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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sol Oct 04. 2023

노렌을 지키는 사람들

のれんを守る人達

라쓰(唐津) 사람들 이야기. 두 번째  가라쓰(唐津) 사람들 이야기. 두 번째  

노렌을 지키는 사람들(のれんを守る人達)」


가라쓰(唐津) 중심 상점가는 가라쓰 시청 옆의 버스터미널과 가라쓰 전철역의 중심 부분에 한자의 우물 정(井) 자 형태로 조성되어 있다. 후쿠오카시(福岡市)와 인근 지역인 이마리시(伊万里市)나 사가시(佐賀市)로 이동하는 사람들은 버스를 이용하거나 전철을 이용하는데, 중심 상점가는 말 그대로 교통 이용자들의 동선 상 중앙에 위치한다. 

 버스 터미널을 기준으로 하면 카타나마찌(刀町)가 가장 선방에 위치하고 카타나마찌의 랜드마크 격인 기모노 상점 「이케다야(池田屋)」와 가라쓰를 대표하는 명품 화과자점 「오하라 쇼로만쥬(大原松露饅頭)」가 당당하게 역사적 상점가의 선두를 지키고 있다. 

 이케다야는 창업한 지 110년이 넘었으며 오하라 쇼로만쥬는 1850년에 창업하였으므로 17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케타야를 기점으로 연결되는 고후쿠마찌(呉服町)는 일직선으로 늘어선 상점가로 일본 차(茶)를 판매하는 1871년에 창업한 「빈쯔케차호(びんつけ茶舗)」를 시작해서 의류 상점과 이찌반칸(一番館)이라는 가라쓰야키(唐津焼) 도자기 갤러리, 이불 가게, 신발 가게, 문방구, 전기용품점, 일본 김을 판매하는 상점 등이 선조의 대를 이어 100년 이상이 넘도록 이 상점가 거리를 지키고 있다. 

 최근에 건축된 복합상업시설 「KARAE는 고후쿠마찌와 쿄마찌(京町)의 사거리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다. 쿄마찌(京町) 천장이 아케이드로 되어 있어서 비가 오더라도 우산 없이 통행을   있다.   오는 날이나 눈 내리는 날에는 나도 자주 이용했다쿄마찌에는 이불 가게신사복기모노신발  레트로(Retro) 분위기의 상점들이 있다.

 여기 쿄마찌에 창업한 지 200년 이상이 된 손 두부 가게이며 식당인  「가와시마 두부(川島豆腐)」가 있다. 가와시마 두부의 손두부는 에도 시대의 가라쓰 성 번주(가라쓰의 영주 격 직위)에게 헌상한 진상품이었다고 한다. 현재 이 상점은 10대째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으며 「미슐랭 가이드에 게재되어 있을 정도로 유명한 식당이다. 이곳은 반드시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나카마찌(中町) 다른 상점가 거리와 달리 자동차가 통행할  있는 조금 넓은 도로로 조성되어 있다생선 가게채소와 과일 가게화원화과자(和菓子), 가정식 식당들이 역시 선대의 대를 이어 운영되고 있다

 이곳 나카마찌에는 생선 어묵을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는 유명한 「후지카와 가마보코(藤川蒲鉾)」라는 상점이 있다. 이 상점 역시 140여 년 전에 창업하여 6대째 선조의 가업을 이어 운영하고 있는 전통과 맛을 자랑하는 노포(老鋪)이다. 이 상점에서 특히 유명한 상품은 생선 흰 살로 크로켓처럼 만든 '교로케(ロッケ)'로 육류를 먹지 않는 채식주의자들에게도 사랑받는 먹거리이다. 

 

 나는 100년, 200년 동안 선대의 가업을 존중하고 대를  이어 상업활동을 영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일본 상인 정신에 감동하고 그 또한 존중한다. 그중 가장 존경하는 분은 전통 료칸 「요요카쿠(洋々閣)사장님이다. 사장님에게는 대를 이어 료칸을 운영할 자녀가 없어서 양자를 입양하여 선대의 뜻을 잇게 되었다. 한국인인 내가 알고 있는 '양자를 입양한다'라는 의미와 다르다. 

 어린아이를 자식으로 입양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성인이 된 친척의 자녀들 중에서, 가족 간에 서로 합의하고 인정하는 과정을 통해 가업을 이어 줄 아들로 입양하여 사업을 대대로 전승하기 위한 것이다. 가업을 잇는다.」라는 것을 자신들의 생애에 지켜야 할 막중한 책임과 의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리고, 아들이 없고 딸만 있어서 가업을 잇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데릴사위를 맞이해서 아들처럼 선대의 대를 잇게 하는 지인도 있었다. 

 

 일본 사람들은 가업을 잇는다는 의미의 노렌을 지킨다(のれんを守る)」라는 말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노렌은 가게 입구에 설치하는 천장부터 내려오는 가림 막 같은 것인데, 대개 상점에서 판매하는 상품의 종류나 상점 명, 심벌마크 등이 그려져 있어서 그 상점을 시각적으로 어필하는 간판과 같은 역할을 한다. 노렌을 지킨다는 것은 상점을 계속해서 운영한다는 뜻으로 선대의 대를 이어 가업을 지킨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위에서 소개한 후지카와 가마보코 상점의 후지카와 사장님 내외분은 아들과 며느리가 가업을 이어 공장과 상점을 운영한다. 아들 내외는 가업을 잇는 것에 동의하고  성실하게 일해주고 있어서 고마운 일이라고 늘 칭찬했다. 이분들에게 초등학생인 손자가 둘 있는데 가끔 내가 운영하는 공방에 놀러 왔다.

 당시 형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고 동생은 초등학교 1학년 생. 

 동생 아이는 나에게 한국어를 배우고 있는 할머니와 자주 놀러 왔기 때문에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할머니와 자주 와서 그런지 거리낌 없이 불쑥 공방에 들어와서 인사도 잘하고 이것저것 한국에 대하여 물어보기도 하는 등 나와 한국에 대하여 호기심이 많은 소년이었다.

 어느 날, 하굣길에 반갑게 인사하며 형과 함께 또 불쑥 공방에 찾아와 묻지도 않았는데 뜬금없이 자기의 꿈을 이야기를 했다. 형은 활발한 동생보다 조용하고 의젓한 편이었다.

 나는 그 형제의 대화를 무심코 듣고 있었다. 

 

 동생의 말 : "내 꿈은 비행기 조종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비행기 장난감도 많아요. 할머니가 한국 여행 다녀오시면 항상 비행기 미니어처를 사다 주셔서 일본 비행기랑 한국의 아시아나, 대한항공 비행기, 미국 비행기도 갖고 있어요. 세계 여러 나라 비행기를 다 모으는 게 제 취미예요"

  형의 말 : "너는 꿈이 있어서 좋겠다. 나는 가마보코 사업을 이어받아야 하니까 조종사 같은 건 될 수 없을 거야."

 동생의 말 : "우리 집은 아주 옛날부터 가마보코 가게를 해서 할아버지랑 아빠가 대를 이어서  하고 있으니, 앞으로 형이 대를 이어야겠지. 엄마도 상점에서 일하시니까, 아마 형이 결혼하면  형 색시도 같이 일해야 할걸. 누가 형한테 시집올까? 아마 형은 결혼하는 것도 힘들 거야."

 형의 말 : "응,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형으로 태어났으니까 내가 해야지 뭐."

 

 이 대화가 진정 초등학생들의 대화인가.

나는 이 형제의 대화를 들었을 때의 형이라는 아이의 '어쩔 수 없지 뭐'하는 곤혹스러운 얼굴 표정과 '형한테는 미안하게 되었지만, 나는 반드시 조종사가 될 거야'하는 동생 아이의 야심 찬 얼굴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이 어린 형제들의  「노렌을 지킨다.」라는 전통 가업 계승에 대한 책임감과 미래의 포부와 비전이 교차되는, 뜬금없는 대화의 자리에서 두 아이의 심각한 얼굴을 보며 한참을 멍하게 서 있었다.




참조 : 후지카와 가마보코 홈페이지, https://fujikawakamaboko.jp/history/index.html

참조 : 가와시마 두부 홈페이지, https://www.zarudoufu.co.jp/

참조 : 가라쓰 중심 상점가 나카마찌 맵

https://karatsu-nakamachi.info/app/wp-content/uploads/nakamachi-map_light.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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