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포르투갈 입성기

포르토 첫날-스마트폰 없이 살아남기

by 양작가

산티아고 길을 떠나며, 이제 진짜 유럽 여행이 시작된다는 기대에 들떠 있었다.
고생 끝, 새로운 여정이 펼쳐질 거라는 희망도 함께였다.

하지만, 포르투갈 여행 역시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나의 첫 유럽 여행 때도 그랬다.


혼자 벨기에에 도착해선 종이지도를 들고 숙소를 찾아 헤맸고, 체코에서는 울퉁불퉁한 동유럽 벽돌길에서 걸려 넘어져 대짜로 나뒹굴며 코가 깨졌었다.

그런 기억들이 있었음에도 산티아고 완주 후엔 그냥 '휴가다!' 싶어, 별생각 없이 포르투갈행을 결정했다.
즉흥적인 선택이 결국 변수였던 셈이다.


왜 그런지, 가장 힘들었던 여행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포르투는 내게 그런 도시였다.

비는 여전히 그치지 않았고, 그래서 더더욱 남쪽으로, 남쪽으로 내려가고 싶었다.



포르토(포르투갈어: Porto IPA: [ˈpoɾtu], 문화어: 뽀르또)는 포르투갈 북부의 항구 도시로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이다. 면적은 약 42 km2, 인구는 약 231,800명 (2021)[1]. 도시 이름은 '항구'라는 뜻으로 대서양으로 흘러 들어가는 도루강 하구 언덕에 펼쳐져 있다. 포르투갈 건국의 기원이 된 도시이자 대항해 시대에는 해양 무역의 거점이 된 도시이며, 포르투의 역사지구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명한 포르투 포도주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위키 대백과 자료


2023년 11월 2일 – 포르투 입성

오늘 떠날 곳, 포르투는 포르투갈 제2의 도시이자 포르투갈 순례길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산티아고의 흐리고 비 내리는 날씨는 하루라도 빨리 떠나고 싶은 마음만 더 부추겼다.
날씨가 이토록 변덕스러운데, 언제 또 소나기가 쏟아질지 모르니 말이다.

게다가, 며칠 전 산티아고 버스터미널에서 만난 이탈리아 순례자 루이스가
“포르투 진짜 좋아! 강력 추천!”라며 전해준 이야기도 내 결정을 돕는데 한몫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나도 ‘그래, 다음은 포르투!’ 하고 마음을 정했다.

버스 타러 출발!

이른 아침, 산티아고는 아직 잠에서 깨어나지 않은 듯 고요했다.
숙소에서 짐을 정리한 나는 한 손엔 로닛이 준 장우산을, 다른 한 손엔 피레네에서 구해온

**나의 마법지팡이(!)**를 들고 양손으로 균형을 잡으며 천천히 걸어 나섰다.


적어도 8시까지는 터미널에 도착해야 했기에, 익숙해진 산티아고의 골목들을 빠른 걸음으로 지나갔다.
이 길은 이제 눈 감고도 걸을 수 있을 만큼 몸에 밴 리듬처럼 편안하게 느껴졌다.

골목을 돌다가, 알베르게에서 짐을 챙겨 나오는 순례자 한 명을 보았다.

호주 순례자 레이첼

Calzadilla de la Cueza 칼자딜라 데 라 쿠에자 수영장에서 만났던 금발의 곱슬머리 호주 순례자 레이첼이었다.

그때 우리는, 그 마을 유일했던 수영장에 나란히 뛰어들어 잠깐 함께 수영을 즐겼을 뿐, 한 번도 같이 걸어본 적은 없었다. 이렇게 다시 마주친 건 칼자딜라 이후 처음이었다.

우리의 다음 여행지가 같은 포르토라는 것까지 같다는 것을 서로 금세 알게 되었다.

이른 아침, 우리는 여전히 순례자 티를 벗지 못한 여행자 꼴이었다.


말 그대로, 옷도 머리도 ‘여행 중’ 임을 증명하듯 낡고 헐거워진 신발과 가방 옷가지들이 그것을 증명해 보였다.


버스 시간표를 확인한 뒤 서둘러 터미널에 도착했고, 대기실에 있는 카페에서 함께 아침을 먹었다.


버스 연착 대기 시간


한국에서 버스나 기차가 정시에 도착하지 않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특히 버스는 1분 1초까지 칼같이 시간을 지키는 경우가 많았고, 기차는 말할 것도 없이 단 1분만 늦어도 눈앞에서 문이 닫히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렇게 정확한 시간 감각 속에 살아온 나에게 시간 엄수란 단순한 습관을 넘어, 어느새 삶의 기준이자 태도의 문제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사실 나란 사람은 한국에 있을 때도 늘 조금씩 느렸다. 식사 속도도, 움직임도, 뭔가를 결정하고 실행하는 데도 항상 한 박자씩 늦었고, 그 때문에 늘 평균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자각 속에 살았다. 그렇게 무의식 중에 ‘시간에 대한 강박’이라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곳, 스페인에서는 그런 ‘당연함’이 더 이상 당연하지 않다는 걸 경험하며 내가 당연하게 여기던 질서들이 낯설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피스테라로 갈 때처럼 포르토행 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길게 늘어선 줄에서, 우리는 무려 한 시간을 넘게 서서 기다려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변에서는 불만이 하나둘 흘러나오기 시작했고, 나 역시 설레는 감정보다는 하루라도 빨리 순례자 티를 벗고 싶은 마음이 더 앞섰던 것 같다.


그렇게 모두가 지쳐갈 무렵, 버스는 마치 산책하듯 느릿느릿한 속도로 우리의 앞에 나타났다. 늦게 도착한 그 버스는 오히려 이 여정이 결코 단순한 휴식이나 전환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예고하는 신호처럼 느껴졌다.

또 만나요, 산티아고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를 벗어났을 때, 국경을 넘은 것도 아니었지만 묘하게 ‘이제 진짜 스페인을 떠나는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시끄러운 소음, 밤마다 들려오는 코골이, 그리고 매일 걸어야 한다는 강박까지. 여행자라면 굳이 마주하지 않아도 될 감정과 상황들 속에서, 나는 한국에서 프랑스로 넘어올 때 비워내고자 했던 슬픔과 성장통, 그리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다시 떠안은 채 걷고 있었던 것 같다.

산티아고를 걸으며, 그 감정들을 하나씩 털어내고 비워냈다.


이제는 포르투갈로 넘어가 순례자 티를 벗어내고자 하는 새로운 시작이다.



그 와중에, 안 그래도 궁금했던 루이스에게서 연락이 왔다.

마치 내가 포르투에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절묘한 타이밍이었다.

예전, 무심히 흘려보낸 말까지 기억하고 다정하게 챙겨주는 그의 마음이 고맙게 느껴졌다.


버스를 타고 산을 넘어가는 길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고 나자, 산의 경계부터는 더 이상 비가 내리지 않았다. 산티아고의 높은 지형을 감싸고 있던 구름들이 걷히고, 그 자리를 뜨겁고 강렬한 태양이 다시 나타났다. 나는 포르토에 가면 건조하고 뜨거운 유럽의 태양 아래서 일광욕을 좀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가 살짝 들었다.


조셉님은 피스테라에서 머물다 마드리드로 이동할 계획이었고, 곧 캐티가 산티아고에 도착할 거라는 소식도 들려왔다.

가장 재미있는 소식은, 산티아고를 향해 가는 프랑스 길에 눈이 내렸다는 것이었다.

조금만 늦게 도착했다면 추위에 떨면서 고생을 했을 것이다.


국경을 넘어

국경을 넘자마자, 내가 사용하는 통신사인 Orange에서 포르투갈에서 로밍폰 사용이 가능하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공식적으로 국경을 넘은 순간이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오고, 장시간 순례자로 지내면서 나는 한 가지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그 문제는 포르투갈에 도착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나를 괴롭혔다. 바로 국경을 넘자마자 갑자기 와이파이가 먹통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버스를 타고 있을 때는 와이파이가 크게 문제가 없었기 때문에 심각하게 생각하지 못했고, 레이첼에게 물어봐도 모르는 눈치였다. 나는 중간에 들린 휴게소에서 스페인어의 소음을 들으며 마지막 점심을 먹었다. 가는 길목에는 산 전체를 덮은 올리브 나무 풍경이 특별한 이벤트가 필요 없을 정도로 광활하고 아름다웠다. 식사를 마치고 출발하기 전, 바깥공기를 더 깊숙이 들이마시고 버스 안으로 들어갔다.


점점 포르투갈에 다가갈수록 없던 기대감과 걱정이 몰려왔다. 여전히 와이파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걸어서 한 달은 걸려 걸어서 지나갈 곳들이 몇 시간 만에 버스 창문 너머로 그저 풍경으로만 지나쳤다. 포르토에 도착해서도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다면, 처음 유럽여행을 갔을 때처럼 지도를 들고 포르토 시내를 헤매며 숙소를 찾아야 할 터였다. 10킬로그램이 넘는 가방을 메고 순례도 끝난 마당에 또 길을 헤매고 다녀야 한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왜 데이터가 안 잡히는 걸까?


포르토 도착

포르토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 미로 같은 터미널 내에서 지하철을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데이터가 되지 않던 나에게는 그나마 레이첼과 가는 방향이 비슷해서 중간길까지 레이첼이 동행해 준 것이 다행이었다. 핸드폰을 여러 번 껐다 켰다 반복했지만, 긴박한 상황 속에서 설정을 바꿔보거나 대리점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다. 오직 빨리 숙소에 가서 짐을 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대환장 포르토 입성기

아니, 포르투갈에 도착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나는 긴 시간 동안 스페인어와 그 소음에 익숙해져 있었고, 포르투갈에 대한 정보는 딱히 없었던 터라. '러브 액추얼리'에서처럼 포르투갈은 스페인어가 아닌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브라질 쪽 남미 이민자들이 많이 이주해 온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다. 지하철역에서 레이첼과 중간에 환승을 하면서부터 대환장이 시작되었다.

나는 그때그때 지나가는 포르토 시민들을 붙잡고 길을 물으며 숙소까지 가야만 했다. 만약 그때 스페인이었다면 어땠을까? 여행 중 누군가의 짐이 된다는 것은 진짜 실례인데, 레이첼에게 내 여행의 짐을 지어준것 같아 미안함과 고마움에 커피라도 한잔 사주고 감사의 인사를 전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포르투갈인들의 특징

조곤조곤 나른한 포르투갈어뿐만 아니라 영어도 상당히 능숙하게 구사한다.

길에서 화내고 싸우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긍정적이고 느긋한 성향을 지니고 있다.

돌려 말하기의 달인(부정적인 표현은 극도로 자제한다).



쿨 호스텔을 찾아서

내가 예약한 쿨 호스텔은 포르토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곳이었다. Bolhão역에서 내려서 도착하기까지, 데이터가 있어 구글 지도를 활용할 수 있었다면 10분도 안 되는 거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마음 착한 포르토 시민들에게 도움을 받아 주소를 공유하고 지도를 사진으로 찍어 쿨 호스텔을 찾아야만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친절한 포르토의 여유로운 분위기에 나 역시 기분이 좋았었다. 그러나 도착을 하고 나서도 역 거의 바로 앞에 있는 숙소를 전혀 찾지 못해, 결국 포르토 도심을 짐을 맨 채 헤매고 다니게 되었다.


Capela das Almas de Santa Catarina(알마스 성당)

Bolhão역을 바로 나오자마자, 그간 스페인에서 보던 유럽 양식의 성당과는 다른, 벽면을 타일로 장식한 알마스 성당이 나타났다. 길을 잃었음에도 한동안 멈춰 서서 이곳을 바라보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포르투갈 특유의 청색 종교화풍 그림이 그려진 타일로 된 성당이었다. 나처럼 포르투갈에 대한 정보도 없이 왔을 경우, 이런 예상치 못한 아름다움에 더 큰 감동을 받게 되는 법이다.

그때 바로 쇼핑센터나 휴대폰 대리점으로 가서 핸드폰을 점검받았어야 했는데, 그럴 정신도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와이파이 없이 오프라인에서 구글맵을 확인하는 방법조차 모르고 완전 아날로그 방식으로 걷고 있었기 때문이다. 흐리기만 하던 날씨는 마치 산티아고의 비구름이 따라오기라도 하듯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숙소 위치를 정확히 알기 위해 맞은편에 있던 호텔로 들어갔다.

길 잃은 여행자

순례를 하면서 이렇게 길을 잃은 적이 없었는데, 나는 이 도시에서 진짜 온전히 혼자였다. 1시 30분에 도착해서 20분 만에 전철을 내려 3시간 동안 길을 헤매고 다니는 동안, 부슬비로 내리던 비는 어느새 폭우로 바뀌어 있었다. 진짜 걸으면서 욕한 적이 정말 가끔 있었긴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는 처음이다. 단전 깊숙한 곳에서부터 욕이 올라왔다. ㅅㅂ.

하나라도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다. 이러다 순례길을 다시 걸을 판이다.

장점이라고 한다면 의도치 않게 도심을 휘젓고 다니면서 포르토 시내를 짐을 맨 채 돌아다녀서, 어디가 어딘지 이제 나는 구글 지도를 보지 않아도 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어버렸다.


Bolhão역

Bolhão역은 한국의 명동역처럼 관광 중심가에 위치한 곳이라, 어디를 가든 길을 잃을 수 없는 곳이다. 이 지역은 인프라가 잘 되어 있어, 많은 유럽인들이 휴가를 보내며 저렴한 물가와 아름다운 노을을 즐기기 위해 포르투갈로 내려온다. 하지만, 포르투갈이 자랑하던 맑은 날씨도 잠시, 10월 말부터 태풍이 지나가면서 온종일 비가 내렸다. 그렇게 순례자로서 시골길만 걸었던 내가, 도시에서 살아가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이곳에서 가장 다행이었던 점은, 버스와 지하철 패스를 하나의 트래블 카드로 사용할 수 있어 2.15유로로 결제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길을 빙글빙글 돌며 상점과 약국, 호텔을 찾아 물어 물어 길을 찾아다녔다. 결국 마지막으로 핸드폰 케이스 대리점에서 만난 인도인 상인의 도움을 받아 숙소의 파란 대문 사진과 구글 지도를 손에 넣었다. 절실한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했을 때, 한 명도 귀찮아하거나 화를 내지 않았고, 불친절하거나 싸우는 사람도 없었다. 스페인에 너무 오래 있었나 보다. 한국과 유럽의 시차처럼, 아주 미세한 간극이 있었다. 4시간을 헤매며 숙소를 찾는 해프닝 덕분에 순례자의 티를 완전히 벗어버리게 된 것 같았다.


나는 길치라 건물을 보고 길을 외우는 타입이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별과 지도만 가지고 길을 찾았을까? 포르투는 생각보다 골목도 많고 큰 도시여서, 나는 점점 숙소에서 멀어져 산으로 가고 있었다.



체크인

나는 울기 직전, 길을 아날로그식으로 물어물어 결국 파란 대문의 ‘쿨호스텔’에 도착했다. 이곳 포르토에서 이틀을 머물게 될 숙소였다. 점심 즈음에 포르토에 도착했지만 숙소에 도착한 시간은 거의 저녁시간이었다. 숙소 근처에는 중고 서적과 음식점들이 있었다. 중심가 바로 옆에 위치한 숙소여서 숙소 앞을 지나가는 자동차 소리까지 바로 들려왔다. 벨을 누르자 호스트가 문을 열어주며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언제 오려나 기다렸어요"라며 나를 환영해 주었다. 나는 우산과 지팡이를 우산꽂이에 꽂고, 빨리 짐을 풀고 샤워를 하고 쉬고 싶었다.


거의 숙소에 도착한 시간이 4시가 다 되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호스트에게 나의 폰이 데이터가 안 잡힌다고 말했더니, 방법은 있지만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대리점에 가보라고 했다. 그 대답마저도 친절해서 아직 적응이 안 되었다. 퉁명스러운 스페인 아저씨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나선형 계단을 올라 4층에 위치한 숙소방에 비에 푹 젖어 도착했다. 사실 리뷰에서는 화장실이나 후기가 불만이 많았지만, 가격과 위치를 고려하면 조식포함 공용 주방도 갖추고 있어 나는 나름 만족하는 곳이다. 순례길 알베르게에서 다중인원 시설이 있는 숙소에서 자다 보니, 호스텔은 오히려 나름 호화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포르토에 와서 길을 헤매다 겨우 찾은 이곳은, 지금 이 순간 그 어떤 호화 호텔보다 더 천국처럼 느껴졌다. 아무리 길을 친절히 알려줘도, 길치인 나에게는 소용이 없으니까. 예전 벨기에에서처럼 기적적으로 현지인이 나를 데리고 숙소를 찾게 해 준 기적은 없었지만, 나는 내 힘으로 그 길을 정복했다. 그것도 스마트폰 없이!

8인실 방

여성 전용 도미토리에서 맨 끝자리 1층 침대를 사용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침대에 연두색 판초를 걸어 가림막처럼 사용해 커튼을 만들었다. 침대 아래 있는 서랍은 짐과 귀중품을 보관할 수 있는 사물함이었고, 나는 자물쇠를 가지고 다녔기에 그것을 채워두었다. 당시 방 안에서는 정확히 누가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남미에서 온 여행객과 독일에서 온 여행자가 있었다. 독일 여행자는 9일을 포르토에서 머물렀다고 했다. 작년에는 매일 맑은 날씨로 너무 좋은 추억을 만들었고, 그래서 다시 포르토에 왔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는 자신이 사는 베를린처럼 매일 비가 내리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하갈 언니

하갈언니에게 떠나기 전부터 연락을 해놓은 상태였다.

나는 버스 휴게소에서 간단하게 빵 한 개와 카페콘레체를 먹고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계속 걸었기 때문에 빨리 나가서 밥을 먹고 싶었다. 언니는 내 숙소와 언니가 머물고 있는 비엔비와 아주 가까운 곳에 위치한다고 했다.

우선 짐을 풀고 땀과 비에 젖은 몸을 씻어 내고 언니에게 다시 연락을 주기로 했다.


재회

샤워를 마친 후, 여전히 내 폰은 작동하지 않고 있었고, 배도 고프기에 하갈 언니를 숙소 근처로 불러내기로 했다.

나는 0층 프런트로 내려가 핸드폰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할지 호스트와 함께 씨름하면서 검색을 했고, 결국 언니가 도착해서 밖으로 나갔다. 잠시 언니를 숙소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지만, 호스트는 외부인 출입을 금지한다고 말하며 언니를 바로 문 밖으로 쫓아버렸다. 프런트에 잠시 있는 것도 안 된다니, 스페인 알베르게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빠르게 밖으로 나가 메인 거리를 지나 일단 배를 채우기로 했다.


본격 관광

우리는 맨 처음, 내가 포르토에서 처음 봤던 알머스 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그 화려한 외부 장식이 너무 인상 깊어서, 내부는 어떻게 되어 있을지 궁금했다.

성당 내부는 외관과는 달리 소박하고 아담한 분위기였다. 화려함을 기대했던 나에게는 그 단순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오히려 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순례길을 마치고 들렀던 성당에서의 기도가 떠오르며, 나는 이곳 포르토에서 무사히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성당 안에서는 미사가 진행 중이었고, 신도들과 관광객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조용히 마음으로만 기도를 드리고는, 빠르게 밖으로 나왔다. 왜냐하면, 그 순간 가장 간절했던 건 배가 고프다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Cult of Pita

하갈 언니와는 10월 16일, 스페인 레온 이후 18일 만에 다시 만났다.

우리는 하갈 언니가 추천해 준 이스라엘 비건푸드를 파는 식당으로 이동했다. 포르토에서 먹은 첫 끼니였던 그때, 나는 처음 접하는 음식인 피타와 맥주를 함께 주문했다. 그 맛은 지금도 절대 잊히지 않는다. 새로운 도시에서의 첫 번째 식사는 언제나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는 함께 한 그 특별한 음식을 나누며 오랜만에 재회한 기쁨을 만끽했다.



볼량 시장 Mercado do Bolhão

거리를 돌아다니며 포르토의 로컬 전통시장도 들렀다. 하지만 시끄러운 소음과 음식 냄새,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금방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이미 오늘 하루 많은 에너지를 소비한 탓인지 머리가 어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그곳에서 무엇인가 먹고 더 체험해 보면 좋았겠지만, 한 바퀴를 돌아보고는 빠르게 밖으로 나왔다. 원래는 각 나라의 로컬 시장을 구경하는 걸 좋아하지만, 오늘은 그럴 기운이 아닌 것 같았다. 피로가 쌓여있던 날이라 그런지, 내 몸은 더 이상 새로운 자극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ViaCatarina Shopping Vodafone 유심 매장

식사를 마친 후, 언니와 함께 근처 대형 쇼핑센터로 들어가 Vodafone 매장에 갔다. 나는 직원에게 아이폰이 작동을 안 한다고 말하자, 직원은 너무나 간단하게 설정에서 셀룰러 데이터로 들어가 로밍 모드를 켜주었다.

헉... 이게 뭐야?

산티아고를 걷는 동안 나는 스페인 내 유심을 사용하면서 로밍 요금이 나갈까 봐 로밍 모드를 꺼놨던 것이었다. 시간이 한참 지나 포르투갈에 도착해서야 그 사실을 떠올린 것이다. 그동안 왜 이렇게 불편하게 다녔는지, 한참 전의 일이었으니 너무 웃기기도 했다.

이 간단한 원리를 몰라서 그렇게 시내를 해 집고 다녔다는 생각에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다. 게다가 내가 길을 물어본 사람들 모두 로밍 모드 변환에 대해 몰랐다는 사실도 꽤 큰 충격이었다.

내 생각엔, 스페인이었다면 아마 폰을 빼앗아 내 폰의 셀룰러 로밍 모드를 켜줬을 거라는 생각이 잠시 스쳤다.


Delta The Coffee House Experience Porto

우리는 커피숍으로 이동해 포르투갈에서 유명한 애그타르트와 카페 콘 레체를 주문했다. 카페에 앉아 언니와 현재 진행 중인 이스라엘의 전쟁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니는 동생이 있는 호주로 갈 계획이라고 전했다.

호주로 가기 위해 필요한 비자가 현재 이스라엘 대사관에서 나오는 중인데, 전쟁 상황으로 인해 절차가 오래 걸려 공항과 가장 가까운 포르투갈에 머물게 되었다고 했다. 유럽의 우중충한 날씨와 이스라엘의 전쟁 상황, 그리고 언니의 좋지 않은 발목 상태 때문에 산티아고를 중단한 상황까지, 전반적으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아나에서 처음 만난 이후 꾸준히 연락을 하고, 레온과 지금 여기 포르토에서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 나가고 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처럼 느껴졌다.

멀게만 느껴지던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이제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게 되었다.



순례길, 유럽살이, 유럽여행은 각자의 목적에 따라 지출 방식이 전혀 달라진다.

순례길

순례길을 걷는 여행은 주로 교외 지역과 자연을 배경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저렴한 환경에서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유럽 정부에서는 순례자들을 위한 알베르게를 지원하고 있어, 정말 저렴한 가격에 숙소를 제공받을 수 있다. 덕분에 순례길에서는 경제적인 부담 없이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유럽여행

하지만 유럽 여행으로 도심에 들어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도시에서 숙박을 하다 보면 숙박비 외에도 도시세라는 추가 요금이 발생한다. 물론 대개는 돌려주기도 하지만, 그것이 썩 기분 좋은 거래는 아니었다. 도심의 숙소는 비용이 상대적으로 비싸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추가 요금이 부담을 주기도 한다.


유럽 한 달 살이

유럽에서 한 달 이상 살아가고자 한다면, 가능한 한 햇빛이 잘 들고, 풍경과 공기가 좋은 곳에 머무는 것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우중충한 날씨가 지속되면 기분이 우울해지고 외로움이 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날씨가 좋고, 밝은 햇살이 내려오는 곳에서의 생활이 신체적, 정신적으로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해가 지자 거리에는 노래하고 연주하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여기저기서 버스킹이 펼쳐졌다.

날씨는 계속 비가 오다 말다를 반복했고, 우리는 이른 시간에 만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금세 해가 지고 말았다. 언니는 베지테리언이라 근처에서 먹을 만한 거리 음식이 많지 않았고, 그래서 저녁을 먹기 위해 마트에 들러 장을 함께 보았다.


나도 언니와 함께 장을 보며 간단한 저녁 샐러드와 맥주, 과자, 과일을 사기로 했다.

오늘 같은 날씨에 로닛이 건네준 장우산이 없었다면 더 많이 고생했을 것이다. 11월 초임에도 불구하고 유럽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는 가장 큰 명절이 다가오고 있어,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조명들이 설치되고 있었다. 언니의 몸 상태가 좋지 않아서 내일 다시 만나기로 약속하고, 우리는 장을 일찍 보고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 휴식

순례자라면 대부분 저녁 시간이 되면 밖에 나가지 않고 일찍 잠자리에 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순례자가 아니고 밤늦게까지 즐길 수 있는 여행자이다. 밖에 나가 더 즐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오늘은 더 이상 밖에 나갈 체력은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아 맥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3층 공유주방으로 내려갔다.


3층에서는 누군가 요리를 하고 있었다. 이 여행자는 바르셀로나에서 딸과 함께 휴가를 왔다고 소개했다. 검정 쪽진 머리와 진한 검정 눈썹을 가진, 스페인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여성이었다. 나는 어제까지 산티아고에 있었고, 순례자였으며 곧 바르셀로나로 갈 예정이라는 이야기를 하며 스몰토크를 나누었다.


캐티와의 영상통화

오늘 캐티가 산티아고에 도착했다는 사진을 보내왔다. 나는 식사를 마친 스페인 모녀를 배웅한 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캐티와 영상통화를 하며 오늘 있었던 해프닝과 그간의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캐티는 곧 영국으로 떠날 거라고 했다. 캐티의 표정에는 피로가 묻어 있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자부심과 여유로움이 느껴졌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우여곡절을 지나 길을 완주한 것이다. 수많은 날들의 과정 속에서, 우리는 서로의 기억 속 ‘카미노’에 고스란히 저장되었다.


오늘의 기록

오늘 하루 포르토 시내를 헤매며 마치 오래전 배낭여행자처럼 거리를 떠돌았다.

오후에는 하갈 언니를 만나 함께 식사도 하고, 마트에서 장도 보고, 포르투갈의 유명한 에그타르트를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숙소로 돌아와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너무 길고도 바빴던 하루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쉬러 온 건데 하루를 이렇게 써버렸다니!


내가 알기로 포르토는 밤이 더 아름다운 도시라고 했지만, 지금의 나는 그 밤을 즐길 기력조차 없다.
밤늦게는 캐나다에 있는 친구와 통화를 했는데, 갑자기 코피가 터졌다.
허허, 정말 가지가지한다. 오늘 꽤 힘들긴 했나 보다.

내일은 낮부터 하갈 언니와 다시 시내 구경을 하기로 했다.


늘 긍정적이고 여유로운 포르투갈 사람들 사이에서, 문득 나는 한국 사람들처럼 바쁘고 예민해진, 그저 화가 나 있는 스페인 사람처럼 느껴졌다.

오늘 하루를 마무리하며, 내일은 마음을 졸이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상황 자체를 즐기기로 했다.


부엔 카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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