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 소통
필자는 지난 수십 년째 빠짐없이 갓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신뺑이’ 사회인들에게 로버트 풀검의 베스트셀러 책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원제: All I really need to know I learned in kindergarden)를 졸업 선물로 주고 있다. 물론 지금까지 대학 졸업장을 따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쏟아부었는데 하필이면 인생 최고 정점을 찍는 날에 ‘유치원 교육’을 들먹인다는 것은 뭇매를 맞기에 딱 어울리는 처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떡하겠나? 풀검의 책은 도저히 대언할 수도 없고 대체 불가능한 귀한 ‘인생 설명서’ 인 것을 말이다, 풀검은 말 한다. 젊은이들은 필연코 지금까지 생면부지의 낯선 곳과 사람들을 접하면서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선택들을 강요받게 된다.
매 순간마다 그들의 손에 쥐어진 지금까지의 길잡이 ‘내비게이션’이나 ‘GPS’ 들은 맥을 못 추게 된다. 그렇다면 그런 절박한 찰나의 순간에 젊은이들을 구할 동아줄은 어디에 있을까? 풀검은 우리들에게 말한다. ‘상아탑’의 ‘꼼수’와 ‘편법’이 아니라 유치원 시절에서 터득했던 ‘기본으로 돌아가라’고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고학벌과 전문가 홍수의 세상이 왜 이토록 ‘삐걱삐걱’해 저버렸고 또 위태위태해 저버렸는지 그 이유가 바로 우리가 유치원에서 배운 것들을 몽땅 잊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 나는 로버트 풀검의 명성과 후광을 등에 업고 사회 초년생들에게 내 나름대로의 ‘기본을 잊지 말라’는 훈수를 둔다. 나는 지금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는 젊은이들에게 그 옛날 어릴 적에 ‘받아쓰기’ 교실을 한번 상상해 보라고 하고 싶다. 그리고 선생님들의 입에서 흘러나온 낱말과 문장들을 기억해 보라고 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것들이다. ‘말 (words)과 말 (horse) 또 눈 (eye) 과 눈 (snow)’ 그리고 학급이 올라가면서 같다 / 갔다, 느리다 / 늘이다, 다치다 / 닫히다, 있다가 / 이따가’ 등등이다.
그 옛날 우리들은 올바르게 선생님들의 낱말을 받아쓰기 위해서 귀를 쫑그리고 듣는다. 발음의 엑센트, 길게 빼어지는 발음과 짧게 되는 발음 등등에 초인간적인 집중력과 상상력 그리고 '젖 먹는 힘'을 다 동원하여 듣기에 힘쓴다. 그렇게 ‘받아쓰기’는 단순히 기계적인 귀 듣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을 듣고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한 디딤돌이었다.
낱말의 진정한 의미의 파악은 선생님들의 입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다. 말을 온전하게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선생님들의 손 놀림, 눈 놀림, 입술 놀림, 눈썹 놀림, 발 놀림, 어깨 놀림 그리고 마침내 온몸 놀림들 그 모든 것에 집중해야 했었다. 훗날 우리들은 경청이란 단순히 귀로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전달하고자 하는 말의 내용은 물론 그 내면에 깔려있는 동기나 정서에 귀를 기울여 듣고 이해된 바를 상대방에게 피드백하여 주는 것"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진정한 경청은 content 즉 메시지가 아니라 context 맥락과 전체 흐름이 중요함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한 시인의 말처럼 그래서 “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왜냐하면 그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한 사람이 주는 언어는 그 사람의 인생에서 녹여진 결정체인 셈이다. 받아쓰기 교실은 우리에게 일생 최고의 반면교사가 된 것이다. 정말 우리가 만났던 그 ‘어마어마한 교사’는 단순히 받아쓰기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인생 전반에 적용될 수 있는 귀중한 배움을 준 교사이다. 이제 우리는 타인과의 대화에서 상대의 말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초석을 마련한 것이다.
아직도 혹시라도 ‘받아쓰기라는 너무나 하찮은 말에 너무 지나친 호들갑을 떨고 있지는 않나요?’라는 분이 계실까 하는 노파심에서 나보다 훨씬 더 거인이고 무겁고 중후한 사람의 이야기를 해보자.
삼성의 이건희 씨 이야기이다. 내가 본 그의 첫인상은 별로 카리스마가 넘치는 그런 달변과 웅변가가 아니었다. 차라리 더 정확한 표현으로 하자면 이 회장은 말이 어눌하게만 보였다. 걸음걸이는 굼뜨고 허리는 꾸부정하고 웅크렸고 어딜 보나 세계 일류기업의 위대한 경영리더가 아니었다. 그런 그를 평소에 사람의 관상의 달인이라고 여겨졌던 아버지 이병철 씨는 후계자로 삼았던 것이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고 아버지의 눈에 보인 그 무엇은 과연 무엇일까? 언젠가 병석에 누워 있는 아버지 이병철 씨에게 기자가 질문했다. ‘왜 3남인 이건희 회장을 후계자로 지명하셨나요?’ 이병철 회장은 짧게 대답했다. “건희는 <듣는 귀>가 있어서!” 그러니까 3남인 이건희 회장이 장남과 차남을 제치고 삼성의 후계자가 된 이유가 그것 한 가지가 남보다 탁월했기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평소에 아버지 이병철 씨는 말 잘하는 아이보다는 잘 듣는 아이로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고 한다. “내 생각을 말하기 전에 남의 말을 먼저 잘 들으라”라는 경청의 귀중한 교훈은 아버지 이병철씨의 전매특허이었다. 살아생전 삼성의 창시자 이병철 씨는 어딜 가나 필기와 노트의 ‘광’이었다고 한다. 노트광의 지름길은 잘 듣는 것이라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진리이다. 오늘따라 눌언민행(訥言敏行) 즉 “군자는? 말은 어눌하게 하고 행동은 민첩해야 한다.”라는 고사 성어가 가슴으로 와닿는다. 쉽게 표현하자면 말 못 하는 것이 전혀 부끄러운 일이 아니고, 오히려 말을 더듬는 것이 군자답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걸 어떡하나요? 요즈음 우리 가정 (사회, 공동체 그리고 나라)에는 달변가 웅변가는 발에 차일 정도로 넘쳐난다. 모두들 듣기를 포기하고 하고 싶은 말만 하기로 작정을 한 것 같다. 모두들 듣는 척을 하지만 진정으로 ‘듣지’를 않는다. 듣는 것은 귀로만 하는 게 아니라 말하는 사람의 눈 놀림 입 놀림 그리고 온몸 놀림으로 하는 것임을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세상이 왜 이렇게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공동체에서나 국가 지도자들에게서나 실망하는 것은 다름 아니라 너무 말하기에 바쁘고 듣는 것을 못하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다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유치원으로 국민학교로 말이다. 그럴 때에 비로소 우리들은 내 상대방의 ‘어마어마한 과거와 현제’를 공감하게 되고 그 사람의 귀뿐만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마음도 얻는 일석이조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처지를 바꾸어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소통을 하게 되는 것이다. 비로소 ‘어마어마한’ 역사가 가정, 공동체 그리고 나라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필자는 젊은이들에게 성경의 요셉을 이야기를 자주 들려준다. 이유가 있다. 요셉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생활을 하다가 우연하게 애굽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과 같은 방을 쓰게 되었다. 어느 날 요셉은 고관대작들을 향하여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이 짧고 간략한 말은 훗날 요셉의 삶에 ‘어머어마한’ 여파를 남기기에 충분한 말임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요? 여러분, 그 당시 요셉의 실정은 어떠했습니까? 억울하게 죄를 뒤집어쓰고 옥살이를 하고 있을 때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너무도 분통이 터질 노릇입니다. 자기 코도 석자나 빠져 있는데 남의 일에 관심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날도 아침에 일어나 남들의 얼굴빛만을 보고도 상대방이 근심 빛이 있는 것을 꿰뚫어 보는 안목, 식견과 혜안을 가졌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 하고 걱정하는 마음으로 말을 걸었던 것입니다. 아시겠지만 이 대화의 연장선에서 노예 요셉, 죄수 요셉이 훗날 일약 애굽의 총리대신이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작금의 세상은 인터넷의 범람으로 대화의 기회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소통은 사라지고 또 요즈음은 너무 인간관계가 차가워진 것 같아 오한(惡寒)기를 느낄 때가 많습니다. 언제부터 남의 말과 일은 대충 건성으로 하는 습관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근심 빛이 있나이까?”라는 단어가 자리매김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남의 얼굴빛만 봐도 그 사람의 어마어마한 과거와 현재를 느끼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까요? 오늘 저는 늦게나마 내 인생의 뒤집기의 대장정을 위한 첫 단추 꿰매기 켐페인의 일환으로 인터넷에서 국민학교 학생용 ‘받아쓰기’ 책을 하나 구입하기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