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열혈 팬들 이야기
2016년 5월 햇빛 따사로운 어느 날,
일이 너무 바빠서 공방 안을 왔다 갔다 정신없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데 공방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저쪽에서 한참을 나를 보면서 서성이는 분이 계셨다. 그러더니 잠시 후에 그 모습이 사라졌다. 70대쯤으로 보이는 기품 있는 귀부인으로 보였다.
오후 늦게 상점가에서 문방구를 운영하시는 시노자끼(篠崎) 씨가 아까 보았던 그 귀부인과 같이 들어오셨다. 가라쓰에서 오랫동안 전통 료칸(旅館)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이라고 소개해 주셨다. 어쩐지 범상치 않은 인상이라니...
오코치(大河内) 씨는 상냥하고 우아하게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하고 한국어로 인사를 하면서 자기소개를 하셨다. 놀라웠다. 갑자기 한국어를 들으니 새삼 반갑고 가슴이 따뜻해졌다.
오코치 씨는 친한 지인들과 함께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윤선생님'이라는 한국인에게 한국어를 배웠다고 한다. 그런데 그분이 갑자기 한국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한국어 공부를 하던 다른 분들과 한참 동안 허탈해했다고 했다. 그러던 중 내가 상점가에 아로마 체험공방을 오픈했다는 소문을 듣고 용기를 내어 나를 찾아오신 것이다.
모두들 한국어가 그립고 한국어로 말하고 싶다고 한다며 거의 조르다시피 나에게 한국어 강좌를 부탁했다. 갑자기...
10년 이상을 한국어를 공부하셨으니 새로 한국어 강좌를 할 필요가 없으니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그 주체에 맞게 한국어로 대화하는 모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물론 한국 드라마를 콘텐츠로 하는 일종의 커뮤니티 비즈니스이므로 무료는 아니었다.
그리하여, 매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한국 드라마를 보는 모임(韓国ドラマ を見る会)'이라는 커뮤니티를 만들게 되었다. 회원은 총 8명, 일본어 사용 절대 금지!
놀라울 정도로 모두 한국 드라마 마니아였고, 나보다 더 한국 연예인들에 대하여 모르는 게 없을 정도로 열혈 팬들이었다. '일지매'나 '7일의 왕비', '백일의 낭군' 등 시대극을 보게 되면 두꺼운 조선왕조 백과사전까지 가져와서 시대적 배경을 탐구하는 자세는 우리나라 역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내가 부끄러울 정도였다.
드라마를 보고 한국의 속담이나 단어 알아맞히기 스무고개 등 퀴즈 시간으로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한국에 대한 그분들의 애정으로 무르익어가는 한국어 커뮤니티는 거의 3년 넘게 지속되었다. 통행하는 사람이 없어서 황량했던 상점가 거리에 떠들썩한 웃음소리와 한국어, 한국 드라마, 한국에 대한 관심은 따뜻한 온기가 되어 퍼져 나갔다. 내가 만든 커뮤니티 비즈니스가 실패는 아니었다고 스스로 위로하곤 했다.
그분들은 대부분 1945년생으로 전쟁에 패망한 그 해에 태어나셨다고 했다. 고령이므로 몇 분은 지병을 앓고 있었다. 심장병으로 심장이식 수술을 하신 분, 백혈병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고 극복하신 분, 대장암 수술을 하고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받고 회복하신 분, 남편과 사별하고 우울증으로 고생하셨던 분.
한국에 대한 애정으로 한국 드라마를 보면서 병과 고독을 극복하는 그분들의 삶에 대한 자세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잊지 않으려고 한다.
회원님들 모두에게 새삼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