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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risol Oct 22. 2023

가라쓰 트위스트 플래시몹, 「레츠 트위스트 어게인!」

종이접기 말고 트위스트


 내가 운영하는 공방은 가라쓰(唐津) 중심 상점가가 시작하는 기점에 위치했다. 공방을 중심으로 왼쪽으로는 건물주의 상점인 전통차를 판매하는 빈쯔케차호(びんつけ屋茶)가 있고, 작은 횡단보도를 건너면 일본 전통의상인 기모노점 이케타야(池田屋)가 있다. 오른쪽으로는 여성 의류 상점과 문방구점, 아동복 상점이 고후쿠마찌(服町) 거리에 줄지어 이웃하고 있었다. 상점가의 주인아주머니들과 아저씨들은 거의 비슷한 나이로 가라쓰에서 태어나서 같은 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 부모의 대를 이어 상점을 운영하면서 같은 마을 청년과 아가씨들을 만나 결혼했다고 한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자녀들을 낳고 같은 학교를 다니는 자녀들을 서로 지켜보면서 너네 집, 우리 집 할 것 없이 모두가 가족 같은 분위기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고 한다. 모두 70대 후반으로 서로 늙어가는 것을 보면서 평생을 같이 살아온 것이다.


 한국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많은 그분들은 가끔 내 공방에 찾아와서 예전에 갔었던 한국 여행담을 이야기하면서 토요일 오전의 휴식시간을 보냈다. 늙으면 시간이 많아도 할 일도 없다면서...


 가라쓰 지자체에서는 노인들의 무료한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간단하고 유익한 다양한 문화 강습을 개최하고 있다고 들었다. 인지증(치매)을 예방하기 위한 종이 접기나 양옆에 스틱을 잡고 걷는 노르딕 체험학습 등 그다지 움직임이 없는 종류의 강습들이었다.


  어느 토요일 오전, 그날도 여고 동창생인 아주머니 네 분이 ‘잘 지내고 있어요?’ 하면서 공방을 찾아오셨다. 심심하다면서. ‘세켄 바나시(世間話 - 동네에서 일어났던 소소한 사건사고에 대해 나누는 이야기)라도 하려고 왔지요’.


한참을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시더니 ‘바쁜 일이 없으니 심심하고 몸이 늘어지네’, 하면서 대화가 뚝 끊겼다.


 프랑스에서는 이 순간을 ‘천사가 지나가는 시간’이라고 하던데, 어쩐지 그 몇십 초의 짧은 순간이 어색해서 ‘저기요’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시간이 많으시면 가까운 문화 센터에 가 보시는 건 어떠세요? 종이 접기나 노르딕 체험은 힘들지 않잖아요."


 아동복 상점 주인아주머니가 '픽'하는 소리를 내고 코웃음 쳤다. 얼굴을 비스듬히 기울이며 얇은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얌전히 앉아서 멍청하게 종이 접기나 하면서 죽을 날만 기다리라는 건가?"

"우리가 왕년에는 나이트클럽에서 신발이 닳도록 바닥을 쓸면서 트위스트를 췄던 사람들이야. 종이 접기라니, 기가 차서 원!"


아뿔싸! 실수했다. 어떻게 만회하지? 


 그분들이 각자의 자리로 돌아 간 후, 트위스트라고? 하면서 핸드폰으로 트위스트 음악을 찾아보았다. 음악이 나오면서 동영상 화면에 1960년대 복고풍 의상과 헤어스타일의 남녀가 신나게 춤을 추고 있었다.


 ‘컴온 에브리바디! 손뼉을 쳐요! 레츠 트위스트 어게인!’ 하면서. 


 나에게도 전혀 생소한 춤은 아니다. 동영상을 보면서 나도 엉덩이와 팔을 왼쪽 오른쪽으로 흔들면서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별로 어렵지 않네! 


 어느 날, 고후쿠마찌(呉服町) 상점가 운영회의 정기 회의에서 논의할 것이 있다고 꼭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다. 가라쓰를 활기 있게 만들기 위한 아이디어 회의였다. 다들 글쎄 뭘 해야 하나, 하고 서로 멀뚱멀뚱 얼굴들만 쳐다보며 누가 먼저 손을 들고 발표하길 눈치만 보고 있었다.


 갑자기 상점가 운영위원회 회장님이 나에게 물었다. 한국의 좋은 사례는 없냐고.

다른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쳐다보고 답을 기다렸다.


.....


  "플래시몹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상점가 거리에서 모두 모여 트위스트를 추는 거예요. 그걸 동영상으로 사진을 촬영해서 유튜브에 올리는 거예요."


 아니면 말고 하는 심정으로 의견을 내봤다. 그게 뭔데요? 하면서 다들 핸드폰을 열어 검색을 해댔다.  


 결국 나는 졸지에 플래시몹 추진 위원회를 맡게 되었다. 의견을 내놓은 사람이 진행을 추진해야 한다나.

이런! 오지랖이라니.


 참가할 사람들을 모아야 했다. 상점가 사람들 만으로는 플래시몹을 성공시킬 수 없다. 다른 동네에 살고 있는 지인들까지 연락해서 트위스트를 추자고 꼬드겼다. 중앙상점가 청년부에서는 가라쓰 공업 고등학교 브래스 밴드부를 섭외하고 가라쓰 지역방송국에도 연락을 해서 비디오 촬영과 편집 등 협업을 부탁했다.  


 플래시몹 실행이 결정된 이후 나는 공방 안에 설치되어 있는 대형 TV 화면에 트위스트 동영상을 틀어놓고 틈만 나면 트위스트 연습을 했다. 이웃 상점 아주머니와 아저씨, 상점가를 지나는 지역 주민들에게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가라쓰 트위스트 플래시몹’을 열정적으로 홍보했다.


 2018년 7월 21일 오후 5시, 실바람 소리도 없는 고요한 고후쿠마찌 상점가 거리.


가라쓰 공업고등학교의 브래스 밴드의 트럼펫 연주와 함께 거리가 조금씩 어수선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박수를 치고, 브래스 밴드의 연주가 끝나자 스피커를 통해 ‘렛츠 트위스트 어게인’ 음악이 터져 나왔다. 삼삼오오 모여있었던 사람들이 트위스트를 추기 시작했다. 창피하다고 얼굴에 선글라스를 쓰고 가발로 변장을 한 사람도 있었다. 나도 포함해서.


https://www.youtube.com/watch?v=LzdGCc5CEuo



신나는 '가라쓰 트위스트 어게인!' 플래시몹


 흥을 한껏 올리기 위해 중앙상점가 청년부 주최로 제작한 이벤트용 야마 쿠로지시(黒獅子)」까지 동원했다. 어찌 보면 촌스럽고 허접하다고 생각되는 ‘가라쓰 트위스트 플래시몹’이지만 가라쓰를 위해 한마음, 한뜻으로 준비한 두 달 정도의 시간만큼은 모두에게 소중한 해프닝이 되었다.


 어설프고 우습지만, 가라쓰 활성화를 위해 뭉친 한때의 추억이 그리워지면 가끔 그 동영상을 찾아보곤 한다.   

 내 꼴이 제일 웃기다.

 그래도 다시 한 번 외치고 싶다.


“레츠 트위스트 어게인! 가라쓰 트위스트 어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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