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 타고 떠나는 순례길의 끝(Cost da Morte)
나는 어제, 10월 31일 오전 10시 피스테라행 버스 티켓을 예약했다.
그런데 저녁 식사 시간에 안나와 이야기를 나눈 뒤 계획을 바꿨다.
우리는 오전 9시 버스를 타기로 했고, 아침 8시에 중간 지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참 웃긴 게, 사람이 20일 넘게 같은 생활을 반복하다 보면 모든 행동이 특별한 일이 아니라 익숙한 습관처럼 느껴진다. 오늘도 새벽부터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 신발을 신기 전에 비에 젖지 않도록 발을 비닐로 꽁꽁 감싸고 있었다. 익숙하게 트레킹화를 신고, 짐을 챙겼다. 오늘 피스테라에 가서 하룻밤을 자고 올 예정이라, 두고 가는 건 없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조금 찝찝한 건, 어젯밤 방에서 배드버그를 한 마리 잡은 것 같다. 역시 저렴한 숙소는 이런 부분을 신경 써야 한다.
사실, 저렴한 숙소뿐 아니라 비싼 곳에서도 빈대가 나온다는 얘기는 한국까지도 흉흉하게 퍼져 있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내가 챙겨 온 진드기 패치와 모기 퇴치 스프레이가 조금은 도움이 되었을 거라는 점이다.
Hostel Mafel
다시 순례자처럼 짐을 챙겨 안나와 만나기로 한 Hostel Mafer까지 약 10분 정도를 걸어 내려갔다. 중간 지점에서 안나를 만나 함께 산티아고 버스터미널로 향했고, 거기서 마리앤과 베네딕트도 다시 만났다.
어제저녁 조셉님도 피스테라 현지 단체관광을 갈 거라고 했었는데 거기서 마주치려나 하는 생각을 버스터미널로 내려가며 생각했다.
피스테라에 예약한 숙소가 어떤 곳일지 몰라, 익숙한 순례자용 숙소로 선택했다. 계획이라기보단 충동에 가까운 결정이었다. 너무 즉흥적으로 숙소를 예약했고, 여행도 그에 맞춰 실행됐다.
사실 여정의 후반부 내내, 한동안은 바다가 그립지 않을 정도로 넓고 탁 트인 자연 속에서 걸었기에 큰 갈망은 없었다. 하지만 바로 옆, 단 한 시간만 가면 도착할 수 있는 ‘땅끝 마을’ 피스테라가 있는데, 안 가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버스터미널에는 8시 30분쯤 도착했다. 미리 예약해 두었던 10 시행 티켓은 현장에서 9 시행으로 변경했다.
산티아고 버스터미널에서 버스 시간을 바꾸고 나서, 피스테라행 버스를 기다리는 긴 줄 앞에 서 있었다. 승강장은 피스테라행과 포르투갈의 Porto행이 나란히 붙어 있어, 사람들의 이동이 분주했다. 우리는 출발 시간이 정확히 맞춰지지 않는 버스 대기 줄에서 짜증을 내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오랜만에 익숙한 얼굴이 내 앞에 나타났다. 정말 예상치 못한 만남이었다. 바로 빌라바와 부르고스에서 만났던 이탈리아인 순례자 루이스였다. 초반길에서 그는 종아리 통증을 호소하며 매우 천천히 걷고 있었고, 나의 경우 수비리 가는 길부터 식중독 때문에 아무것도 먹지 못하던 아주 서로 고생을 자처하며 적응을 하고 있던 때였다. 빌라바 숙소 공유 주방에서 직접 만든 해물 빠에야를 먹고 나서야 음식을 다시 먹기 시작했다. 그때의 기억은 절대 잊지 못할 초반길의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초반에는 통증에 시달리며 약해 보였던 루이스의 모습은 어느새 사라지고, 덥수룩한 수염과 헤어밴드로 무장한 완벽한 순례자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피스테라를 완주한 후, 그는 오늘 포르투로 가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이탈리아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여행이 끝나간다는 사실에 뭔가 아쉬운 마음도 담겨 있었다. 반가움과 아쉬움이 섞인 순간, 우리는 그 자리에서 왓츠앱 번호를 교환했다.
순례를 완주한다는 것은 단순히 외적인 모습만으로 판단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처럼 처음에는 힘든 상황이었지만, 끝까지 해냈다는 사실이 그 증거 아닐까? 나와 루이스가 바로 그 예일 것이다.
루이스는 초반에 통증으로 최약체로 보였고, 나 역시 저질체력과 식중독에 걸려 힘든 시간을 보냈다. 모두가 완주할 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이제는 완주를 마친 후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 온 것이다.
뒤늦은 만남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그만큼 기쁜 재회였다. 우리는 다시 연락하며 계속 연결된 인연을 이어가기로 했다.
다음 여행에 대한 고민 없이, 자연스럽게 그 여행이 나를 이끌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피스테라를 여행한 후, 포르토로 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30분째 도착하지 않는 버스를 기다리며 루이스와 수다를 떨고 있는 게 전부였다.
결국 나는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버스가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을 봤다.
루이스와 그렇게 만남과 이별을 동시에 겪으며, 아쉬운 인연의 타이밍이 스쳐 지나갔다.
‘또 만나자! Buen Camino!’
오늘 산티아고의 날씨는 흐리기만 하고, 언제든 비가 올 것 같았다. 하지만 비와 태양을 동시에 볼 수 있다는 점이 이곳의 특징이었다.
버스 앞쪽 자리에 안나와 함께 앉았다. 그제야, 비닐을 발에 감싸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버스에 올라타면서 비닐을 벗어 보조가방에 넣고, 트래킹화를 다시 신었다. 이제 비닐을 감쌀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졌다.
도시를 빠져나가는 길, 햇빛에 찬란히 빛나는 산티아고가 구름과 어우러져 아름답게 빛났다. 하루만 머물고 산티아고로 돌아갈 거라 생각했지만, 이미 마음은 순례길을 다 마친 듯한 기분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며 창밖 풍경을 바라보니, Navarrete에서 하갈 언니와 브라질 순례자 아나를 만났던 초반길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기차나 버스를 타면, 이렇게 지난 일들이 떠오른다. 그때 그 순간들, 그리운 마음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온전히 내 발이 땅에 닿아 걷고 있다는 사실이 소중하게 느껴졌다.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를 빠져나오자, 구름 사이로 햇살이 간간이 비쳐왔다. 창밖 풍경 사이사이로 배낭을 메고 걷는 순례자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저 길 위에서 걷고 있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지만, 지금 이렇게 안나와 함께 피스테라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고 느꼈다.
버스는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달렸다. 비가 내리다 햇빛이 스며들고, 다시 비가 내리기를 반복했다. 마음도 덩달아 출렁였다. 어쩌면 이 길의 끝에서, 나도 하나의 계절을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던 중 갑자기 버스가 멈춰 섰다.
말없이 밖으로 나갔다 돌아온 마리앤은 멀미로 토를 했다고 했다. 나는 안나에게 종종 듣기만 했던 마리앤을 떠올렸다. 직접 대화를 나눈 적은 없지만, 순례길 위에서 마리앤은 늘 빠른 걸음으로 묵묵히 걷는 이었고, 안나는 그런 마리앤을 늘 걱정하며 살뜰히 챙기곤 했다. 이렇게 구불구불한 산길에서 멀미를 한 것도, 어쩌면 그녀에겐 또 하나의 여정이었을지 모른다.
잠시 후,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 곧, 피스테라에 닿을 시간이었다.
‘세상의 끝’. 위도와 경도가 0도에 가까운 그곳. 그곳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의 마지막 마침표를 찍게 된다는 생각에, 산티아고에 도착했던 날보다도 더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 순례자로서의 익숙한 일상, 그 익숙함과도 이별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산티아고에서 오전 9시 30분을 조금 넘겨 출발한 버스는, 점심시간이 되기 전 피스테라에 도착했다. 아직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마을의 카페들은 대부분 문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통영 시내버스터미널처럼 소박한 승강장에서 내려, 안나에게 짐을 맡기고 체크인을 먼저 한 뒤, 근처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조용하고 고요한 바다 마을 풍경이 마음에 쏙 들었다. 통영 시내에 막 들어섰을 때 느꼈던, 그 정겨운 정적과 닮아 있었다.
왜 많은 순례자들이 산티아고에 도착한 뒤에도 굳이 피스테라까지 발걸음을 옮기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소란스러운 산티아고의 도심과는 전혀 다른, 조용하고 아담한 마을의 분위기. 여기는 마치 시간을 잠시 멈춰놓은 것 같은 곳이었다.
터미널에서 위쪽으로 5분쯤만 올라가면 모습을 드러내는 알베르게 포르 핀은 헝가리 순례자가 만든 숙소였다. 체크인을 마치고 벙커 침대에 자리를 잡은 뒤, 나는 가볍게 짐을 정리하고 안나가 기다리고 있는 Restaurante El Puerto로 향했다.
카페테라스에 앉아 안나와 함께 햇살을 맞으며 바다 마을의 여유를 만끽했다. 이 순간만큼은 모든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했다. 등대까지 이어지는 트레킹 코스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아직은 걷기보다 앉아 쉬는 것이 먼저였다.
그때 마리앤은 멀미가 심해서 다른 곳에서 쉬고 있었고,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는 몰랐지만, 나와 안나는 그렇게 조용한 시간 속에 함께 머물렀다.
Puerto de Fisterra—요트들이 잔잔히 떠 있는 정박지와 끝없이 펼쳐진 바다 풍경은 여독을 말없이 씻어주었다. 오늘 하루, 그 순간은 우리에게 조용한 휴식이 되어주었다.
안나와 함께 Praia da Ribeira의 작은 해변에 들렀다. 썰물이 드러낸 모래밭 위를 조심스레 걸으며 조개를 찾았다. 조용한 바닷가에서 그렇게 한참을 보내다 보니, 자연스레 발걸음은 등대를 향한 트레킹 코스로 이어졌다.
우리는 Bota de Fisterra—땅끝 순례자의 신발 동상이 있는 그곳을 향해 걸었다. 다시 나타난 노란 화살표가 익숙한 듯 반가운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가는 길은 살짝 헷갈리는 구간이 있었지만, 중간 마을을 가로지르고 작은 샛길로 접어들자 길이 열렸다. 길가엔 고양이들이 유난히 많이 나와 있었고, 오랜만에 찾아온 햇살을 만끽하며 저마다의 자리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뿔뿔이 흩어져 있던 순례자들이 땅끝에 가까워질수록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도 있었고,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아가는 순례자들도 있었다. 또, 산티아고에서 버스를 타고 관광을 온 여행객들의 모습도 보였다.
등대가 가까워질수록 바다와 맞닿은 지대는 점점 높아졌고, 산을 오르며 맞바람을 정면으로 마주하자 눈을 뜨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정상으로 오르는 길, 중간 지점에 자리한 Santa María das Areas—산타 마리아 성당으로 향하던 길목에서 마리앤과 베네딕트를 다시 만났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한 무리가 되어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언덕 끝자락, 비석과 순례자 동상이 모습을 드러냈고, 마치 우릴 기다리기라도 한 듯 그곳에는 수잔과 수잔의 친구가 먼저 도착해 있었다.
기쁨과 환희가 차올랐다.
우리는 말없이 서로를 안고, 눈빛을 나누며, 그 상징적인 비석 앞에 섰다.
0.00km.
순례길의 끝.
온전히 800km를 걸어낸 우리에게 주어진 선물 같은 순간이다.
우리는 연신 셔터를 눌러대며 그 기쁨을 사진으로 남겼다. 이건 단순한 기념사진이 아니었다. 우리 모두가 견디고 걸어낸 시간의 증거이자, 완주의 환희를 나누는 의식이었다.
순례자 신발 동상이 서 있는 절벽 끝.
모든 순례자들이 마치 하나의 의식을 치르듯, 거센 바람을 맞으며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네덜란드에서부터 묵묵히 걸어온 안나.
그리고 산티아고부터 여정을 함께했던 마리앤, 베네딕트, 그리고 나.
우리는 그 절벽 위에 나란히 앉아,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아홉 번 넘게 이 길을 걸었다 해도, 매번 쉽지 않았을 그 여정의 끝에서—
안나와 마리앤은 조용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기념사진을 찍을 때조차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었고, 바람에 휘청거려 우리는 돌담을 붙잡고 서 있어야 했다.
그때, 친절한 어느 순례자가 다가와 우리 앞뒤로 사진을 찍어주었다.
함께한 시간, 흘러간 풍경, 그리고 이 마지막 장소를 기억해주기라도 하듯,
운 좋게도 하늘은 개어 있었다.
지평선까지 훤히 드러난 바다는, 우리의 마지막 추억을 한 폭의 그림처럼 남겨주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가, 우리는 등대 옆에 있는 카페로 조용히 자리를 옮겼다.
등대를 오르내리는 맞바람에 더 빨리 피로가 몰려왔던 것 같다.
점심도 거른 터라 배까지 고팠다.
우리는 등대 옆 카페에 앉아 한참을 쉬었다.
이곳에 서식하는 새들은 이미 관광객들에게 음식을 받아먹는 데 익숙해져 있었다.
테이블 위를 기웃거리며 무엇이라도 얻어갈 기세였다.
마리앤은 치즈와 하몽 세트를 주문해, 기본으로 나오는 빵과 함께 먹었다.
나는 맥주 한 잔을 마셨던 것 같다.
푸른 바다는 한없이 바라보아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역시 피스테라에 오길 잘했어.’
그리고 마지막 길을 안나와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식당을 나와 포구 근처 벤치에 앉았다.
세 사람 모두 각자의 버스 시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아직 버스는 한참 남았고, 그만큼의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었다.
익숙하게 맞이했던 카미노의 아침이 더 이상 없다는 사실이,
지금 이 순간마저 아쉽게 만들었다.
안나는 다음 날 마드리드에서 비행기를 타고 네덜란드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이제는 더 이상 걷지 않는 여정.
그녀는 나에게 있어 카미노에서 만난 최고의 가이드이자 친구였다.
2023년 하반기에는 폴란드에서 판화 전시까지 예정되어 있다고 했다.
집으로 돌아가 또다시 바쁜 일정을 보내겠지.
등대에서 만난 수잔은 친구와 함께 리스본으로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고 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나에게 다시 한번 세비야 여행을 권했다.
스페인 북부와는 전혀 다른, 아랍과 아프리카의 영향을 받은 남부의 풍경.
늘 태양이 떠 있는 따뜻한 휴양지.
‘꼭 가보라’며 두 사람 모두 입을 모았다.
점점,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안나와 마리앤, 베네딕트와 함께 땅끝 등대를 한 바퀴 돌고, 다시 첫 도착지인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왔다.
산티아고로 떠나는 마지막 버스를 타기 전, 우리는 비즈와 포옹을 하며 서로를 배웅했다.
수많은 끝맺음이 있지만, 시작만큼이나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바로 '마지막'이다.
그렇다고 붙잡을 수도 없기에, 그 순간이 더 소중하고 아쉽게만 느껴진다.
이 순간을 글로 쓰고 있는 지금조차도, 그때의 아련한 감정이 여전히 마음 깊숙이 올라온다.
버스 창가에 앉은 안나에게 계속 손을 흔들며, 나는 버스가 떠날 때까지 그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봤다.
버스가 떠난 뒤 터덜터덜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 입구에는 꼬막 크기의 작은 조개들이 카미노 돌들과 함께 장식되어 있었다.
숙소 안에는 '도둑을 조심하라'는 경고와 '외부인 출입 금지'라는 문구가 카미노 길에서의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
가방 지연 사고 이후, 나 역시 멘탈이 털린 경험이 있었기에, 이번엔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카미노 조개를 하나 집어 들고 공용 거실로 들어갔다.
호스트는 새로운 게스트들을 체크인시키느라 분주했다.
처음엔 뒷모습이라서 알아보지 못했지만, 체크인하는 순례자가 팔라스 드 레이에서 가방 지연 사고 때 알게 된 미국인 순례자 '마크'와 이탈리아 순례자 '로'였다.
그때는 가방 문제로 정신이 없어서 깊은 대화를 나눌 여유가 없었는데, 긴 여정을 함께 이곳까지 온 모습을 보며 두 사람이 연인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우리는 다시 만난 반가움에 비쥬와 포옹을 나눴다.
당연히 이들은 걸어서 피스테라까지 왔을 것이다.
안나와의 이별 뒤, 다시 만난 반가움이 새롭고, 그 속에서 아쉬움도 함께 공존했다.
마크와 로가 체크인을 마치는 동안, 나는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잠시 지켜보다가 천천히 1층 방으로 향했다.
피스테라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짐을 침대 위에 풀어놓고 바로 밖으로 나왔었다.
그땐 아직 12시도 안 된 이른 시간이었고, 방 안에는 나 혼자뿐이었다.
그러니 지금 다시 올라가면 어떤 사람들이 도착해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내 자리는 미로 같은 구조의 방들 중 가장 안쪽, 문을 열자마자 왼편 창가에 있는 1층 침대였다.
방은 그리 크지 않았지만, 오밀조밀하고 아늑했다.
그리고 무언가…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다. 사람들의 온기가 방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것처럼.
문을 열고 들어서자, 내 침대 맞은편 2층 침대에 앉아 있던 세네카가 눈에 들어왔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대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휴대폰 문자를 보내고 있었다.
방 안쪽에는 전에 봤던 호주 순례자 늙은 노모와 아들이 보였다. 우리는 서로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세네카와 나는 Calzadilla de la Cueza에서 처음 만났고, Mansilla de las Mulas에서도 같은 숙소를 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서로 쿨하게 인사만 나눌 뿐, 특별히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나는 인사치레로 오늘 일정이 어떤지 물었고, 세네카는 짧게 대답했다.
그렇게 몇 마디 나누고는 다시 피스테라의 바깥으로 나섰다.
낯선 마을, 익숙한 얼굴들, 그리고 다시 혼자가 되는 이 감정이 조금은 묘했다.
조금 전, 안나와 마리앤, 그리고 베네딕트가 버스를 타기 전에 들렀던 그 마트.
마리앤은 거기서 기념품을 한 아름 챙겼다. 잼이며 과일, 자질구레한 것들을 배낭에 잔뜩 담아선 물가가 싸다며 좋아했다.
멀미로 버스에서 토를 하던 모습은 이미 기억 저편이었다.
그렇게 만족스러워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괜히 웃음이 났다.
어쩐지 한국의 아줌마들과 닮아 있어서. 낯설지 않은 익숙한 모습이었다.
나는 그때 아무것도 사지 않았기 때문에, 저녁을 해결하려면 다시 마트에 들러야 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일단, 이 마을을 조금 더 걸어보고 싶었다.
조금 전, 0.00km 비석 근처에서 수잔을 우연히 만났을 때, 수잔이 조셉님을 만나 나눈 대화를 얘기를 해준 내용이 기억나 조셉님에게 연락을 드렸다.
관광버스 그룹투어로 피스테라에 잠깐 들렀던 조셉님이, 이곳이 생각보다 훨씬 마음에 들었다며—그래서 내일 다시 혼자 이틀을 더 머물 계획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는 다시 발걸음을 바닷가로 옮겼다. 아까 안나와 함께 걸었던 길을 따라, 익숙한 해안으로.
하늘은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맑았던 햇살은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구름이 차츰 퍼져 나가며 비 예감을 물씬 풍겼다.
서둘러 해안가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오전과는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물이 가득 차버린 바닷가엔 모래사장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바람은 차가웠고, 잔잔했던 물결은 이제 제법 파도를 품고 있었다.
그곳에서, 함께 걷던 미국인 아버지와 아들이 보였다.
그들은 차가운 가을바다에 옷을 입은 채 뛰어들고 있었다.
모래사장에는 일본인 순례자가 맨발로 발을 담그고, 천천히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평화로웠다.
그러다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순식간에 무너졌고, 바다는 거세게 포구까지 밀려왔다.
파도는 모래사장의 끝까지 차오르고, 마을 전체가 숨을 고르는 듯한 공기로 바뀌었다.
예측할 수 없는 날씨처럼, 이곳에서의 시간도 그랬다.
잠깐 동안의 고요와 기쁨, 그리고 갑작스레 찾아오는 변화.
그것이 피스테라의 매력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를 한참 바라보고 있을 때, 문득 먹구름이 밀려오더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급히 자리를 피해야 했는데, 포구 아래에서 보이던 일본인 순례자가 시야에서 사라져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일본인은 마치 일상처럼 해안가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마침 개를 데리고 산책하던 콜롬비아 순례자와 근처 슈퍼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독일인까지, 우리는 갑작스러운 비를 피해 슈퍼 처마 아래 자연스럽게 모여들었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나라와 자기소개를 하며 가벼운 대화를 이어갔다. 콜롬비아 순례자는 순례길 내내 큰 반려견과 함께 텐트를 치고 야영하며 걸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에서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이 콜롬비아인은 스페인 산티아고에서 대형견과 함께 걷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어떻게 일본어를 그렇게 잘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일본에 잠시 살았다고 대답했다.
나는 고등학교 때 배운 일본어와 중국어 덕분에 한자를 읽을 수 있었고, 일본 순례자와의 대화 중 일부는 일본어로 섞어 말했다. 옆에 있던 일본인 순례자는 내가 일본어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꽤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중에 들으니, 그는 나를 일본 사람으로 생각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내가 한국 사람인 걸 알고는, 일본어를 할 수 있는 한국 사람에 대해 놀랐다고 했다. 그 옆에서 조용히 담배를 피우며 우리를 지켜보던 독일인 순례자는 특별히 대화에 끼어들지는 않았지만, 묵묵히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동안, 우리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여자들끼리의 대화는 빠르게 진행되었고, 많은 정보가 오갔다. 잠시 비를 피할 겸 슈퍼 안으로 들어가 구경을 하다 다시 나와, 나는 일본인 순례자와 함께 버스터미널까지 걷게 되었다.
이 일본인 순례자의 이름은 아야였는데, 런던에 살고 있는 아야와 이름이 똑같았고, 고향은 후쿠시마라고 했다. 아야는 오늘 마지막 산티아고행 버스를 타고 이동할 계획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내가 산티아고에서 묵었던 Loop INN Hostel Santiago de Compostela를 추천해 주었다.
아야상과 나는 계속 버스정류장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마침 정류장에 Albergue Zendoira에서 미국인 순례자와 함께 있었던 이탈리아인 무리 중 가장 잘생겼던 이탈리아 순례자가 나타났다.
이름은 마티아였다.
마티아는 Palas de Rei의 숙소에 있을 당시에는 무리들과 함께 있어서 꽤 장난스러운 인상이 강했는데, 홀로 떨어져 있는 모습은 그때와는 다르게 정중하고 친절해 보였다. 사실 나 역시 팔라스 드 레이에서 배낭 사건으로 누군가를 제대로 볼 여유가 없었는데도 그가 기억에 남았던 걸 보면, 꽤 인상적인 사람이었던 모양이다.
마티아와 나는 두 번째 만남이라며 친숙하게 인사를 건넸다. 아야와 나는 마티아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짓궂은 질문을 던졌다.
"그렇게 잘생기면 어떤 기분이 드니?"
그는 우리의 농담에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나는 이탈리아에서는 평균적인 외모를 가지고 있어!"라고 말하며 겸손하게 웃었다.
마티아는 매일 30km를 걸으며 피니스테라까지 왔다고 했다. 그리고 산티아고에 버스를 타고 돌아가서 내일은 어쩌면 공항까지도 걸어서 갈 거라며 윙크를 하며 농담을 건넸다. 우리는 서로 낄낄대며 "미쳤다"라고 농담을 주고받았다.
어느새 떠날 시간이 다가왔다.
어쩌면 우리는 순례를 완주하고 국적이나 나이, 신분이 아닌 '순례자'로서 서로에게 마음을 열었기에, 예전에는 나누지 못했던 가벼운 이야기로도 웃음을 나누며 짧은 만남에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들을 조금 더 일찍 만났으면 어땠을까 싶게, 짧은 만남이 아쉽게 느껴졌다.
안나를 태웠던 버스가 이제는 마티아와 아야를 태우고 떠나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미련이 남는 기분을 느꼈다.
늦가을로 접어들면서 해가 정말 급격히 빨리 지는 것 같았다. 해는 이미 졌지만, 늘 저녁 식사를 늦게 하는 스페인의 레스토랑들은 여전히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다. 음식점을 찾아 마을 안쪽을 샅샅이 돌아다녔지만, 눈에 띄는 식당은 보이지 않았다. 차라리 아까 안나와 커피를 마셨던 곳으로 방향을 틀었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마침, 나처럼 일찍 저녁을 먹으려 마을을 배회하던 같은 방을 쓰는 호주 할머니와 그녀의 아들과 마주쳤다. 그 두 분을 보니 중학교 시절 호주 연수 때 홈스테이했던 호스트 가족이 생각나서인지, 묘하게 낯설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함께 식당을 찾아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되었다.
하지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밤길을 언덕 위로 올라가다 갈림길에서, 나는 결국 식당 찾기를 포기했다. 대신 편의점에서 샐러드와 맥주, 과자를 사서 숙소로 돌아왔다.
숙소 주방에는 덩치 큰 헝가리 아저씨가 감기에 걸려 기침을 심하게 하고 있었다.
고된 순례를 마치고 추운 날씨에 긴장까지 풀리니, 아무래도 몸이 더 아픈 것이다.
멀찍이 혼자 앉아 샐러드 박스를 열고 드레싱을 뿌려 샐러드와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마크가 내려와 요리를 하기 시작했다. 닭요리를 할 건데 둘이 먹기에는 양이 많을 것 같다며 함께 먹자고 권했다. 헝가리 아저씨는 연신 기침을 해댔다.
마크는 유머가 있긴 하지만, 친절한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에게는 친절하게 대해줘서 고마울 따름이다.
친절하기보다는 쿨하다고 해야 할까? 우리가 일찍 서로를 알게 됐다면 진짜 친한 사이가 되었을 것 같다.
피스테라의 같은 숙소에서 다시 만난 것도 인연이었고, 우리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꽤 잘 맞았다.
삼계탕 비슷하게 끓인 닭죽이란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지만, 그 맛이 낫다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유럽에서 삼계탕을 먹는다고? 한 그릇을 떠서 닭과 함께 먹었던 기억이 난다. 몇 번이나 맛이 어떤지 물어봤는데, 아시아인이 칭찬에 후해서 진짜 맛이 어떤지 말을 안 해준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맛이 있었으니 한 그릇을 다 비웠겠지. 맛없었으면 내가 한 그릇을 다 먹었겠냐고 얘기해 줬더니, "너 진짜 영어 잘한다"며 웃어댔다.
내가 생각하기에 영어를 문법적으로 잘 구사한다기보다는, 내가 리액션을 살짝 현지식으로 해서 더 현지인들이 느끼기 좋았던 게 아닐까 싶다.
배부르게 식사를 마친 후, 길었던 피스테라 여행의 하루가 저물어 갔다. 마크와 로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방으로 올라갔다. 방 안에서는 세네카가 익숙하게 이층 침대에 등을 기대고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호주 모자 역시 돌아와서 내가 갑자기 사라져서 찾았다고 했다.
세네카는 피스테라의 신발 동상 앞에서 친구들과 와인 파티를 했다고 말했다. 그런데 오프너가 없어서 꼬챙이로 와인을 열고 축하 파티를 했다는 영상을 보여줬다. 영상 속에는 에바, 카르멘, 그리고 다른 순례자가 함께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산티아고에서 카르멘과 함께 있었던 것이 우연이 아니었나 보다. 에바와 카르멘, 세네카가 셋이 친했던 것을 그 영상을 보고 나서 알게 되었다.
내일 일정
내일 일정으로 산티아고에 돌아가 올든을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산티아고에서 1박을 더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원래 머물렀던 Loop INN Hostel Santiago de Compostela에 추가로 예약을 했다.
올든과 나는 Vega de Valcarce에서 함께 요리를 해 먹으며 즐거운 하루를 보낸 기억이 있다.
"그녀는 내가 아는 가장 멋진 순례자이자, 한 가정의 엄마이자 큰언니 같은 존재였다."
올든은 지금 **라코루냐(A Coruña)**라는 북쪽 휴양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내가 산티아고에 도착해 그녀에게 연락을 했을 때 이미 코루냐로 떠난 후였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일정을 맞춰 11월 1일에 산티아고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하루 종일 길었던 일정 탓인지 아직 9시밖에 안 되었는데, 벌써 눈이 감겼다.
나는 순례길의 끝자락에서 처음 느꼈던 두려움과 슬픔, 그리고 과거의 트라우마가 어느새 사라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현재에 있다. 앞으로 내가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모르지만, 그 하나만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한 걸음 내딛기만 하면 된다. 그렇게 가면 된다.
Buen Camino!
"안나와 피스테라 여행 사진을 공유하며 가슴이 따뜻해지는 문자를 보내주셨다.
그 문자를 보고 뭉클해져서, 다시 한번 안나가 그리워지는 밤이었다."
네,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함께했잖아! 멋지지 않아?!!
넌 정말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사랑스러운 젊은 여성이야.
유쾌하고, 매력 있고, 진정성 있는 성격에
사람을 좋아하고,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몰라도
용기 있게 선택할 줄 아는 사람이야.
황금 같은 마음을 가졌고,
외모도 예쁘고 멋져.
(이건 아주 중요한 건 아니지만 도움이 되긴 해ㅎㅎ)
계속 말할 수 있지만,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이거야:
지금처럼 계속 나아가! 늘 너 자신 그대로 있어줘!!!
재미있고 멋진 삶을 살아가길 바랄게!
너에게 모든 좋은 일들이 가득하길 바라며.
안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