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에서 남부 스페인으로
길을 떠나기 전부터 내 귓가에는 ‘세비야’라는 이름이 맴돌았다.
주변 지인들은 입을 모아, 마치 노래를 부르듯 그곳을 추천했다.
그토록 칭찬이 자자한 데에는 분명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곳이기에 모두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세비야 알고 가기!
세비야는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방의 심장이자 주도(州都)로, 플라멩코의 열정과 유구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무엇보다도 ‘예술의 도시’라 불릴 만큼 문화유산이 풍부하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발렌시아에 이어 스페인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이며, 예술과 문화, 금융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도시의 젖줄인 과달키비르 강이 유유히 흐르는 평야에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세비야는 신대륙과 스페인을 잇는 역사 깊은 주요 항구 도시였고, 콜럼버스, 마젤란 등 유명 항해자들이 이곳을 거쳐 갔다.
7시 15분, 세비야로 떠나는 버스를 타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리스본 오리엔테 터미널로 향했다.
여러 우여곡절 끝에 다시 스페인으로 돌아가는 길. 익숙한 안식처로 향하는 반가움이 피어오르는 한편, 어느새 깊은 정이 들어버린 포르투갈을 떠나는 아쉬움에 발길이 무거워졌다. 반가움과 아쉬움, 두 갈래의 마음을 안고 스스로에게 나직이 물었다.
"다시 올 수 있겠지?"
모두가 잠든 숙소를 조용히 빠져나와 프런트에 키를 반납하고 언덕길을 내려갔다.
깊은 잠에 빠진 새벽의 리스본은 그 고요함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빛났다.
버스를 타려고 구글맵을 켰지만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정류장 간격은 하염없이 멀었고, 맞은편으로 건너가려면 8차선 도로를 가로질러야 했다.
겨우 올라탄 버스에서 기사님은 출근 시간이니 지하철이 더 빠를 거라며 친절하게 알려주셨다.
버스기사님의 조언은 땀을 뻘뻘 흘리며 안절부절못하는 나를 위한 작은 배려였을 것이다.
서두르는 법 없는 포르투갈 사람들 특유의 차분함, 옥구슬 구르듯 나긋한 그들의 언어가 나의 조바심을 잠시나마 잠재워주는 듯했다. 가장 가까운 지하철역에 나를 내려주었다.
리스본 지하철의 첫차는 6시 30분. 그전까지는 셔터를 내려두기에, 출근하려는 시민들이 문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시계만 흘깃거리던 나는 옆에 선 시민에게 이 열차가 오리엔테역으로 가는지 다급하게 물었다.
사실 산티아고에서부터 포르투를 거쳐 이곳까지, 버스가 제시간에 출발하는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혹시나 오늘만은 정시 출발이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은 어쩔 수 없었다.
적어도 7시까지는 터미널에 도착해야 한다는 강박에 마음을 졸이자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결국 나는 오리엔테역에 도착해서도 혼자만 조급해서, 세비야행 3523번 ALSA 버스 게이트를 찾아 무거운 배낭을 멘 채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했다.
오리엔테 버스 터미널에 7시 15분이 되었지만 버스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세비야행 승객들은 관리자 사무실로 들어가 여러 번 확인하며 게이트가 맞는지 물어야 했다. 이들의 느린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화를 내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분명 다 이유가 있을 터였다.
앞에서 함께 기다리던 브라질 여행자들과 이들의 느린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나눴다.
나뿐만 아니라 모든 여행자들이 이렇게 정시에 출발하지 않은 버스시스템에 기다릴 수밖에 없었는데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기다리고 있으니 긴장이 조금은 누그러지는 것 같았다.
드디어 8시가 넘어 버스가 출발했다.
기사님은 모두 착석했는지 꼼꼼히 확인하고는 부드럽게 버스를 움직였다.
그때그때 예약을 하다 보니 늘 그렇듯 맨 뒷자리에 앉아야 했다.
8시간을 내리 앉아 가야 하는 장거리였기에, 아침 일찍 타면 실컷 잠이라도 잘 수 있을 거라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내 앞자리 양옆으로는 세 아이를 동반한 부부가 앉아 있었다.
4살가량의 막내는 잠이 덜 깬 듯 엄마가 계속 안고 있었고, 나머지 두 아이는 대략 5~7살 정도로 보였다.
아이들은 아이패드로 어린이 애니메이션을 끊임없이 시청했고, 부모는 아이들을 진정시키려 애썼다.
특히 엄마는 쉴 틈 없이 바빠 보였다.
이 상황을 어떻게 이렇게 자세히 아느냐고?
앞에서 너무 시끄러웠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처럼 불평하거나 아이들 때문에 시끄럽다고 항의하는 사람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말 화를 낼 줄은 아는 건가 싶을 정도로 포르투갈 사람들에게서 큰 소리를 내는 것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장시간 여행 내내 엄마는 아이들에게 간식을 끊임없이 먹였고, 아이 중 한 명은 결국 토를 했다.
막내아기는 쉴 새 없이 칭얼거렸다.
세 아이를 돌보며 정신없는 엄마 옆에서 아빠는 컴퓨터로 무언가 작업을 하는 듯 보였지만, 엄마를 돕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딜 가나 이런 풍경은 만국 공통인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산티아고에서 포르투로 넘어갈 때는 산의 풍경을 구경하며 왔었는데,
세비야로 가는 길은 남부 스페인 특유의 탁 트인 바다가 계속 이어져 그나마 견딜 만했던 것 같다.
리스본에서 세비야까지 거리는 370km였다. 이 거리를 순례길처럼 걷는다면 하루 평균 20km씩, 대략 18일 정도를 걸어야 할 거리였다. 그런데 구글 지도는 이 터무니없는 거리를 3일 만에 도착한다고 알려주고 있었다. 하루에 100km 이상을 걷는다고? 나는 순간 내가 로봇인가 싶었다. 로봇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계산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햇살에 반짝이는 대서양의 푸른 바다를 풍경 삼아 호사를 누렸다. 물론 앞 좌석의 아이들이 너무 시끄러워 깊은 잠을 자긴 어려웠지만 말이다. 세비야 역시 리스본처럼 일단 하루만 예약해 두었다. 마음이 바뀌면 하루나 이틀 더 머물 계획이었다.
캐나다에 사는 친구와 수잔, 그리고 안나가 세비야에 대한 기대치를 잔뜩 올려놓은 탓인지, 다른 지역은 생각조차 못 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들은 세비야의 여유로움과 도시의 편리함, 순례자로서 휴식하기에 완벽한 곳이라 추천을 했던 것이다.
이른 아침 빠져나온 버스에서 보이는 일출풍경을 등지고 리스본을 떠나보냈다.
안녕!
또 보자!
여행가처럼 여행이 일상이라 일 년에 한 번 이상 유럽에 온다면 이 아름다운 풍경이 익숙해질 수 있을까?
나는 또 언제 다시 이 풍경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마음에 한참을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서도 미련이 남을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 휴게소만 넘으면 이제 스페인 땅으로 들어선다. 아기자기하고 언덕길이 많았던 포르투갈과 달리, 스페인으로 들어서자마자 끝없이 펼쳐진 황금빛 대지가 눈앞에 나타났다.
'와, 진짜 땅이 얼마나 큰 거야?'
감탄사가 절로 터져 나왔다.
개인적으로 지도 모양이나 구름 모양 맞추기 놀이를 좋아하는데,
프랑스는 별 모양, 미국은 고래 모양, 이탈리아는 긴 장화 모양으로 보였다.
개인적인 견해지만 스페인은 마치 황소의 뿔이 달린 머리 같기도 하고, 자유롭게 날개를 힘껏 펼치고 있는 새 같다는 상상을 해봤다. 드넓은 땅을 보며 그 상상이 더욱 생생해지는 순간이었다.
14시 18분 도착. 드디어 세비야에 도착했다. 이제 로밍 때문에 마음 졸일 필요도, 숙소를 못 찾을 일도 없다. 7~8시간 동안 차 안에서 고생하던 이 영국 가족은 내리자마자 끝내 부부싸움이 났다.
다시 도착한 스페인에서 고성으로 싸우는 사람들 목소리를 들으니 내가 비로소 스페인에 왔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나는 고성으로 시끄러워진 터미널을 빠져나오며 이렇게 말했다.
이게 스페인이지!
시끄럽고 불친절했지만 항상 스페인 사람들은 나에게 직접적으로 필요한 도움을 주었다.
포르투갈이 바로 옆에 있는 나라이지만 정말 다른 성향의 가족처럼 불협화음의 느낌이 있다.
숙소로 가는 길은 터미널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어서 걸어서 숙소로 향했다.
세비야는 과달키비르 강을 중심으로 평지가 펼쳐져 있는 곳으로 대도시의 느낌이 났다.
리스본보다 더 남쪽으로 내려왔기 때문인지 날씨는 더 따뜻했고, 지나치며 마주친 오렌지나무에는 오렌지가 주렁주렁 매달린 가로수 아래 떨어진 오렌지들은 아무도 집어가지 않았다.
사람들 걸음도 느릿느릿 여유롭게만 느껴졌고,
이런 모습들이 세비야만의 한가로운 분위기를 더해주는 것 같았다.
세비야에서 바다를 볼 수는 없었지만,
숙소로 가는 길에 강 위에서 힘찬 물살을 가르며 조정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나에게 이제는 새로운 장소와 분위기를 기억하는 데 버스나 지하철이 먼저가 아니었다.
어느새 나는 어디든 첫발을 내딛고 앞으로 나아갔다.
가장 믿을 수 있고, 자신 있는 것!
바로 걷기였다.
게다가 500M밖에 되지 않는 거리라면 당연히 나는 두말할 것 없이
몸이 먼저 앞서 그곳을 향해 걸어 나갔다.
세상을 살면서 나 자신을 온전히 믿어줄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무거운 배낭으로 걷다 보니 20분 정도를 걸으며 도시의 골목길 풍경과 사람들의 느긋한 모습을 천천히 구경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걷기는 내가 가진 가장 확실한 믿음이 되었고, 덕분에 여행이 더 풍성해졌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커다란 구름이 둥실 떠다니고, 찬란한 태양 아래 강물이 눈부시게 반짝였다.
조정 연습을 하는 사람들은 마치 소금쟁이처럼 물 위를 힘차게 가로질렀다.
유유자적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공기, 바로 그것이 세비야였다.
이 모든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느낌을 받았다.
이 순간, 영화 '소셜 네트워크'에서 윈클보스 형제가 매번 조정 연습을
하던 장면이 머릿속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나는 드디어 스페인에서 네 번째로 큰 도시, 세비야에 발을 디딘 것이다.
내가 도착한 시간은 대부분 시에스타 중이었다.
그래서 대부분의 음식점과 상점들이 굳게 문을 닫고 있었다.
'아, 여기 스페인이었지?'
하지만 이내 오히려 느긋하게 도시의 숨을 고르는 시간이라 여기며 익숙하게 그늘이 드리워진 Casco Antiguio 구시가지 골목으로 들어섰다.
눈앞에 호스텔이 나타났다.
깔끔한 외관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묵는 곳은 리스본보다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위치나 분위기로 봤을 때 나쁘지 않았다.
단점이라면 화장실문이 없는 오픈형으로 세면대가 있었다. 분리되어 있지 않은 구조였다.
그래서 화장실에 갈 때면 밤에도 센서등이 자동으로 켜지곤 했다.
여성 전용 8인실이었지만 일찍 도착한 덕에 1층 창문 근처 분리형 캡슐 벙커 침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완전 운이 좋았다! 포르투갈에서 계속된 불운과 실수로 우울한 날씨만큼이나 쳐져 있었는데, 스페인에 넘어오자마자 다시 운이 열리는 기분이 들었다.
엘리베이터까지 있어서 3층까지 짐을 들고 계단을 오를 필요도 없었다.
다만, 단점이라면 도시세 5유로를 내야 했고, 점점 더 비싸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편하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짐을 풀고 나니, 리스본에서 새벽부터 버스를 타고 오후에 세비야에 도착한 오늘 하루가 새삼 길게 느껴졌다.
7~8시간의 긴 이동과 북적이는 버스 안의 소란 때문인지,
아무래도 이제 버스 여행은 여기까지만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 쉬었다가 점심도 먹고, 시내 구경을 본격적으로 해봐야겠다.
오늘은 스페인에 왔으니 시에스타를 즐긴 후 오후에 도시 구경을 할 생각이다.
부엔 까미노!
리스본의 새벽 출근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오리엔테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원래 산티아고 여행 후 바로 오기로 했던 세비야. 예정에 없던 포르투부터 리스본까지 여정을 쪼개서 여기까지 내려온 셈이었다.
쉰다고 했으면서 사실상 정신없이 예정에 없던 포르투갈을 즐기느라,
세비야는 가장 아쉬운 여행지로 기억에 남는다.
세비야에서 속속들이 모든 걸 즐기지는 못했지만 나는 그곳에서 그 여유로운 분위기에 충분히 재충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느릿한 걸음과 시에스타의 고요함 속에서 진정한 휴식을 느꼈다.
그리고 다시 돌아온 세비야에서 나는 많은 것을 하지 않았음에도 괜찮다는 자연스럽게 스페인스러운 자부심과 나에게 맞는 여행의 결을 스스로 찾아 나갔던 것 같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여유가 주는 행복, 그것이야말로 나만의 여행 방식이 되었다.
여행이 그렇듯 가장 늘 아쉬운 부분만 길게 여운을 남긴다.
그렇기에 또 다음을 기약하는 것 같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