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가장 엄숙하게 살 만한 가치가 있다

가치 의미 목적

by Joung park

흔히들 1970년대 한국의 젊음이들의 여름을 바꾼 노래라고 하는 그룹 키보이스의 <해변으로 가요> 와 <바닷가의 추억>이라는 노래가 있다. 오랫동안 이 노래들은 푹푹 찜과 끈적끈적함이 기승을 부리는 '찜통더위"에는 내 인생 최고의 청량제였다. 오랜만에 “별이 쏟아지는 해변으로 가요. 젊음이 넘치는 해변으로 가요”를 흥얼거렸다. 얼마나 오래만인가! 오늘 부터 팬데믹 내내 자물쇠로 꽁꽁 묶였던 내 동네 수영장이 문을 여는 것이다. 벌써부터 수영장은 인산인해였다. 미국 백인들의 수영장 사랑은 나의 눈에는 거의 '마니악' 수준들이다.


동네 수영장에서도 몸에 기름을 바르고 선글라스를 걸치고 햇빛에 몸을 맡긴 채 유유 적적하게 일광욕을 즐긴다. 피는 못 속이는 것인지 아니면 족보는 못속이이는 것인지 나는 체질상 일광욕이라면 거의 알레르기적인 거부반응을 한다. 나는 수영장에 왔으니 일단 몸에 물을 적시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한다. 비록 허우적허우적 개헤엄을 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허우적 하는 나에게 갑자기 누가 내 전진을 딱 가로막고 서 있는 것이다. ‘참 무례하구나’라는 생각도 잠시 갑자기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면서 '헉' '악' 비명이 터져 나왔다. 갑자기 그를 보자 당황함, 경악함, 충격의 놀라움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한 여름에 따뜻한 물속에서 온몸이 얼어붙는 그런 충격이었다. 어떻게 이 노인을 내가 수영장에서 만날 수 있게 되었을까?


대충 짐작으로 4년 전으로 시계를 뒤돌려야겠다.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에 일 년 전쯤에 내가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이사 오자마자 나의 첫걸음 나들이에서 제일 먼저 내 눈과 마주친 노인이 있었다. 남자 도우미가 뒤에서 미는 휠체어에 몸을 실은 채 동네를 산보하는 노인이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큰 척추수술을 한 뒤에 온몸이 마비가 되어서 휠체어에 몸을 맡기게 되는 딱한 사정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그냥 무심코 지나치기에는 그 노인의 삶에 대한 열성과 집념이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눈 내리는 차가운 날씨에도 담요를 걸치고 동네를 걷는 것이다. 어느 날 보니 휠체어에서 일어나 지팡이를 든 양팔에 몸을 의지해서 걷고 있었다. 때론 그 노인 앞에서 나의 토끼 걸음마로 걷는 것이 참으로 잔인하고, 비인간적이고, 죄송하고 또 무례하기 짝이 없어 보여서 나는 다른 시간대로 걷기도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그가 이제는 오른팔에 한쪽에만 지팡이를 잡고 제법 정상적인 균형으로 또 제법 정상적인 속도로 걷는 것이었다.


어느 날 아침에 나는 기절초풍을 할 만큼의 참으로 충격적인 아니 차라리 경이로운 장면과 마주치게 된 것이다. 올 초부터 그의 팔에 있었던 지팡이는 사라지고 이제 양팔을 흔들면서 정상적으로 걷고 있는 것이다. 그가 나를 보고 내가 '마침내 해내었다' 라고 하는 것 같았고 나도 모르게 그에게 힘차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85살의 한 백인 노인의 4년의 인간 승리이다. 나는 한 인간의 경이로운 집념과 열정의 인간승리의 현장에서 목격자가 되고 증인이 된 것이다. 바로 그가 오늘 수영장 레인에서 내 앞에 서서 ‘하이 파이브’를 하면서 나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이다.


내 수영을 끝내고 밖으로 나와 땅바닥에 그냥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멀찌감치 유유 적적하게 랩 수영을 즐기는 그를 바라본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저렇게 처절하게, 간절하게, 절실하게, 눈물이 겨울 정도로 하루하루에 나에게 주어진 환경 앞에서 최선을 또 차선이라 다한 적이 있었는가? 그냥 단순히 목숨을 연명하는 것 이상의 어떤 존재의 의미를 위해 발버둥을 쳐본 적이 없었던 것 같았다. 공연히 그를 향한 경이로움이 나를 향한 부끄러움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를 보면서 다니엘 웹스터라는 미국의 유명한 정치가가 생각이 난다. 언젠가 이분이 미국 국무장관으로 있을 때, 한번은 뉴욕의 어느 호텔에서 저명인사 20여 명과 함께 저녁을 먹게 되었다. 저녁을 다 먹고 다른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 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웹스터는 머리를 숙이고 가만히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옆에 있던 친구가 "웹스터씨, 당신의 일생을 통해서 당신의 마음속에 들어온 생각 가운데 제일 중요한 생각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하고 물어보았다. 그때 웹스터가 조금 있다가 얼굴을 들고, 이렇게 대답했다. "예, 제일 나에게 엄숙하고 중요한 생각은 내가 지금 하는 모든 일이 이다음 하늘나라에 가서 내가 책임질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이 생각을 할 때 내 마음이 가장 엄숙해집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렇게 엄숙하게 나에게 주어진 하루를 살아 본 적이 없었다. 차라리 나는 '대강대강', '대충대충', '안이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라는 단어가 더 적절한 수식어 같게 살아온 것이다. 그 노인이 지금까지 두드리고 넘어야 할 '벽'들은 얼마나 되었을까? 그 나이에 어느 날 하늘에서 떨어진 날벼락 같은 전신마비에서 오는 충격과 당황함은 얼마나 충격적이었을까? 그리고 이어진 재활의 기간 동안 주위의 사람들의 입에서 터져 나왔던 "그 나이에 무슨 쓸데없는 짓을?"이라는 수많은 편견과 조롱은 또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그는 해낸 것이다. 그것 하나만으로도 그는 자랑할 만한 삶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그 친구는 오늘 나에게 오래 사는 것이 중요한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는 것이 중요함을 보인 스승이다. 그가 우리 실버타운에서 유일하게 “야 야 야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노래를 부를 자격이 있는 사람이다. 또 유행가 ‘백 세 인생’ 가사 “육십 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아직은 젊어서 못 간다고 전해라…구십 세에 저 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알아서 갈 테니 재촉 말라 전해라 백세에 저세상에서 날 데리러 오거든 좋은 날 좋은 시에 간다고 전해라’라는 가사를 읊을 수 있는 것이다. 오늘 그는 나에게 참으로 한 인간의 일생은, 인류 전체의 무게를 합한 것만큼 엄중하고 엄숙한 것임을 깨닫게 한 것이다.


집으로 뚜벅뚜벅 걸어오면서 백련천마(百鍊天麻)란 말을 또 올렸다. 백번 연습하고 천 번 갈고닦는다는 말입니다. 남이 한 번 하면 나는 열 번 하고, 남이 열 번 하면 나는 백 번하는 끈덕진 노력 속에서 위대함은 만들어진다는 말이다. 그렇다. 위대함은 우연의 산물도 요행의 결과가 아니라 끊임없는 피와 땀과 노력의 산물이다. 다른 사람이 무사안일과 무위도식 속에 허송세월을 하거나 편안한 잠에 취했을 때 그들은 밤이 새도록 피땀의 수련과 노력을 쌓았던 것이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살기 원했던) 내일입니다. 도대체 저 노인은 지난 4년 동안의 그의 삶의 길고도 긴 터널 속에서 무엇을 잡고 오늘까지 견디고 버티고 자신의 갈기 갈기 찢어진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지탱하고 있었을까? 부디 그가 오래오래 건강하게 내 이웃사촌으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지가 멀쩡한 나도 저렇게 누군가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너무 늦기 전에 말이다.


혹시라도 "아직 나에게는 시간이 많은데요"라는 분이 계실까 해서 드리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 오클라호마에는 ‘Oklahoma City National Memorial & Museum’라는 곳이 있는데 그 공원에는 연방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극우주의자 티모시 맥베이라는 사람의 폭탄 테러로 숨진 168명을 추모하는 박물관이 있다. 끔찍한 테러 사건을 기억하기 위해 지은 박물관이다. 이 기념관의 입구 양쪽으로 커다란 시간의 문이 서 있다. 그 문에는 각각 9:01, 9:03이란 숫자가 새겨져 있다. 무엇을 상징하나요? 이는 폭발 시간이었던 9시 2분을 기준으로 이전의 평화로웠던 때와, 이후의 새로운 희망을 갖게 된 때를 의미한다고 해요.


2개의 문 사이에는 얕은 물이 흐르고 있고, 그 바로 옆으로는 희생자 168명을 상징하는 빈 의자 168개가 놓여 있는데, 중간중간 보이는 작은 의자들이 당시에 희생되었던 어린이들을 떠올리게 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아프게 한다고 해요. 그 작은 의자들은 그 공원을 방문하는 모든 이에게 ‘이제부터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남은 시간을 사실 거예요?’라는 질문을 하고 있다고 한다. 바로 오늘 수영장에서 만난 백인 친구가 나에게 한 질문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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