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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젤리 May 28. 2024

6. 온실에서 야생으로 가는 길 좀 알려주세요

외국인학교 교사로 살아남기

저는 교사 학생이 아니.

저도 여기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라고요.


길고 긴 여름방학이 끝나고 새학기가 시작됐다.

코로나는 여전히 기승이었지만 학생들은 등교를 시작했다. 물론 나의 락했던 재택근무도 끝이 났다.


새로운 마음으로 시작하고 싶었다. 날 힘들게하던 그 A 선생님과도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그런 헛된 희망과 함께.

그 와중에 동교과 선생님이 출산휴가를 갔고 그 기간동안 수업을 맡아줄 C선생님이 오셨다. 의지할 곳 없던 나는 C선생님과 일도 같이 하고 서로 이것저것 도와주며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학기 초를 버텨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C선생님의 낙천적인 성격에 더해 한 수업을 같이 하게되면서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내가 교에서 시덥지 않은 스몰토크를 하는 유일한 사람들은 C선생님과 중국어 선생님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꼴보기가 싫었나보다.

"쌤, 요새 중국어 선생님하고 친하게 지내나봐요? 저번에 보니까 둘이서 얘기도 하고 돌아다니는 거 봤어요. "

하고는

"근데 여기서는 항상 말을 조심해야 돼요. 몰래 한 말들도 다 신기하게 흘러 들어가더라고요? 윗사람들한테로요. 여기가 그래요, 여기 있으면서 말 함부로 했다가 호되게 당한 사람들 많이 봤어요."


A선생님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날 보며 생긋생긋 웃으면서 말을 걸다가도, 어느 날 수틀리면 나를 본 척도 안 하며 인사도 무시했다. 저 정도면 중증 조울증이 아닐까.


마음 붙이고 지내보려 나름대로 노력했지만, 돌아오는건 지속되는 가스라이팅과 근거없는 겁주기였다. 사회생활 새내기였던 나는 곧이곧대로 믿고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는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해 살도 급격하게 빠졌고, 어느 날부터 이석증 증상이 나타났다. 그리고 학교 안과 교실에서조차 눈치를 보며 지내는 내가 보였다. 


버티는 내 노력이 무색하게, A선생님은 끝끝내 나를 궁지에 몰아넣는 데 성공했다.

단지 내가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


교장선생님, 교감선생님, A선생님 그리고 나.

나의 잘못을 낱낱이 까발리고, 나의 불손한 태도를 공개하는 공식적인 자리.

A선생님은 내 눈길은 피한 채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리더인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또한 내가 마치 '고등학생'처럼 자주 '삐진다'며 나를 다루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지나치게 당당해서 그 순간에는 나조차도 이게 사실인가 싶었다. '내가 정말로 삐진 적이 있었나..?' 


눈물이 차오를 것 같은 아리고 묵직한 느낌이 가슴 언저리에서부터 목 끝까지 번져갔다.

나는 억울한데, 너무 억울해서 미칠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 하지? 내가 과연 이 사람들 앞에서 얘기할 수 있을까? A선생님의 터무니없는 소리가 계속될수록 나도 내 살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선명해지기 시작했다. 이 자리는 '화해'와 '화합'의 공간이 아니었으니까. 


"저는 교사지, 고등학생이 아니에요. 저도 여기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고 그렇게 존중받고 싶습니다."

무슨 말을, 어떤 식으로 또 어떤 표정으로 했는지는 모르겠다. 나의 윗사람들이니 선은 넘지 말자, 예의는 지키자 스스로 되뇌였지만 지켜졌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하지만 진심은 전하고 싶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다. A선생님은 내가 말을 시작하자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한마디 한마디에 기가 차다는 리액션을 성실히 해주었다. 

그 덕분인지, 외국인 교장과 교감 선생님은 그 자리에서 A선생님의 부족한 리더십과 포용력에 대해 언급하며, 동료 선생님을 존중하는 것은 기본이라 말하며 나무랐다. 


묵은 감정들이 희미해지는 느낌이었다. 마치 애초부터 선명하지 않았던 것처럼. 

엄마는 늘 내게 얘기했다, 내가 온실 속 화초라 힘든 거라고, 그냥 그런 것뿐이라고. 

나는 언제쯤 야생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내가 있는 곳이 온실인지 야생인지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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