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둘째 딸 부부의 파탄

쫓겨난 둘째 딸의 두 번째 남자

by Marisol

자식들의 미래와 조기 영어교육을 위해 언니 미정이의 달콤한 꼬드김에 꾀어 호주로 이주하고자 했던 미영이의 원대한 꿈이 박살 났고,

둘째 딸의 두 번째 남자 이주성은 식당 보증금을 미정이의 미용실 개업에 탈탈 털어 넣고 한 푼도 건지지 못한 채 쪽박신세가 되었다.


언어능력과 세상의 이치에 무능, 무지했던 이서방은 온갖 굴욕과 멸시를 받으며 강제출국 당하듯이 돌아온 후, 다행히도 호주로 떠나기 전에 다녔던 대단지 아파트의 관리실 직원으로 재취업을 했다.

가진 돈이 없다는 비참한 현실을 절실히 깨달았는지 아파트 관리 업무상 24시간 3교대로 상시 대기해야 하는 근무일정을 알고는 자처해서 야간근무를 도맡아 하게 되었다고 했다.

야간근무는 월급을 더 많이 받는다는 이유라고 했다.


밤새 잠도 못 자고 근무한 이서방은 항상 초췌한 모습으로 아침에 집으로 돌아왔다. 배고픈 이서방을 위해 밥을 차려주기는커녕 둘째 딸 미영이는 늘 부스스 일어난 게으른 모습으로 이불속에서 딸 지민이와 노닥거리고 있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춘자 역시 이른 아침에 퇴근한 이서방을 위해 냉장고에서 밑반찬을 내주거나 따뜻한 국을 끓여주는 등 친절한 장모님 행세를 하고 싶은 마음이 막 알을 깨고 나온 병아리 눈물만큼도 생기지 않았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더니 다른 반찬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휴..., 한숨을 쉬며 김치 통을 꺼내 뚜껑을 연 채로 젓가락질을 하며 밥을 먹는다. 밥은 큰 대접에 가득 담은 머슴밥.

춘자는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의 아침 드라마를 보면서 곁눈질로 이서방이 게걸스럽게 밥을 씹어먹는 모습을 보고는 그 꼴이 보기 싫어 눈을 얼른 텔레비전으로 옮겼다.


마침 외국으로 떠난 아들이 성공해서 돌아와 자신을 낳지는 않았지만 키워준 엄마를 끌어안고 감사의 눈물을 흘리며

앞으로의 행복과 은혜에 대한 보답을 약속하는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으로 드라마가 끝이 난 참이었다.


돈도 제대로 못 벌면서 밥은 어찌 저렇게 많이 먹는지, 하고 춘자는 못마땅한 얼굴로 텔레비전을 끄고 성당에 나갈 채비를 했다.


성당으로 가는 길에 춘자는 며칠 전에 불쑥 찾아온 큰 아들 종태의 얼굴이 생각이 났다. 부부싸움을 했는지 얼굴은 부루 퉁퉁해서는 배고픈데 간단하게 밥 좀 차려달라는 말에 냉동실에 있던 고기를 급히 녹여 고기볶음을 하고 생선도 굽고, 김치를 총총 썰어서 김치찌개를 만들어 삽시간에 식탁 가득 상을 차렸다.

평소에 입이 짧았던 큰 아들이 밥을 두 공기나 먹는 모습을 보고 며느리 박 씨가 원망스러웠다.

집안에서 살림은 하는지, 어디 놀러만 다니는 것이 아닌지, 벌어다 주는 돈으로 골프나 치러 다니며 사치스럽게 살고 있는 며느리에게서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는 큰 아들이 가엽다는 생각을 하다가


흠칫,


달랑 김치 하나에 머슴밥을 먹고 있던 초라한 이서방이 생각나서 갑자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춘자에게도 쥐꼬리만 한 양심이 있었던가.

내 딸의 남자 이서방이나 싹수없는 며느리의 남자 내 아들이나 불쌍하긴 마찬가지군, 하고 춘자는 묵주를 손에 쥐고 성당 문을 들어서며 성호를 긋고 기도를 했다.


성모님. 저는 언제 봄날 같은 인생을 살 수 있을까요?


꽃 향기 그윽하고 살랑살랑 귓가를 간질이는 산들바람을 맞으며, 예쁜 꽃무늬가 그려진 화려한 원피스를 입고 반짝반짝 빛나는 보석으로 아름답게 치장한 모습으로 성모님을 뵙고 싶습니다.




그날도 성당에서 성모님께 같은 기도를 드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둘째 딸 미영이가 눈이 찢어지면서 뻐끔뻐끔하며 춘자에게 뭐라고 말을 한 것 같았는데 무슨 말인지 정확하게 들리지가 않았다.

다만 귓속에서 빙빙 벌레가 돌아다니고 있는 것만 같았다.


“엄마! 나 또 임신했어! 정말 잘 됐지!!!”


현관에서 구두를 벗으면서 잠시 휘청거렸다. 간신히 신발장 손잡이의 한쪽 끝을 잡고 입을 다물지 못한 채로 양쪽 손바닥을 시옷으로 만들어 입을 가리고 기뻐하는 미영이 얼굴을 한참 쳐다보았다.



여전히 융통성이 없는 미영이는 마흔 살이 넘은 노산임에도 불구하고 제왕절개는 돈이 많이 든다며 온 힘을 다하여 자연분만으로 둘째 딸을 낳았다.

우리 지민이가 외롭지 않게 동생이 생겼어. 정말 잘됐지! 하며 미련하고 우둔한 미영이가 춘자를 쳐다보았다.


춘자는 입을 삐뚜름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잘됐구나.”


그러고는 돌아서며 미영이가 들리지 않도록 한 마디를 더 했다.


‘니 인생이고 니 자식들이니 니들끼리 알아서 살아라.’


자식이 하나 더 늘었으니 기쁨도 하나 늘었겠지만 자신의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는 짐 역시 하나 더 늘어났으니 가장으로서 어깨의 책임감이 두 배로 무거워졌으리라.


그런데도 이서방의 수입은 전혀 늘지 않았다. 늘 지쳐서 집으로 돌아오는 이서방은 항상 그렇듯이 게걸스럽게 밥을 먹고는 방으로 들어가 잠만 잤다. 그러고는 시간이 되면 어수룩한 차림새로 땅거미를 밟으며 직장으로 향했다. 매일매일 그랬다.


“야! 그렇게 벌어서 어떻게 애 둘을 키울 거야!”


지 언니 미정이가 걱정 반, 호통 반으로 대책도 없고 생각도 없이 애들하고 노닥거리기만 하는 미영이를 향해 소리를 쳤다.


“너도 나가서 돈 벌어야지. 큰애 지민이가 학교에 입학하면 그때부터 돈 들어갈 데가 한 두 군데가 아냐. 둘째 지안이까지 대책도 없이 낳아놓고, 돈이 없으면 너도 그렇고 네 딸들도 그렇고 우리나라 사회가 사람취급 하는 줄 알아?”


악을 쓰며 소리 지르는 지 언니의 호통과 설득으로 둘째 딸 미영이도 보험 설계사의 교육을 받은 후 큰 딸의 사무실로 출근을 하기 시작했다.


이미 보험 여왕인 미정이가 시키는 대로 미영이는 고객을 만나 나름대로 성실하게 영업활동을 했지만, 노력에 비해 실적이 저조했다고 한다.

그런 일들은 '노력'이 아니라 상대를 끌어들이는 '매력'이 한몫한다는데 융통성 없는 미영이에게는 적격이 아닌 것 같았다.


살랑거리며 나긋나긋하게 고객을 대하는 미정이와는 달리, 미영이는 너무나도 진지한 얼굴과 고리타분한 모범생의 태도로 고객을 설득했고, 상대방은 흥미를 가지기는커녕 지루함을 참지 못하고 다음으로 미루겠다고 하며 서둘러 자리를 떠나는 고객이 많았다고 했다.


그래도 소 뒷걸음에 쥐가 잡히는 일이 있듯이,

어느 재래시장에서 서민재벌이라고 소문난 가죽구두 상점의 사장에게 보험가입을 설득하러 방문 한 모범생 미영이에게 기대도 하지 않았던 절호의 기회가 굴러 들어왔다.

마침 손님이 많아서 쩔쩔매던 사장을 대신하여 직원인 것처럼 다소곳이 손님에게 응대하며 장사를 도와준 것이 그 상점의 사장의 눈에 들었는지 그 상점의 직원으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춘자는 정말 다행이라며 그 상점의 사장은 어떻게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기에 서민재벌이라고 불리게 되었냐고 물었다.


“엄마. 박 선생님이 젊었을 때에는 고생을 많이 했대요.

사업에 실패해서 마누라가 집을 나갔고 집도 마누라가 빼앗았는지 노숙자로 전전했던 때도 있었대요.

그 당시 그 자리에서 장사하던 사장님이 제자로 받아줘서 성실하게 일해서 인정받고 사장님이 돌아가시고 그 자리를 물려주셨대요.

그때는 노숙을 할 정도로 가난했었지만, 지금은 재벌만큼 돈을 많이 벌었다고 시장 사람들이 서민재벌이라고 부르는 거래요.”


미영이는 퇴근하고 집에 오면 박 선생 이야기만 했다. 박 선생에게 전화가 오면 쉬는 날이나 명절에도 만사를 제치고 시장으로 출근했다.


뼈까지 독실한 크리스천이라는 박 선생에 전도된 미영이는 주말이면 박 선생이 다닌다는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은 '사탄'이라며 공부해야 하는 미영이의 두 딸들에게도 학원이 아닌 교회에 더 열심히 다니라고 다그쳤다.


심지어는,

자기 닮지 않아 머리가 나쁘다며, 두 딸들이 빨리 기도문을 외울 수 있도록 굵은 매직으로 기도문을 쓴 큰 도화지를 아이들 방의 사방 벽면에 붙여 달달 외우게 하는 요상하고 집요한, 광인에 가까운 행동을 하기까지 이르렀다.

이서방은 아침에야 퇴근을 해서 집으로 돌아오고 집에 오면 밥을 먹고 잠을 잤다.

미영이가 퇴근을 하고 집으로 오는 시간에는 이서방은 출근을 하고 집에 없다.


이서방과 미영이는 서로 만나는 접점이 없어지고 두 사람이 낳은 두 딸의 치다꺼리는 춘자의 몫이 되었다.


돈을 벌기 시작하고 교회에 다니기 시작한 미영이의 태도는 놀라울만치 거만하게 바뀌었다.

춘자에게 생활비라며 현금체크카드를 손에 쥐어주며 두 딸의 육아를 당연하게 춘자에게 넘겼다.

이서방의 월급보다 더 많이 번다는 이유로 이서방을 무시하는 말투도 잦아졌다.

부부간의 대화가 없어지면서 사소한 오해로 불화가 생기기 일쑤였다.

대화가 아닌 부부싸움이 심하게 있었던 어느 날,

이서방이 호주에 갈 때 옷가지를 싸 넣었던 옷 가방을 들고 나오더니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엄마! 지민아빠가 나하고 박 선생님하고 사이를 의심하고 있더라구. 내가 박 선생님하고 불륜을 저지르다니,

돈도 제대로 못 벌어 나를 생활전선에 내보낸 무능력한 남편주제에 이렇게 사람을 의심하는 게 말이 돼?


능력 없는 남자는 필요 없다고 이 집에서 나가라고 했어.

돈 없는 남자는 필요 없다고!”


오! 주여!

를 연발 외치면서, 엄마 아빠의 으르렁거리는 큰소리에 겁에 질린 두 딸을 끌어안고 미영이는 징징 울어댔다.


그 후로 춘자는 이서방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게 항상 박 씨가 문제여. 박 씨가…


춘자는 큰딸의 남자 박성환 사장과 며느리 혜진, 그리고 둘째 딸이 매일같이 입에 달고 떠들어 댔던 박 선생,

이 세 박 씨들이 뾰족한 송곳니에 독을 품은 사악한 독거미들처럼 춘자의 자식들 인생에 거미줄을 쳐 엉켜있는 것에 진절머리가 났다.


그런데...

독거미 같은 이들 박 씨들을 끌어들인 자들이 자신의 자식들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춘자는 오래 된 습관처럼,

간절하게 기도한다.


성모님!


진정으로 저에게는 봄날 같은 인생은 없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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