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습관 운명
바야흐로 미국에서는 '허락받은' 광기와 객기의 축제인 고등학교 '프롬' 시즌이다. “졸업식이 눈물의 행사라면 프롬은 웃음의 행사”또 “청소년기를 마치고 성년으로 들어가는 자축연”으로 알려지는 프롬은 특별히 부모들에게는 뿌듯함 그 자체이다. 걸음마 배우던 게 엊그제 같은 아들•딸이 어느새 커서 턱시도•드레스로 한껏 차려입고 파트너와 리무진으로 가는 모습을 보면 사실 부모로서 흐뭇하다.
그런데 문제로 남는 것은 애프터 프롬 파티이다. 부모로서는 친구들이 다 가는데 내 아이 혼자만 우두커니 집으로 돌아오게 할 수도 없고, 또 그렇다고 탈선 소지가 많은 상황으로 그냥 내보내기도 불안하고 고삐 풀린 망나니들을 멀찌감치 바라봐야 하는 가시바늘의 좌불안석의 신세이다. 시대가 시대인 만큼 '애송이'들이 프롬, 혹은 애프터 프롬 파티에 가면 막무가내 음주, 닥치는 대로 마약, 묻지 마 성관계 등 무방비로 노출될 것은 불 보듯 뻔한 일들이다. 아니나 다를까 올해도 다름없이 광란의 프롬(Prom)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해마다 평균적으로 졸업생들의 음주로 인한 사망자가 약 60명이나 되고, 부상자가 무려 5천 명이나 된다고 한다. 프롬 시즌만 되면 각 학교마다 음주 운전의 위험성에 대한 경각심을 높일 목적으로 범퍼가 찌그러지고, 옆 유리가 박살 나서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파손된 사고 차량을 수일 전부터 고등학교 입구에 전시한다. 간혹 전시물 옆에는 음주 운전 자제를 당부하는 대형 문구도 적혀져 있습니다. 'Enjoy Prom and I see you tomorrow" 더 이상의 더 확실한 음주운전 경고문이 또 있을까 싶다.
웬걸 그래도 오늘도 신문 일면에 한 어머니가 사고 난 자식의 싸늘한 시체 앞에서 절규를 하는 기사가 실렸다. '음주 운전의 끝이 이럴 줄 알았더라면 내가 운전을 해준다고 할걸'등등의 뒤늦은 후회막심의 소리만 우리들의 귀를 진동한다. 옆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고문 중에 고문이다. 꽃보다 더 아름답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고 금쪽같은 내 새끼를 인생의 희극의 무대에서 비극으로 보내는 그 심정은 누가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
언젠가 참으로 우연으로 넘기기에는 너무나 기막힌 타이밍으로 나를 기가 차게 한 두 젊은이들의 슬픈 이야기가 있었다. 한 기사는 강 모라는 야구팬이라면 누구나 이름을 익히 알고 있는 한때에 대한민국의 각광을 한몸에 받았던 앞날이 창창했던 젊은 야구 선수 이야기이다. 강선수가 일찍이 미국의 MLB (미국실업야구)로 스카우트되고 피츠버그의 실업팀에서 둥지를 트면서부터 관심을 가졌던 나로서는 그 기사는 망연자실과 동공 지진 그 자체였다. 어떻게 이 야구 선수가 지금 이런 꼴을 하고 있을까? 그는 한때 뚝심 있는 표정, 다부진 몸매 그리고 매의 눈으로 해성같이 미국 야구 세계를 섭렵하기에 충분한 자격을 가진 선수였다.
마치 기대에 부합이라도 하듯이 그는 불방망이를 마구 휘둘렀다. 조만간 박찬호 그리고 추신수의 뒤를 이어 대한의 젊은이의 이름을 날릴 기세였다. 곧바로 내셔널리그 '7월의 신인'에 선정되는 영광을 안았다. 이로써 그는 한국 선수로는 역대 두 번째로 '이달의 신인'에 뽑히게 됐다. 모두의 입에서 조만간 '이달의 신인'을 넘어 '신인왕'도 노려볼 수 있는 수준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날벼락이 떨어졌다. 꿈의 현장이었던 메이저리그에선 첫해부터 주전 자리를 꿰차며 성공적으로 적응한 강선수지만, 야구장 밖의 사생활은 깨끗하지 않았다.
시즌이 한창이던 어느 날 그는 온라인 데이트 앱을 통해 만난 여성을 원정 숙소인 호텔로 불러들여 성폭행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잘잘못을 떠나 공인으로서 또 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 왜 좀 더 성숙하게 신중하게 행동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엎친 데 덮친 격' 으로 자숙을 할 시간에 강선수가 서울에서 음주 운전 뺑소니 사고를 낸 것이다. 더구나 강선수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동승했던 지인 모 씨가 운전한 것으로 진술했다가 이후 블랙박스 상 운전자가 자신인 게 밝혀진 뒤 뒤늦게 자백한 것으로 전해진다. 음주 뺑소니 사고를 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강선수가 법정에서 선처를 호소한다는 소식이다. “요번에 징역형이 유지되면 비자 발급이 어려워져 메이저리그에 복귀할 수 없다. 강선수의 국내 운전면허가 취소됐고 미국 면허도 자진 반납한 상태이다. 잘못이 작지 않지만 야구를 못 하는 것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다른 선수들이 야구를 하는 것을 보면 더욱 후회가 깊다”라고 말했다는 소식이다. '내가 이럴 줄 알았더라면 ...'회한에 찬 한때의 야구 영웅의 한없이 초췌하고 창백하고 비굴해진 지금의 절규가 귀를 사정없이 때리는 순간이다.
인생의 막다른 절벽에 서 있는 강선수의 이야기와 나란히 실려진 한 젊은이의 이야기가 있었다. 가난했지만 성실하게 착하게 부모님의 사랑의 그늘 아래에서 잘 자란 또 다른 젊은이에 관한 기사였다. 그런데 고등학교 2학년 때였는데 그만 아차 하는 순간에 평생을 두고 후회할 일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친구 따라 강남을 간다고 하더니 이 친구가 친구를 따라 '옆길'을 가기 시작을 한 것이다. 집으로 곧바로 가는 그의 발걸음이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습관이 그의 운명을 바꾸고 만 것이다. 그 가게는 노부부가 운영하는 조그마한 가계였다. 이 친구는 그 가계를 들릴 때마다 허기진 배가 '꼬르륵 '소리를 내곤 한 것이다. 그럴 때마다 가계에 널려있는 빵을 너무나 먹고 싶었다. 그렇지만 집 형편상 빵을 사 먹겠다고 엄마에게 돈을 달래서는 안 된다는 걸 그도 알고 있었다.
이때 한 친구가 그에게 방법을 알려줬다. "훔치면 돼!" 아주 간단했다. 훔치기로 작정했다. 단팥빵 봉지를 주인의 눈을 피해 들었다가 놓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처음에는 손바닥엔 땀이 흥건해졌다. 그러다가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되고 만 것이다 돌이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고 만 것이다. 그러다 어느 날 가계의 돈까지 손을 대기 시작을 한 것이다. 적지 않은 돈을 훔치기 시작을 한 것이다. 잡혀서 경찰에서 경고를 받았다. 미성년 그리고 초범이라 선처를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번 쉽게 돈을 만진 그에게 '쉬운 '돈벌이'의 유혹은 감당하기에 너무나 벅찬 것이었다. 더 화려하고 요란한 성년이 되는 축하 파티가 열리면 그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다. 더 큰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국에는 흉기를 들고 강도 짓을 하게 된 것이다. 판사 앞에서 아들과 아들의 엄마가 판사에게 선처를 부탁하는 것이다. 두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탄의 소리가 법정을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내가 좀 더 신중하게 행동할 것을...'
그렇다면 정녕 우리네 삶은 끊임없는 뒤늦은 후회라는 무거운 짐과의 혈투이고 결국에는 우리를 '이럴 줄 알았으면..'이라는 넋두리에서 해방될 수가 없다는 말인가? 우리는 심지어 이 땅에서 마지막 호흡을 거두는 그 순간까지 후회막급이라는 무거운 짐으로 우리의 발과 마음을 짓누르면서 살아야 한다는 말인가? 정말로 미국 소설가 거트루드 스타인 외침처럼 “해답은 없다. 앞으로도 해답이 없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해답이 없었다. 이것이 인생의 유일한 해답이다.” 그렇게 막다른 골목에서 힘들게 살아가야만 한다는 말인가?
아마도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과 내가 우리들의 삶의 지나 간 과거를 소환해 만약 이럴 줄 알았더라면 다른 길을 선택할걸, 이럴 줄 알았더라면 좀 더 꼼꼼히 챙길걸, 이럴 줄 알았더라면 손해 보는 셈 치고 양보할걸, 이럴줄 알았더라면 너무 강해서 부러진다는 것을 왜 외고집을 피웠는지, 후회가 밀물처럼 밀려올 때가 많다.
요지경, 만화경 같은 우리의 삶. 결국 후회는 어떤 선택의 결과로 지남철처럼 달라붙어 어느새 우리와 동행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살면 '이럴 줄을 알았더라면...'이라는 회포에서 나를 해방시킬 수가 있을까? 연약하고 부족한 인간이 할 수 있는 삶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있다. 매일 아침 거울을 쳐다볼 때마다 "내가 가는 이 길이 어디로 가는지 또 어디로 날 데려가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사고가 바뀌면 행동이 바뀌고, 행동이 바뀌면 습관이 바뀌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바뀌고, 성격이 바뀌면 운명이 바뀐다”라는 말과 일맥상통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