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큰딸과 박사장의 파탄

쫓겨난 박사장

by Marisol

보험여왕으로 승승장구하던 큰딸 미정이는 같이 동업하는 양대표와 공동 투자를 해서 제법 번화가인 곳에 새로 건축된 지식산업센터를 분양받았다.


6층 1개 층을 거의 다 사용할 정도로 큰 사무실을 개업하게 되었다고 얼굴 리프팅 시술을 받은 지 얼마 안 된 뺀질 뺀질 한 얼굴의 볼 살이 어색하게 움직이는 이상한 입술 미소를 띠며 열띠게 떠 벌이고 있다.


“엄마! 고사를 지내야 하니까 돼지 머리하고 앞다리 족발, 편육하고 떡은 시장에 주문해 주고, 엄마가 김치 좀 담가줘요! 편육 찍어 먹을 새우젓 양념도 만들어서 병에 넣어 주시고요, 과일이랑 마른안주 같은 것은 분류해서 박스에 넣어 주세요!”


교회 목사님과 교인들을 초빙해서 개업 축사 기도회를 한다고 며칠 전부터 들락거리며 춘자에게 이것저것 만들어내라고 떠들어대는 소리에 소란스럽다.


십자가를 앞에 놓고 기도를 하면서 돼지머리는 어디에 놓을 것인지,

춘자는 어이가 없었다.


미정이가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사무실 분양에 투자를 한 것이 못내 불안했다.

큰 아파트를 산다고 대출을 받은 것도 엊그제 일이다.

지인 공인중개사와 방문했던 재건축 아파트 모델하우스에서 지 딸 수진이 이름으로 로열층 아파트를 계약을 했다며 운이 좋았어, 하면서 미영이와 나누던 이야기도 얼핏 들었던 것 같기도 하다.


동업이라…

잘되면 문제없지만, 사업이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인간관계마저 험하게 망가지는 건 안 봐도 뻔한 일이다.


니 일이니 니가 알아서 해라!




미정이가 새로 시작하는 종합 보험설계 사무실에 막내아들 종민이를 총무로 앉히겠다는데 아무리 동생이라지만 40대 중반의 중년남자를 총무로 들이는 것을 공동대표 양사장이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미정이가 살짝 걱정을 했다.


종민이는 어렸을 때부터 존재감이 없어 어디에 있어도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형과 누나들이 워낙 드세니 한 번이라도 나서서 자기 의견을 말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 막내아들이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친구들 중에 야무진 친구가 있는지, 제 힘으로 대학교에 들어가겠다고 한동안 그 친구와 공부한다고 독서실에 처박혀 집에 오지도 않았다.

자식들 중에 가장 관심도 두지 않았고 기대도 하지 않았던 막내아들 종민이는 가족들의 무관심 속에서 나름대로 자신의 살길을 찾아가고 있었나 보다.


그런 노력을 기특하게 생각했는지 형 종태는 다니던 회사를 나와서 독립해서 기획부동산 사무실을 차렸을 때 종민이를 사무실 총무직으로 불러들였다.


언젠가 회사의 워크숍에서 깜짝 놀랄 만큼 자기 기량을 발휘한 종민이의 활약을 이야기하면서 큰아들 종태가 종민이를 칭찬한 것을 춘자도 들었던 적이 있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했다.


형의 회사에서 몇 년간 총무 일을 맡아서 한 경력이 인정되어 큰누나의 보험설계 사무실에 총무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새로 개업한 사무실의 총책임을 맡은 미정이는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세상을 다 가진 듯 잘난 척이 하늘을 찌르다가, 조금이라도 부진하게 되면 코가 쑥 빠져 세상 망한 표정으로 있다가 정신병자처럼 느닷없이 버럭 소리 지르는 등 히스테리가 말도 아니다.


그래도 얼마 전에 돈 좀 벌었다며 춘자가 평소에 갖고 싶다고 했던 명품 핸드백을 선물 받고는 미정이의 지랄 맞은 히스테리를 목구멍 한 켠으로 삼킬 수 있었다.


손녀딸 지안이가 누구한테서 들었는지 핸드백을 들어보더니 빙글빙글 돌면서 재잘거렸다.


"할머니! 이 가방이 루비똥이래!

루비가 똥을 쌌나? 킥킥"


성당 미사에 그 핸드백을 들고 갔더니 레지오 모임의 친한 자매님이 깜짝 놀라며 부러워했다.


아마도 500만 원은 족히 넘을걸요! 하면서 큰딸이 돈을 잘 벌어서 이런 멋진 선물도 받고 정말 좋으시겠어요, 하는 말을 듣고 춘자는 우쭐해졌다.


그럼, 좋구 말구요~!


하면서 눈을 한껏 우아하게 뜨면서 분홍색 입술을 골뱅이 모양으로 오므리며 호호호 웃었다.




“엄마! 박사장 이 사람이 이번에는 사장이 됐데!!!

이번에는 진짜로 대박이야!!!”


경기도 용인에 있는 건설회사의 사장으로 화려하게 돌아온 박사장은 연봉이 2억이나 된다며 여우 같은 미정이는 ‘여보 여보’ 하면서 식탁에 놓여있는 반찬을 젓가락으로 떠 먹여주며 온갖 깨방정 앙탈을 부렸다.


사기행각을 벌인 후로 아직도 신용불량자 신세에서 탈피하지 못한 박사장은 연봉을 자기 명의로 받지 못한다며 연봉의 절반을 자동차 두대로 받기로 했다고 했다.


그 덕에 큰딸 미정이는 꿈에 그리던 ‘벤츠’를 가지게 되었다.


박사장 덕에 소원성취하게 되었다며 미정이는 박사장과 같이 살려면 좀 넓은 아파트로 이사해야겠다고 시간만 나면 부지런히 부동산 사무실을 돌아다녔다.


무슨 일이든 심사숙고하지 않는 미정이는 일사천리로 박사장과 딸 수진이, 세 식구가 생활할 50평의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미정이의 호적에는 다시 배우자 박사장의 이름이 올라갔다.


“엄마! 글쎄 이 사람이 이번 공사계약을 따내면 5월쯤에 30억을 받는데! 굉장하지! 엄마! 이 사람이 그 돈 다~ 나 준데. 그러면 엄마 소원인 크루즈 여행 시켜드릴게!

좋지 엄마!!!”


미정이의 들뜬 구름 같은 그 이야기를 듣고 5월이 지났다.


7월 한여름도 지나고 가을, 겨울도 지나갔다.


“왜 돈 안 갖다 주는 거야?

30억 갖다 준다는 게 벌써 언젠데 아직도 소식이 없어?”


미정이의 닦달에 지겨운 듯 “이 사람아! 30억이 애 이름이야? 그런 큰돈을 움직이려면 절차가 복잡해요. 그냥 기다려봐” 하면서 미정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슬그머니 제 방으로 도망갔다.


미정이보다 한참 나이가 많은 박사장은 70세가 다 되었다. 한두 군데 몸이 아파지면서 병원에 가는 횟수가 늘어나고, 움직이기 힘든지 늘 소파에 누워있거나 제 방 침대에 누워 잠만 잔다고 꼴 보기 싫다는 미정이의 잔소리가 늘 박사장의 꽁지에 붙어 다녔다.




"내가 돈도 못 벌어 오는 늙고 병든 남자 병수발이나 해야겠냐구!"


박사장을 제외 한 가족들이 한데 모인 어느 날, 미정이가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고 선언하듯 비장하게 그 얇은 입을 열었다.


“박사장 내보내려구. 박사장 친한 친구가 양평 어딘가에 살고 있데.

거기 조그만 시골주택 한 채 빌려서 혼자 지내라고 내보낼 거야.

어차피 박사장이 이 아파트 사는데 돈은 한 푼도 안 보탰고, 내가 받은 벤츠 값 정도만 돌려주려고.

그걸로 조그만 집 한 채 전세 낼 수 있겠지 뭐.”


1년을 기다려도 30억은커녕 3천만 원도 안 갖다 준다는 박사장은 엄청 비싸다고 자랑질했던 골프용 보스턴 백을 들고나간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게 되었다.


춘자와 자식들은 모두 한숨을 토했다.


마치 고려시대 고려장처럼 산에 내다 버리듯이 박사장을 내다 버린 미정이는 이제야 홀가분하다며 폴짝폴짝, 한 때 디스코장에 다니며 놀았을 때 자주 추었던 춤을 추어대며 거실을 휩쓸고 다녔다.


‘지금 저기 방정맞게 춤추며 헤헤 웃어대는 저 딸년은 언젠가 나도 팔다리 움직이지 못하고 병들어 필요 없어지면 산에다 내다 버릴지도 몰라.’


헉,

그러고 보니 저기 소파에 앉아 미정이의 개다리춤을 보고 깔깔 웃어대는 춘자의 자식들 모두가 경제적 가치가 없어지면 사랑과 헌신으로 같이 살아온 배우자를 헌신짝 버리듯 내쳐버린 사악한 연놈들이다.


춘자는 갑자기 오싹하면서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 같았다.


큰 딸 미정이의 허우적거리며 춤을 추어대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서 화장실을 가는 척 일어나면서 얼굴을 돌렸다.


문을 열고 화장실로 들어가려던 춘자는 언젠가 느꼈던 강하고 뾰족한 것이 뱃속 전체를 비틀어 찔러대는 통증을 느끼며 목구멍으로 역겨운 냄새를 캑 캑 토해냈다.


그래.

몸서리치는 물고기처럼 내 몸에 있는 가시에 내가 박힌겨.


오! 주여!

성모님!

저를 악에서 구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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