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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J Feb 25. 2024

American Nations

문화의 차이

시카고에서 5년을 지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그 시간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중후한 석조 마천루들 사이사이로 유리로 치장된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왔다. 바람이 지나는 길은 점점 좁아져 Windy City의 사람들은 더 세찬 바람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럼에도 계속 지어지는 아파트들로 도시의 체온은 점점 높아져 갔다. (Windy City라는 별명은 바람 때문이 아닌 정치 때문이다.) 서울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카고에서도 처음에는 그 도시를 미워하다가 결국에는 적응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Colin Woodard는 "American Nations"에서 미국 내에 얼마나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과거 뉴암스테르담이었던 뉴욕은 다양성을 존중한다. 뉴욕에서 무표정하거나 찡그리는 사람을 많이 보았겠지만, 그들은 불편할지라도 다양성이 건강한 사회를 위해 필요하다는 데 대체로 동의한다. 공동체를 중요시하는 보스턴의 양키문화는 교육과 교류에 많은 노력을 쏟는다. Harvard와 MIT 같은 좋은 학교들이 보스턴에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반면, 시카고 사람들은 다른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색하다. 도심 외에는 거주지 별 구분이 명확해서, 유럽계 백인과 아프리카계 뿐 아니라 멕시코, 인도, 동유럽계 등이 지역별로 섞이지 않고 살아간다.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는 뉴욕이나 아시아계가 상대적으로 많은 샌프란시스코와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다. 외국인에게 일단 미소를 짓는 아시아권의 문화와는 정반대에 가깝다. 겨울에 시카고를 방문한다면, 불어오는 바람만큼이나 쌀쌀맞은 Chicagoan들을 만나게 된다. 나는 그만큼 자주 서러웠다. 


사실 우리에게 정말 어려운 것은 미국과 유럽에 있는 이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유럽계 인종이라는 것이다. 수시로 출장을 다니고, 많게는 네 곳의 도시를 한 번의 출장에 방문하던 나로서는, 비슷하게 생긴 이들이 너무나도 다른 태도와 행동을 보이는 것이 혼란스러웠다. 뉴욕과 런던은, 다행스럽게도, 국제적이 도시인만큼 낯선이들과의 대화가 어렵지 않다. 유럽이나 미주의 서양인들도 우리와 비슷하게 생각할 것이다. 그들이 보기에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 일본, 중국의 사람들은 왜 이리도 다르게 행동하는가? 홍콩과 싱가포르 같은 국제화된 도시에서는 사람들의 배경과 무관하게 현지인들과 더 어울리기 쉽다.  

 

특히 물리적으로 넓은 나라인 경우, 국가 안에서의 지역별 차이가 존재한다. 미국 뿐 아니라 중국과 인도는 각 지역별로 생김새와 말투, 행동까지도 많이 다르다. 아마도 내가 중국어와 힌디를 더 잘했다면 비슷한 혼란을 겪었을 터였다. 하지만, 가장 심각한 것은 영어권 지역이다. 우리는 주로 미국의 영화와 방송으로 문화를 접한다. 영어를 쓴다는 이유로 영국과 호주의 문화도 미국 문화와 비슷할 것이라는, 캐나다인들조차 동의하지 않을, 순진한 생각을 하기 쉽다. 내가 투자자이자 그들의 잠재적인 고객이 아니었다면, 내 협상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곳의 문화에 대해 조금 더 잘 알았다면 내 글로벌 투자 인생은 훨씬 더 편안했을 것이다. 


한국계 회사에서 해외투자를 하고 있다면, 당신의 팀은 기껏해야 십여명이 정도일 가능성이 높다. 한 지역을 오랫동안 담당하기보다는 다양한 국가와 문화를 떠돌아다니게 된다. 그곳에서 파트너를 만나 의논을 할 수도 있고, 협상의 상대방을 만나게 될 수도 있다. 내가 만나고 있는 이들이 어떤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가지고 어떤 사고를 하고 있는 지 조금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나로서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마음의 상처를 지니고 미국을 떠날 때가 되어서야 얻게 되었던 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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