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은 글로 표현되어야 한다. 그 어떤 생각이든 간에 글로 표현되었을 때 그것은 명확해진다. 추상적인 이미지의 한계는 명확하다. 우리는 인생에서의 성공이나 실패를 어떤 장면으로 그려본다. 그러함으로써 우리가 우리 내부에 지닌 성공 혹은 실패가 지니는 구체적인 조건을 정의하지 못한다. 실제 인생은 떠올린 그림의 중간 어디엔가 위치하게 되어 그것이 성공인지 실패인지 모르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이다.
마음 속의 그림은 상상의 시기에 따라 제각각 달라진다. 사랑의 꿈을 꾸는 어린아이를 생각해 보라. 그가 떠올린 사랑의 모습과 대상은 그가 나이를 들어감에 따라 달라지기 마련이다. 십 대의 몽상가적 사랑은 이십 대 때의 열정적인 사랑으로, 그리고 삼십 대의 보다 현실적인 사랑으로 변해간다.
"주제의 피상적인 동일성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림은 그림이 가진 도형적 가치에 의해 자신을 언어로부터 더욱더 멀어지게 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미셸 푸코, 광기의 역사>
이는 우리의 상식과는 정반대이다. 우리는 지금 눈앞에 보여지는 것이야말로 가장 정확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사고하는 대부분의 것들은 언어에 의해 단순화하고 추상화되어, 언어를 통해서만이 정확하게, 정확하게 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허용되는 영역이라면, 표현할 수 있다.
우리는 생각과 목표와 계획을 글로 써서 표현할 필요가 있다. 강한 의지를 가지고자 한다면, 가고자 하는 길에 대해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표현할 필요가 있다. 이로써 지금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한 보다 명쾌한 분석이 가능해진다. 사실과 생각을 기술하는 것은 때론 고통스럽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러해야만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몽상에서, 특히 대부분은 소셜미디어에서 비롯된 생각 없는 몽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