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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너리 Sep 28. 2023

7-1. G 차장_질서 속에 적응하기까지

누군가의 샌드백이 되어 

그를 떠올리면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G 차장은 지금 생각해도, 그 삭막했던 사무실에서 그나마 본연의 색을 조금은 간직하고 있었던, 아주 유쾌하고 재밌는 사람이다. 

팀장이 없을 때는 태세 전환이 재빨랐는데, 조금 큰 목소리에 빠른 어조, 그리고 수더분한 말투가 참 정감 있었다. 그는, 비공식적인 우리 팀의 분위기 메이커였다. 하지만, E 팀장 앞에서는 꿀 먹은 벙어리 마냥 입을 다물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그가 현명한 건 아니었다.   

내가 전입 후 몇 달이 지나서 G 차장이 우리 팀으로 발령을 받았다. 하루 이틀 지내보더니 나에게 슬쩍 와서 이야기했다.  E 팀장이 땡땡씨를 곤란하게 하는구나. 내가 중간에서 잘 도와줄게. 

사실 기대를 전혀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결과는 불 보듯 뻔했다. 그의 시도는 수포로 돌아갔는데, 그 당시 난 G 차장이 노력해 준 것만으로도, 그 말을 꺼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누가보아도 이상한 상황이 맞긴 맞았구나 싶었으니.

그리고 슬프게도, 어느새 그는 E 부장의 샌드백이 되어있었다.

 

G 차장은 적응력이 뛰어난 사람이었는데 금세 팀 내 차장들은 물론 직원들과도 친밀해졌다. 담배도 자주 피고, 술도 좋아하고 수다쟁이라 그의 주변은 늘 들썩들썩했다. 그러다 보니, 다른 팀 사람들도 자주 찾아왔는데 그 수위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나는 E 팀장의 불쾌한 기색을 눈치챘다. G 차장이 어디까지 하나 지켜보고 있는, 먹이를 앞에 둔 하이에나 같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회의 때 사정없이 그를 내리쳤다. 

E 팀장이 E 팀장 짓을 시작했다.

G 차장은 적잖이 당황해 보였고, 한없이 작아졌다. 그는 비교적 젊은 차장에 속했고, E 팀장에게는 새로운 먹거리가 생긴 셈이었다. 지금 와서 보면, E 팀장은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하고 내실을 다지기 위해 주기적으로 팀원을 꾸짖었는데, 타깃이 선정되는데도 대중이 없었지만, 혼내는 이유도 그때그때 달랐다. 오늘은 이래서 야단이고, 다음날은 저래서 문제였다. 그의 기분을 파악하고 얼른 조아리던지, 문제를 해결해서 신임을 회복하던지 이도 저도 안되면 “잘” 혼나는 정신승리가 필요했다.

 

G 차장은, 눈치는 없는 편이었는지 적응이 뛰어난 사람임에도, E 팀장 앞에서는 맥을 못 추었다. 그리고 긴장한 나머지 사소한 실수를 연발했다. 바로 보고서에 잦은 맞춤법 오류와 오타였다. 예를 들면 화요일을 수요일로 쓴다든가. 정말 가벼운 실수였는데, 반복되다 보니, E 팀장의 미움을 샀다. E 팀장은 G 차장에게 보고서를 다 쓰면 나에게 검수받고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치졸한 방법이었다. 

G 차장의 자존심을 망가트렸을 뿐만 아니라, 나의 입장도 곤란 해졌다. 상사인 G 차장의 티끌을 찾으라는 셈인데, 처음에는 여의치 않아 내 나름대로 최소한의 성의만 보였다. 몇 군데 오타만 발견해서 수정했고, 신속하지 않고 미적지근하게 굴었다. 참 불편했다. 

 

그런데, E 팀장의 불호령이 내게도 떨어졌다. 정말 검수한 거냐고, 이것밖에 안되냐며.

혼나기 싫었고, 또 정말 속상하게도 내 시선에도 G 차장의 보고서에는 허술한 부분이 있었다. 매번 F 차장의 보고서를 보다 보니, 내가 직접 잘 쓰지는 못해도 보는 눈이 올라갔나 보다. 그리고 기실 남의 실수는 잘 보이는 법이다. 내가 쓰면 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다른 사람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가. 그래서, 나도 가끔은 공문을 작성하고 출력해 본다. 혹시나 하는 오탈자를 발견하기 위해.  

어찌 되었건, G 차장이 혼나면 나도 같이 주눅이 들었고 그의 보고서는 자주 내 자리에 놓여 있었다. 그러면 나는 연필로 연하게 표기하고, 소리 내지 않게 G 차장 자리에 살짝 두고 자리에 돌아왔다. 

가끔은 정말 안타까웠다. 왜! 왜! 왜 자꾸 틀리는 걸까. 내가 봐도 반복된 실수가 너무 많았다. 이건 성격이었다. 사람마다 잘하는 게 다를 텐데, G 차장은 꼼꼼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서 G 차장도 익숙되었는지 “빨리 봐줘~” 하며 큰소리로 대수롭지 않게 말하기도 했고 나도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체크했다. 


그렇게 E 팀장이 세운 질서 속에 다들 적응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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