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에 대한 생각
나는 어쩌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초등학생 때부터 일기를 계속 써왔다.
그때는 의무감으로 썼지만 지금의 내가 글을 쓰지 않는 게 더 어색한 사람이 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준 시기일 것 같다.
'흩어지는 기억들을 붙잡는 데 글쓰기만 한 게 없구나'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중학생이 되고 나서 글쓰기는 과제와 시험의 연장이었다.
‘기승전결을 갖춘 글을 써라’, ‘문학작품을 감상하라’는 요구 속에서 내 생각을 점수로 환산당했다.
그때는 글쓰기가 참 재미없었다.
성인이 되니 글쓰기의 즐거움이 다시 살아났고 요즘 나는 '오늘의 나'를 기록하고 있다.
글쓰기는 나이가 들수록 더 좋아지는 여가 활동이다.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그냥 흘러가버리는 시간이 더 아까워지니까.
시간을 붙잡아두기 위한 노력들 중 가장 밀도가 높은 게 글쓰기가 아닐까 싶다.
글을 쓰려고 빈 화면 앞에 앉으면, '아, 오늘은 또 뭘 쓰나' 싶을 때가 많지만
문장 사이사이 촘촘하게 들어찬 시간들을 볼 땐 마음이 참 좋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이런 이유들로 굳이 글을 쓰려나.
말로 털어놓는 것보다 더 번거롭고, 더 느린 방식인데도.
심리학자 제임스 펜네베이커는 ‘표현적 글쓰기(Expressive Writing)’라는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대학생들에게 매일 15분씩, 4일 동안 글을 쓰게 했는데 주제는 '삶에서 가장 힘들었던 경험과 그때 느낀 감정'이었다. 그 결과 외상적 경험을 글로 쓴 집단은 이후 병원을 찾는 횟수가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단순히 기분이 좋아지는 수준이 아니라, 실제로 몸이 건강해진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연구자들은 세 가지 이유를 말한다. 첫째, 억눌러둔 감정을 언어로 표현하는 순간 억제가 풀리면서 스트레스가 줄어든다. 둘째, 고통스러운 사건을 글로 반복해 떠올리는 것은 일종의 ‘노출 효과’로, 점차 두려움이 약해진다. 셋째, 글을 쓰며 조각난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내면서 일관된 내러티브가 형성된다.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내가 겪은 의미 있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글쓰기는 카타르시스 이상의 무언가다. 단순히 마음을 쏟아내는 행위가 아니라, 내 삶을 해석하고 다시 살아갈 힘을 만드는 과정이다.
브런치에는 글을 쓰는 사람들이 많다.
어떤 이는 일상의 기록을 남기고, 어떤 이는 전문적인 지식을 정리한다.
또 어떤 이는 삶의 굴곡을 고백처럼 적어 내려간다.
이유는 달라도 우리 모두는 글쓰기를 통해 조금 더 나은 삶을 모색하고 있는 셈이다.
SNS 연구를 보면, 블로그나 짧은 상태 글이라도 꾸준히 쓰는 사람들이 사회적 지지감을 더 크게 느낀다고 한다.
‘좋아요’나 댓글 때문이 아니라, 글을 쓰며 객관적으로 나를 보게 되고, 그러면서 다른 사람과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이 커지기 때문이다.
글을 쓴다는 건 혼자 하는 일이지만 우리를 세상과 가장 가까이 이어주는 일인 것도 같다.
나는 어쩌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라는 질문으로 이 글을 시작했다.
글쎄.
김영하 작가의 책 <단 한 번의 삶>에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생일 축하는 고난의 삶을 살아온 인류가 고안해 낸, 생의 실존적 부조리를 잠시 잊고, 네 주변에 너와 같은 문제를 겪는 이들이 있음을 잊지 말 것을 부드럽게 환기하는 의식이 아닌가 싶다. 괴로움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동료들이 주는 이런 의례마저 없다면 삶이 내 의지와 무관하게 강제로 시작된 사건이라는 우울한 진실을 외면하기 어렵다.
생일이라는 의례가 우리를 잠시라도 위로하는 것처럼 글쓰기도 그렇다.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한다고 믿는다.
다른 사람이 보는 나에 대해서, 그리고 이 글을 읽어줄 누군가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결국 서로의 삶에 닿아 있지 않나 하고 생각한다.
나는 어쩌다 글을 쓰기 시작했을까.
그냥 글을 쓰는 순간마다 이 불완전하고 불안한 삶을 조금 더 받아들이게 되는 것 같다.
살아가면서 무언가를 잊지 않아 보려는, 어쩌면 모두가 공유하고 있을 그 마음이 좋아서 멈출 수 없게 되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