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7월 31일, 프라이빗에쿼티(Private Equity) 프로젝트 투자를 위한 출장으로 뉴욕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뉴욕에서 하루 반을 보내고 애틀랜타로 건너갈 계획이었다. 해외대체실 운용역으로 전형적인 출장 일정이었다. 4일 간 두 개의 도시, 하루 반나절의 미팅들, 그리고 30.5시간의 비행시간. 뉴욕에서는 전직 골드만삭스 파트너들이 설립한 새로운 운용사를 만난다. 능력과 네트워크는 차고 넘칠 것이 분명한 그들이, 투자자금을 제외하고는 사람도 시스템도 부족한 우리의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지 알아보는 자리였다.
국민연금 해외대체팀에 합류한 2011년 초, 나는 내 일이 끔찍하게 싫었다. 미국 우편번호가 부여되는 미군 부대에서 카투사로 군복무를 한 것 외에는, 그리고 굳이 말하자면, 어학연수 차 플로리다에서 두어 달 시간을 보낸 것 외에 딱히 해외 경험이라고는 없었다. 나는 내가 잘하는 일을 좋아한다. 일을 잘하고, 잘난 척하는 것을 좋아하는 재수 없는 놈이었다. 입사 후 맨해튼 빌딩 인수 건을 받았을 때, 도대체 여기는 어디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 봤지만, 일단은 나보다는 훌륭한 것이 분명한 미국인들의 말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도, 우리에게는 수조 원의 투자 예산이 있었고, "Head of Global Private Markets"라든지 "Head of Global Real Estate"이라는 지금 들어도 엄청난 지위에 있던 직장상사들은, 처음에는 돈이 있다는 것을 믿어주지도 않던 콧대 높은 글로벌 운용사들과 어떻게 일해야 하는 지 잘 알고 있었다. KKR의 Henry Kravis나 스타우드캐피탈의 Barry Sternlicht 같은, 책이나 TV에서만 보던 유명인들을 만났다. 더 좋았던 것은 그들을 위해 일하는 최고의 엘리트들이 우리와 전략을 공유했다는 것이다. 지금 어떤 투자를 해야하는 지 누가 우리보다 더 잘 알 것인가?!
지금 생각해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수준의 프로페셔널리즘과 직업윤리를 지니고 있는 상사들 덕분에, 제공받은 엑셀 모델을 수정하고 몇십 장이 되는 보고서를 줄간격을 맞춰 작성하고 나면, 백장 가까이 되는 본 보고서 작성을 목표로 비행기에 올라 이코노미 좌석에서 쭈그리고 앉아 영어로 된 수십 장, 수백 장의 자료를 읽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나니 나도 그들과 비슷해지고 있었다. 운용사를 만나 이야기를 하나라도 더 듣기 위해 시차적응 못한 몸에 카페인을 때려부었다.
해외출장은 오랜 기간 내 직업이었다. 나의 해외출장에 로망은 없다. 시차적응 안 된 몸을 이끌고 한국어와 영어 모드를 어떻게 하면 빨리 전환할 지 고민하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커피를 달고 살았다. 하루 종일 혹은 반나절 진행되는 미팅은 투자조건 협상을 해야했기 때문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했고, 몇천억 짜리 협상 후에는 별 볼 일 없는 호텔 방에서 예산을 넘는 호텔비에 줄어드는 저축을 걱정했다. 이직한 후 비행기 좌석은 업그레이드되고 호텔비 걱정은 없어졌지만 목과 허리 통증은 늘 나를 따라다녔다.
다행이었던 점은 결국 내가 그 일을 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몇 번의 이직을 거치면서 여전히 출장은 내 직업이었고, 즐거움이나 로망은 없을지언정, 나는 내 일을 잘 해냈다. 오랫동안 내가 했던 일들과 비슷한 일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내 경험을 말해주고 싶었다. 같은 시행착오를 거치지 않고, 조금은 덜 고생하고, 그리고 덜 아프도록. 그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해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