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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의 휴일

산티아고 순례길에서의 휴식과 회상: 여정의 끝에서

by 양작가


10월 30일, 산티아고 – Loop INN Hotel Santiago de Compostela

길을 걷는 데 익숙해진 내 몸은 새벽 5시가 되자 자연스럽게 눈을 떴다. (서머타임 해제로 한 시간이 당겨졌기 때문이다.) 숙소 바로 옆에는 초등학교가 있어서, 곧 아이들의 등굣길로 소란스러워질 것이다.

오늘은 산티아고에 머물며,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방 안 침대 위에서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며 뒹굴다가, 캐나다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 완주 마쳤어! 진짜 이거 현실 맞지?

정신없이 하루가 지나고 다가온 다음 날.

나는 아직도 내가 800킬로미터를 완주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로닛과 아침 약속

오늘 로닛은 산티아고에서 파리행 직행 버스를 타고, 약 21시간 20분을 달려 파리에 있는 딸 집으로 갈 예정이라고 했다.
11시 30분 출발 버스를 타기 위해 10시 30분까지는 버스터미널에 도착해야 한다.

우리는 이른 아침 서로 연락을 주고받은 끝에, 오전 9시에 로닛의 숙소인 Albergue SCQ 근처의 Cafeteria Gaia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다.



Cafeteria Gaia

아침 날씨는 언제라도 비가 내릴 것처럼 흐렸지만, 가끔씩 스며드는 햇살 덕분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숙소 앞 거리는 등교 준비에 분주한 학부모와 아이들로 북적였다.


순례사무소나 대성당을 가기 위해 가던 길과는 다른 산티아고 뒤쪽 초입길로 가야 했기에 구글 지도가 새로운 길을 안내했다. 덕분에 숙소 앞 풍경을 여유롭게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현실의 유럽의 골목길은 길이 있다가도 사라지기를 반복하므로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꼭 기억해둬야 할 점은, 구글에서 안내하는 도보 시간은 거리만 참고하고 시간은 무시하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거의 덩치 큰 남성이나 로봇 정도 되어야 가능한 시간 계산이니까 말이다. 구불구불한 초행길을 지나 언덕 하나를 넘자, 카페 가이아 근처의 가디스 슈퍼마켓에서 장을 보고 있는 로닛을 다시 만났다.


과거에 나는 태국에 여행을 가서 방콕에서 꼬사무이 섬을 가기 위해 14시간 장거리 버스를 탄 적이 있다.

그리고 북경에서 상하이까지 한국의 새마을호 급 고속열차인 ‘똥처우’를 타고 약 8시간을 이동한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장시간 이동이 얼마나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알고 있다. 하지만 21시간은 정말 다른 이야기 같이 느껴졌다.


버스로 하루 넘게, 20시간 이상을 보내는 일은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사실 저가 항공이 더 저렴한 경우도 많기 때문에 일찍 예매하면 더 나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시간이 더 걸리고 고생스럽더라도 버스를 선호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아침식사 대화

우리는 카페에 앉아 카페 콘 레체와 아침에 서비스로 나오는 추로스를 먹으며 아쉬움을 달랬다.

10시 30분에 터미널로 가야 했기 때문에 우리에겐 대략 한 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정말 이 순간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아쉬워서, 로닛을 따라 파리로 가버릴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나는 이때 당시 30일은 휴식일로 생각했기 때문에 어떤 일정계획도 세워두지 않은 상태였다.


대화를 나누며 창밖을 바라보는데, 지넬이 유튜브 영상을 만들기 위해 촬영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로닛은 지넬과 같은 숙소를 사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우리 모두 깊이의 차이만 있었을 뿐, 안면을 트고 함께 걸었던 동료였다.

어젯밤 뒤풀이에서 들은 지넬의 유럽 여행 계획은 마드리드에서 며칠 머문 뒤 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그렇게 창밖을 보며 잠시 옆길로 샌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앞으로의 일정을 공유하게 되었다.


로닛은 파리에서 유학 중인 딸과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며, 혹시 시간이 맞으면 꼭 파리에서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그리고 마지막 아침 식사까지 로닛이 결제해 주었다.

나는 고마움과 감사, 그리고 아쉬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어제 순례자 기념품으로 산 팔찌를 로닛에게 건넸다.

로닛도 순례를 마치며 산 장우산이라며, 서로에게 선물을 주고받았다.



떠나야 할 시간

이제 각자의 길을 떠나기 전, 감사의 포옹을 나누고 로닛을 배웅한 뒤 나는 다시 숙소로 돌아가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우연히 떠날 준비를 하고 있던 아르헨티나 순례자 루시아를 만났다.

루시아는 곧 공항으로 간다며, 우리는 서로 비주(Bisous)를 나누고 WhatsApp으로 번호를 주고받았다.


우리는 앞으로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아르헨티나, 이스라엘, 대한민국—이렇게 서로 다른 대륙에 살고 있는 우리가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놀라운 인연이었다. 만약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된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닌 진짜 인연일 것이다.


만남과 헤어짐, 그리고 새로운 시작이 동시에 일어나는 이곳, 산티아고는 기묘한 느낌의 동네였다.

누군가는 오늘도 다시 피스테라를 향해 걷기를 시작하고 있으니 말이다.

무겁게 내려앉은 먹구름처럼 마음도 자꾸 싱숭생숭해져서, 그렇게 나는 다시 조용히 숙소로 향했다.


KIM아저씨와의 재회

숙소에 돌아오자 로비에서 KIM 아저씨와 다른 한국인 순례자 일행들이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들은 방금 피스테라에서 1박을 하고 돌아왔다고 했고, 또 다른 한 분은 세비야로 내려갈 예정이라며 계획을 공유해 주었다.


나는 곧 KIM 아저씨에게 피스테라에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에 대해 묻기 시작했다.

사람이란 참 적응의 동물이라는 걸 실감했다. 그동안 나는 피스테라까지도 당연히 걸어가야 한다고만 생각해 왔기에, 버스를 탈 수 있다는 건 미처 떠올리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오직 걷는 것이 순례의 전부라고 여겼던 마음이, 이제는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단지 휴식을 취하고 싶었던 마음은 ‘내일은 피스테라로 가야겠다’는 결심으로 바뀌었다.

아마도 나의 산티아고에서의 마지막 여정은,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피스테라에서 마무리될 것이다.



피스테라행 버스 예매

버스 티켓을 끊어야겠다는 결정을 내린 나는, 잠시의 대화 후 방으로 돌아갈 생각을 접고 바로 터미널로 향했다.

구글에서는 2.4km만 걸으면 된다고 안내하고 있었다. 나쁘지 않은 거리였다. 오늘은 로닛의 숙소가 있는 위쪽 거리와 버스, 기차역이 있는 아래쪽 거리를 오가며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골목골목을 걸어 다녔다.

내려가는 길에는 은행과 ATM이 있어, 혹시 모를 현금을 준비하기 위해 100유로를 인출했다.


버스와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는 고급 호텔과 패션 브랜드 상점, 생필품점들이 즐비했다. 그렇게 길을 내려가고 있는데,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손을 흔들며 밝게 인사를 건넸다. “¿Qué tal?”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는 O Pedrouzo에서 함께 숙소를 썼던 교수님의 부인 분이었다. 우리는 산티아고에 도착한 것을 축하하며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다. 조금 더 내려가니 터미널 맞은편에 큰 병원과 메인 기차역이 나타났다. 나는 그 옆에 있는 버스터미널로 가야 했다.


터미널은 떠나는 사람과 도착하는 사람들로 늘 붐비는 곳이었다.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나는 거의 30분을 걸어갔다. 중간에 스페인 부인도 만나며, 도시 구경을 하다 보니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


다시 만난 로닛

나는 버스터미널에 도착해 2023년 10월 31일 오전 10시에 피스테라행 버스 티켓을 끊고 대기장소로 갔다. 그곳에는 로닛이 버스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로닛은 11시 30분에 파리행 버스를 타기 위해 10시 30분까지 터미널에 있을 거라고 했었다. 터미널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는 순례자들로 가득했다.

그때,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듯한 순례자들 사이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일본인 순례자 아야상

Calzadilla de la Cueza 가는 길에서 만났던 일본인 순례자 아야상이었다. 아야상은 피스테라까지 완주를 마치고 오늘 하루 휴식을 취한 후 내일 영국행 비행기를 탈 예정이라고 했다. 잠시의 인연이었지만, 아시아인이 드문 유럽에서 만난 순례자 친구로서의 인연은 우리를 서로 기억하게 만들었다.


로닛 역시 아야상을 순례길 Villamayor de Monjarden에서 만났다고 했다. 우리 세 명은 각기 다른 길을 걸었지만, 이제는 모두 산티아고 버스 터미널에서 각자의 목적을 향해 모여 있었다. 떠나는 사람, 도착한 사람, 그리고 또 다른 여행을 시작하려는 사람으로 말이다.


로닛은 터미널 아래로 내려가기 전까지 우리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대략 11시쯤이었고, 떠날 시간이 가까워졌다. 나는 로닛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비쥬를 하면서 내일 피스테라행 버스를 탈 거라는 계획을 전했다. 정말로 헤어질 시간이 다가왔다.


인스타그램 @aya. yoshino79
(중국어로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에 도착한 풍경 설명중)인스타그램 @marukoliya


아야상과 함께 산티아고 성당까지 걷기

로닛을 배웅한 후, 아야상과 함께 터미널을 빠져나와 대성당 쪽으로 걸어가며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아야는 남편이 런던에 직장이 파견되어 함께 몇 년간 런던에서 거주하고 있다. 런던지사 발령 기간이 끝나는 몇 년 후까지는, 순례길을 비롯한 다양한 유럽에서의 추억을 쌓을 것이다.


나는 점심을 마리아와 카르멘과 함께 먹을 예정이었다. 정확히 정해진 약속은 아니었지만, 확인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아야상과는 저녁에 별일이 없다면 함께 저녁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길을 걷다 대성당에 도착했다.


구름이 걷히고 푸른 하늘이 드러났다. 함께 도착의 기쁨을 나누며, 기록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었다. 저녁때 연락을 주기 위해 왓츠앱으로 번호를 교환하고 각자의 길을 갔다.



순례자 사무소로 가는 길에 다시 만난 게일

아야상과 대성당 앞에서 인사를 마친 후, 로닛에게 주었던 순례자 펜던트 팔찌를 다시 구매하고 싶어서 순례자 사무소로 향했다.

오늘은 거의 의식의 흐름대로 움직이고 있다. 깊이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게일과는 29일 함께 도착해 성당 앞에서 기념 촬영을 찍은 이후로 보지 못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순례자 사무소로 가던 길이었다.


그때, 멀리서 순례자 완주 인증서를 파일케이스에 정성스럽게 넣으며 사무실 밖으로 나오는 키 큰 남자가 보였다. 나는 한눈에 그가 게일임을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우산을 푹 눌러서 얼굴을 가리고 그의 앞길을 막아섰다.


게일과 반갑게 아침 인사를 나누고, 나는 기념품을 사러 간다고 했더니 게일이 함께 동행해 주겠다고 했다. 나는 게일에게 무언가 선물을 드리고 싶었고, 그래서 생일 선물 겸 순례자 키링을 선물로 드렸다. 그리고 나는 다시 순례자 팔찌를 구입했다.


게일은 이번에 산티아고 프랑스 길을 두 번째 완주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나는 키체인을 선물한 후, 오늘 일정이 어떻게 되시는지 여쭤보았다. 점심까지 특별한 일정이 없다고 하셨다. 나는 순례자 미사를 마리아와 함께 보기로 했는데, 함께 하시겠냐고 물어보았다. 게일은 9시 미사를 다녀왔지만, 너희들을 만나서 함께 하는 것이라면 기꺼이 함께 하겠다고 하셨다.


(중국어로 성당후문 12시 순례자 미사에 대해 설명하며 입장)인스타그램 @marukoliya


순례자 미사

12시 순례자 미사에 참여하기 위해 성당 뒷문 대기줄에 합류해 성당 안으로 들어섰다. 마리아는 이미 성당 안에서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는 연락이 왔다. 순례자 미사에서 향로를 피웠던 이유는 야생의 길을 걸었던 순례자들을 위한 방역과 소독을 해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요즘은 종교적으로 길을 걷는 사람들이 완주를 마치고 향로의 연기를 뒤집어쓰며, 새롭게 깨어나는 의식처럼 종교적 행사로 이용된다.

(미사풍경)인스타그램 @marukoliya

게일, 마리아와 나

저 큰 향로를 피우고 움직이는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많은 성금이 필요하다고 한다. 요즘은 거의 매일 향로를 피운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순례자들과 가톨릭 신자들이 이 성스러운 의식을 치르기 위해 모여들었다.

산티아고를 졸업식장이라고 이야기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그 복합적인 감정들이 이곳에서 졸업식장에서 터져 나오듯이 매일의 축복이 내려지면서, 동시에 이제는 일반인이 되어 나만의 길을 떠나는 상징적인 장소인 것이다.


아쉬움과 그리움, 기쁨과 슬픔, 두려움을 안고 다시 나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다. 미사가 끝난 후, 마리아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오늘 이 순례자 미사에서 운이 좋게도 마리아와 게일과 함께할 수 있었던 것은 하루의 시작이 잘 풀린다는 느낌을 받았다.


호주 순례자 카르멘

카르멘과 나의 순례길에서의 인연은 늘 언제나 바람과 같이 좋은 메시지를 전달하고 사라지는 정령처럼 나를 깨워주며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나이가 어린 순례자였지만 그 길위에서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동료이자 인생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이곳 산티아고에서 함께 점심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지금보다 걷기 좋은 시간은 없다!

마드리드 여행 후 부르고스에서 타르다호스를 늦은 시간에 걷기를 시작하다 만난 불볕더위 속에서의 인연이었다. 나는 오늘 함께 먹을 점심으로 한식을 추천할 예정이다. 나는 점심 약속을 먼저 해둔 카르멘에게 마리아와 게일과 함께 합석해도 되는지 동의를 구하고 성당을 빠져나와 한국인 식당으로 향했다.


원래는 한국식 치킨을 소개해 주려고 했으나, 하필 그날이 휴무였다.

우리가 갔던 식당 이름은 Restaurante OK Wok이었다.

게일, 마리아, 카르멘과 함께 구석 자리에 오밀조밀 앉아 식사를 시작했다.

나는 아침부터 산티아고 시내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더니 허기가 빨리 진다.


이 아시아 식당의 인테리어는 일식당 느낌으로, 스시와 캘리포니안 롤, 라멘을 판매하는 분위기였으나, 판매하는 메뉴에는 반찬으로 김치와 제육볶음이 나오고 한중일 혼종 아시아 레스토랑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서 순례를 마친 후 한식 회식을 하러 들어오는 한국인들은 죄다 이곳에서 마주친 느낌이 들 정도로 한국인들이 많았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일어나 해산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마리아와는 오후에 피아와 함께 보기로 얘기가 되어 있었고, 게일은 인사를 할 새도 없이 사라지셨다.


게일은 마드리드를 들렀다 프랑스에 사는 친구의 집에 갔다가 바르셀로나로 해서 출국할 계획이었다. 카르멘은 함께 걸었던 이바와 함께 바욘으로 다시 돌아가 처음 묵었던 알베르게에 가기로 했다고 했다. 그리고 프랑스에 계시는 부모님을 뵈러 갈 것이다.


각자 순례길 후의 계획이 다 있는 상황이었다. 해산하는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제대로 인사를 나눈 사람은 카르멘뿐이었는데, 카르멘 역시 내일 피스테라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했다. 나 역시 피스테라로 가는 일정을 공유하며 서로 인사를 나누고 헤어졌다. 로닛과 아야상, 그리고 루시아와의 아쉬운 이별과는 다른, 꽤나 쿨한 작별 점심식사였다.


다시 만난 안나

카르멘과 광장에서 헤어진 후 숙소로 돌아가려던 찰나, 나는 광장에서 안나와 우연히 마주쳤다.

진짜 모두 이곳에서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 너무 신기하고 재밌었다. 아침 8시부터 거의 오후 2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까지 계획에도 없던 일정이 의식의 흐름대로 몰아치고 있었다.


10월 30일 오전까지는 바람이 많이 불었지만 날이 맑아서 다행이었다. 순례자 사무소에서 완주 인증서를 받고 광장을 지나가던 안나와 우리는 극적으로 다시 만난 것에 즐겁고 반가워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와 안나는 우산을 펼쳐서 양팔을 벌리고 인증사진을 찍었는데, 바람이 심하게 불어서 우산이 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진짜 내가 날아가는 줄 알았다. 안나와 이렇게 다시 함께할 수 있다니 정말 행운이었다.


안나는 산티아고에서 1인실 숙소에 묵는다고 했다. 내일 일정을 여쭤보니 피스테라에 갈 예정이라고 해서, 그렇다면 함께 가자고 얘기했다. 처음과 끝 여정을 안 나와 함께할 수 있다니 행운이 아닐 수 없었다.


잠깐 숙소로 복귀 후 시에스타

쉬는 날인데 너무 돌아다녀서 발이 여전히 불이 나고 있다. 숙소 프런트에는 킴 아저씨와 한국인 일행들이 밖에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었고, 내일이면 각자 출국하거나 여행을 갈 계획이라고 하셨다. 피스테라를 함께 여행한 것을 끝으로 마드리드나 어떤 분은 세비야로 떠나는 일정이었다.


세비야는 캐나다에 있는 친구가 특히 추천했던 스페인 남부 여행지여서 더 관심이 갔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신발을 반나절 만에 벗고는 얼얼해진 발을 마사지 해줬다. 순례 내내 스틱이 아니라 피레네에서 주웠던 나무 막대기를 가지고 종주를 했더니, 내 새끼손가락이 가끔 자다가 깨면 펴지지 않을 때가 있었다. 내 몸은 오롯이 순례자 모드로 작동하고 있었다. 쉬는 날인데 나는 여전히 걷고 있었다.


한숨 돌리고 4시쯤 피아와 피아 가족들, 그리고 마리아가 함께 커피 타임을 가질 거라고 시간이 된다면 오라고 연락이 왔다. 안나와는 저녁을 함께 하자고 해 놓은 상태였다. 나는 한 시간 정도 시에스타를 즐기다가 다시 나와서 성당 쪽으로 내려갔다.


Vinoteca Cervantes, 외부 오픈이 안 되는 음식점

한참 쉬고 있을 때쯤, 마리아에게서 피아와 써니, 가브리엘과 함께 성당 근처 카페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자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나는 쉬다가 다시 성당 뒤편에 있는 음식점을 찾아 배회하다가 Vinoteca Cervantes에서 피아와 써니, 그리고 가브리엘이 식사를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들의 말대로, 시에스타 시간 전에 들어온 손님들만 받고 문을 걸어 잠그고 더 이상 입장하는 손님을 받지 않았다. 바로 저기 피아 가족들이 있는데 들어갈 수가 없었다.


피아는 문이 열려 있는 다른 장소를 찾으면 그곳에서 커피나 차를 마시자고 연락이 왔다.

피아는 오후 7시 순례자 미사를 참석하기 전까지 점심식사를 하러 들어간 식당이 외부 손님을 받지 않아서 문이 잠겨 있다고 말했다.



Café del Parador de Santiago

그렇게 근처를 배회하다가 안나와 다시 마주쳤다. 우리가 저녁을 먹기로 한 시간보다 이르긴 했으나, 나는 피아와 피아 가족과 함께 합석해도 괜찮은지 안나와 피아에게 물어봤다. 커피를 마신 후 식사를 하러 가자고 안나에게 제안했다.


성당 근처 광장 바로 옆에 있는 호텔 카페로 들어갔다. 시간대가 대부분 저녁 장사 준비를 하기 위한 브레이크 타임이라, 바람이 많이 불고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도저히 밖에 있을 날씨가 아니었다. 피곤했지만 마지막이라는 것을 알고 에너지를 끌어올리기 위해 노력했다. 카페 근처 미술관 정원 앞에서 피아 가족을 기다리다가 굴다리를 지나 성당 옆에 자리한 Dos Reis Espacia로 향했다.


인스타그램 @annahoogenbosch

피아, 써니, 가브리엘과의 커피타임

피아는 마드리드에서 있을 결혼식 참석을 위해 쇼핑을 하고 왔는지, 산티아고 순례자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세련된 관광객 차림으로 나타났다. 피아의 바비핑크 윈드재킷도, 써니의 인디고블루 니트도 더는 보이지 않았다. 나와 안나만이 여전히 순례자 차림으로 남아 있었다. 이때 마리아와 게일은 함께하지 않았다. 마리아는 저녁 식사 자리에서만 다시 모습을 보였던 기억이 난다.


안나와 피아는 이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하지만 역시 피아다운 붙임성 덕분에 어색할 틈도 없이 안나에게 관심을 보이며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안나는 나에게 카미노 여정의 처음과 중간을 함께 걸었던 정신적 동반자였다면, 피아는 후반부 길을 함께 걸으며 의지했던 가족 같은 존재였다. 이 두 사람 모두 나에게 가장 소중하고 따뜻한 유럽의 부모님 같은 존재였다.


안나는 늘 가지고 다니던 수제 드로잉 아코디언북을 꺼내, 여정 중 나를 그렸던 그림과 순례길을 영감 받아 그렸던 그림들을 피아에게 보여주었다. 우리의 여정은 그렇게 그림으로 남아, 아름다운 기록이 되어 있었다. 마리아는 아마도 아까 그 카페가 문이 잠겨 있어 들어오지 못했던 것 같다.

안나와 피아

안나는 네덜란드인 특유의 침착하고 차분한 톤으로, 지금껏 들어보지 못했던 개인적인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처음 듣는 이야기들이었지만, 안나의 말에는 익숙한 온기와 안정감이 배어 있었다. 안나와 나는 론세스바예스에서 처음 만났고, 피아는 길을 잃을 뻔했던 나를 구해준 인연이었다.


그리고 다시 우연히 식사를 하던 자리에서, 길 잃은 사람이 나였고 도와준 사람이 피아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해프닝까지—이 모든 기억들은 마치 정성스레 포장된 선물처럼 웃음과 감탄을 자아냈다. 우리는 쉴 새 없이 지난 여정의 추억을 주고받으며 그 순간들을 다시 음미했다.


피아의 얼굴은 여전히 벌레에 물린 자국들로 울긋불긋했다. 그런 상태로 마드리드로 이동해 결혼식 피로연에 참석하다니, 정말 엄청난 강행군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오늘이 되어서야 내 계획이 정해져 피아에게 내일의 일정을 전할 수 있었다. 나와 안나는 내일 아침 버스를 타고 피스테라로 이동할 예정이고, 나는 그곳에서 하룻밤 묵을 생각이었다.

즉흥적으로, 영감이 이끄는 대로 계획을 세우고 그대로 실행하는 나를 보며 안나는 웃으며 말했다.


“넌 정말 버터플라이 같아.”


피아와 가브리엘, 써니는 그 말에 동의했었다.

나비 같다는 말의 의미가 어디로 튈지 모른다는 의미와 자유로움 여러 가지 의미를 표현한 것으로 나는 좋은 의미로 받아들였었다.


마리아는 내일부터 다시 피스테라까지 다시 길을 걷는다죠?

마리아의 걷기에 대한 열정과 체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여정이 끝나가고 있는 이 시점에, 누군가는 다시 길 위에 오른다는 사실이 묘하게 뭉클하게 다가왔다.


피아, 써니, 가브리엘과의 마지막 인사

짧았던 커피 타임은 아쉬울 정도로 금세 지나가 버렸다. 어느새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리아에서부터 함께했던 일주일간의 여정이 이제는 추억으로만 남는다 생각하니, 산티아고가 정말 졸업식처럼 느껴져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래도 이별이 어영부영 파티처럼 흘러가지 않고, 진심이 담긴 작별이어서 고마웠다.

피아, 써니, 가브리엘—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언제고 따뜻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게다가 마지막 커피값까지 써니가 계산해 주는 바람에, 우리는 웃으며 “비쥬”와 허그를 나누고, 진심이 담긴 마지막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저녁식사 / Codex Restaurante

피아 가족은 식사를 마친 지 오래되지 않아 숙소로 돌아가 내일 떠날 준비를 하겠다고 했다. 우리는 따뜻하게 인사를 나누고, 그들을 배웅한 뒤 광장으로 향했다. 마침 그곳에서 마리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시에스타 시간에 피아와 마리아가 함께 얼굴을 볼 수 있길 기대했지만, 서로의 일정이 엇갈려 그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그래도 이렇게 다시 만날 수 있어 참 다행이었다.


안나, 마리아, 그리고 나는 저녁 식사를 함께하기 위해 골목을 따라 음식점을 찾아 나섰다. 어제처럼 오락가락하는 날씨 속에서, 저녁 어스름이 내려앉고 하늘은 다시 무거운 구름으로 가득했다. 언제 비가 다시 쏟아질지 모르는 흐린 날씨였다. 그럼에도 우리 셋은 이 마지막 밤을 천천히, 그리고 소중히 채워가려 했다.



마리아, 안나, 그리고 나는 1층 홀로 올라가 여섯 명이 앉을 수 있는 큰 테이블을 요청했다. 다행히 자리가 있어 편안히 앉을 수 있었다. 자리를 잡고 나니, 아까 아침에 로닌을 버스터미널에서 배웅할 때 만났던 아야상이 떠올랐다. 그녀가 저녁에 함께 하자고 했던 게 기억나, 나는 곧바로 식당 위치를 왓츠앱으로 공유했다.


아야상은 예상대로 낯가림 없이 금세 모두와 잘 어울렸고, 그 덕분에 분위기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마리앤은 프랑스어만 할 줄 알아 깊은 대화를 나누긴 어려웠지만, 카미노에서 우리는 자주 마주치고 같은 템포로 걸으며 이미 충분히 교감해 왔던 사이였다. 아마 내가 불어를 조금이라도 할 줄 알았다면 더 친해질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베네딕트는 오늘 처음 만나는 분이었고, 파리지앵다운 도도하고 세련된 인상을 풍겼다. 처음엔 조금 까칠하게 느껴졌지만, 이 자리는 그런 겉모습을 넘어서 서로의 완주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자리였다. 말보다도 그 자리에 함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우리는 연결되어 있었다.


조셉님, 그리고 길에서 다시 만난 인연

정말 ‘볼 사람은 어디에 있건 결국 다시 만나게 된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마지막에 인사를 못하면 아쉬울 것 같아 마음 한편이 조심스러웠는데, 글쎄 식당 문이 열리더니 조셉님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 옆에는 늘 두건을 쓰고 다니던 대만 아저씨도 함께였다. 오늘 산티아고에 도착한 듯 보였다.


안나와도 인연이 있었던 조셉님이었기에,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헤어지기 전에 축복을 건네며 웃을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른다. 대만 아저씨와 조셉님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보였는데, 아마 순례길의 후반부를 함께 걸으며 깊은 우정을 나눈 듯했다.


생각해 보면, 한국에서였다면 나와는 전혀 접점이 없었을지도 모를 사람들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나이도, 국적도, 성별도 중요하지 않았다. 길 위에서 우리는 모두 순례자였고, 함께 걸을 수 있었던 그 사실 자체가 영광이었다.팜플로나에서 처음 조셉님을 보았던 순간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벌써 그때가 그리워진다.


오늘은 길을 많이 걷진 않았지만, 산티아고 시내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던 거리만 해도 10km는 족히 넘었던 것 같다. 평소 같으면 거뜬했을 거리인데, 피로가 몰려서였는지, 아니면 도착 후의 감정 소모 때문인지 식사도 다 비우지 못하고 포크를 내려놓고 말았다.


식사 중 나눈 마지막 대화

마리아는 내일부터 다시 피스테라까지 100km를 걸은 후, 바르셀로나로 돌아간다고 했다. 이미 한 번 완주를 했는데도 다시 걷는 그 열정이 대단해 보였다. 우리는 바르셀로나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조심스럽게 건넸다.

안나는 내게 유럽 여행 중 꼭 가봐야 할 곳으로 남부 스페인의 세비야를 추천해 줬다. 햇살 가득한 도시, 플라멩코의 정열, 오렌지 나무가 가득한 골목을 생각하니 벌써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야상은 내일 비행기를 타고 런던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가는 집이 런던이라니’—그 말이 어쩐지 부럽게 들렸다. 유럽 어디든 가깝게 오갈 수 있는 그녀의 삶이 나에겐 마치 영화 속 장면처럼 느껴졌다.


길고 긴 저녁이 끝나갈 무렵, 우리는 서로에게 작별 인사를 건넸다.


"아야상, 반가웠어요! 마리아도 부엔 카미노!"


잠깐 멈췄던 시간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안나와는 내일 아침 8시, 버스터미널로 가는 길에 Hotel Mafel 앞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마쳤다.

이제 다시 숙소로 향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길, 상점들은 이미 문을 닫고 조용히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굳게 닫힌 상점 앞, 어둠을 밝혀주는 거리 음악가들의 연주는 산티아고의 밤을 부드럽게 물들였다.

아쉬움과 동시에, 또 다른 곳으로 떠나는 설렘이 교차했다.


내일은 이른 출발이기에, 숙소 근처 슈퍼마켓에서 물과 초콜릿, 그리고 아침에 먹을 약간의 과일을 샀다. 익숙해진 산티아고의 구불구불한 골목을 따라 천천히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정말 긴 하루였다.


즐겁고 열정 넘치는 사랑스러운 영혼의 동반자들,
나와 함께 걷고, 나를 일으켜 세워준 은인들, 사랑합니다.
나의 순례 여정이 끝나는 오늘, 나는 벌써 이 카미노 길이 그리워졌다.


이제는 카미노를 넘어, 현실의 까미노 길에서도 순례길에서 배운 방식처럼 한 걸음 한 걸음을 내 힘으로 디디며 나아가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온종일 인사를 나누고 숙소로 돌아오니, 왓츠앱 창은 마지막 인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숙소에 들어와 내일 피스테라로 갈 짐을 싸고 누워 있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그토록 힘들고 아프고 두려워했던 길을 걸었지만, 산티아고에 도착한 지금, 진짜 나의 카미노가 시작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복잡했다.


매일 떠나고 도착하는 순례자들 속에서 오늘 나는 휴식을 취하며, 알 수 없는 무거운 슬픔을 느꼈다.


내일, 안나와 함께 피스테라로 가는 버스를 탈 예정이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순례를 마치고, 마리아처럼 추가로 더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고 이동해서 휴가를 즐기고 오는 경우가 많다. 혹은 독일 순례자 사빈처럼 피스테라를 거쳐 포르투갈 길을 역으로 걷는 경우도 있다.

내일의 여행을 위해, 이제 잠자리에 들어야겠다.


내일을 위해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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