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CM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합류한 후배에게 당부했던 말이 있다. "우리는 갑이 아니다." Private Equity와 부동산 등 사모시장의 장점이자 단점은, 늘 누군가를 설득해야 한다는 것이다. 투자 기회를 가져올 때는 기업주와 경영진을 설득해야 하고, 자금조달을 할 때는 투자자를 설득해야 한다. 사업의 기회와 투자의 기회를 이해하고 양쪽의 요구를 모두 만족시키는 구조를 찾는 것까지가 투자 전문가로서 우리가 하는 일이다. 부족함을 모르는 천재들은 이 일을 하기 어렵다. 지적인 재능이 부족하면 또한 할 수 없는 일이다.
"왜 이 투자를 하고자 하는가?"를 뜻하는 Investment Theme(직역하면 투자 주제 혹은 테마 정도겠지만, 그 어느 쪽도 완전한 번역이 아니다)은 투자를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내가 하고자 하는 투자를 짧은 글로 요약하는 것은 정말이지 쉽지 않은 일이다. Investment Theme은 투자를 하기 위한 방향성으로서의 의미와 함께, 설득하기 위해 필요한 투자의 논리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가진다. Investment Theme이 남을 설득할 수 없다면 그 투자를 실행할 수 없고, 나를 설득할 수 없다면 투자가 아니라 투기나 사기가 된다.
내 커리어 상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프로젝트는 2011년 프로젝트 머큐리 Project Mercury와 2013년의 프로젝트 넵튠 Project Neptune 이었다. (사모시장의 투자자들은 투자대상이 언급되는 것을 피하고 기밀을 유지하기 위해 별도의 프로젝트 이름을 지정한다) 머큐리는 뉴욕 맨해튼 빌딩을 사들이는 프로젝트였다. 2007년 금융 위기 전에 구조화된, 복잡한 대출과 소유구조를 보유한 건이었다. 크게는 세 개의 순위별 대출이, 상세히 들여다보면 다양한 부동산 담보대출(Mortgage 모기지라고 한다)을 포함한 십여개의 트렌치 Tranche (조각 혹은 일부분을 의미하는 프랑스어로, 금융에서는 대출 혹은 소유구조 상의 일부분을 의미한다)가 있는 건이었다.
머큐리의 Investment Theme은 자본의 재구조화 (Recapitalization 혹은 Capital Restructuring)였다. 복잡다단한 재무구조로 최대한 고평가된 자산을 기존 가격 대비 낮은 가격에 매입하면서 구조를 단순화하는 것이다. 금융위기가 배경이었고, 속칭 스페셜 시츄에이션 Special Situations 건이었다. 스페셜 시츄에이션은 "문제가 있는 자산을 매입하는 방식"을 젊잖게 표현하는 말이다. 스페셜 시츄에이션의 전문가들은 어떠한 문제가 되었든 그 문제를 떠안고 저가로 자산을 매입하여 자산의 본래 가치를 되찾도록 문제를 해결한다. 재무적인 문제일 수도 있지만, 종종 일반인들은 엄두를 내기 어려운 법적인 문제들을 포함한다.
넵튠은 집과 사무실에 물과 음료를 배송하는 미국 회사를 인수하는 건이었다. 동일한 원형의 배송노선을 지닌 두 회사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A라는 회사는 20명의 고객에게, B라는 회사는 10명의 고객에게 동일한 양의 물을 배송한다. 동일한 원형 노선을 통해 배송하므로, B의 고객 당 배송단가는 A의 두 배가 된다. 물의 제조원가를 무시할 수 있다고 가정하면, B의 고객 당 비용은 A의 두 배이다. 어느 날 A가 가격을 1/3 인하한다. B는 경쟁에서 밀려 사라지게 된다. A는 배송망에 10명의 고객을 추가한다. 이제 A의 고객 당 배송단가는 2/3로 감소한다. A는 가격을 원래대로 올리고 이익률이 높아진다. 결과적으로 각 지역은 과점화될 수 밖에 없고, "땅따먹기"를 통해 미국 전체가 과점화되었다. 현실은 이렇게 단순하지만은 않다. 하지만, 넵튠은 우리에게 세 배에 달하는 투자수익을 가져다 주었다.
한국에 돌아와 처음 PE 팀을 시작하고 팀원 중 하나가 물류 건을 가져왔다. 바이아웃 건으로는 지나치게 작았지만 그 팀원이 꼭 하고 싶어했고, 나는 그가 원하는 것을 하게끔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넵튠을 떠올렸다. 유사한 배송망을 보유한 중소업체를 통합하는 전략(Add-on 인수라고 표현하고, 상황에 따라 Bolt-on 혹은 Tuck-in 인수라고 표현되기도 한다)을 준비했다. 규모의 경제, 네트워크 효과. 그 어떤 이름을 붙여도 좋았다. Investment Theme은 단순해야 하고, 단순하기에 더 효과적이어야 한다. 지금도 물류의 Add-on 전략은 우리 팀이 진행하고 있는 주요 과제 중 하나이다.
오랜 기간 이 일을 하면서, Investment Theme이 우리 삶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이 일을 해야 하는가? 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원들이 필요한가? 나는 필요한 모든 것을 지니고 있는가? 그렇다면 모자란 자원들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가? 마지막으로, 이 일이 잘 되지 않을 수 있다면 위험요소는 어디에서 발생하는가? 이 네가지가 한 페이지에 정리될 수 있다면, 우리는 나 스스로 뿐 아니라 많은 이들을 설득할 수 있다. 희망에 찬 상상은 종종 우리를 배신하지만, 글로 적혀진 관념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
미래에셋에서 커리어를 시작할 때, 상장주식 투자를 할 생각이 없는 지 권유를 받았었다. 이후 상장주식을 시작하지 않았던 것을 종종 후회했다. 나는 설명에 재능이 없었고, 사람을 끌어들이는 매력도 부족했다. 오랜 기간 이 일을 하면서 많이 나아졌다 생각하지만, 여전히 많이 부족하다. 하지만, 20여년 간의 훈련은 사람을 많이도 변화시킨다. 그렇게 마스턴의 PE 사업을 맡아 성공적으로 안착시킬 수 있었고, VCM이라는 이름으로 내 투자 하우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