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웨이트 박이라고 부르리까.
춘자의 두 아들과 돈 좀 있다는 지인들을 꼬드겨 부동산 개발사업에 투자하게 만들고 투자받은 돈을 들고 사라진 박사장은 첫째 딸 미정이가 머무는 멜버른에서 한동안 도피생활을 했다고 들었다.
춘자가 손녀 수진이의 보호자로서 멜버른에 머물렀던 기간과 둘째 딸 미영이의 가족이 그곳에서 일탈생활을 했던 기간에는 가족들과의 만남을 피하기 위해 어딘가에 숨어서 두문불출했을 것이다.
그런 박사장이 번듯한 건설회사의 부사장이 되어 돌아왔다고 미정이는 팔짝팔짝 뛰듯이 좋아했다.
멀쩡한 지 오빠와 막내 동생을 10년 이상의 긴 세월 동안 신용불량자로 살게 한 사기꾼이 금의환향했다고 기뻐하는 뻔뻔한 큰딸을 보고 있자니 춘자는 속에서 역겨운 홧 덩어리가 꿈틀거리는 것 같았다.
쿠웨이트에 대형 물류센터 공사를 계약하게 되었다며 ‘부사장 박성환’이라고 적혀있는 명함을 내밀며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하면서 60대 못지않게 날씬한 몸에 딱 맞는 신사복을 입고 춘자 앞에 머리를 숙이고는 눈 끝을 八자 모양으로 만들어 느물거렸다.
이제야 자기 인생에 대박의 조짐이 보인다며 당장이라도 짐을 싸서 쿠웨이트로 떠날 듯이 신이 나서 미정이는 그 얇은 입술이 함지박만큼 벌어져 동그랗게 찢어질 것 같이 웃어댔다.
“어머님, 제가 직원들과 공사계약을 하기 위해 쿠웨이트 공항에 딱! 도착했는데 말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리는 계단에서부터 마중 나온 쿠웨이트 건설회사 대표 앞까지 빨간 주단이 쫘~악 깔려있지 뭡니까.
춘자는 아무리 생각해도 또 사기 치는 것 같기만 한데 큰딸 미정이의 허벌레 입을 벌리고 설레발치는 박사장을 쳐다보며 가늘게 길어지는 눈을 하며 뿌듯해하는 모습에 한숨이 절로 났다.
“그래서 엄마, 박사장의 배우자라는 것이 확인이 되어야만 쿠웨이트 비자가 나온다고 해서
춘자의 기억에
큰딸 미정이는 카센터 사장인 첫 번째 남자 주광성과의 사이에서 수진이가 태어나고 얼마 후, 첫 번째 혼인신고를 했다.
1년쯤 지난 어느 날, 카센터를 해서 언제 돈을 벌어 집을 사냐며 돈 못 버는 남자는 필요 없다고 내동댕이 치듯이 주사장을 쫓아냈다.
그것이 첫 번째 이혼이었다.
그리고, 사기꾼 박사장과 만나서 부부로 살기 위해 혼인신고를 하고는
몇 년도 안 돼서 사기행각을 벌이고 도주하기 전, 박사장이 저지른 채무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혼신고를 했다는 미정이의 한숨 섞인 푸념도 어렴풋이 기억났다.
그리고, 수진이의 바람직한 유학생활을 위해 멜버른에서 만큼은 아주 화목하고 사랑이 넘치는 정상적인 가족으로 보여줘야 한다며 큰딸 미정이와 손녀 수진이, 박사장은 다시 호적 상의 가족이 되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멜버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왔을 때는 다시 이혼신고를 하고 미정이는 1인 가족이 되어 있었다.
떠벌이 미정이가 입을 조개마냥 꼭 다물고 있어서 가족들도 그 이유를 몰랐지만, 어수룩한 춘자가 추리하건대
박사장은 사기혐의로 고소당해 한동안 어둡고 칙칙한 곳에 들어가 슬기로운 그 바닥 생활을 하고 있었지 않았을까 싶다.
그 호적에 다시 박사장이 미정이의 배우자로 올라갔다.
주소지는 미정이의 아파트.
박사장은 집이 없는가. 또다시 삐집고 굴러들어 와 눌러앉다니.
“자매님, 제가 알기에는요, 쿠웨이트는 현지에서 거주하거나 사업을 하기 위해서 비자를 신청해도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절차나 법규가 까다로워서 비자를 얻기가 그렇게 쉽지 않을걸요?”
춘자가 다니는 성당의 수요일 레지오 모임에서 만난 한 자매님의 말을 들어보니 박사장의 이번 공사계약 이야기며 한국인 건설 노동자들의 식당사업 이야기도 헛 뻥이 아닐까 생각했다.
춘자는 박사장을 쳐다보며 함박꽃처럼 웃어대던 바보 멍청이 같은 큰딸의 얼굴을 생각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박사장의 쿠웨이트 사업이야기는 어느덧 ‘유야무야’ 그런 일이 있었던가, 하는 분위기로 변질되면서 미정이는 가족들 간에서도 웃음거리가 되었다.
헛뻥쟁이 박사장은 우리나라 정부와 쿠웨이트 정부 간의 묘한 갈등 때문에 사업이 무산되었다느니, 건설회사의 자금사정이 악화되어 진전이 없다느니 하면서 자신의 능력이 정권과 금융권의 파워에 눌려 빛을 보지 못했다며 억울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