간에서, 삭막한 사무실에서 나는 익숙해져 갔다. 참을 수밖에 없었다. 한 차장에게 살짝 돌려 말하니, 일기를 작성해 보라고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작은 수첩에 일기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구체적인 상황이 드러나게. 혹여나 증거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
시간은 흘렀다. 변화된 건 딱히 없었다. 나는 여전히 결재받으러 갈 때 지침과 규정을 한 손에, 그리고 내 한쪽 팔을 바쳤고, 회식에서는 그의 옆자리를 지켰다. 나는 내가 그어 둔 최소한의 선을 그가 넘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랬다.
휴가로 여행을 갔다. 이 외로운 곳에서 단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다면 자주 떠날 수 있는 거였다. 여행에 중독된 것 마냥 떠돌아다녔다. 환기를 해야 했다. 여행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었다. 마음껏 웃고, 웃고, 웃었다.
가족여행을 할 때는 그들의 웃는 얼굴을 보고 기뻤다. 내가 가장은 아니지만, 웃는 얼굴을 보며 내가 위로받았다. 내가 힘들기만 한 건 아니구나. 아니, 힘들어도 그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나로 인해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가족들의 웃음의 무게가 나에게는 커다란 의미구나.
혼자만의 세상에서 혼자 위로를 얻고 혼자 좋아했다.
한국으로 휴가를 갈 때마다, 가족들과 친구들이 하나같이 말했다. “왜 이렇게 살이 빠졌니?”.
혹자는 술을, 밥을 그렇게 먹는데 살이 찌지 않는다고 부러워하지만, 나는 살이 찔 수가 없는 환경이었다. 오히려 빠져서 얼굴이 해골같이 거죽만 남아 있었다. 매일매일 살얼음판을 걷듯 조심스러운 나는, 너무 예민해졌고 여유가 없었으며 다가오는 사람들에게도 뾰족하게 대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숙소 안에 억압했다. E 팀장에게서 나오는 단 한마디의 관심도 싫었고, 그럴 여지조차 주고 싶지 않았다. 그 당시 나는 계속되는 회식에서 얻게 된 역류성 식도염으로 끊임없이 기침을 했고, 아침마다 물 설사를 해서 체력이 바닥이었다.
한 번은 기침이 세 달 정도 멈추지 않아 내과에서 폐 CT를 권유했고, 폐결절이 발견되었다. 크기는 작았지만, 만약 커진다면 폐암으로 진행될 수 있어 대학병원에서 판독을 다시 했다.
다행히 예전 독감의 흔적일 거 같다는 소견을 받았지만, 지금도 추적 관찰해야 하는 내 몸의 요주 대상이다.
한창 살이 빠질 무렵, A 처장과 재회했다. 그때의 지랄 맞은 상사가 E 팀장인데, A 처장이 살이 많이 빠졌다고 걱정스레 물어왔다. 그가 참, 많이 반가웠다. 당신은 양반이었다. 아니, 호인이었다.
세상에는 참, 부조리하고, 이상하고, 글러먹은 상사들이 많은데 그중에 E 팀장이, 최악이 틀림없기를 바랐다. 더 한 상사가 있다면 정말, 견딜 수 없을 테니까.
그의 집착은 나날이 심해졌는데, A 처장을 만나느라 사무실을 20분가량 비웠을 때 E 팀장이 나를 데리러 왔다. 사무실에 돌아오는 길에, 나를 염려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며 저 사람은 질이 좋지 않으니 조심하라며 경고했다.
나를 본인의 소유물로 생각하는 건지 뭔지,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란다더니, 참 우스웠다. 진짜 나를 여자친구로 아는 건가. 이제 팀장을 제외한 팀원들은 안다. 아니, 본인 스스로도 알지도 모른다.
그는 지독한 애정결핍에 병자였다. 관심 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