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 긴 여운
눈을 뜨니 해가 중천이에요. 지난밤에 잠시 보았던 이란에서 온 녀석과 사진을 한 장 담아요. 저보다 이틀 먼저 방비엥으로 간다고 하더라고요. 제자리로 돌아왔는데 어제 술자리에서 본 캐나다에서 온 20대 대학생 탈하가 대뜸 제게 방콕에서 산 뱀술을 건네며 마셔보라는데, 세월이 지나니 남은 건 나이와 겁뿐인 건지 손사래를 쳤어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독일에서 온 요하네스• 에이미 커플과 붓다파크를 간다고 해요. 그래서 저도 2시 반에 함께하기로 했네요. 아침 겸 점심을 먹고 환전도 할 겸 주변을 둘러봐요.
예정대로 두 시 반에 툭툭이를 타고 붓다파크(영혼의 도시)로 가는 중이에요.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잠시 걱정을 했지만, 그래도 한편으론 오래간만에 마주한 비였기에 반가움이 컸네요. 아마 어쩌면 하늘이 첫 여행에 걱정이 많은 저를 위로하신 건 아닐까 싶어요.
지나치는 길에 만난 엄마와 딸을 보며 웃으며 손을 들었더니 미소로 화답을 해주세요. 감사했어요. 언어가 안 통하지만 서로 웃으며 인사할 수 있는 순간을 마주할 수 있는 것도 축복이 아닐까 싶어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남는 건 사진이에요. 10년 전인데도 사진을 바라보니 이때로 회귀하는 느낌이 들어요.
영혼의 도시에 들어서니 신성함이 느껴졌어요. 세월의 흐름에도 올곧이 그 우수한 자태를 뽐내는 이름 모를 석상들은 마치 시간여행을 왔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요. 탑의 상층부로 가는 비좁은 계단에 올라서니 탁 트인 시야에 이곳에 오기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맞아요. 이러려고 여행을 오는 것이지요.
붓다 파크를 거닐다 보니 조각상들이 시선을 잡아요."하늘을 벗 삼아 조각했던 걸까요?" 여유로움과 편안함이 느껴지는 거대한 와불상이에요.
숙소로 돌아가는 길, 이번에도 손을 흔들었더니 이내 웃음꽃이 피네요. 언어가 참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동시에 언어만 다르지 삶의 형태는 다르지 않다는 그 당연한 사실도요. 고개를 돌려 하늘을 보니 감사하단 생각이 들어요. 마치 그간의 힘든 시간을 보상받는 듯한 느낌이었거든요. 참, 그러고 보면 세상엔 감사한 일이 많은 것 같아요.
숙소에 돌아오니 첫날에 잠시 인사했던 Pinoy Traveler 가 저를 기다렸다고 하셔서 감사 인사와 함께 다음을 기약하고요. 가시는 길 항상 기쁨과 행복이 가득하시길 기도했어요. 그러면서 평생을 여행하시는 분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인생은 긴 여행이라고요.
오늘 하루 줄곧 함께 있었던 요하네스• 에이미 커플을 저녁에 만났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해요. 둘이 행복해 보여서일까요. 허락을 구하고 사진을 담아 보내준다고 하니, 좋다고 흔쾌히 수락하네요. 지금도 어딘가에서 잘 살고 있겠지요. 꼭 그러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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