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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sol Sep 26. 2023

가라쓰(唐津) 상점가 사람들 이야기

100년이 넘는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

 가라쓰시(唐津市)는 1593년 초대 번주가 되었던 테라자와 히로다카(寺沢広高)가 1601년부터 6년이라는 세월을 거쳐 가라쓰 성을 건축하고 동시에 상점을 중심으로 마을을 구축되었다고 한다. 상점가의 조성은 한자(漢子) 그대로 해석하여 칼을 만들어 판매하는 '카타나마찌(刀町)', '미곡상 상점 코메야마찌(米屋町)', 의류, 장신구 등을 판매하는 상점가 '고후쿠마찌(呉服町)', 생선 상점가 '우오야마찌(魚屋町)', 채소나 과일 상점가 '야오야마찌(八百屋町)' 등등 생활에 필요한 농수산물과 생활필수품을 판매하는 상점가로 구획되었다. [세월이 흘러 최근에 이르러, 本町・呉服町・中町・木綿町・京町・刀町・米屋町・紺屋町・平野町・新町・八百屋町·材木町・大石町・塩屋町・東裏町・魚屋町 등 17개의 마을로 형성되었다 [1].]


 가라쓰의 상점가는 바닷가에 접하고 있어서 항구를 활용한 물물교환으로 주민들과 상인들의 경제활동이 활발하였고, 에도 시대에 이르러 상업시설이 더욱 발전하여 문화와 상업의 황금기라고 불릴 정도로 번성했다고 전해진다. 가라쓰의 번성기는 오랫동안 유지되었지만, 1970년 이후, 근대화에서 현대화되는 시기에 일본의 대도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각종 산업이 발달되고 그에 따라 젊은 층의 인구는 도시로 집중되는 현상을 낳았다. 가라쓰도 마찬가지로, 학교를 졸업한 상인들의 자녀들이 대도시로 직장을 찾아 떠나면서 청년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남은 사람들이 고령이 되면서 가라쓰 상점가는 날이 갈수록 문을 닫는 곳이 늘어만 갔다.


 내가 처음 연구를 위해 사전조사를 갔었던 2015년에도 대부분의 노후된 상점가에 셔터가 내려져 있었고 사람의 통행도 없는 바람만 휑하니 맴도는 을씨년스러운 풍경이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 있다. 


황량한 마을의 어느 한편에서 가라쓰의 전통과 문화를 지키며 상점가의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젊은 청년들이 있었다.


 • 빈쯔케야차호(びんつけ屋茶舗) 이야기

 

 내가 운영하고 있던 공방은 주소로는 카타나마찌(刀町)이고 상점가의 위치로 기준하면 고후쿠마찌(呉服町)에 해당되는 모퉁이 건물 1층에 있었다. 각 상점가끼리 사이가 좋을 때에는 아무렴 상관없지만, 상점가 이벤트가 날짜 별, 내용 별로 겹칠 때에는 어느 편에 붙어야 할지 난처한 경우도 있었다. 


 건물주 시노자키(篠崎)씨의 선조는 1617년에 상업을 창업했다고 하는데 내가 그곳에 있었던 2017년에 창업 400주년을 맞이했다. 상호는 처음에는 '빈쯔케야(びんつけ屋)'였다고 한다. '빈츠케'라는 것은 사무라이들의 머리카락에 바르는 기름 종류로서 이를테면, 헤어 에센스 오일에 가까운 상품이다. 높은 지위에 해당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였으니 사무라이 시대에는 영업이 번창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고 사무라이라는 직업(?) 자체가 사라지면서 빈츠케야의 선조는 상업활동의 내용을 전환해야만 했다. 그래서 1871년 현재의 장소인, 가라쓰 카타나마찌에 자리를 잡고 규슈 일대에서 생산된 차(茶)를 판매하는 '빈츠케야 차호(びんつけ屋茶舗)'로 상호를 변경하여 150년이 넘도록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다. 현재 경영주인 시노자키 구니오(篠崎邦夫) 씨의 맏아들은 대도시에서 사업을 하고 있고 차남인 다이스케(泰介) 씨가 가업을 잇고 있다.


 다이스케 씨는 항상 밝고 명랑한 사람이다. 내가 상점가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다른 상점 사람들을 소개해 주기도 하고, 일본의 독특한 상점가 문화를 이해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곤란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문제를 해결해 주는 맥가이버 같은 사람이다. 하물며 지네나 바퀴벌레 같은 것에 놀라서 소리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오면 껄껄 웃으면서 쓰~윽 그 추한 것들을 해치워 준다. 


괜찮아요! 저것들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인간이 더 추하고 무서운 존재예요~ 하면서.


언제나 밝은 빈츠케야차호(びんつけ屋茶舗) 시노자키 다이스케(篠崎泰介) 씨


 • 이케타야(池田屋) 이야기


 '빈쯔케야차호'의 바로 앞에는 일본 전통의상 기모노점 '이케다야(池田屋)'가 있다. 이 상점은  1913년 창업하여 110년이 되는 노포점으로, 현재는 차남인 이케다 사토루(池田聡) 씨가 가업을 이어 운영하고 있다. 사토루 씨는 카타나마찌 상점가에서 태어나서 대학 졸업 후 몇 년간 가업을 잇기 위한 수련생활을 제외하고는 부모님과 함께 가라쓰에 살고 있다. 그는 가라쓰를 예전의 번성했던 도시로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청년 사업가이다. 가라쓰 군치의 히키야마 중 가장 먼저 만들어진 카타나마찌를 상징하는 투구 '아까지시(赤獅子)'의 회장 역을 맡고 있으며, 가라쓰 주민들과 함께 콘서트와 전통의상 기모노에 대한 강연 등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활용하여 가라쓰 문화 커뮤니티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가장 바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사토루 씨의 세 딸 중 막내인 키쿠쨩(짱:ちゃん, 일본 어린아이의 이름 뒤에 붙이는 호칭)은 내가 공방을 오픈할 즈음에 막 공방 앞에서 걸음마를 시작한 귀여운 나의 친구이다. 나도 일본의 낯선 도시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같이 걸음마를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서로 응원하고 싶은 마음에 출근길에는 항상 이케타야에 들러 키쿠쨩에게 얼굴 인사를 했다. 만날 때마다 한국어로 '키쿠쨩, 안녕!'하고 인사를 했더니 어느새 내 이름이 '안녕 오바쨩(아줌마)'이 되었다. 키쿠쨩이 걸음마를 떼고 달리기까지 할 때쯤에는 언제든 틈만 나면 내게 달려와 '안녕 오바쨩!'하고 나를 놀라게 하는 게 그 아이의 즐거운 놀이가 되었다. 그러면 나는 미리 준비해 둔 사탕상자를 꺼내어 주면서 한 개 골라봐 하면, 언니도 줘야 한다면서 두 개를 집는다. 나중에 키쿠짱 할머니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언니한테 주지 않고 키쿠짱 혼자 다 먹었다고. 


 키쿠쨩이 제일 좋아하는 일본 젤리 과자 '하이쮸'. 나는 하이쮸를 가방 속에 숨겨 넣었다가 출근길이나 퇴근길에 들러 '선물이야'라고 주면 '언니도 줄 거야. 한 개 더 줘' 하며 방긋 웃으면서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 사랑스러웠다. 과연 언니한테 나눠 줄까? 나는 매일 그 함빡 웃음을 보기 위해 늘 하이쮸를 가방 속에 넣고 다녔다. 포도 맛 하이쮸를 제일 좋아했다. 

사탕상자 앞에서 함빡 웃음을 짓는 키쿠쨩(きくちゃん)




 

[1] 참조 : 가라쓰 중심 상점가 소개,  http://www.yoyokaku.com/sub7-104.htm


배경사진 참조: 후지카와 가마보코 홈페이지, https://fujikawakamaboko.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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