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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톡소다 Nov 09. 2024

시련을 겪으면 내 사람이 보인다.

내 사람으로 가득 찬 전화번호 목록

이혼을 했어요. 10년간의 결혼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죠.


어렵고 힘든 시간이었어요. 이런 시련 속에서 떠오른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들에게 연락해서 만나고 제 이혼 이야기를 털어놓았어요.


어릴 적부터 친구로 지낸 그들은 놀라기도 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말했어요.

주변에 혼자 아이를 키우는 사람들, 이혼한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들을요.


그들은 묻지 않았어요. 무슨 이유로 이혼을 했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이죠.


그때 깨달았어요.

그들에게는 내 마음이, 그들의 호기심이나 궁금함보다 우선이라는 걸요.


친구들이 조심스럽게 말하는 모습을 보며, 그들이 내 마음이 다치지 않게 신중하게 말을 건네고 있다는 걸 느꼈어요. 내가 더이상 상처받지 않게 신중하게 말을 고르는 마음이 전해져 고마웠어요.


친구들이 묻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용기가 생겼어요.

그래서 내가 먼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었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이혼을 결심했는지 모두 말했어요.


친구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신중한 방법으로 위로해주었어요.

그 진심이, 그 마음이 느껴져서 정말 큰 위로가 되었어요.


그들은 이혼을 축하해줬어요.

"헤어진 게 다행이다, 이제 더 행복한 일만 남았다"며 축하를 해줬고, 저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했어요.


그 순간, "내게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인생 참 잘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날 이후로 궁금해졌어요.

내 휴대폰에 저장된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 지독히 사적인, 나의 시련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죠.

전화번호부의 대부분이 일적인 관계로 얽힌 사람들이라는 사실도, 1년에 한 번도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하지만, 가족을 제외하고 이렇게 내 가장 개인적이고 사적인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연락하지 않는 사람들의 번호를 정리했어요.

소중한 사람들이 잘 보일 수 있도록 말이죠.

만약 그들이 나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면, 그들은 지인들을 통해 다시 연락을 하거나 내가 다음에 연락처를 물어보면 될 테니까요.

[애뽈 일러스트]

그렇게 중요한 사람만 남긴 전화번호 목록을 보니, 목록은 짧아졌지만 마음은 꽉 찬 느낌이었어요.


그 후, 지운 사람들을 종종 만나게 돼요.

대부분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죠. 그들은 제 연락처를 가지고 있다고 말하곤 해요.

우연히 교육을 듣는 자리에서 만나면 반갑게 연락하자고 말하지만, 그 후에는 별로 연락이 오지 않아요.

"연락하자"는 말은 그냥 반가운 인사치레일 뿐이죠.

그런 것에 서운해하지 않아도 되는, 그 순간의 반가운 표현일 뿐이에요.


시련 덕분에 진짜 소중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하게 되었고, 소중한 사람에게 한 번 더 연락하고 안부를 묻고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그래서 '시련을 겪으면 내 사람이 보인다'거나 '사람 보는 눈이 생긴다'는 말은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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