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 ON, 순례자 OFF

다시 산티아고

by 양작가


2023년 11월 1일, 피스테라에서의 아침

오늘 아침, 숙소의 아늑한 분위기 덕분인지 오랜만에 푹 잘 잔 것 같다.
순례길에서처럼 언제나 분주히 짐을 싸고 떠날 준비를 할 필요도 없다.
이제는 일정에 쫓기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다.


자연스럽게 이른 아침에 눈을 떴지만, 아무도 서둘러 일어나는 기색이 없다.
짐을 챙겨 8시 가까이 되어 주방 겸 거실로 내려가 떠나기 전 잠시 대기를 하며 휴식을 취했다.
거실 소파에 앉아 따뜻한 햇살을 느끼며 한참을 그렇게 여유롭게 앉아 있었다.


함께 방을 썼던 호주 노모와 아들.

그들의 이름을 묻지 못한 것이 자꾸 마음에 남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들이 중학교 시절 홈스테이를 했던, 내 기억 속 호스트 가족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때도 호스트 어머니는 40대 중반, 아들은 20대 초반이었고, 지금의 그들과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아련하고 그리운, 고향 같은 기억이 그들 덕분에 다시 피어났다.


숙소 거실

아침 햇살을 즐기며 소파에 앉아 있을 때, 로와 마크 커플이 내려왔고, 곧이어 세네카도 거실로 들어섰다.

세네카 역시 오늘 산티아고로 돌아간다고 했다. 마크와 로도 오늘 떠날 예정이지만, 출발 시간은 서로 달랐다.


마크와 세네카는 미국인들끼리 가볍게 인사를 주고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평소 나에게 유쾌한 농담을 건네던 마크의 태도는 오늘따라 왠지 차갑게 느껴졌다.

마크는 세네카에게 “졸업은 했니?”, “학생이니?” 하고 자연스럽게 말을 건넸고, 그렇게 짧은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던 중, 세네카가 현재 보스턴에 살고 있으며 과학 관련 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마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세네카는 순례길에서 만난 사람들 중, 세네카는 유독 인상적인 사람이었다.

말투, 분위기, 생각의 결이 달랐고, 독특한 아우라가 느껴지는 친구였다.




선착장 앞

어제의 들쑥날쑥한 날씨와 달리, 피스테라의 아침은 오랜만에 구름이 걷히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었다.
나는 선착장 앞 벤치에 앉아 있었다. 어젯밤 안나를 배웅하며 예매해 둔 산티아고행 버스, 오전 9시 45분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햇살 아래 일렁이는 윤슬이 아침 바다를 평화롭게 감싸고 있었다.
세네카가 앉아 있던 옆자리에 잠시 앉았고, 우리는 같은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크와 로 커플 역시 오늘 산티아고로 간다는 말을 들었지만, 어쩐지 오늘이 그들과의 마지막이라는 예감이 스쳐 갔다.


그들도 나처럼, 그곳에서 다시 여행을 이어갈 예정이라고 했지만 말이다.

피스테라의 아침 햇살은 마치 새로운 여정을 축복하듯 따뜻하게 나를 감쌌다.
순례자에게 지금 이 순간, 이 고요한 시간조차도 소중한 축복이다.

선착장 앞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산티아고에서의 여운을 정리하고, 순례의 마지막을 진심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곳.
'피스테라, 이곳에 오길 참 잘했다.'


☕ Restaurante O Centolo의 아침 커피

선착장 앞 벤치에 앉아 세네카는 여전히 분주하게 휴대폰을 두드리고 있었다.

그때, 길 건너 카페에서 풍겨오는 진한 커피 향이 아무것도 먹지 않은 나의 시선을 자연스레 뒤로 끌어당겼다.

그 순간, 어제 항구 근처에서 비를 피하다 마주쳤던 독일인 순례자가 나를 알아보고 손을 흔들었다.
나는 세네카에게 “커피 마실래?” 하고 묻고, 자연스럽게 그 커피숍으로 향했다. 세네카는 일광욕을 하며 바깥에 있고 싶어 했다. 나는 독일인 순례자가 손을 흔들던 커피숍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그의 이름은 미하엘(Michael).

요가 강사이자 골프 강사이며, 어머니와 함께 순례길을 완주했다.

지금은 피스테라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이후에는 스페인의 섬 마요르카(Mallorca), 그중에서도 팔마(Palma)라는 곳으로 휴양을 떠날 계획이다.


갑자기 이야기가 샛길로 샜지만, 미하엘과 나는 카페에 들어가 바에 나란히 앉아 아침의 카페 콘 레체 한 잔을 함께했다.
이 조용한 아침에, 이렇게 가볍고 따뜻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게 참 좋았다.

왜 이렇게 다들 나에게 친절할까.
미하엘은 “함께 아침 커피를 마셔줘서 고맙다”며 기꺼이 커피값까지 계산해 줬다.


내가 피스테라를 떠나 산티아고에 도착할 즈음, 조셉님은 반대로 피스테라에 도착해 휴식을 즐길 예정이라고 왓츠앱으로 연락이 왔다.
엇갈린 만남이 조금 아쉽기도 했지만, 각자의 여정이 평안하길 기도해 드렸다.


산티아고행 버스 승강장 앞

커피를 마신 뒤, 미하엘은 버스 승강장까지 함께 걸으며 나를 배웅해 주었다.
짧은 인연이었지만 따뜻한 작별이 참 고마웠다.

도착한 승강장에는 예전에 길에서 마주쳤던 캐나다계 아시안 순례자가 서 있었다.
유창한 한국어 인사를 건네던 그 젊은 친구가 문득 궁금했었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되니 반가움이 컸다.
그 역시 산티아고에서 피스테라까지 걸어서 이곳까지 왔다고 했다.


늘 곁에 있던 마이애미 순례자, 그리고 영국인 헬창 순례자는 보이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 축하의 포옹을 나누며, 짧았지만 따뜻한 피스테라의 아침을 작별의 시간으로 충분히 채웠다.

그녀는 이제 묵시아까지 걸어갈 예정이라고 했다.
이별은 늘 아쉽지만, 각자의 여정은 계속되고 있었다.

한편, 로와 마크 커플은 11시 버스를 탈 예정이라며 연락을 보내왔다.
우리는 직접 인사 대신, 왓츠앱으로 안부를 주고받자고 약속했다.
여행이 끝나지 않은 이 커플의 뒷이야기에도 응원의 마음을 보낸다.

드디어 피스테라를 떠나는 버스에 올랐다.


피스테라의 맑고 따뜻한 하늘 아래, 이 모든 인연에 작게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했다.


다음 여행지를 정하다 – 산티아고행 버스 안에서

피스테라를 벗어나 산티아고로 돌아가는 버스 안.
창밖으로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다음 여행지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몸과 마음이 순례자의 삶에서 천천히 빠져나오는 이 순간, 나는 햇볕 가득하고 여유로운 곳을 떠올렸다.

그저 잠시 머물며 숨 고를 수 있는 곳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와 마크 커플처럼 프랑스 **니스(Nice)**로 갈까?
아니면 이탈리아 순례자 루이스처럼 포르투갈 **포르투(Porto)**로 가볼까?
그래, 포르투에는 하갈 언니도 있다.
현재는 호주 비자 발급을 기다리며 그곳에 머무르고 있다고 들었다.

혹은 바로 **세비야(Sevilla)**로 내려갈까?

여정은 끝나가고 있었지만, 나는 아직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한 순례자였다.
그저 버스에 몸을 실은 채, 다시 인터넷 검색을 시작했다.


산티아고나 그 북쪽으로 향한다면, 분명 비가 내릴 것이다.

비 오는 날씨는 신물이 날 정도로 지겹고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그래, 남쪽으로 가자. 처음 가보는 포르투갈로!

그리고 산티아고에서 포르투까지는 버스로 약 4시간 반.
그리 부담되는 거리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버스 안에서 조용히 다음 여정의 방향을 정했다.
순례의 마침표를 찍으며, 새로운 여행의 문을 다시 열기로 했다.


다시, 산티아고

산티아고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11월 2일 오전 9시 포르투행 버스표를 끊었다.

피스테라를 다녀와 다시 산티아고에 발을 디딘 지금, 이 도시는 자꾸만 나를 뒤돌아보게 만든다.

산티아고에는 이상한 매력이 있다.
매일 누군가는 도착하고, 누군가는 떠나며 곳곳에서 작별의 포옹과 환영의 인사가 뒤섞인다.
출발과 도착의 파티가 매일 반복되는 도시.
그래서일까, 흥분과 아쉬움, 기쁨과 공허함이 동시에 공존하는 곳이다.


오후 1시쯤, 올든에게서 DM이 도착했다.
짐을 Loop INN Hostel Santiago de Compostela에 풀자마자, 나는 곧장 산티아고 대성당 쪽으로 향했다.

올든 역시 말했다.


“여기 사람이 너무 많아서 속이 울렁거려….”


순례길에서 만난 대자연의 고요함과 명징한 고독이 산티아고에선 환호와 감정의 파도로 바뀌어 있었다.
도시가 뿜어내는 이 에너지는 어쩌면 완주를 마친 순례자들에게는 감당하기 벅찬 감정의 멀미였을지도 모른다.


나: “코루냐는 어땠어요?”

올든: “그곳은… 참 평화롭고 고요한 곳이었어.”



� 산티아고 가이드북

성당 뒤편, 순례자 미사를 기다리는 긴 줄 속에서 프랑스 할머니를 함께 도왔던 캐나다 순례자를 다시 만났다.
로닛과 내가 순례길에서 힘을 모았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간단한 인사를 나눈 후, 나는 자연스럽게 성당 기념품 샵으로 향했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순례길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이 길을 반드시 글로 남기고 싶었다.
또한, 다음 순례길을 준비하기 위한 실질적인 자료도 필요했다.


나는 카미노 프랑스길 가이드북과 포르투갈길 가이드북과 기념품 노트를 집어 들었다.

올컬러 지도와 상세한 경로 설명이 담긴 이 가이드북들은 권당 약 23~25유로 정도였고,
작고 간편한 핸디 노트 역시 예상보다 비쌌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 사지 않으면 분명 두고두고 후회하겠지.”

그리고 정말로, 나는 이 책들 덕분에 한국에 돌아와 이렇게 순례길의 기억을 기록으로 남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대성당 기념사진

올든과 나는 기념품 샵에서 다시 마주쳤다.
순례의 완주로 지쳐 있었지만, 동시에 여정 이후 건강해 보였다.

우리는 Vega de Valcarce에서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고, 그다음 날도 나란히 걷다가,

올든은 그녀의 큰 키만큼이나 빠른 걸음으로 먼저 산티아고에 도착했다.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우리는 그토록 도착지점에 빨리 가려고만 했을까?”
정작 도착하고 나서야 나는 그 길을 '걷는 과정' 자체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산티아고에서 다시 마주한 우리는, 어쩌면 그날 이후 다시 한번 함께 저녁을 만들어 먹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비록 내가 묵는 숙소도, 올든이 묵는 숙소도 주방이 없는 곳이었지만,

‘지금 이 순간 함께 요리를 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슨 상관이랴?’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했다.

성당 앞에서 우리는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 위치는, 순례자들을 위한 광장 한가운데 비석이 놓인 자리였고, 마치 오늘 막 도착한 사람처럼,
우리는 그 위에 올라 사진을 남겼다.


올든과 나

날씨는 맑았지만, 산티아고의 공기는 쌀쌀하고 차가웠다.
우리는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러 이동했다.

베가 데 발칼스에서 만났던 첫날처럼, 날씨는 여전히 들쑥날쑥했다.
그 길을 걸으며, 처음으로 퍼붓는 빗길에서 무지개를 보았던 날이 떠오른다.


그때, 나는 길을 걸으며 목놓아 펑펑 울었었다.
어쩌면 그 무지개처럼 내 마음도 맑게 피어나면서 그 순간부터 마음이 열렸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마음의 변화를 반영하듯, 그날의 특별한 저녁식사는 나와 올든에게 잊지 못할 순례길의 추억으로 남아 있다.



Café Literarios

성당의 뒷길 골목에 자리한 이 카페 Café Literarios는 마치 뒷전경이 한눈에 보이는 아지트 같은 곳이었다.
아직 점심시간 전이라, 한적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이곳에 들어갔다.

우리는 한참을 수다를 떨었다.


올든은 자신이 다녀온 꼬루냐와 피스테라에서 만난 세네카, 에바 이야기, 그리고 도착하기까지 함께 걸었던 피아 가족들의 이야기 등을 나누었다.
마치 오랜 시간 동안 간직해 왔던 일기장을 서로 공유하듯, 우리는 그동안의 우여곡절들을 풀어냈다.


하지만 여행의 피로와 아침 일찍 이동한 여독 때문인지, 나도 올든도 눈꺼풀이 자꾸만 무겁게 내려갔다.


핀배지 기념품

우리는 카페를 나와 기념품 샵으로 향했다.
올든은 도시에 도착할 때마다 핀버튼을 사서 가방에 다는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옆에서 나도 산티아고 화살표가 그려진 비석 뱃지와 조개 모양의 뱃지를 골랐다.

그때, 올든은 최근에 내 생일이었던 것을 기억하고는 그 뱃지를 생일선물로 건넸다.
우리는 오랫동안 알고 지낸 자매처럼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여행에서 온 피로와 지침으로, 잠시 시에스타가 필요했다.
6시 30분에 올든 숙소에서 다시 만나 와인을 마시고 저녁을 먹자며 인사를 나눴다.


11월 1일, 산티아고에서의 하루

11월 1일, 산티아고에서의 하루가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와 신발을 벗고 잠시 눈을 붙였다.
그 사이, 마리아는 잘 걷고 있으려나? 캐티는 어디쯤 도착했을까?
잠시, 아직 길을 걷고 있을 순례자 친구들이 떠올랐다.

어둠이 내려앉고 다시 비를 내릴 준비를 하는 산티아고 날씨가 이제는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게 만들었다.



Plaza de Fonseca / Praza de Fonseca

저녁 6시 즈음, 올든이 공유해 준 지도를 따라 일찍 나와 걷기 시작했다.

하늘은 언제라도 비가 쏟아질 것처럼 구름이 가득 차 있었다. 이게 오늘의 날씨 맞지?
나는 로닛이 건네줬던 우산을 들고, Plaza de Fonseca / Praza de Fonseca 앞에 도착했다.
그곳은 산티아고 대성당 바로 옆에 자리한 작은 정원이었다.

올든의 숙소는 꽤 아늑한 2성급 호텔이었는데, 다음 순례길을 완주한 후에는 꼭 나도 그곳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Casa Celsa - Barbantes

올든의 숙소에 도착했다. 1인실 가격은 대략 17만 원 정도였다.
올든이 준비한 와인 한 병을 마시며 그동안의 여정을 이야기 나눴다.
나는 Palas de Rei에서 배낭 지연 사고로 멘탈이 정말 나가버렸던 일과 피아 가족들과 걷는 도중 식사를 하지 않아서 화를 냈던 에피소드 등을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29일 산티아고에서 모두 모여 마리아, 카르멘, 세네카, 지넬, 길리안, 다리아와 함께 찍었던 사진들을 보며, 올든 역시 그들 모두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마치 기숙사 파자마 파티를 하듯, 올든의 초대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간만의 여유로운 시간과 긴장이 풀려서인지 나는 그만 와인을 마시다 취해서 술을 바닥에 쏟아버렸다.


이것은 나름의 신호다. 취하기 시작하면 꼭 이런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는 1차로 술을 마시고 식사를 하러 가기로 했지만, 그다지 배가 고프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올든에게 특별한 경험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밖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그저 이야기나 나누며 숙소에서 여유를 즐겼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시안 스트릿 푸드 / 저녁식사

바깥으로 나오자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폭우로 변해 있었다.
다행히 내가 가지고 있던 장우산을 쓰고, 십 분 정도 거리를 걸어 음식점에 도착했다.
우리는 샤브샤브 집에 갔고, 정말 거하게 세트 메뉴가 나왔다.
1차로 와인까지 마시면서 샤브샤브는 양이 너무 많아 다 먹지도 못하고 밖으로 나왔던 것 같다.
이걸 먼저 먹고 숙소로 가서 와인을 마셔야 했는데 말이다.
돌아오는 길 역시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계속된 이별에도 여전히 마지막 작별은 적응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올든의 숙소 앞에서 인사를 나눴다.


올든은 나에게 "캘리포니아에 놀러 오면 네 침대는 언제든 준비되어 있다. 보고 싶을 거야"라고 말하며,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갔다.
올든은 살갑게 따뜻한 사람이 아니었지만, 그녀의 마음씀씀이와 친한 언니처럼 의지할 수 있는 존재로 느껴졌다.
길에서 올든을 의지할 수 있었던 것 같았다.

다시 숙소로

올든의 2성급 호텔 방을 보고 나서, 내 방 타일 바닥이 왜 이렇게 남루해 보였는지 모르겠다.
심지어 벽에 지나가던 배드버그까지 잡았다.
이 숙소는 싸고 좋긴 하지만, 물리지 않으려면 약을 꼭 쳐야겠다.
이제 진짜 산티아고를 떠나 포르투갈 포르투로 여행할 준비를 해야 한다.


안녕, 산티아고!

또 다른 여정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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