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오카, 그리고 가라츠와의 소중한 인연
내가 규슈(九州) 후쿠오카(福岡)에서 8년 정도 살게 되었던 배경은 규슈대학 예술 공학원의 박사후기과정으로 지역브랜딩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면서였다.
후쿠오카에 가기 1년 전이다. 같이 여러 프로젝트를 해 왔던 지인으로부터 강원도 어느 지역 브랜딩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겠냐고 물어왔다. 사실 난 디자인을 전공하고 상업시설의 상환경디자인과 관련된 프로젝트를 몇 건 정도 한 경험이 있지만, 사업영역이 어떤 「지역」으로 그 범위가 큰 프로젝트를 했던 경험이 없었다. 욕심이 생겼다. 지역 개발 프로젝트가 시행되기까지 시간은 있었다.
마침 뭔가 새로운 영역에 도전하고 싶은 마음도 있고 해서 여기저기 대학을 알아보았다. 20대에 4년 정도 일본에서 공부한 적도 있고 직장생활도 한 경험이 있어서 새로운 언어를 배울 수고를 덜기로 했다. 그러던 중, 규슈대학 대학원 예술공학원에 계시는 도고 야스시(都甲康至) 교수님으로부터 내 문의에 대한 답신 메일이 왔다.
교수님도 농어촌 소도시의 지역활성화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으니 같이 연구해 보자는 내용이었다.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대학원 연구실에서는 제미(ゼミ)라는 연구수업시간이 있는데, 주로 일본의 사회, 경제현황에 대한 문제점과 해결방안에 대한 논의를 했다. 일본은 심각한 고령화와 젊은 층 인구의 도시 집중화로 지방의 소도시에는 빈 집과 빈 점포가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마을 공동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대기업의 대형 쇼핑몰 및 편의시설의 입점으로 인하여 지자체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중심 상점가의 쇠퇴는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규슈경제연합회는 2010년부터 매년, 규슈대학 대학원과 다양한 공기업(전력공사, 수도공사, 도로공사, 통신업, 금융업, 출판사 및 매스컴 관련기업 등), 규슈 각 지방 소도시의 지자체와 협업하여 지역활성화를 위한 대규모 연구프로젝트를 진행해 왔다.
나는 2015년 6기생으로 몇몇 지역 소도시를 설정한 지역정책을 수립하는 연구회에 참가했는데 사가현 가라츠시(佐賀県唐津市)의 산업활성화 정책을 연구하는 팀의 일원이 되었다.
나는 늘 텐진(天神) 버스센터에서 아침 8시 35분에 출발하는 고속버스를 타고 가라쯔로 향했다. 텐진 버스센터는 뱃부(別府), 유후인(由布院), 히타(日田), 나가사키(長崎), 사세보(佐世保) 등 규슈의 유명 관광지로 떠나는 버스를 타려는 외국인 관광객들로 항상 북적거리는데 그중 가장 많이 눈에 띄는 관광객은 한국인들이다. 일본은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나라이며, 특히 가장 가까운 도시인 후쿠오카는 짧은 여정으로 다니기에 부담이 없는 편이라 나이 드신 부모님을 모시고 가족여행을 하기에도 좋고, 휴일을 이용하여 잠시 다녀가기에 적당하여 젊은 학생들이 친구들과 여행하기에도 훌륭한 관광지이다.
가라쯔에 갈 때에는 나는 항상 버스의 오른쪽 좌석에 앉는다. 후쿠오카시를 기점으로 가라쯔는 서쪽방향에 위치해 있어서 오른쪽에 앉으면 아름다운 바다풍경을 더 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가라쯔까지는 버스로 약 1시간 10분 정도 걸리는데 버스센터를 출발하여 고속도로를 진입하면 바로 모모치(百道) 해변이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이 후쿠오카의 평온한 아침바다를 보면서 하루 일정을 계획하거나 음악을 들으며 매일매일 여행기분을 만끽하곤 했다. 차창 밖으로 평화로운 농촌마을이 지나치고 출발한 지 약 30분이 지나면 그야말로 드넓고 시원한 바다가 계속 보이기 시작한다. 문득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IL POSTINO)’의 배경음악이 생각나서 핸드폰으로 음악을 찾곤 했다. 잔잔한 바다 물결과 모래사장, 선선한 바닷바람, 그리고 애잔한 반도네온의 연주곡이 어우러져 아침부터 마냥 평화롭고 행복했다.
가라쯔까지 연결되는 고속도로의 마지막 터널을 통과하면 거기서부터 가라쯔의 바다가 시작된다.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심었다는 백만 그루의 소나무 밭인 ‘니지노 마쯔바라(虹ノ松原)’와 어우러지는 해변은 죽기 전에 꼭 한번 가봐야 한다는 필리핀 보라카이의 해변을 능가하는 아름다운 해변이다. 나는 이 풍경을 사랑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사람처럼 바다를 좋아하는 민족도 없다. 스트레스에 시달려 어디론가 가고 싶다고 외치면서 가는 곳은 여지없이 바닷가이고, 여름방학이면 친구들과 왁자지껄 떠나는 곳도 바다, 부부싸움을 하고 홧김에 가방을 싸서 떠나는 곳도 바다, 연인에게 사랑을 고백하기에 적당한 곳도 당연히 파도소리 들리는 황홀한 밤바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바닷가 마을은 사시사철 사람들의 발길이 끊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참 이상한 것은 이곳 가라쯔의 아름다운 바닷가에는 우리나라의 바닷가 같은 북적임이 없다. 바닷가 풍경을 담은 멋진 카페나 맛 집, 횟집, 매운탕 집, 호텔 등 바닷가에 의례적으로 있음 직한 상업시설이 없어 늘 을씨년스럽다는 것이다. 여름철에도 그렇다. 분명히 해수욕장이라는 팻말이 있는데도 우리나라의 동해안이나 부산 해운대와 같은 피서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이곳 후쿠오카에서 생활한 8년 동안 여름철 바닷가에서 볼 수 있는 인산인해의 피서객 인파에 대한 뉴스 또한 좀처럼 볼 수 없었다.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섬나라라서 바다에 대한 특별한 흥미가 없는 건가?
아무튼,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자원을 갖고 있는 가라쯔에 대하여 세간 사람들이 흥미를 갖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찾아오는 사람이 없는데 이 어마어마한 백만 그루의 ‘니지노 마쯔 바라(虹ノ松原)’가 있으면 뭐 하고, 가라쯔의 아름다운 풍경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가가미 산(鏡山)’이 있으면 뭐 하며,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오는 가라쯔의 전통문화가 있으면 뭐 하나? 이 지역주민들이 이러한 자원들을 소중하기 지키는 것은 세상사람들 모두 함께 그 가치를 느끼게 하여 그 위대함을 같이 공유하게 함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이 작은 가라쯔라는 작은 도시에서, 그들이 지키고 있는 드넓은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정겨운 전통문화를 여기 이곳 사람들과 같이 지키며 소소한 일상을 보냈던 추억을 되새기며 가라쯔의 문화와 정서를 세상에 소개하고자 8년 동안의 일본살이에 대한 글을 시작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