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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마지막 발걸음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가는 길(Santiago de Compostell

by 양작가

10월 28일 숙소에서 지난밤

숙소 안은 히터 덕분에 훈훈했고, 모두가 비를 맞고 걸은 탓에 머리가 베개에 닿자마자 금세 잠에 빠져들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이 마지막 여정이라는 생각에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정말 마지막 밤이라고?’



10월 29일 출발 전 / 서머타임 종료

출발할 때는 절대 가능하리라 생각지 못했던 일이, 지금 이렇게 현실이 되었다.

두려움에 휩싸인 채 생장 피에드 포흐트에 도착하기까지도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는데 말이다.

그런 내가 이제는 더는 끝내고 싶지 않을 정도로 익숙해진 이 길의 마지막 여정을 이야기하고 있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다.


법륜스님은 인생의 변화를 위한 강력한 처방 중 하나로, '매일 3,000배를 한 달간 하면 사람이 변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41일 동안 20km를 걸으며 울고 웃고 나 자신을 비워냈다. 비를 맞고, 갈증과 눈물, 웃음 속에서 사람들을 만나며, 그동안 닳고 피폐해졌던 내 영혼을 정화하고 있었다. 그 깨달음은 걷는 동안엔 알아차리기 힘들었다. 힘들고 피곤하고, 제대로 잠들지 못하는 외부의 압박 속에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비로소 내가 무엇을 이루었고 어떤 깨달음을 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크리스마스이브처럼 설레던 마지막 날, 나는 익숙한 리듬대로 새벽에 눈을 떠 짐을 정리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길을 떠날 준비를 마쳤다. 더 이상 떠나보내고 싶지 않은, 이 길 위에서 말이다.

이 길이 익숙해졌다는 건, 어쩌면 이제 하산해야 할 때가 되었음을 의미하기도 했다.



6시 55분/준비 중

날이 추워지면서 이제는 아침 준비 시간에 옷을 더 껴입는다. 비와 바람으로 아침 기온은 어느새 가을에서 겨울로 옮겨갔다. 늘 입던 레깅스 위에 일상복으로 가져왔던 카고 바지를 겹쳐 입고, 위에는 빨간 윈드재킷 위로 노란 고어텍스 재킷을 덧입었다. 날씨가 변한 만큼, 다른 순례자들의 복장도 점점 무겁고 두터워졌다.


출발 준비를 마치고 짐을 챙겨 나오려는 순간, 무언가 벌레가 기어가는 걸 발견했다. 아마도… “베드버그”인 것 같았다.

나는 방에 있던 사람들에게 이곳에서 베드버그를 본 것 같다고 말하며, 집에 돌아가면 꼭 모든 용품을 소독하라고 알려주었다.

오늘, 산티아고까지의 19.3km. 어쩌면 이 하루는 내 인생에서 평생 잊지 못할 10월 29일로 기억될 것이다.



출발: O Pedrouzo 0.0km > O Amenal 3.0km > San Piao7.0 km > Lavacolla 9.3km > Villamaior 10.5km >
San Marcos 14.3km > Monte do Gozo 14.5km > Santiago de Compostela19.3 km
출발시각: 07:55
도착시각:15:04

2023년 10월 29일 출발 7시 55분 / 흐림

마지막 순례길. 남다른 마음가짐으로, 평소처럼 날씨와 몸 상태를 점검한 뒤 O Pedrouzo의 Cielo Hostel을 빠져나왔다. 다행히 일기예보에는 비 소식이 있긴 했지만, 하루 종일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하늘은 여전히 흐렸고, 언제든 비를 쏟아낼 듯한 먹구름이 우리를 따라 움직였지만 말이다.

뽀송뽀송하게 말라 있는 호카 트레킹화를 신고, 마지막 길을 걷기 위해 우리 모두 발걸음을 내디뎠다.



마지막 길인 만큼, 순례자라면 누구나 고요하고 성스러운 빛 속에서 축복을 받으며 걷고 싶어 할 것이다. 하지만 산티아고로 향하는 이 길은 그런 고요하고 영적인 분위기와는 다소 거리가 멀다.

오히려 각지에서 모여든 순례자들이 다양한 여정을 거쳐 도착한 만큼, 산티아고를 향한 마지막 길은 정신없는 행렬이 이어진다. 마치 길고도 험난했던 대학 생활을 마치고 졸업식장으로 향하는 수많은 학생들처럼, 순례자들은 앞뒤로 길게 늘어서 줄지어 걸었다.




마지막 순례길

오늘은 어제처럼 길에서 누군가 이탈하지 않도록, 서로 발걸음을 맞추며 함께 걷기 위해 노력했다.
게일, 피아, 써니, 가브리엘. 서로 지어준 이름을 부르며 소소한 스몰톡을 주고받았다.

피아와는 어제 나눈 속 깊은 대화 덕분에 한층 가까워졌고, 우리는 팔짱을 끼고 함께 걸었다.



마음을 내어주었는데, 오히려 더 큰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감사한 하루였다.

비가 오다 말다 하는 변덕스러운 날씨 덕에 하늘엔 수시로 무지개가 떠올랐다.
각자의 길을 걷던 순례자들 모두, 길 위에 핀 무지개를 마지막 여정의 축복처럼 느끼며 발걸음을 멈추고 연신 사진을 찍었다.



마을을 지날 때마다 만나던 순례자들의 그래피티도 이제는 마지막이구나.


우리 원정대원들의 뒷모습 또한 이 길의 끝이라 생각하니,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아련하게 느껴져 모두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쌍무지개

그중에서도 단연 최고의 무지개는 쌍무지개였다.

산티아고 공항 근처 하늘에 떠오른 쌍무지개를 보며,
우리는 모두 그 장면을 기념하고 싶어 사진으로 남겼다.

쌍무지개는 마치 우리의 여정을 축복하고, 마지막 걸음에 힘을 실어주는 듯 느껴졌다.


Hito entrada Concello de Santiago de Compostela 산티아고 비석/5.2km

우리는 산티아고 비석과 공항 사이, 이제 고작 12km만을 남겨둔 채 마지막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게일, 피아, 그리고 가브리엘은 그곳에서 각자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 비석에 금은보화가 숨겨져 있는 것도 아니고, 특별한 조형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다만 누군가가 벗어두고 간 오래된 등산화, 손글씨로 적힌 편지, 그리고 돌을 하나하나 쌓아 만든 작은 무덤뿐이었다.

하지만 그 소박한 돌탑 안에는 수많은 순례자들의 염원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San Marcos

산 마르코스를 지나, 일렬로 곧게 뻗은 나무숲을 지나자 멀리서 산티아고 대성당의 첨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길을 걷는 우리의 발걸음 위로, 극적으로 비가 그치기 시작했다. 단지 햇빛이 비쳤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 깊은 곳에서 감사함이 피어올랐다.

게일은 이 지점에서 다른 지인과 합류하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와 함께 마지막 구간을 걷지는 않았다.


Monte do Gozo

몬테 도 고소를 지나면서부터 게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와 글을 쓰며 그때의 상황을 여쭤보니, 당시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갈래길에서 갑자기 몰려든 순례자 무리를 피해, 게일은 잠시 혼자 걷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우리는 결국 산티아고 대성당 앞 오 브라도 이로 광장에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 사이 피아와 써니, 그리고 가브리엘과 함께 이날 이후의 계획을 나누며, 산티아고 입성을 앞두고 한 카페에 들러 잠시 휴식을 취했다.


Café Decotío

산티아고에 가까워질수록 테라스를 갖춘 카페들이 줄줄이 나타났다. 도시가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고, 재미있는 풍경 하나는 출발지였던 생장과 달리 이곳이 바닷가와 가까워서, 하늘을 나는 새가 독수리가 아닌 갈매기라는 점이었다.


커다란 차양막 아래 바깥 테라스에 앉아 짐을 내려두고는 카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화장실로 향했다. 간단한 티타임을 가지며 땀을 식혔다.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휴식이었다.

카페콘레체와 아메리카노, 밀크티를 함께 즐겼다.

더 이상 서둘러 걸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이 휴식을 더욱 편안하게 느끼게 만든 것 같다.


산티아고의 순례자 행렬

산티아고 초입 길. 어디로 걷든 앞뒤로 이어지는 순례자들의 행렬 덕분에 우리는 길을 잃을 염려 없이 그저 앞만 보고 전진할 수 있었다.


피아는 산티아고에서 이틀 머문 뒤, 지인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마드리드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했다. 하지만 피아와 가브리엘의 얼굴은 벌레에 물린 듯 울긋불긋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특히 피아의 얼굴은 상태가 심각했다. 가렵고 따갑고 고통스러워하는 그녀를 위해 나는 내가 챙겨 온 진통제와 피부과 처방약을 건넸다.

이런 상태로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벌레의 습격

우리는 모두 지쳐 있었고, 그 힘든 상황은 순례자 누구에게나 동등하게 닥쳐오는 것이었다.


피아는 자신이 물린 게 베드버그는 아니라고 했지만, 모기나 개미 외에도 이 길에는 무는 벌레들이 넘쳐난다.

습한 기후에 따뜻한 실내에는 벌레가 들어오기엔 딱 좋은 조건이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같은 방을 함께 썼는데도, 신기하게도 써니는 벌레에 단 한 번도 물리지 않았다.


나의 경우, 진드기 패치와 페퍼민트 아로마 오일, 모기 퇴치 스프레이를 늘 가지고 다녔다. 한국에서는 늘 피부병으로 고생했었지만, 유럽에서는 오히려 한 번도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다행이라 생각하며 길을 걸었다.

어쩌면, 나는 순례길 체질인지도 모르겠다.


도착 전

산티아고는 큰 도시여서, 외곽에서 성당 중심으로 들어가는 길이 손에 닿을 듯 보였지만, 막상 걸어보면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았다. 가까워졌다고 느낄 때마다 또 한참을 더 걸어야 했다. 성당이 가까워질수록 짐을 맨 순례자들과 이미 도착해 쉬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성지순례를 위해 온 관광객들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분수대가 있는 광장을 지나 골목으로 접어들자, 멀리서만 보였던 대성당의 뒷모습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생장에서 그랬고, 레온에서도 그랬듯이 백파이프 소리가 마침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한 순례자들을 위해 울려 퍼지고 있었다.


Restaurante Botafumeiro/뜨거운 환영인사

산티아고 대성당에 도착하기 전, 카페에 앉아 있던 피아의 지인들이 피아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며 자연스럽게 축하의 분위기가 피어났다. 지인들이라고는 했지만, 대부분은 순례길에서 먼저 도착해 있던 순례자들이었다. 하지만 단정하게 차려입은 모습 때문인지 나는 처음엔 그들이 순례자인 줄 몰랐다.


Capilla de San Andrés지넬, 세네카, 카르멘

성당 뒷문 앞에는 긴 줄이 늘어서 있었고, 출구 쪽에서는 지넬, 세네카, 카르멘과 우연히 마주쳤다.

모두 그곳에 있었다. 우리는 반가움 속에서 서로를 축하하며, 성공한 순례자 동지로서 함께 인증샷을 남겼다.

그때 찍었던 사진은 내가 가진 인증샷들 중에서도 가장 따뜻한 웃음이 담긴 소중한 한 장이었다. 지금은 그 사진이 남아 있지 않지만, 그 순간의 웃음과 감정은 여전히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로닛

우리는 저녁에 있을 순례자 모임에서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한 뒤, 자연스럽게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특히 지넬, 세네카, 카르멘과는 이렇게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여러 번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기쁨과 환호로 인사를 나눈 뒤, 문득 조용히 서 있는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바로 로닛이었다.

로닛을 보는 순간, 왠지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이 올라와 눈물이 터져버렸다.

성당 바로 앞 골목에서, 이렇게 간절히 다시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한꺼번에 다 만나다니!!

이건 정말 기적 같았다.


드디어 산티아고 대 성당/Obradoiro Square

우리 원정대는 백파이프 소리가 울려 퍼지는 터널을 지나, 마침내 산티아고 대성당 앞 광장에 도착했다.

성당 앞은 언제나 그렇듯 관광객들과 도착한 순례자들, 그리고 새롭게 여정을 시작하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곳에서 우리는 다시 게일을 만나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생장에서부터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800km의 여정을 완주한 순례자였다. 그리고 길고도 긴 41일간의 여정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사진 이벤트까지 마치고 지금 생각해 보면 피아는 함께 이 마지막 순간을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 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일찍 문을 닫는 크루덴셜 순례자 사무소에 가서 어제 예약해 놓은 순례자 완주 증서에만 온 정신이 집중해서 피아를 살피지 못했다.


사리아부터 산티아고까지 거의 매일을 함께 걸으며 우리는 어느새 가족 같은 사이가 되었다. 우리가 도착한 오후 3시, 날씨는 흐렸지만 다행히도 소원대로 비가 그쳐 있어 기쁨과 환희가 더욱 벅차올랐다. 산티아고에 다시 돌아올 수 있어, 함께 도착할 수 있어 그저 감사하고 행복했다. 못했다.


사진 이벤트까지 마친 후, 지금 돌이켜보면 피아는 이 마지막 순간을 조금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일찍 문을 닫는 크루덴셜 순례자 사무소에 가야 한다는 생각에, 어제 예약해 둔 순례자 완주 증서를 받는 일에만 온 신경이 쏠려 있었다. 그래서 피아의 마음을 충분히 살피지 못했다..



크루덴셜 순례자 사무소

사무소로 향하는 길,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가며 찾아가던 중, 레온에서 핸드폰 매장에서 유심을 사던 한국인 아저씨와 마주쳤다.

우리는 눈이 마주치는 순간,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축하합니다! 고생 많으셨어요! 부엔 까미노!”




산티아고의 분위기를 전하자면, 마을 전체가 마치 대학교 졸업식장 같았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어디선가 축하 인사가 들려오고, 얼굴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나는 크루덴셜 사무소에 도착해 예약 확인증을 보여주고 대기 줄에 섰다. 공교롭게도 내 앞에는 이탈리아인 지안 아저씨가 서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알아보고 축하를 전하며 비쥬를 나눴다.



드디어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 마지막 도장을 받았고, 소정의 비용을 지불한 뒤 순례 완주 증서를 손에 쥐었다. 그 순간, 마음 한편이 환하게 밝아졌다.

생장에서 여권과 조개를 가져갈때 기부제 시스템과 달리 산티아고에서는 인증서를 5유로 정도 주고 구입해야 한다.

인증서를 완료한 후 바로 붙어 있는 기념품샵에서 인증서를 넣어갈 통을 추가로 구입했다.



오늘 이후로는 이제 그동안 사고 싶었지만 짐이 될까 망설였던 기념품들도 마음 놓고 살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가장 먼저 증서를 담을 통과, 순례자 펜던트가 달린 매듭 팔찌를 첫 기념품으로 구매했다.

하지만 매듭팔찌를 매일 매고 다녔더니 매듭이 금새 풀려서 나는 한국에 돌아온 후 명동성당에 가서 묵주를 구입한 후, 팬던트를 옮겨서 차고 다닌다. 아직도 순례자 마크가 있는 양말을 사지 못한 건 가장 아쉬운 일 중 하나다.


Apostal Santiago guiame en el Camino
뜻: 기록물/ 산티아고는 나를 길로 안내합니다.


Loop INN Hotel Santiago de Compostela이제 숙소로

나는 사무소를 빠져나오자마자 숙소로 향했다. 얼른 짐을 풀고 씻고 싶었다.

내 숙소는 메인 대성당보다는 조금 떨어진, 언덕 위 조용한 동네에 있었다. 번잡한 산티아고 중심부와는 살짝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비로소 숨을 돌릴 수 있는 기분이 들었다.


길은 끝났지만, 이미 걷는 데 익숙해진 사람들은 탄력이 붙었는지 피스테라까지 여정을 이어가기도 한다.

실제로 그런 순례자들을 종종 마주치곤 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는 아직까지는 더 이상 걷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쉬고 싶다. 모든 건 휴식을 취한 후에 생각할 일이다.

저녁에는 하루 먼저 도착한 마리아도 만나야 하니, 우선은 푹 쉬는 게 먼저다.


체크인 15:04

비에 젖은 배낭을 메고 계단을 올라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다.

마지막 도착지여서 그런지 도장도 두칸을 다 채울 정도로 큼지막한 모양이었다.


2023년 10월 29일. 산티아고에서 이틀간의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 다른 계획은 그때 가서 생기겠지.

도미토리를 고민했지만, 이번만큼은 제대로 쉬고 싶어서 1인실 호스텔을 예약했다. 화장실도 딸린 방이었다.


41일 동안 함께 해준 내 몸에 주는 최고의 선물이었다.

수많은 생각과 대화를 나누며 나 자신과 걷던 길, 함께 숙소를 나눴던 사람들, 그리고 걸음마다 생겨났던 물집들 마저도 그 모든 시간들을 지나 여기까지 왔다.



인생이 바뀌는 경험

“와!!! 끝났다. 드디어!!!!!!!!”


세리머니를 할 장소가 바뀔 때마다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뒷사람 생각은 잠시 접어두고, 개인 화장실에서 여유롭게 샤워도 하고 빨래까지 마쳤다.
개운하게 방 안에 빨래를 널고 나니, 창밖으로는 숙소 근처 초등학교의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졌다.

정말, 끝났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몸은 여전히 걷는 데 익숙해져 있어서, 계속 길 위를 걸어야 할 것만 같았다.
발바닥은 아직도 뜨겁게 열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제 진정시켜야 한다.
내 발은 신발이 맞지 않았는지, 옆부분과 뒤꿈치에 물집이 끊임없이 생겼고
그래서 작은 발을 근육 테이프로 칭칭 감아 고정한 채 걷는 날이 이어졌다.

하지만 이제는 불쌍한 내 발에 더는 아무런 치료제도, 테이프도 덧댈 필요가 없다.


신발

30만 원이 넘게 주고 샀던 내 호카 신발도, 이제 파리로 돌아가면 작별을 고해야 할 것 같다. 새 신발을 사야 할 정도로, 이 신발은 제 역할을 다 해냈다.

3개월 무이자로 구매했는데, 카드값을 이제 막 다 갚았을 뿐인데 벌써 버려야 한다니, 참 아이러니하다.


처음 이 신발을 신고는 너무 푹신해서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기분이라며, “이건 20년은 신겠다!”라고 호언장담했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현실은 내구성 앞에 참담하게 무너졌다.


한국 지인은 한국 브랜드 신발을 신고 완주했는데, 신발 상태가 놀랍도록 멀쩡해서 그대로 한국까지 가져갔다. 결국 브랜드나 가격보다, 내구성을 가장 먼저 따져야 한다는 걸 이번 순례길에서 뼈저리게 배웠다.


1인실 컨디션

1인실 숙소의 방 상태를 말하자면, 그간 묵었던 비싼 1인실 숙소들과는 조금 달랐다. 이곳은 호스텔이라 그런지 바닥은 타일이었고, 침대는 오염 방지를 위해 비닐로 덮여 있었다.

그래도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 그런지, 이곳에서는 한국인 순례자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벌레가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혹시 몰라 진드기 퇴치 패치를 침대에 올려두고, 모기 스프레이도 방 여기저기에 뿌려두었다.

운동이라고는 딱히 안 하던 저질체력의 내가 41일간 하루도 빠짐없이 걸었다.
그랬더니 어느 순간, 걷는 데 완전히 익숙해져 몸이 아예 다른 사람처럼 바뀌어 있었다.


약속장소로 이동

그렇게 황금 같은 휴식 시간은 금세 지나갔고,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와 성당 근처로 향했다.

캠퍼스를 거닐듯 산티아고 도심을 걷다 보니, 이곳이 얼마나 큰 종교적 성지인지 실감할 수 있었다.

‘산티아고’라는 이름이 붙은 것처럼, 이 도시는 마치 한국의 경주처럼 종교적으로 깊은 의미를 지닌 대도시였다.


크루덴셜 등록 예약을 확인하러 가기 전, 피아와 만나기로 했던 약속 장소가 문득 떠올랐다.
산티아고에 도착했을 때, 피아의 지인들이 테라스에서 우리를 반겨주던 그 장소였다.

나는 지넬과 함께 걷다 다시 마주치게 되었고, 그녀는 저녁에 함께 모이기로 한 파티에 가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먼저 약속 장소에 가봐야 해서 이따가 가겠다고 말하고, La Puerta del Camino 카페로 향했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서야 내가 피아와 만나기로 한 장소가 이곳이 아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지넬을 따라갔어야 했는데, 괜히 혼자서 길을 돌고 만 셈이다.


성당으로 돌아오니 다시 드는 생각

로닛은 성당 뒤 골목에서 우연히 마주쳤을 때, 저녁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이미 다른 친구와 약속이 있다고 말했고, 우리는 짧은 거리만을 함께 걸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래서였을까. 산티아고 성당 뒤편에서 그녀를 다시 만났을 때, 나는 참았던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어쩌면, 우리 사이에 적당한 거리감이 있었기에 더 깊은 편안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순례길에서 마주친 모든 인연이 소중했다. 그 만남들은 길 위의 선물이었다.


Cafe La Morena

나는 결국 마리아에게 연락해 약속 장소를 공유받고, 그곳을 찾아 성당을 지나 다시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계단 끝에 자리한 Café La Morena의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 마치 연극의 마지막 장이 펼쳐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테이블에는 지넬, 카르멘, 세네카, 길리안, 마리, 그리고 다리아까지!

젊은 순례자 친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이곳은 간단한 스페인식 안주를 파는 카페 겸 바였고, 분위기는 편안하고 따뜻했다. 나는 배가 고팠고, 모두가 케이크와 간단한 술안주를 나누며 담소를 나누고 있는 모습이 더욱 식욕을 자극했다.


대형 테이블로 들어가면 피아와 다른 순례자들이 있다고 마리아가 안내를 해주었다.


“세상에!!! 아니 왜 여기 다 모여있지?”


크리스외 처음 본 순례자들

사진이 없다는 게 아쉬울 정도로, 길게 늘어선 테이블은 순례길 초반, 중반, 후반에 마주쳤던 순례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오늘 이 마지막 파티에 게일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부르고스를 지나며 다시 만나지 못했던 호주 아저씨 크리스, 비아나에서 알게 된 아르헨티나 순례자 루시아, 그리고 이탈리아 무리들과 함께 어울리던 미국인 순례자까지—각기 다른 순간, 다른 풍경 속에서 만났던 이들이 모두 한 공간에 모여 있었다.


피부 발진 연고

깔끔한 일상복 차림의 피아와 가브리엘, 그리고 써니와 비쥬도 함께 도착했고, 크리스와도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피아에게는 벌레 물렸을 때 바르는 연고를 가져왔기에, 바르라고 조용히 화장실로 불렀다. 파티장에서 약을 바르는 모습을 누군가가 보면 괜한 오해를 살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피아는 마지막 길을 함께 손잡고 걸었을 만큼 내게는 아주 가까운 존재였다.

오히려 나보다 더 단단하고 따뜻하게 내 마음을 받아주셨다.

나는 그녀를 통해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고 한 발 다가서는 용기를 배울 수 있었다.


산티아고에서 만난, 가족 같은 분이다.

오늘 이 자리, 제대로 된 식사와 웃음, 그리고 이야기.
이제 더 이상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이 가장 소중하다.


젊은 순례자 Group

피아는 많은 사람들이 있는 테이블 자리로 갔고, 나는 젊은 친구들이 있는 테이블로 다시 이동했다. 테이블에서 뭔가를 먹고 있던 사람은 지넬뿐이었다. 이곳은 타파스와 디저트류 외에는 식사류를 제공하지 않는 곳이었기 때문에, 나를 제외한 젊은 친구들은 음료도 마시지 않은 채 수다를 떨고 있었다.


와인과 간단한 안주를 먹었던 건 기억이 난다. 제일 늦게 다리아가 도착했다.

다리아는 백차를 주문했는데, 웨이터가 말귀를 잘 못 알아들어 실랑이가 계속됐다. 나는 이를 도와주려다 오히려 혼선을 주고 말았다. 치즈 안주와 와인 한 잔을 마시고는 자리를 정리하려던 참에, 지넬이 부모님께 영상통화를 하며 우리 모습도 함께 남겼다. 나는 그때 남긴 영상을 기분이 가라앉을 때 자주 재생하곤 한다. 그때 만났던 우리 모두의 웃음 하나하나가 해맑고 마음에 든다.


나는 사진을 찍힐 때 항상 굳은 얼굴로 어색해하곤 했지만, 산티아고에서는 염치 불고하고 자주 사진을 기록으로 남겼었다.


기억의 조각

각자의 성장 과정이 이곳에 고스란히 녹아 있는 듯해, 아마 졸업사진처럼 평생 소장하게 될 것 같다. 생각해 보면, 그때만큼 행복감을 온전히 느끼며 다른 일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지냈던 순간이 내 인생에 얼마나 있었을까?


나는 산티아고를 다시 걷고 싶은 마음을 늘 가슴 한구석에 품고 살아간다. 아마도 그 길이 특별한 이유는, 그 길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만든 추억들이 겹겹이 쌓여 나만의 색으로 그 길을 물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인지 함께 걸었던 순례자들이 늘 그립다. 한 번 걸었다고 해서 다시 걷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한국이라는 테두리를 벗어나 더 큰 도약을 준비할 수 있다면, 다시 그 길 위에 서고 싶다.


무르익은 파티 분위기

나는 다시 피아가 있던 테이블로 돌아가 빈자리를 비집고 앉았다. 크리스와 루시아는 정말 초반 길에서만 보고 오랜만에 다시 마주친 터라 반가움이 컸다. 나는 이때까지도 루시아를 팜플로나에서 만났던 이탈리아 순례자 사라로 착각하고 있었는데, 두 사람의 인상이 비슷해서 헷갈렸던 것이다. 초반에 출발했던 이들이 아직 이곳에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이탈리아 무리들과 함께 있던, 여성스러운 분위기의 미국인 순례자와도 이 자리에서 처음으로 인사를 나눴다. 나와 그는 늘 눈인사만 주고받았지만, 이 자리에서야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는 “그때는 정신이 너무 없어서 제대로 대화를 못 나눴다”며 웃었고, 나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건넸다.


1년이 넘은 지금, 그날을 떠올리면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로 들리는 웃음소리, 부딪히는 와인잔, 반가움과 아쉬움을 나누던 얼굴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산티아고를 완주한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가벼움, 후련함, 그리고 어쩔 수 없는 아쉬움이 한데 섞여, 모두가 자신만의 산티아고를 토해내고 있었다.


다시 마리아가 있는 테이블로 가서 마리아, 세네카, 카르멘, 길리아, 나, 다리아 이렇게 모여서 처음으로 단체사진을 남겼다.


Restaurante Casa Sixto 저녁식사

저녁 식사를 위해 자리를 옮길 시간이 되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각자의 숙소로 돌아가고, 나와 마리아, 피아 가족들, 그리고 피아의 지인들만이 함께 식사 장소로 이동했다.


도착한 식당에는 직사각형 테이블이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테이블 한쪽 끝자락에 앉았고, 내 옆에는 산살바도르 출신의 순례자 루이스가 자리를 잡았다. 마주 앉은자리에는 마리아가 있었고, 그녀 옆으로는 가브리엘, 그 옆에는 써니와 피아가 나란히 앉았다. 피아의 지인들까지 포함해, 모두 여덟 명 정도가 한 줄로 길게 늘어선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긴 하루의 끝, 서로 다른 여정을 걸어온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나누며 자연스레 대화를 이어갔다.

여전히 아까 카페에서의 흥분은 가시지 않고 여전히 축제의 밤을 열고 있었다.

마치 마지막 장을 넘기는 듯한 저녁이었다.


산티아고의 축제의 밤

길을 걸을 때는 늘 배가 고팠기에 먹는 양도 많았는데, 오늘 산티아고에서 먹은 스테이크는 그중에서도 유난히 양이 많았다. 나는 익숙하게 저녁 식사와 함께 잔 와인을 주문했고, 마리아는 논알코올 맥주를 마셨다. 우리는 모두 잔을 부딪히며 서로의 여정을 축하했고, 식탁 위로는 "축하해!"라는 말들이 끊임없이 오갔다.


정말이지, 정신없이 흘러가는 산티아고의 밤이었다. 아마 이 도시는 겨울과 초봄을 제외하면 1년 내내 이런 밤들로 북적일 것이다. 순례길을 마친 이들이 하루하루 축배를 들고, 또 누군가는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며 이곳을 가득 채우는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피로도는 얼마나 쌓일까, 상상도 잘 되지 않았다. 마치 팜플로나에서 겪었던 그 축제를 매일같이 치러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길 위에서 처음 팜플로나에 들어섰을 때, 나는 이 사람들이 얼마나 ‘노는 데’ 진심인지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오늘 이 밤, 산티아고에서도 같은 열정을 다시 한번 실감하고 있었다.


마리아의 계획

마리아에게 다음 일정을 물어보자, 산티아고에서 하루 더 휴식을 취한 뒤 피스테라까지 걸을 계획이라고 했다. 원래는 내일 출발이었으나 내일 우리는 점심 약속을 잡았고, 하루를 더 연장해서 산티아고를 머물게 되었다.


나는 문득 마리아의 한국 이름을 지어주고 싶어졌다. 이미 ‘마리아’라는 이름은 한국에서도 익숙하게 쓰이지만, 그녀에게 어울리는, 조금 더 한국적이고 아름다운 이름을 선물하고 싶었다. 순수하고 맑은 영혼을 가진 마리아에게 어울리는, 그런 이름을 말이다.


파티의 마무리

식사를 마칠 즈음, 고기 양이 너무 많아 결국 다 먹지 못했다. 각자 20유로씩 계산했던 것 같은데, 누군가가 더 큰돈을 내면서 우리는 계산할 필요가 없어졌다. 밤이 깊어갈수록 분위기는 더 흥에 겨워졌고, 들뜬 마음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나와 마리아는 먼저 숙소로 돌아가겠다며 인사를 하고 자리를 나섰다. 남아 있던 몇몇은 아마 2차를 갔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는 식당을 나오며 연신 단체사진을 찍었다. 정신없이 인사를 나누고 식당 문을 빠져나온 뒤, 혼자 조용히 숙소로 향해 걷다 보니 이제 정말 끝이 났구나, 실감이 났다. 돌아가기 싫을 만큼, 이곳에 마음이 깊이 젖어버린 것이다.

정해진 다음 일정이 없던 나에게, 마리아가 100km를 더 걷는다고 했을 때 “미쳤다”라고 말했지만, 막상 그 이야기를 들으니 나도 어쩌면 더 걸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걸을지는 내일 하루 쉬면서 천천히 고민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으며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지나 언덕을 오르자, 조용한 마을 풍경 사이로 산티아고 대성당이 목만 빼꼼히 내밀고 있었다. 학교 바로 옆에 있는 내 숙소는 고요했고, 그 적막 속에 나는 조용히 안착했다.


다시 숙소방으로

내일 점심, 로닛은 버스를 타고 파리로 떠난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10월 30일 아침, 그가 출발하기 전에 함께 아침을 먹자고 약속했다.

나는 1인실 1호 방으로 들어가 조용히 침대에 몸을 눕혔다. TV라도 있었으면 이 적막함을 조금은 덜 수 있을까?

조금 전까지 정신없이 들떠 있었던 축제의 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방 안은 숨소리조차 조용한 고요함으로 가득했다.

머리를 베자마자, 밀려드는 피로가 한꺼번에 덮쳐왔다. 그렇게 산티아고에서의 첫날밤이 조용히, 그러나 깊게 지나갔다.



Buen Cami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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