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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sol Sep 20. 2023

초등학생들 앞에서 울다

나의 홍보 천사들 이야기

 겨울날씨도 썰렁하고 손님도 없어서 내 마음도 썰렁하여 한숨을 길게 쉬며 유리창을 내다보는데, 매일 같은 시간에 우리 공방 앞을 지나가는 초등학생들이 오늘도 어김없이 하교 길에 ‘와~!’하고 떼를 지어 우리 공방 앞에 몰려들어왔다. 


 사카모토 유우마, 에리 코코미찌, 이즈미 유우마, 야마타 코우타는 이 동네에서 우리 공방 카페를 가장 좋아한다고 말해 주어서 항상 나를 기쁘게 해주는 아이들이다. 


 나는 이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지난여름부터 춤을 가르쳐 줬다. 심심하기도 했고 마침 내가 좋아하는 탤런트 박 보검 씨가 새로 시작하는 드라마 홍보에서 '붐바스틱'이라는 음악에 맞춰 댄스를 보여 화제가 된 것을 TV 유튜브로 보고 있었던 참이었다. 같이 출래? 하니까 아이들은 신이 나서 TV를 보면서 춤을 따라 추고 나도 같이 미친 아줌마처럼 춤을 추어댔다. 


 상점가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춤추는 아이들과 나를 보며 '참 애쓰네...' 하는 얼굴로 비아냥거리는 듯했지만, 무슨 상관이야 하면서 매일 아이들 하교 길에 어김없이 춤판을 벌였다. 그런데 어느 센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춤판이 끝날 때까지 서서 웃으면서 보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느새 이 아이들은 동영상을 보지 않고도 안무를 외워 정말 능숙하게 춤을 추게 되었다. 역시 아이들은 어른보다 유연한 두뇌를 갖고 있고 이익과 불편 등을 걱정하지 않은 순수함과 빠른 흡수력으로 어른을 능가하는 무언가의 힘이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며칠 동안 계속 비와 와서 손님이 없었다. 날씨도 쌀쌀하고 비가 오니 상점가를 지나가는 통행인도 없고 당연히 공방으로 들어오는 사람도 한 명도 없었다. 소외된 지역도시 상점가의 활성화 전략을 연구하면서 새로운 지역 비즈니스 모델을 수립하겠다고 이 썰렁한 가라쯔에서 사업을 시작한 것에 대하여 슬슬 후회하기 시작했다. 한숨만 나왔다. 


 그런 그때, 아이들이 하교 길에 우르르 공방 앞에 들이닥쳤다. 지난번에 가르쳐줬던 붐바스틱 춤을 추고 싶다고 발그랗게 상기된 얼굴들로 나를 졸랐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녀석들을 쳐다보며 난 힘없이 말했다.

 “미안해. 오늘은 춤출 기분이 아니야.”

그랬더니 다들 의아한 눈으로 

 “왜요?”, “춤추고 싶은데~!”

 “얘들아, 며칠 동안 손님이 한 사람도 없어서 기분이 안 좋아. 춤출 기분이 아냐. 이러다간 우리 공방 망할지도 모르겠어.”

 나의 이 말에 모두들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안돼! 제발 안돼~!”

“우리가 이 동네에서 제일 좋아하는 곳인데! 망하면 안 돼요!”

하면서 다들 난리였다. 

 그중에 이즈미 유우마가 갑자기 차가운 땅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행인들을 향해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여러분! 죄송하지만 여기 이 공방에서 뭐라도 좋으니까 물건 좀 사 주세요~!!! 

제발 부탁합니다!!!”


 다른 아이들도 같이 소리치며 지나는 행인에게 우리 공방에서 물건을 사주기를 부탁하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나 당황해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몸도 움직이지 않았다.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지면서 눈두덩이 뜨거워졌다. 몸이 움직여지면서 나는 반사적으로 바닥에 앉아있는 유우마를 일으켰다. 

“얘들아 미안해! 이제 그만해 제발 부탁이야!”하면서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이내 내가 생각 없이 내뱉은 말에 대하여 반성했다. 아이들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감동의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나는 아이들에게 보이지 않게 얼른 뒤에 있는 휴게실에 들어가서 눈물을 훔치고 나왔다. 

눈이 새빨갛게 되어 멀뚱하게 나와 서있는 나를 돌아보며

 “선생님! 기운 내세요! 바이 바이!!”하고 격려와 응원을 보내며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나의 바보 같은 행동에 거듭 반성했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으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다시 한번 생각했다. 콧등이 찌릿하게 아팠다. 눈물이 나면서 눈도 빨개졌다. 어쩌면 이 아이들의 부모들은 아이들을 저렇게 사랑스럽게 키웠을까?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내가 무엇을 해 줄 수 있을까? 어떻게 보답할 수 있을까?

내내 생각해 보았지만, 그 답은 정해져 있다. 

내가 계속 그 자리에서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것.

 처음처럼 성실하게 일하고 나를 찾아오는 고객을 감동시켜 이익을 창출하여 사업의 지속경영이 가능하도록 노력하여 이 아이들이 공방  앞을 지날 때 언제나처럼 반갑게 인사하고, 아이들이 원하면 같이 흥겹게 춤을 추며, 즐겁게 웃고 떠들 수 있도록 계속 그 자리에 있는 것.

그게 정답이다.


 그로부터 며칠 후 사카모토 유우마, 에리 코코미찌가 A4 종이에 뭔가를 그려와서 복사를 해달라고 왔다. 무슨 그림이냐고 물었더니, 우리 공방을 홍보하는 전단을 그렸다고 한다. 제법 설득력 있는 디자인이었다. 몇 장 복사를 해서 상점가를 지나는 사람들에게 나눠 주려 한다고 했다. 또 눈물이 났다. '너희들 왜 그러니 정말...'  


 얼마 후, 어느 날 내가 있었던 가라쓰 중심 상점가[1]에서 멀지 않은 겐카이쬬(玄海町)라는 마을의 상점가 번영회장이라는 분이 한국인이 아로마 공방 커뮤니티 카페를 한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초등학생들과의 에피소드를 얘기했더니, 이런 이야기는 그냥 의미 없이 묻어 두면 안 된다며, 자신이 리포터로 있는 지역신문인 사가신문(佐賀新聞)에 기고하겠다고 한다. 물론, 그 아이들의 부모의 양해를 구하고 사진촬영과 인터뷰를 해서 그 내용을 널리 알리겠다는 것이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이 예쁘고 감동스럽지만 뭘 그렇게 까지... 하는 마음이었지만, 그녀는 일사천리로 행동에 옮겨, 아이들의 부모로부터 허락을 받아왔다. 아이들은 인터뷰에서 내가 하는 공방이 망해서 없어지지 않도록 자기들이 열심히 홍보활동을 하겠다고 두 손을 만세 부르며 다짐을 했었다. 이 아이들은 정말... 날 언제까지 울릴 거냐고...


일본 사가현 지역신문 사가신문(佐賀新聞)에 실린 나의 꼬마천사들. 왼쪽 하단에 사카모토 유우마, 에리 코코미찌가 나에게 그려준 전단을 들고 있다.



 사카모토 유우마, 에리 코코미찌, 이즈미 유우마, 야마타 코우타.

이 4명의 아이들은 지금쯤 고등학생이 되었겠지. 아직도 순수한 열정과 붐바스틱 춤과 한국인인 나를 기억하고 있을지 가슴이 아련해진다.



          

[1]가라쓰 중심상점가:唐津中央商店街:刀町(가타나마찌)・中町(나까마찌)服町(고후쿠마찌)・京町(쿄마찌)、4개의 상점가가 모여있는 상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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