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라카자르 데 시르가 가는 길(Villacazar de sirga)
어제 아나와의 대화에서도 느꼈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사람 간의 관계에 마음을 닫고 감정을 등 돌리고 있었다.
친절과 사랑을 베풀어 무엇 하나 하는 허무와 냉담하게 굳어진 내 감정을 외국인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드러나고 있었으니까.
아나와 함께 걷는 내내 떠올랐던 주제였다.
우리는 뜨는 해를 바라보며 신이 나 노래에 맞춰 카미노 길을 빙글빙글 춤을 추며 앞으로 나아갔다.
중고등학교 시절 기숙사에서 학교로 가기 위해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등교를 하는 것 마저도 즐거웠던 시절처럼 발걸음이 가볍다.
배낭을 빌라카자르 데 시르가 알베르게에 보냈기 때문에 우리는 아주 발걸음도 경쾌하다.
아나: 저기 빙글빙글 돌고 있는 이상한 한국 순례자 보이시나요? 맙소사~
우리는 뜨는 해와 맑은 공기 그리고 광활하게 펼쳐진 해바라기밭 풍경이 어우러져 배꼽이 빠지게 웃음이 나왔다. 누군가와 함께 걷는 길이 나쁘지 않다?
Boadilla del Camino 8.3km
이테로 데 라 베가를 지나 찌는듯한 더위를 피할 수 있는 마을이 나타났다.
아직은 이른 시간에 대부분 마을의 상점은 문이 닫혀 있다.
이곳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알베르게가 있는 곳이라, 많은 한국인들이 식사를 하고 지나치거나 하룻밤을 묵으며 휴식을 취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너무 이른 시간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아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우리는 길을 걸으며 좋은 것을 나누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마침 분홍색 페이즐리 문양의 분홍 손수건이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워낙 많은 순례자들이 길을 가면서 짐들을 버리고 가기 때문에 나는 그러려니 하고 못 본 척 옆을 지나쳤다.
이런 행동에는 어릴 적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떠오르는데 떨어진 동전도 남의 것이면 함부로 줍지 말라는 이야기였다. 주인이 돌아와 그것을 다시 찾을 수도 있기 때문에 선행을 베풀고 싶은 마음에 주웠다가 길이 엇갈릴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아나는 작은 선행이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얘기했다. 그래서 아나는 그 손수건을 주어서 주인을 찾아줄 거라며 조금 다른 선택을 보여주었는데, 나에게 그 행동은 아직도 꽤나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만들어주었다.
아나:이 손수건 말이야~ 버린 것치곤 너무 깨끗하고 좋아 보이지 않아? 누군가 잃어버리고 슬퍼할지도 몰라. 일단 챙기자.
나: 버린 걸 수도 있잖아? 어떻게 다 물어보고 다녀?
나는 정작 저렇게 말을 했지만 아나가 데이트 폭력을 당한 친구를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모습을 봤기 때문에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을 지지해 주고 싶었다.
그러고는 우리는 다시 길을 걷기 시작하고 마을에 수돗가 근처에서 앉아 쉬고 있는 멋쟁이 뉴요커 할머니 자매들을 만나게 되었다.
아나는 저분들인지 모르겠다며 분홍 손수건을 들고 그분들에게 묻기 시작했다.
아나: 제가 길을 가다가 이 손수건을 주웠는데 혹시 이거 주인이세요?
나는 옆에서 물통에 물을 담고 있었다.
이 뉴요커 자매는 갑자기 눈이 휘둥그레지며 손수건을 바라보더니 순간 얼굴이 환하게 바뀌었다.
아끼는 건데 없어져서 속상해하고 있었다며 우리를 안으며 감사 인사를 했다.
도대체 뭐지?
아나: 그것 봐~ 내가 뭐랬어? 좋은 마음은 좋은 결과로 다가온다고!
나: 그렇네! 너무 훈훈하다. 주인을 찾아줘서 다행이야!
우리는 손수건을 건네주고 뉴요커 자매는 우리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며 아나와 나에게 메시지가 담긴 라벨링 스티커를 건네어주었다.
익숙해진 나의 냉소와 불신이 오늘 우연히 건넨 작은 선행으로 산티아고의 뜨거운 태양에 녹아내리는 느낌이었다.
우리는 노래를 부르며 길을 나섰다.
나는 태양이 빛나는 곳에서 나의 행복을 찾습니다.
걷고 있는 지금 딱 적절한 메시지였다.
좋은 사람과 환경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이런 것이다.
아나의 작은 행동으로 감사와 행복감이 충만한 상태가 되었다.
아나에 대해 알게 된 것을 더 소개를 하자면
아나는 4년간 세계여행을 다닌 여행자이자 산티아고에서 만난 동갑내기 친구였다.
여행의 마지막 종지부로 산티아고를 택했다.
여행 중 베이비시터부터 자원봉사, 농장일 등등 안 해본 일 없이 다양한 견문과 시야를 넓였다.
나는 이제야 이 친구가 산티아고에 대해 왜 이리 시큰둥했는지 조금은 이해가 갔다.
호주에서 어학연수를 하고 미국생활을 거쳐 동남아 발리 그리고 유럽 산티아고 까지 어떤 경험이었을지 말로는 설명이 안될 경험이었을 것이다.
각자의 길
나는 근 5년간 해외여행이라곤 가본 적도 없고, 회사생활과 그림작업 이렇게 커리어에만 집중하며 살다가 갑자가 부모님의 교통사고와 암투병 그리고 소천하시기까지의 일들은 아마 다른 방향으로 각자를 성장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나의 견해로 산티아고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길” 그 자체 이기 보다 그 길을 걷는 사람들 각자의 이야기가 덧대여 져 그곳을 특별하게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각자의 이야기가 쌓여 이 길은 더 걷고 싶은 길이 된 것 아닐까?
길은 어디에나 있지만 이 길을 거는 사람들과 같은 마인드를 가진 사람들은 세계 어딜 가도 없을 것이라 자부한다. 그래서 이곳을 지나가며 각자 마음의 위로와 안식을 얻게 된다고 말하는 것 같다.
아나가 매일을 여행하며 사는 일상이 얼마나 지쳤을지도 이해가 가면서도 부러운 삶이었다.
발목도 접질리고 원인 모를 알레르기에 정신적으로도 지쳤으니 이 길은 스스로의 더 지치고 무겁게 느꼈을 것 같다.
나는 산티아고에서 만큼은 속세의 고민을 내려놓고 온전히 “나”란 사람만을 생각하며 걷기에 몰두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아나에게 너처럼 세계여행을 하고 싶은데 비자 문제와 여행을 다니며 자금을 보충하는 방법 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을 했다. 하지만 왠지 정작 원한다고 말하며 안 되는 부분만 계속 말하고 있었던 것 같다. 꿈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현실로 다가왔을 때의 두려움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아나는 그 부분을 짚으며 얘기했다.
“원하는 길을 진짜로 걷기를 원하면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어”라고 말했다.
이 길을 걷고 있는 자체도 나 스스로 기적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길인걸 매번 놀라면서도 나는 더 큰 꿈을 나는 꿀 수 없다고 나도 모르게 말했던 것이다. 나는 아나의 말을 통해 세상이 나에게 지금 필요한 깨닫음을 적재적소에 속삭여 주며 나를 돌봐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마음의 검
하늘의 보호 아래 이 길을 걷고 있다.
호사다 마모르의 장편 애니메이션 “괴물의 아이“에서 큐타(주인공)는 어린 나이에 엄마의 사고소식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방황하며 거리를 헤매던 중 괴물나라 쥬텐가이에 들어가게 된다.
큐 타는 인간세상이 아닌 쥬텐가이(괴물나라)에서 스승인 큐마테츠(늑대)와 살아가며 함께 성장하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의 여정과 나의 여정이 마치 내가 길을 찾아 산티아고를 밟게 된 여정 같다고 감정 이입하게 된 부분이다.
큐타가 곤경을 겪을 때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쿠마테츠는 큐타를 보호하기 위해 스스로 신이 되길 자처한다. 그리고 깨닫음을 얻고 주인공의 마음의 검이 되어 마음속 구멍을 메꿔 준다. 나 역시 그 아이가 어둠 속 길을 헤매던 중 만난 성인들의 도움과 성장으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마음의 검을 마음속에 일으켜 세울 수 있는 손잡이를 찾은 기분이었다.
산티아고의 성인들이 걸었던 이 길 위에서 나를 보고 해주고 있었음을 말이다.
카스티아 운하
작은 운하와 표지판이 나타나고 프로미스타와 각국으로 가는 길 표지판이 이곳이 어디이고 우리가 어디쯤 서 있는지 알려주었다.
운하를 지나 마을로 들어가 점심을 먹고 도시에서 처리해야 할 볼일을 보기로 했다.
도시로 들어서자 점심 준비를 하는 식당에 음식 냄새를 맡고는 배가 고파지기 시작했다.
나는 이틀을 아나와 숙소에 머물며 자원봉사를 했고, 오늘 아침에도 뉴요커 할머니 자매에게 손수건을 함께 건네며 훈훈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 길을 걷는 것은 아나와 함께 걸으며 누린 특혜라고 생각한다. 누가 자원봉사를 순례길 도중 준비 없이 할 수 있으며,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
오늘 정말 운이 좋은 날이다.
또 언제 헤어짐이 올지 모르는 순례길에서 나중이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느낀 행복감과 감사함을 바로 보답하고 싶었다.
그래서 아나에게 아나에게 점심 답례를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줄지어 늘어선 카페데리아 중에서 야외테라스가 잘 정비된 곳에 자리를 잡고 바로 화장실로 달려갔다.
무엇보다 화장실이 중요하다. 본질적인 것에만 집중하는 삶이 얼마나 담백해지는지 아는가?
아나는 식당에서 크루아상 샌드위치와 라테를 시켰고, 나는 참치샌드위치와 아메리카노를 시키며 숙소 안내와 오늘 일등으로 내가 점심을 계산하겠다고 말했다.
나: 오늘은 내가 살게! 이태로 데 라 베가에서부터 스탭방에 머물 수 있게 도와줘서 덕분에 나는 돈을 많이 안 쓰고 이틀이나 편하게 휴식할 수 있었서 나는 진작에 너에게 대접하고 싶었어.
아나: 별일도 아닌걸~ 다음엔 내가 살게.
프로미스타의 카페테리아에는 이테로에서 숙소를 함께 썼던 사람들과 관광객 그리고 프로미스타에서 오늘 하루를 쉬기 위해 멈춘 사람들이 뒤엉켜 인산인해였다.
카페에는 왁자지껄한 한 무리가 있었는데, 이 사람들은 개인이 걷다가 함께 걷기 시작하면서 단체만큼 규모가 커진 순례자들이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을 주최로 독일인, 미국인, 네덜란드 사람까지 시끄럽게 프로미스타 이름이 새겨진 분수대 앞에서 단체사진을 찍는다. 그저 재밌는 사람들이라고만 생각했지 함께 이 사람들과 동선이 겹칠 거라는 생각은 안 해 봤다.
근처 은행에서 현금을 뽑고, 아나의 원인불명 알레르기와 발목 근육을 잡아주는 근육 테이프를 구매했다.
아나 앞에서 먼저 현금을 인출한 순례자는 여기 수수료가 비싸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100유로를 뽑는데 수수료가 7유로이다. 완전 날강도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현금을 한꺼번에 많이 뽑아 다니는 것은 더 위험하다. 나는 아직 현금이 남아있어서 다음 도시가 나타나면 다시 현금 인출을 시도해 볼 예정이다.
나는 걸음이 빠른 편은 아니었지만 이틀의 충분한 휴식과 배낭 없이 걷고 있기 때문에 점점 걸음에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나를 기다리다 걷기를 반복했다.
이 지점에서 두 가지 길을 선택할 수 있다.
왼쪽: Revenga de Campos 방향으로 쭉 가는 방법/9.7km
오른쪽: 우시에르사 강 옆을 따라 Villovieco를 방향으로 가는 방법이다. /10.7km/ 아침에 그늘이 더 많음
-Buen Camino app 발췌
수없는 갈림길 우리의 선택은 빠른 길이었다.
인생에도 수많은 선택의 순간이 오는데 우리는 항상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까?
아마 그때그때 맞게 최선을 다한 선택이었을 거라 생각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개인적으로 추구하는 길은 아기자기하고 볼거리가 많은 숲길을 좋아한다. 게다가 마을을 지나치며 화장실이 있는 길은 금상첨화이다. 하지만 정오의 태양이 뜨거운 시간 다른 무엇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하루종일 207km나 뻗어 있는 카스티야 운하 가로수 길을 걸으며 계속 평지에 직진 코스였다.
그래서 더 아나와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던 것 같다.
갈림길에서 늘 길을 선택해야 하는 것 때문에라도 한 번은 더 오고 싶어 질 것 같다.
점점 뜨거워지는 땅의 열기를 느끼며 말수가 줄어줄고 각자 걸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나는 오늘 길이야 말로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가면 좋을 길이었는데 다이소에서 테스트해보지 못하고 샀던 이어폰은 기계가 전혀 인식을 못해서 음악을 들으며 갈 수가 없다. 파리에 두고 온 무선 이어폰이 이렇게 그리울 줄이야. 그러다 보니 더 자연스럽게 핸드폰을 안 보게 되었다.
나는 아스팔트 길의 열기를 느끼기 싫어서 흙바닥에서 걸었고, 아나는 발목이 흑바닥에서 걸으면 더 무리인 것 같다며 아스팔트에서 거리를 두고 따로 또 같이 걷기 시작했다.
황량한 시골 도로길에는 야생동물이나 황소 출몰 지역임을 알리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정말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야 한다. 어떤 갈림길이건 간에 오늘 걸었던 왼쪽 길 Revenga de Campos는 도로를 따라 직진코스로 계속 앞만 보고 걷는 길이라 나는 개인적으로 재미가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왼쪽을 선택하건 오른쪽을 선택하건 결국 도착하는 길은 결국 한 곳을 통한다는 사실이다.
당나귀와 거위
빌라르 멘 테로 데 캄포스를 도착했을 때 멀리서 인디언텐트가 보였다.
황량하게 펼쳐진 직진 코스의 아스팔트 길에 오아시스처럼 반가웠다. 아마 배낭을 메고 걸었다면 이곳 어딘가에서 짐을 풀었을 것 같다. 숙소에 가까워 질소록 희한한 소리가 났다. 야외 캠핑장과 농장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농장에는 말과 당나귀가 있었고, 알베르게 정원 안에는 거위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레스토랑도 함께 운영한다는 깃발을 보고는 곧장 그곳으로 들어갔다. 앉아서 잠시 머리를 식힐 곳이 필요했다.
입구에 들어서자 거위무리가 우리를 시끄럽게 반겼다.
시에스타 시간이 다가와서인지 숙소는 한산해 보였다. 카스티아 운하 수문에서 길을 물어봤던 순례자는 여기서 하루 걷기를 마무리할 거라고 한다. 너무 더워서 나는 안으로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먹자고 했다. 안 그래도 파리가 많은 지역인데 거위와 당나귀까지 있으니 분뇨냄새와 파리가 말도 못 하게 많이 있었다.
거위가 얼마나 웃기냐면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보일 대마다 초인종 벨 마냥 무리를 지어 다니며 울어댔다.
우리는 밖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니 잠시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요란 법석한 프로미스타와 당나귀와 거위가 맞이해 준 빌라르 멘 테로 데 캄포스를 지나 드디어 짐을 부쳤던 빌라카자르 데 시르가에 도착했다.
진짜 이름들이 하나같이 길어서 외우기가 점점 쉽지 않았다.
숙소는 마을 깊숙이 성당 옆에 자리 잡고 있었다.
이 숙소는 공립 알베르게로 빨간 조끼를 입은 자원봉사자가 체크인을 도와준다.
우리는 도착하자마자 붙였던 배낭을 찾고 0층 입구 프런트에서 체크인을 기다렸다. 나는 발에 열이 나는 것 같아 도착하자마자 신발을 신발장에 넣어뒀다. 여태껏 걸은 거리 중 최고 거리를 경신했다. 발에서 불이 났다.
계단을 내려오는 순례자들 중 처음 보는 순례자들이 꽤 많이 보였다. 그중에서는 아까 프로미스타에서 왁자지껄 소란스럽게 단체사진을 찍던 이탈리아 무리들이 보였다. 여기 빌라카자르 데 시르가에서 처음으로 지넬을 만나게 되었다.
지넬은 아나와 이미 안면이 있는 상태였는지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아나는 우리 둘을 소개해주진 않았지만 초반 길에서 함께 걸었고 아나처럼 원인불명 알레르기로 고생 중이라고 말했다.
여기 숙소는 기부 알베르게라 보통 10유로를 내고 숙소로 올라가는데 당연히 카드는 안되기 때문에 꼭 현금을 준비해 놔야 한다. 그리고 이곳이 재밌던 부분은 뜨거운 물이었다. 뜨거운 샤워를 하기 위해서는 10분간 보일러가 덥혀지는 1유로 돈통에 돈을 넣으면 보일러가 10분간 돌아갔다.
수기로 체크인을 마친 자원봉사자 아저씨는 체크인을 마친 순례자들을 방으로 안내했다. 공동 화장실과 주방을 지나 구석에 있던 8인실 방이었는데 아직 이방에는 아무도 자리를 잡지 않아서 우리가 먼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빨리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싶었다.
샤워를 하기 위해서는 계단을 오르자마자 있는 제일 큰방 안쪽에 딱 두대의 샤워실만 있었다. 수용 인원에 비해 작은 샤워실과 작은 공용화장실과 개수대가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지만 전에 당나귀와 거위가 있던 곳처럼 파리나 분뇨냄새는 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아나는 그냥 찬물로 샤워할 거라고 하지만 나는 차라리 1유로 내고 샤워하는 게 내일 길을 걷는데 더 좋다 주의라 고민 없이 돈통에 1유로를 집어넣었다.
결국 숙박비로 11유로 쓰는 거네?
아나는 라무 칠라에서부터 여기 숙소 자원봉사 호스트와 왓츠앱으로 이미 얘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붙임성은 정말 장난이 아니다. 나는 샤워를 하고 자리를 펼 생각으로 침대 시트를 끼우지 않았었다. 그런데 샤워를 마치고 돌아오니 어느새 새롭게 체크인을 마친 순례자들이 방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프로미스타 이탈리안 무리들이었다. 산뜻하게 일층 침대에 앉으려고 하는데 땀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내 자리가 1층 가장 구석 자리였기 때문에 아무래도 환기가 가장 잘되는 자리는 아나가 자리 잡은 창가 자리일 것이다. 나는 혹시 이층 자리로 옮겨도 되냐고 물어보니 자원봉사자는 방원 동의를 받고 옮기라고 얘기를 해주었다. 역시나 이탈리안 무리들 중 한 분이 괜찮다고 말해줘서 나는 아나가 있는 창가 2층 자리로 자리를 옮길 수 있었다.
숙소가 순례자로 가득 차서 북적북적 시끄러워졌다.
씻고 나왔더니 출출하다.
총 27KM의 거리를 걸었다.
진짜 제대로 기록 경신했다. 절대 걸을 수 없을 거라 생각했던 거리를 걸었다. 역시 절대라는 건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