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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sol Sep 21. 2023

한국 광 팬들에 의한 한글 공부 커뮤니티

한글 공부회 결성!

한국 광 팬들에 의한 한글 공부 커뮤니티 「한글 공부회」 발족! 한국 광 팬들에 의한 한글 공부 커뮤니티 「한글 공부회」 발족!

 가라쓰 중심 상점가를 포함해서 이 지역 사람들은 유난히 한국에 대한 관심이 많은 것 같았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상점가를 지나가다가, 쭈뼛쭈뼛 수줍어하면서 '실례합니다' 하고 문을 열고 들어온다. 처음에는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하면서 궁금해하다가 아로마 공예품을 만드는 커뮤니티 공방에 대한 설명을 조분 조분 해 주면 고개를 끄덕이며 잘 듣다가는 결국엔 '한국인이시죠?' 하고 진짜 나를 찾은 목적을 얘기한다.


 아로마 공방은 애초에 관심이 없었던 것이다. 자신은 한국 아이돌 그룹 '빅뱅'의 열렬한 팬이라고 하면서 가수 이름을 이야기하며, 몇 년도에 오사카에서 열렸던 빅뱅 콘서트에 갔었다느니, 이번에는 한국에 직접 가서 공연을 볼 계획이라느니 하며 처음의 수줍어했던 모습과는 대 반전으로 목소리도 커지면서 열띤 팬심을 보여준다. 사실은 난 한국에서도 TV를 자주 보지 않아서 드라마에 나오는 연예인은 물론 빅뱅과 같은 가수들의 이름도 잘 몰랐으니 미안하기도 하고, 난처하기도 해서 상대가 무안해할까 봐 네~ 네~ 하면서 응수를 해주었다.


 그 이외에도, BTS는 물론이고 엑소, 동방신기 등 오래전에 유명했었던 가수들을 그때부터 지금까지 영원히 사랑하고 응원한다는 사람들이 날이 갈수록 더 많이 나를 만나러 왔다. 심지어는, 오래전에 작고한 어느 연예인의 팬은 내가 그 연예인 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본 적이 있다고 하니까 후쿠오카 지부 팬클럽 총무까지 대동하고 찾아와서 그 연예인 이야기를 더 해달라고 난리가 아니었다.

 이 연예인 팬클럽은 해마다 자신들이 사랑하는 연예인의 기일에 제사를 지내러 단체로 한국을 방문한다고 한다. 버스를 대절하여 그를 추모하고 그가 활동했었던 드라마나 음악 등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영원히 기억해내려고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방은 온통 그의 사진으로 도배가 되어있다고 한다. 침대에 누우면 오른쪽 벽에도 천장에도 왼쪽 벽에도 사진이 붙어 있어서 언제라도 그의 얼굴을 볼 수 있다고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자랑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방문에는 그의 얼굴을 타피스트리로 만들어 장식하고 사진 액자들로 꽉 찬 화장대에서 그의 얼굴을 보고 화장을 하고, 그의 사진이 들어있는 키홀더가 걸려있는 핸드백을 들고 외출을 하고, 그의 얼굴을 배경사진으로 한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다고 한다. 이쯤이면 열혈 광 팬 아닌가.

 그리고 나의 핸드폰에 저장된 그녀의 닉 네임도 그를 그리워하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ヨン·ハ·ラブ(용*하*러*브)

 

 어느 날, 2007년에 방영된 드라마 '이산'을 '백만 스물한 번'이나 봤다는 한국 광 팬 한 분이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하면서...


 가라쓰 상점가에서 선조에게 가업을 이어받아 140년 동안 '가마보코(생선 어묵)' 공장과 상점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네~?  140년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고 놀라고 있는데, 그게 뭐 그리 놀랄 일이라며, 한국인이 여기 썰렁한 가라쓰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게 더 놀랄 일이라며 한국어를 가르쳐달라는 부탁을 하려고 큰 맘먹고 왔다고 한다.

 참 나~, 내가 운영하고 있는 아로마 커뮤니티 공방에는 다들 관심이 없나?


 대학에서 강의도 해 봤고, 직장에서도 동료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친 적은 있지만, 일본 사람들 상대로 한국어를? 이건 다르다. 어떡하지?

  바로 얼마 전에도 한국어 강좌를 해달라고 부탁받았을 때에는 10년 이상 한국어를 공부하셨던 분들이라 협의 끝에 '한국 드라마 커뮤니티'를 만들었는데, 이번에는 한국어 기초, 가, 나, 다, 라부터 시작해 달라니...


 그 후로, 가라쓰에 한국 사람이 커뮤니티 공방을 운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한국어 강좌는 언제 시작하냐고 사람들이 계속 찾아왔다.

 나는 끝내 한국 드라마, 한국 가수들에게 열광하는 이 사람들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결국, 상점가가 쉬는 일요일에 정작 나는 쉬지 못하고 '한글 공부회(ハングル勉強会)'라는 한국 문화 커뮤니티를 또 하나 만들게 되었다.

 회원은 총 6명으로 시작해서 나중에는 10명이 된 적도 있다.


 가, 나, 다, 라부터 시작했고, 3년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갈비를 좋아합니다.',  '나는 매운 음식을 잘 먹습니다.', '나는 도가니탕을 먹으러 한국에 갈 예정입니다.' 정도까지 한국어를 하게 되었다.


 한국어로 한국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해서 노래도 가르쳤다. 가수 장미희 씨가 불렀던 노래 '안녕하세요 또 만났군요 ~', 윤도현 씨의 '사랑했나 봐, 잊을 수 없나 봐', 김건모 씨의 '빨간 우산' 등등 한국 노래를 가르쳐서 사람도 안 다니는 일요일의 썰렁한 상점가를 우리들의 떼창으로 시끌벅적하게 만들었다. 가끔 지나가는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창문으로 한참을 들여다보고 웃으면서 지나갔다.


 소문이 퍼지면서 중학생 딸과 함께 온 여성이 BTS 공연을 보러 한국에 간다며 자랑 겸, 서울 지리를 물어보러 왔고, 가라쓰시와 자매도시인 여수시에 보낼 편지를 한국어로 번역해 달라는 로터리클럽 회장님이 오셨고, 한국 여행길에 동대문시장에서 가죽코트를 사 왔다고 자랑하는 아주머니 등등 가라쓰에서 나는 한국을 콘텐츠로 하는 커뮤니티의 중심으로 여겨지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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