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J Feb 18. 2024

Luggage

나는 짐을 잘 부치지 않는다. 내 짐이 나와 함께 도착하지 않는 것은 결코 유쾌할 수 없는 경험이다. 항공사에서 다음날 보내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출장 중 하루 동안 내 짐이 없다는 것은 치명적이다. 백팩과 기내용 캐리어에는 각각의 시점에 필요한 짐들이 들어가 있다.


비행기에 오를 때는 편하지만 따뜻한 트레이닝복에 운동화를 신고, 백팩에는 세면도구, 노이즈캔슬링 헤드셋, 노트북과 책 한 권이 들어가 있다. 노이즈캔슬링 기능이 비행기의 엔진음을 차단하게 되면, 비행의 피로가 얼마나 줄어드는지. 비즈니스 좌석에 노이즈캔슬링 헤드셋이 제공되는 이유가 있다.


도착지 시간에 맞춰 잠들면서, 승무원에게는 깨우지 말라고 부탁해 둔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에서 제공되는 두 번의 식사와 때로는 라면까지. 맛있지만, 앉아서 사육당하는 기분을 지울 수 없다. 도저히 소화가 되지 않는다. 계속해서 일하고 있는 내 소화기관은 도착 후의 시차 적응을 방해한다.

  

도착지 오전 시간에 맞춰 일어나 세수를 하고 커피를 마신다. 도착 전에 옷을 갈아입고, 구겨두지 않도록 맡겨두었던 재킷을 받아 내린다. 부치지 않은 짐은 기다릴 필요가 없다. 입국절차를 거치는 동안 우버를 부른다. 적어도 짐을 부친 사람들보다 빠르게 택시 줄에 설 수 있다. 뉴욕 라구아디아 같은 곳이면, 예비군 훈련을 한 시간 먼저 끝내는 것 같은 기분이다.


숙소에 체크인을 하고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한다. 샤워는 중요하다. 바로 일정을 시작하면 이어지는 회의와 호텔로 돌아와 계속되는 업무로 인한 피로를 버티기 힘들다. 이제부터 밤이 올 때까지 잠들지 않기 위해 카페인을 마시기 시작한다. 밤에는 당연히 잠이 오지 않는다. 끝까지 몸을 누인다. 멜라토닌이 있다면 미리 먹어둔다. 술이라도 먹는 날이면 기계적인 루틴에서 잠시 벗어나 먹먹한 마음으로 잠드는 것이었다.


호텔 운동시설은 중요하다. 대단한 시설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땀을 흘릴 수 있는 유산소 시설, 여러 무게를 갖춘 덤벨 세트, 망가진 목과 허리를 위해 스트레칭이 가능한 요가 매트. 깨끗하고 넓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운동은 시차 적응에 정말 도움이 된다.  


아침식사는 방금 한 따뜻한 계란요리와 채소, 탄수화물 조금. 담백한 중국식 콩지 Congee는 아시아 출장에서 얼마나 마음을 달래주는지. 맛있어 보이는 음식을 지나치는 것은 다분히 인내심을 필요로 하지만, 음식보다 커피가 더 요긴하다. 아침에는 가능한 많은 이메일에 답장을 보내고, 필요한 사항은 바로 연락을 해 둔다. 그렇게, 출장 일정에만 집중할 수 있다.


그 이후에는 하루의 반복이다.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회의를 시작하고, 계속 커피를 마시고,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공항으로 향한다. 다음 도시에 도착해서 최소한의 시간으로 빠져나와 호텔에 체크인을 하고, 다음날을 시작한다. 기계적이고 반복적인 하루들은 스트레스를 줄여준다. 시애틀에서처럼 잠시 스타벅스에 들러 친구가 부탁한 옛 로고 기념품을 살 수 있으면 행복하다.

 

2016년 12월 16일 커다란 두 개의 바퀴를 가진 샘소나이트를 아마존에서 주문했다.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오래된 내 것이 좋다. 망가지지 않을 캐리어를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휴가를 갈 때도 기내용만 챙기고 짐을 부치지 않는다. 쉴 때는 쉬는 것에 집중할 수 있도록, 여행의 설렘을 방해할 수 있는 요인들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다.

이전 01화 Prologue. Business Trip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