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발견, 리스본의 두 번째 날
리스본에서의 둘째 날이 밝았다.
이른 아침, 눈이 저절로 떠졌다.
여전히 내 몸은 순례자의 부지런한 시계에 맞춰져 있는 듯했다.
멀리 갈리시아 지방에는 눈이 내렸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곳을 걷는 순례자들의 발걸음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다.
이제 입을 옷도, 공기의 냄새도, 길가의 풍경도 —
많은 알베르게들처럼 하나둘씩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순례의 계절이 저물어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숙소에 미리 조식을 신청하지는 않았지만,
4층 휴게 공간에 올라가 보니 현장 결제로 5유로만 내면 식사가 가능하다는 안내가 있었다.
아무도 없는 고요한 공간에 나 혼자 먼저 발을 들였다.
빵과 시리얼, 커피와 주스가 소박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나는 매니저에게 5유로를 건넨 뒤, 그릇에 빵과 시리얼을 담고 우유를 부었다.
직접 커피를 내리고, 주스를 컵에 따라 들고는
햇살이 비치는 창가의 테이블에 앉았다.
잠시 후, 하나둘씩 사람들이 아침 식사를 하러 올라오기 시작했고
금세 자리가 꽉 찼다.
리스본에서의 체류를 하루 더 연장한 덕분에, 오늘은 한결 여유롭고 느긋하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
같은 방을 쓰는 벨기에 여행자, 로라(Laura)와 리젤로(Liselore)와 함께 리스본 도심을 함께 걷기로 했다.
새로운 인연과 함께 떠나는 여행이 또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혼자일 때와는 또 다른 설렘이 밀려왔다.
지금은 이 모든 순간이 아련한 기억으로 남아 있지만, 햇살과 골목의 냄새, 함께 웃던 표정까지도, 그날의 장면 하나하나가 여전히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배도 꺼뜨릴 겸 숙소 근처를 한 바퀴 산책하고 돌아오니, 벨기에 친구들이 막 일어난 참이었다.
내가 방에 없어서 먼저 외출한 줄 알았는지 그들은 문자를 남겨두었고, 나는 잠깐 햇살 아래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을 뿐이라고 답장을 보냈다.
함께 다시 숙소를 나서자, 골목 어귀 작은 빵집 카페에서 막 구워지고 있는 애그타르트의 향기가 진하게 풍겨왔다. 버터와 달콤한 커스터드 크림이 어우러진 고소하고 따뜻한 냄새는 아침 공기와 어우러져 더욱 매혹적이었다.
나는 포르투갈 여행 내내, 특히 포르투부터 매일같이 애그타르트를 맛보고 있었다.
리스본에는 포르투갈 최초의 애그타르트 가게가 있고, 그 맛과 명성은 오랜 시간 여행자들 사이에서 회자되어 왔다고 들었다. 하지만 나에게는 숙소 근처의 작은 빵집, Santo António 베이커리 카페에서 먹은 애그타르트 하나만으로도 그 깊은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마치 한국의 떡볶이처럼, 이 나라에서는 어디서나 애그타르트를 만날 수 있고 그 맛 또한 상향 평준화되어 있었다. 부드럽고 달콤한 커스터드 크림이 입안에서 사르르 녹고, 버터 향 가득한 페이스트리는 입술에 닿는 순간 바삭하게 부서졌다.
겉은 얇고 바삭한데 속은 촉촉하고 부드러운, 바로 그 정석 같은 식감. 매일 먹어도 물리지 않는 맛이었다.
아침을 든든히 먹었던 터라 속이 좀 부른 상태였지만, 빵집 앞에서 풍겨오는 그 향기 앞에서는 잠시 고민할 수밖에 없다. 벨기에 친구들이 기념으로 애그타르트를 사러 빵집에 들어갔고, 그들은 나에게도 한 개를 건넸다.
결국 우리는 함께 작은 타르트 하나를 나눠 먹고, 골목을 거닐러 밖으로 나섰다.
오늘의 계획은 단순했다.
어젯밤 수잔과 함께 걸었던 리스본의 구시가지를 낮에 다시 걸어보기로 한 것이다.
정해진 목적지도, 특별한 계획도 없이 그저 골목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리스본의 낮 풍경을 몸으로 느껴보기로 했다.
밤의 구시가지는 조용하고 신비로웠다면, 낮의 골목은 햇살이 쏟아지고 생기가 넘쳐 또 다른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제의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같은 장소가 이렇게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다니 참 신기했다.
마치 서울의 삼청동이나 북촌의 이름 모를 골목들을 지도 없이 발길 닿는 대로 탐험하듯, 작은 골목길을 따라 걷고 또 걸었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하늘과 선선한 바람은 여행의 피로는 물론, 그동안 마음 한편에 남아 있던 묵은 감정들까지도 한순간에 모두 씻어내는 듯했다.
몸도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
큰 나무들 사이로 햇살이 비추는 언덕을 따라 걷다 보니, 오른쪽에는 벼룩시장이, 왼쪽에는 전망대가,
그리고 그 사이에는 작은 성당과 예배당, 박물관이 함께 어우러져 있었다.
사실 이곳에는 성 내부를 둘러볼 수 있는 유료 박물관 투어가 있었지만, 우리는 굳이 관광지 티켓에 돈을 들이고 싶지 않았다.
리스본에서 처음 만난 사이였지만, 그런 소소한 여행 취향은 말하지 않아도 잘 통하는 듯했다.
구시가지의 가장 높은 지대에서 내려다보는 리스본 도심과 타구스 강(Tagus River)의 전경은
그 어떤 입장료보다 더 값지고 충분했다.
아무리 사진 기술이 발전했다 해도, 이 순간의 빛과 바람, 색감과 감정은 영상으로 결코 온전히 담을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였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마주했던 거대한 자연처럼, 이 도시도 그 자체로 충분히 특별했다.
아기자기한 골목들과 길모퉁이마다 숨어 있는 이야기들, 소소하지만 정겨운 풍경 하나하나가 나를 천천히 감동시키고 있었다.
그 벤치에 앉아 한참이나 풍경을 바라보며 나는 생각했다.
사람이 몸과 마음의 그릇을 넓히려 할 때, 어떤 이는 안으로 깊이 침잠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이렇게 낯선 도시와 사람들 속에서 전혀 다른 세상과 아름다움을 나누며 조금씩 치유되고 확장되는지도 모른다.
지금 이곳, 리스본에서의 나는 조금씩, 그러나 분명히 몸과 마음의 그릇이 넓어지고 있었다.
이곳은 상 조르제 성(Castelo de S. Jorge)으로 올라가는 길목이나 알파마(Alfama) 지역을 여행하는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장소입니다.
알록달록한 글자와 사랑스러운 하트 장식, 그리고 포르투갈의 상징인 아줄레주 타일이 어우러진 이 간판은 리스본의 활기차고 예술적인 분위기를 잘 보여줍니다. 이곳은 기념품 가게나 수공예품점으로, 리스본 여행의 특별한 순간을 사진으로 남기기에 좋은 포토 스폿으로 인기가 많습니다.
자료 출처: 구글
그라사 성당 (Igreja e Convento da Graça), 또는 **은총의 성모 교회 (Church of Our Lady of Grace)**로 알려진 곳입니다.
이 성당은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중 하나로, 13세기에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에 의해 지어졌으며, 1755년 대지진 이후 바로크 양식으로 재건되었습니다. 화려하면서도 기품 있는 내부 장식과 아름다운 아줄레주 타일이 인상적인 곳입니다.
특히 성당 바로 옆에는 리스본 시내의 아름다운 전망을 감상할 수 있는 **그라사 전망대 (Miradouro da Graça)**가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함께 찾는 명소이기도 합니다.
자료출처: 구글지도
Monumento a Dom Afonso Henriques에는 "Lisbon is blue"라는 문구가 포르투갈 전통 타일로 벽면에 새겨져 있다. 이는 다채로운 리스본의 매력을 한 문장으로 압축한 표현이다. 꼭대기 유적지 내부를 둘러본 후 밖으로 나와 바로 플리마켓을 구경했다.
포르투갈은 코르크 가죽과 수공예품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포르투갈 사람들의 손재주는 정말 뛰어나 보였다. 평소 판매자로 참여했던 아트마켓을 이번엔 관광객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괜히 그들의 얼굴에서 예전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우리는 여느 관광객처럼 액세서리를 착용해 보고 이것저것 구경하며 첫 번째 벼룩시장을 지나 또 다른 벼룩시장으로 향했다. 그곳은 빈티지 의류와 가방을 파는 곳이었는데, 결국 구매보다는 구경에 그쳤다.
리스본의 파랑은 나에게 휴식이자 여유 그 자체다. 매일이 축제 같은 그곳에서 한 달 살이를 하는 꿈을 꿔본다.
세 번째 벼룩시장은 산타클라라 시장 Mercado de Santa Clara였다.
기억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 지도를 보며 되짚어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렇게 많이 걸었나 싶을 만큼 수많은 곳을 지나왔다는 걸 깨달았다. 여행하기에 너무 덥지도 않은 강바람이 불어와 더욱 좋았고, 우연히 발견한 아틀리에 겸 상점마저도 아름다워서 눈이 부셨다.
다 담아낼 수 없는 금은보화 같은 풍경들 앞에서 '다음에 꼭 다시 와야지' 다짐하며, 최대한 기억 속에 새겨 넣으려 애썼다. 그만큼 많은 곳을 돌아다녔던 것 같다.
놀라운 건 이렇게 돌아다녔는데도 아직 점심시간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다른 마켓들은 노점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이곳은 예술가들을 위한 전용 공간이 마련된 곳이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이곳에서 리젤로(Liselore)가 액세서리를 한참 살펴보다가 결국 구입했었다.
건물 내부는 시원해서 한참 동안 거닐며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아까 말했듯이 아직 점심도 먹지 않은 상태에서 마켓 투어를 마쳤다. 다음 계획이 딱히 없어서 나는 어제 갔던 타구스 강가 근처 카페에 앉아 상그리아를 마시자고 제안했다.
벨기에 친구들은 좋다며 동의했고, 함께 다시 걷기 시작했다.
유럽 사람들이라면 만약 결이 맞지 않았다면 당연히 "숙소에 간다"거나 "다른 일정을 하자"며 "안녕"을 말했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들 역시 한없이 좋은 날씨와 나의 제안이 나쁘지 않다고 느꼈던 것 같다.
언덕을 내려와 타구스 강변 근처로 내려가자 아까 구시가지와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사실 오늘 내가 걸었던 경로는 트램으로도 충분히 관광이 가능한 곳이었다. 하지만 모두 그런 제안은 생각하지 않고 걷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워했던 골목 여행이었다.
이렇게 걸어 다닐 수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미 41일간 매일 20km 이상을 걸었던 내 몸은 걷기에 특화되어 있었고, 쉴 새 없이 펼쳐지는 다채로운 리스본의 매력에 지칠 틈도 없었다.
눈으로는 자연 풍경과 예술 작품을, 귀로는 골목마다 들려오는 버스킹을, 그리고 건물마다 보이는 아름다운 타일들까지 모든 감각으로 받아들이며 걸었다. 그렇게 걸어서 어제 내가 처음 도착했던 타구스 강변에 위치한 카페에 도착했다.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로 해가 내리쬐었다.
나는 상그리아를, 리젤로(Liselore)는 리스본 특산품인 화이트 상그리아를, 그리고 로라는 레모네이드를 주문했다. 더위를 피하며 잠시 쉬어가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우리는 앉아서 잠시 뜨거워진 발을 식히며 점심을 먹으러 어디를 갈지 고민했다.
낯선 여행지에서 낯선 여행자인 나와 함께 하루를 보내준 벨기에 친구들에게 특별한 하루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생각해 낸 아이디어는 아마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을 한식을 함께 먹자는 제안이었다.
고기요리가 다 거기서 거기지만, 특히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좋은 토지와 태양을 받고 자란 이베리코 흑돼지는 한국에서도 알아주는 돼지고기 품종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삼겹살은 채식주의자가 아닌 이상 실패율이 적기도 하고, 가위로 고기를 자르는 한국식 바비큐 문화와 다양한 한식 반찬이 처음 한식을 접해보는 초보자들에게 꼭 추천하는 메뉴 중 하나였다.
그런데 매장이 생각보다 도심 외곽에 위치해 있어서, 우리는 오전에 도심을 돌았던 것만큼 도시를 다시 한번 걸어야 했다. 한참을 걸어 차이나타운을 지나 한적한 동네에 들어섰을 때는 우리 모두 지쳐 있었다. 뻘뻘 땀을 흘리며 따라오는 친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올라왔다. 그렇기에 더욱 꼭 맛을 보여주고 싶었다.
나는 한식이 이렇게까지 인기가 있을 줄 몰랐는데, 이곳은 아시아 슈퍼마켓을 한참 지나 대형 건물과 일반인들이 사는 주거 공간 같은 분위기의 거리를 걸어가고 나서야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입장해서 들어섰을 때 이곳이 예약제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미 자리 예약이 다 찼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자그마치 한 시간이나 걸어서 왔는데, 나부터 어깨에 힘이 빠졌지만 사정을 이야기하고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러자 직원은 사장님께 여쭤보겠다며 사장님을 불러왔다.
아니, 한국 사람 아닌가?
나는 한국분이시냐고 물어보니 리스본에서 태어난 한국계 중국인이었다.
그래서 한국어는 전혀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얼굴 생김새는 정말 당장이라도 한국말이 튀어나올 만큼 친근한 이목구비여서, 나도 모르게 한국말이 튀어나올 뻔했다.
나는 처음 한식을 먹는 친구들에게 대접하고 싶어서 직접 이곳을 찾아왔다고 소개했다. 그러자 괜찮다면 밖에서 먹어도 되겠냐고 하시며, 바깥에 짐을 두는 테이블 두 개를 붙여서 우리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 주셨다.
벨기에 친구들에게는 생애 첫 한식이었고, 나 역시 유럽 여행 중 맞이한 첫 한식이었다.
라멘이나 떡볶이를 먹었지만 그건 간식이지 제대로 된 음식이 아니었고, 진짜 한식은 한 달 넘게 먹지 않고 있었기에 주문하고 나온 음식에 눈이 뒤집어진 것 같았다.
일단 많이 걸었기 때문에 무지 배가 고팠다.
로라와 리젤로(Liselore)는 소주 맛을 보더니 별로 안 독하다면서 홀짝홀짝 몇 병을 마시기 시작했다. 주인장은 예전에 다른 리스본 사람이 겁도 없이 소주로 나발을 불었다가 취해서 된통 당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소주와 맥주를 섞어 먹는 문화와 가위로 고기를 적당히 잘라서 쌈에 구운 마늘과 쌈장을 찍어 고기와 함께 먹는 방법을 알려주었더니, 쌈장이 너무 맛있다며 정말 많이 찍어 먹었다.
잘 먹는 모습을 보니 마리아가 짜파게티를 먹었을 때처럼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한 시간 고생해서 걸어온 보람이 있었다.
벨기에 친구들은 한국식 반찬도 좋아했지만, 이곳에서는 한국처럼 반찬을 무제한으로 제공하지 않고 추가 주문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이국 땅에서 만난 한국의 맛이라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고기와 술, 반찬을 넉넉히 즐긴 두 유럽인은, 낮부터 마신 소주 덕분에 코가 빨개졌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시안 마켓에 들러 쌈장을 구입했다. 초행길이던 가는 길과 달리, 리스본을 걸으며 익숙해진 덕분에 돌아오는 길은 훨씬 빠르고 수월했다.
숙소에 돌아와 우리는 시에스타를 즐기기로 했다.
벨기에 친구들은 저녁에 리스본 전통 공연을 보러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5시가 다 되어 숙소에 돌아와 잠시 시에스타 시간을 가졌다. 햇볕도 많이 받았고, 한식을 배 터지게 먹은 터라 잠깐의 휴식이 절실했다. 시에스타 문화를 몸소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한참 자다가 6시쯤 일어났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만큼 아쉬움을 달래고자 벌써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해 질 녘 노을을 바라보며 강가에서 리스본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었다.
벨기에 친구들은 일어날 생각이 없는 듯해 톡을 남겨두고, 나는 어느새 어둑해진 도심을 뚫고 나와 Cais das Colunas로 걸음을 옮겼다.
여전히 관광객들로 붐비는 리스본. 아침에는 맑기만 했던 하늘에 드문드문 먹구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리스본의 변덕스러운 날씨가 하루 종일 우리와 함께했던 것처럼 느껴졌다.
강가 부두에 앉아 잠시 멍을 때렸다. 41일간의 순례길과 피스테라, 포르토에서의 핸드폰 로밍 사건, 그리고 리스본에서의 이틀, 모든 순간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갑자기 쏟아지는 소나기를 피해 광장을 가로질러 중심가 아우구스타 거리(Rua Augusta)의 한 젤라또 가게로 뛰어 들어갔다. 이곳은 유명 관광지답게 천막과 테라스가 잘 갖춰져 있어 비를 피할 곳이 많았다.
마침 허기지지 않았던 터라,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알록달록한 젤라토였다.
새삼 느끼는 거지만, 유럽에서는 정말 양질의 아이스크림을 마음껏 맛볼 수 있는 것 같다.
지금도 그 맛이 그리울 정도다. 건강한 소에서 얻은 신선한 우유와 풍부한 천연 재료들, 그리고 무엇보다 음식으로 장난치지 않는 정직함이 마음에 쏙 들었다. 한국에서는 아이스크림 전문점에서 제대로 된 젤라또를 맛보려면 웬만한 한 끼 식사 비용을 지불해야 하니 말이다.
비가 내린 덕분에 젤라또도 먹고, 우연히 열리고 있던 푸드 마켓에도 들르게 되었다.
근처 와이너리에서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를 맞아 와인병으로 만든 크리스마스트리 장식을 전시하고 있었고, 그 독특한 모습이 자연스레 눈길을 끌었다.
사실 이 마켓이 언제 열리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스페인 레온에서부터 골목골목을 누비는 걸 좋아하다 보니, 현지인들이 즐기는 음식 축제 같은 마켓을 우연히 마주하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놓쳤을, 뜻밖의 선물 같은 순간이었다.
야외 마켓이라 조금 더 저렴하고 현장감 있게 음식을 즐길 수 있을 거라 기대했지만, 역시나 한국의 푸드트럭처럼 가격은 만만치 않았고, 앉을자리조차 없었다.
결국 구경만 하고 다시 중심 번화가로 돌아가 저녁을 먹을 곳을 찾아 나섰다.
라울 메스니에 뒤 퐁사르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는 프랑스의 건축가이자 엔지니어인 라울 메스니에 뒤 퐁사르가 설계하고 제작했습니다. 그는 에펠탑을 만든 구스타브 에펠의 제자로도 알려져 있는데요. 그의 건축물이 리스본에 이렇게 멋진 흔적을 남기게 된 것이죠.
왜 만들게 되었을까?
19세기말, 리스본은 고저차가 심한 도시였습니다.
특히 바이샤 지구와 시아두, 카르무 같은 고지대 지역을 오가는 것이 너무 불편했죠.
시민들은 언덕을 오르내리느라 많은 시간을 써야 했고, 이동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불편함을 해소하고, 두 지역 간의 접근성을 높여 시민들의 삶을 더 편안하게 만들고자 하는 필요성이 커졌습니다. 그래서 라울 메스니에 뒤 퐁사르는 단순히 사람들을 태우는 이동 수단을 넘어, 리스본의 아름다운 경관과 어우러지는 하나의 예술 작품 같은 엘리베이터를 제안하게 된 것입니다.
그 결과, 1902년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가 문을 열었고, 지금은 리스본의 없어서는 안 될 랜드마크이자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되었답니다.
단순한 이동 수단이 도시의 상징이 된 놀라운 사례라고 할 수 있죠.
자료 출처: 구글
지나가던 길에 만난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 앞에는, 저녁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리스본 카드를 유료로 구매해서 탈 수도 있고, 무료 시간대에 맞춰 체험할 수도 있다고 한다.
낮에는 함께 다니다가 저녁엔 혼자 거리를 걷다 보니, 그동안 미뤄두었던 생각들과 추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비까지 내려서인지, 그런 분위기는 더욱 짙어졌다.
단순히 여행으로 왔다면 리스본에 일주일쯤 머물렀을 텐데, 이틀 남짓만 머물고 곧 세비야로 이동해야 한다는 점이 아쉬웠다.
산티아고에서부터 거의 이주일 가까이 버스만 타고 다녀서 그런지,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출발해야 하고, 또다시 세비야라는 낯선 도시에서 적응을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장소에 계속 노출되는 일은 언제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쉴 새 없이 걷던 사람이 또다시 걸어야 하는 여정.
피로가 쌓여 포르토에서는 결국 코피까지 터졌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저기 저 엘리베이터도 사람들의 불편함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지금의 나에게도 필요한 것은 ‘휴식’이었다.
세비야에 아무리 아름다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더라도, 지금 이 순간 나에게 가장 절실한 건 다름 아닌 쉼이었다.
유럽은 해가 늦게 지는 나라가 많아서인지, 대부분 저녁 식사는 8시 무렵부터 시작된다.
포르투갈은 스페인처럼 **시에스타(점심 이후 낮잠 문화)**가 있는 건 아니지만, 순례길을 걸으며 자연스럽게 유럽식 식사 시간에 익숙해졌다.
포르투갈에서도 술이나 고기보다는 확실히 아시아 음식이 훨씬 더 비싸다.
재료 수급이 쉽지 않아서일까? 흔치 않은 재료를 수입해서 써야 하니 그런 듯하다.
나는 비 오는 날씨에 쌀쌀해진 기운 탓에 맥주와 돈코츠 라멘을 주문했다.
뜨끈한 국물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이나 일본처럼 진하고 깊은 국물 맛까지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속을 데워줄 따뜻함이면 충분했다.
식사를 하던 중, 갑작스러운 정전 사고가 있었다.
그런데도 손님들 사이에서 컴플레인보다는 오히려 그 상황을 여유롭게 즐기는 분위기가 느껴졌다.
어쩌면 이런 느슨한 리스본의 기운이, 여행자에게도 느긋함을 선물해 주는 건 아닐까 싶었다.
나는 11월 6일 아침 7시 15분, Oriente 버스터미널에서 세비야로 출발할 예정이다.
그래서 오늘 씨에스타가 끝나자마자 숙소 근처에 있는 마트에 들러, 버스 이동 중 먹을 간단한 식량을 샀다.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음식 몇 가지를 챙겼을 뿐이지만, 그걸로 오늘 해야 할 일은 다 끝낸 것 같았다.
라멘을 먹은 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어제 공연이 열렸던 그 골목길을 다시 지나쳤다.
낮과는 또 다른 분위기의 다른 공연이 시작되고 있었다. 어느새 익숙해진 이 길도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다.
리스본은 마지막 순간까지 나에게 즐거움을 선물해 주었다.
어제는 레게 공연, 오늘은 보사노바 풍의 작은 연주회가 골목 어귀의 작은 타베르나에서 열렸다.
어제보다 관객 수는 적었지만, 오히려 그 덕분에 음악은 더 깊고 여유롭게 스며들었다.
느슨하게 흐르는 보사노바 덕분에 마지막 밤이 조금은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리스본, 생각보다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이곳 리스본을 이틀이나 머물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는데, 참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처음 유럽여행을 왔을 때 로마에서는 이틀만 머물 계획이었다. 그런데 그곳의 매력에 빠져 열흘 정도 머물고 나서야 다른 도시로 이동했던 기억이 있다.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았는데도, 그저 그곳에 있다는 사실만으로 축복받는 기분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리스본에서는 따뜻한 햇살과 친절한 포르투갈 사람들이 내게 그런 느낌을 주었다. 진짜 여행자로서 그곳을 떠나기 전까지 온전히 즐길 수 있었던 곳 같았다. 한국에서 느꼈던 조급함은 이미 오래전에 사라진 상태였다.
나는 늘 한국에서 일이 잘 풀릴까, 늦을까 노심초사하며 긴장하며 살았는데, 이곳에서는 그마저도 뛰어넘는 여러 사건과 사고가 오히려 나를 조금씩 누그러뜨려주었다. 그렇게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나의 모습을 알아간다.
나는 천천히 하는 걸 좋아했구나. 그리고 그렇게 했을 때 일이 더 잘 풀린다는 것도 말이다.
첫 유럽 여행을 마쳤을 때
나는 꼭 다시 금방 이곳 남부 유럽을 꼭 경험할 거라 다짐했다.
그 꿈이 이루어지기까지는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순례길을 걷고 두 번째 유럽 여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한 순간인 것 같다. 마지막 포르투갈 여행을 마치며, 기념품으로 노란색 리스본 트램 키링과 리스본 문양의 타일 자석을 구매했다.
오늘 함께 했던 로라는 2024년 포르토에서 산티아고까지 포르투갈 길을 걷게 되었다.
우연이었을 수도, 만나야 했던 인연이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단 하루의 특별한 경험을 함께 나눴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같은 순례자이자 여행자로서 우정을 나누었다.
그리고 나의 세 번째 유럽 여행은 이제 한 달 살이를 할 수 있기를 기도하면서 말이다.
내일 아침 일찍 떠날 준비를 하고 벨기에 친구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싶었으나, 전통 기타 공연을 보고 밤늦게 돌아와서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한 채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이 친구들은 다음 날 자전거를 렌트해 리스본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또다시 돌아가는 스페인이 어떤 추억을 남겨줄지 기대하며, 이제 줄여야 할 것 같다.
Buen Camin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